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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침묵>
▲ 책표지 <위대한 침묵>
ⓒ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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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이윤기 작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다. 그 인기는 대단했다. 그는 1977년에 등단했지만 소설가보다 번역가로 더 많이 알려졌던 것 같다. 그가 번역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유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가 쓴 작품은 썩 많은 편은 아니지만 창작이든 번역이든 무게 있는 작품들이었던 것 같다. 돌아가신 것은 지난 해 8월, 우리 나이로 예순 네 살이었다. 너무 이른 죽음. 사인은 심장마비였다. 작가는 죽어도 죽은 것이 아닌가보다. 책으로 말하고 있으니.

'한 번도 꽃'으로 피진 못해도,
잎만 아름다워도 꽃 대접 받는다

작가의 유고 산문집 <위대한 침묵>(민음사)을 만났다. 이 책은 작가가 생전에 미처 책으로 묶지 못한 37편의 이야기들을 담았다. 생전의 소소한 일상과 생각, 혹은 추억들을 담았다. 나무를 심은 이야기,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 친구이야기, 신화에 나오는 위대한 영웅들의 행적, <그리스 로마 신화>를 쓰게 된 계기와 거기 얽힌 이야기, 야만적 교육현실에 대한 분노, 이름값의 허실...등등 인간 이윤기를 만난다.

작가 이윤기를 딱히 무엇이라고 명명하기란 쉽지 않다. 그를 알 수 있는 단서를 나는 이 책에서 찾는다. 소제목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네' 안에 그가 말하는 작가가 보인다. 이윤기 작가가 있다.

"나는 신학대학 출신인데다 예수님의 향긋한 말씀을 너무 좋아해서 스님들로부터는 예수쟁이로 몰리고, 부처님과 선불교를 좋아해서 기독교인들로부터는 '절집처사'로 몰려 본 특이한 경험의 소유자다. 경상도 사람인데도 전라도 문화를 너무 좋아해서 동창들로부터 '족보가 의심스러운 놈', 전라도 친구들로부터는 '무신경한 경상도 놈'으로 낙인 찍혀 본, 참 억울한 사람이다. 영어 책 번역을 생업으로 삼은 데다 미국에 오래 머물렀던 탓에 한글 순혈주의자들로부터는 '미국 놈 똥구멍 빨다온 놈', 진보적인 어문학자들로부터는 '언어국수주의자'로 몰린 적이 있는, 자타가 공인하는 회색분자다. 나는,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석양 무렵 혹은 동틀 무렵을 좋아한다. 인도 말로는 이런 순간을 '드히아나'라고 한다지 아마. 선(禪)이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지 아마. 눈 감은 것도, 뜬 것도 아닌 상태. 확실하게 아는 것도,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닌 상태. 나는 앎과 모름의 가장자리를 서성거릴 때 행복을 느낀다."(p53~54)

입선, 중퇴, 초빙, 객원, 명예... '한 번도 꽃'으로 피어보지 못한 채 잎으로만 살았지만 그래도 그는 잘 살고 있다고 젊은이들을 격려하는 그의 따뜻한 배려와 격려, '잎만 아름다워도 꽃 대접 받는다'는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작가는 단 한번도 '꽃'으로 피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197년 신춘문예 소설부문에 당선되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당선이 아니라 가작이었고 1970년대, 80년대는 대학 중퇴자가 참으로 건너기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대학 중퇴자다. 2006년 여름, 모교총장으로부터 명예졸업장이란 걸 겨우 받았다는 그는 그 많은 잎들(청소년, 청년들)을 향해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한 가지 붙잡고 거기에 시간과 노력을 줄기차게 쏟아 붓는다면, 언젠가는 능히 '꽃다운 꽃 대접을 받을 수 있게 된다고 그는 희망을 준다.

작가는 '그리스로마 신화를 쓰게 된 동기를 얘기하면서 역시 또 젊은이들과 우리 모두를 격려한다. 내용 중, '이름값의 허실'에서 최고의 이탈리아 작곡가요 바이올리스트의 연주에 얽힌 일화나 명연주가 조슈아 벨에 얽힌 에피소드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간판 값, 그 허실을 꼬집는다.

비발디는 설명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이탈리아 작곡가 및 바이올리니스트. 이 명연주가 비발디가 스트라디바리우스(최고의 바이올린)를 들고 무대에 선다는 소문이 돌았단다. 명연주가 비발디와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만남, 청중은 숨을 죽이고 기다렸고 이윽고 무대에 나타난 비발디가 자신이 작곡한 바이올린 곡을 연주, 청중들은 열렬히 박수를 보냈다. 과연 명연주가와 명기의 만남이 다르다고 생각했던 것. 그 순간 비발디는 박수를 받자마자 바이올린을 패대기쳐 박살을 내버렸다. 바이올린은 스트라디바리우스가 아니라 아주 평범한 싸구려였단다. 어안이 벙벙한 청중들 앞에서 비발디는 새 악기를 꺼냈다. 그것이 진짜 스트라디바리우스였다. 비발디가 청중에게 주고 싶었던 메시지는 분명하다.

또 하나.

때는 2007년. 미국 워싱턴의 지하철역 앞에서 한 청년이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있었다. 청바지와 티셔츠 차림에 야구 모자를 눌러 쓴 아주 평범한 청년이었다. 청년 앞에는 바이올린 케이스가 놓여있었다. 그 안에는 1달러짜리 지폐 몇 장과 동전 몇 개가 들어있었다. 그는 약 45분간 연주. 하지만 45분 동안 행인들의 귀에도 익숙한 음악을 연주했지만 연주자의 앞을 지나간 행인은 무려 1097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귀 기울였던 사람은 7명에 지나지 않았단다. 바이올린 케이스에 모인 돈은 고작 32달러.

이 '거리의 악사'는 바로 미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바이올리스트 조슈아 벨(당시 나이 39세)이었다. 벨의 연주를 듣기 위해서는 최소한 100달러는 지불해야 한단다. 그가 그날 연주한 바이올린은 명기 스트라디바리우스. 값으로 따지면 약 45억원을 호가하는 명품 중의 명품. 그가 평소에 연주회에서 받는 개런티는 시간당 7000만원 꼴이다. 사람들은 조슈아 벨을 알아보지 못했고,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소리를 알아보지도 못한 채 그 앞을 지나쳐버렸던 것이다.

작가는 '이름값이란 그렇게 허무한 것'이라고 말하기 위해, 위의 두 에피소드를 든 것.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스펙 쌓기에 열을 올린다. 소위 간판을 중시하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꽃으로 한 번도 피어보지 못했던 이윤기 자신도 잎으로도 꽃 대접 받고 살 수 있었다고 격려한다. 잎만으로도 꽃 대접 받으며 살 수 있는 사회를 바라는 그의 마음이기도 하다.

누구에게나 흑해가 있다. "그렇다. 나도 나의 흑해를 건너자!"

작가는 우리들에게 누구에게나 '흑해'가 있다. 그 흑해를 건너야 한다고 말한다. 나의 '흑해'는 무엇일까? 그는 1999년 2월...터키의 대도시 이스탄불의 한 술집에 앉아 있었다. 그리스와 터키 여행 중이었다. 그는 문득 창밖으로 흑해를 내려다보았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흑해를 건너자'...그리고 사람들 사이에서 바다는 두 가지 이름으로 불려진다.

'오케아노스'와 '에욱세이노스', 바다가 우호적으로 느껴질 때는 '오케아노스', 바다를 뜻하는 영어 '오션'은 바로 여기에서 온 말이다. 바다가 심술궂게 느껴질 때는 '에욱세이노스'라 부른다. '적대하는 바다'라는 뜻이다. 신화시대의 그리스인들에게 흑해는 '오케아노스'가 아니라 '에욱시이노스'였단다. 그들에게 있어 흑해는 죽음의 바다였던 것. 이는 '쉼플레가데스'때문인데, '박치기하는 두개의 바위섬'이란다.

이 두개의 바위섬은 흑해를 항해하는 배들을 노리고 맹렬하게 다가와 배를 사이에 두고 박치기를 하는데 그 배는 산산조각이 나 버리고, 신화가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배를 몰고 최초로 이 쉼플레가레스를 통과한 그리스인은 '이아손'. 그는 목숨을 걸고 북방의 나라 콜키스까지 항해하여 금양모피(황금양의 모피)를 수습해 온 영웅'이란다.

그는 1999년 2월. 터키의 흐린 주점에서 흑해를 보는 순간, 문득 흑해를 '아르고나우타이(아르고원정대를 이끌고 콜키스를 다녀온 영웅 이아손)건넌 이아손을 떠올렸다. 그리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렇다. 나도 나의 흑해를 건너자!" 그리스와 로마의 신화현장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기로 결심하기에 이른다. 우여곡절 끝에 흑해를 떠난 그는 3개월 동안 그리스 구석구석을 누볐고 프랑스, 영국, 로마 등 신화 현장을 답사. 그때 찍은 사진만 해도 1만 5천여 장. 그 다음해인 2000년에는 아예 한국으로 돌아왔다. '이윤기의 그리스로마 신화'는 그렇게 해서 태어났다. 2만 명에 가까운 독자들의 손에 그 책이 들려졌다.

그는 그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한다. "터키의 흐린 주점에서 나의 흑해를 건너야 한다고 결심하지 않았으면 나는 어찌 되었을꼬! 나의 신화 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좌절해 있는 젊은이들을 위해 쓴다. 흑해는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그 흑해를 건너야 한다."(81p)고.

나가는 말

프랑스 속담 중에 '작가의 죽음은 생물학적 죽음 10년 뒤에 온다'는 말이 있다. '작가의 생물학적 죽음은 진정한 죽음이 아니라, 죽고 나서 10년 뒤에 작가의 작품이 남느냐, 남지 않느냐에 달린 것이라는 의미이다. 소설가요, 산문가요 번역가였던 그는 아무래도 오래 오래 독자들 사이에 회자되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 책: <위대한 침묵>(이윤기/민음사) 값:10,000원



태그:#이윤기, #위대한침묵,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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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전5: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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