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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 언젠가 이름은 들어봤지만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몰랐던, 아직은 우리에게 낯설고 생소한 나라. '21세기 최초의 신생독립국'으로 알려진 그곳에 경원대학교 해외봉사단인 아름샘이 지난 2월 10일 열흘간 봉사를 다녀왔다. 다양한 전공을 가진 17명의 봉사단원들은 2010년 11월 선발돼 3개월간 준비기간을 가졌다.

봉사단 이름인 '아름샘'은 아름다운 샘을 뜻한다. 아름샘의 모토는 '마르지 않는, 샘솟는 사랑'이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아름샘이 동티모르에 남겨놓은 것이 사랑이 마르지 않는 샘까지는 못 되더라도 현지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마중물이 되었기를, 그리고 이 글이 동티모르 소식에 목말라 하는 독자 여러분의 갈증을 풀어주는 시원한 물 한 모금이 되기를 바란다.... 기자주

벽화 채색을 시작하자 온 마을 주민들이 몰려와 구경했다.
 벽화 채색을 시작하자 온 마을 주민들이 몰려와 구경했다.
ⓒ 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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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샘이 맡은 활동 중 하나인 벽화 그리기 시간. 디자인을 전공하는 봉사단의 막내 김항규군의 실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우리의 캔버스가 되어줄 장소는 숙소로 사용하는 라우템 주 공공도서관의 한쪽 벽면이다.

오늘의 벽화 그리기 멤버는 항규군과 그의 조수를 자처한 필자, 간호학과의 귀요미라고 불리는 강양희양과 봉사단의 비주얼 담당 양미연양, 그리고 유치부 전국 미술대회 수상경력이 있으시다는 교수님 등 다섯 명이다. 벽화 그리기 작업은 밑그림, 채색, 테두리 그리기 작업을 거쳐 총 3일 동안 진행되었다. 항규군이 구상한 도안은 동티모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도마뱀과 하트모양의 나무, 그리고 언덕 위에 있는 두 채의 집이 있는 그림이었다.

벽화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김항규군.
 벽화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김항규군.
ⓒ 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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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 그리기 첫 날, 항규군이 연필로 벽면에 귀여운 도마뱀 캐릭터를 스케치하는 걸 구경하고 있는데 항규군이 필자에게 "누나도 그려볼래요?" 하며 연필을 내밀었다. 벽화는커녕 집 한 채도 제대로 그려본 적 없는 실력이지만 "마음대로 그리세요"라는 항규군의 말에 자신감을 얻어 도안대로 하트모양의 나무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밑그림을 완성한 다음 날, 벽화 그리기 멤버들 앞에는 현지에서 조달받은 여러가지 색의 페인트 물감과 붓, 신문지, 생수통이 놓여졌다. 준비물이 주어지자 늘 어리기만 한 줄 알았던 항규군이 카리스마를 발휘해 벽화 그리기를 전두지휘하기 시작한다.

"제가 페인트를 섞어서 색을 만들면 생수통에 부어드릴 테니까 각자 한 그림씩 맡아 칠해주세요. 끝부분을 칠할 땐 페인트가 흘러내리지 않게 물감을 고르게 펴서 칠해 주세요."

모두들 항규군이 페인트를 섞어 만들어 준 색으로 정성스럽게 밑그림을 채색했다. 하트나무는 청록색으로, 도마뱀은 녹색으로, 빨간색과 파란색의 지붕을 얹은 집 두 채는 흰색으로 칠했다. 집 위에 그려진 태양을 칠할 때는 항규군이 "해는 노랗게 칠해야 해요!" 한다. 교육활동 때 알게 된 사실인데 동티모르 아이들은 해를 노랗게 칠한다. 그러고 보니 해는 노란색으로 보이는 데 왜 우리나라 아이들은 불문율처럼 해를 빨갛게 칠할까? 어찌 됐든, 벽화 한 가운데에 위치한 노란 태양은 벽화의 분위기를 한층 환하게 만들어 주었다.

온 동네 구경거리가 되었던 벽화 채색 작업. 교수님과 필자는 주로 왼쪽 벽의 그림을 채색했다.
 온 동네 구경거리가 되었던 벽화 채색 작업. 교수님과 필자는 주로 왼쪽 벽의 그림을 채색했다.
ⓒ 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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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채색을 시작하자 마을 주민들이 도서관 주위로 몰려들어 구경하기 시작했다. 두 시간 넘게 이어진 채색작업은 어느새 온 동네 구경거리가 되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벽화주위로 몰려들었다. 아이들은 조심스럽게 페인트 붓을 만져보기도 하고 "Diak(디아크, 잘했다)"와 "Kappas(카파스, 멋지다)"를 연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페인트가 벽면에 흘러내리지 않게 온 정신을 집중하느라 다들 점점 지쳐갔다. 그 순간 갑자기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Thank you, Korea." 돌아보니 한 남자아이가 웃으면서 단원들을 바라보고 있다.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건 어떻게 알았는지, 영어로 "고마워요, 한국"이라고 말하며 단원들에게 수줍게 고마움을 표한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감동이 밀려와서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해낸 것도 아닌데 가슴이 뿌듯해졌다. 아이들의 칭찬에 힘을 얻은 벽화 멤버 다섯 명은 온 몸이 페인트 물감 범벅이 된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채색작업을 했다. 라우템 주 도서관의 밋밋했던 벽면은 점점 화려하게 변신해 가고 있었다.

채색작업을 마친 다음 날, 페인트가 다 마르자 검은색 페인트로 도마뱀 캐릭터의 테두리를 그리기 시작했다. 테두리 작업을 마치니 훨씬 그림이 돋보인다. 벽화를 시작하기 전까진 참 힘들었는데 막상 그려놓고 나니 우리가 로스팔로스에 예쁜 선물 하나를 남겨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우리가 그 벽화를 다시 보기는 힘들겠지만, 도서관에 찾아오는 아이들이 그 벽화를 보면서 봉사단원들의 바람대로 소중한 꿈을 키워나가길 바란다.

동티모르의 '훈남' 내 친구 줄리우

휴식시간에 농구를 하며 만나게 된 현지인 친구들. 이역만리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이 오래도록 이어지길 기원한다.
 휴식시간에 농구를 하며 만나게 된 현지인 친구들. 이역만리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이 오래도록 이어지길 기원한다.
ⓒ 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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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에 와서 만난 소중한 인연이 여럿 있지만 그 중 줄리우를 빼놓을 수 없다. 로스팔로스에 온 지 둘째 날, 단원들이 모든 활동을 끝내고 휴식시간에 쉬고 있는데 현지 청년들이 다가와 같이 농구를 하자고 했다. 그렇게 매일 농구를 하면서 친해진 사람 중 하나가 바로 줄리우 이다. 봉사단 중 특히 양승진군, 이승훈군과 친해진 줄리우는 스물 여섯살의 청년인데 키도 크고 농구실력도 대단하다.

그리고 대화 중에 알게 된 놀라운 사실. 줄리우는 소년 시절에 동티모르의 독립전쟁에 참가한 적이 있다고 한다. 줄리우뿐 아니라 그 때 총을 들 수 있는 나이의 사람들은 전부 동티모르의 독립을 위해 인도네시아 군과 싸웠다고 한다. 그토록 힘들게 독립을 달성해서 그런지 동티모르인들과 대화하다 보면 한국인들처럼 '우리'라는 정서가 강하고 독립을 이룬 것에 대한 큰 자부심이 느껴진다.

헤어지기 전날에는 양승진군과 페이스북 주소까지 교환하며 이별을 아쉬워했던 로스팔로스의 훈남 줄리우. 어린 나이에도 동티모르의 독립을 위해 싸웠던 용감한 애국청년, 같이 사진을 찍을 때 자신의 땀에 절은 옷이 단원들 몸에 닿자 미안해하던 매너남. 이역만리에서 봉사단과 맺어진 인연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어지길 기도한다.

체육대회의 오프닝 공연이었던 사물놀이는 포로스 아이들 뿐 아니라 마을 주민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다.
 체육대회의 오프닝 공연이었던 사물놀이는 포로스 아이들 뿐 아니라 마을 주민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다.
ⓒ 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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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로스 초등학교 최신 유행어, '이따 쁘론뚜오나~'

봉사단이 포로스 초등학교에 남기고 온 대표적인 유행어 '이따쁘론뚜오나(Ita Prontu ona)'는 떼뚬어로 "준비됐나요?"라는 뜻이다. 아이들의 집중을 유도할 때 쓰는 말인데 봉사단의 이지형군이 유치원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준비됐나요~" 할 때의 억양 그대로, "이따 쁘론뚜오나~"하고 발음해서 현지 아이들로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따 쁘론뚜오나' 말고도 '박수 세 번 치세요'라는 뜻의 'Basa liman dala tolu'(바사 리만 딸라 똘루)도 아이들의 주목을 얻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따쁘론뚜오나'가 가장 빛을 발한 건 교육활동 마지막 날 열린 체육대회 시간. 봉사단 중 예슬, 이지형군, 효진양, 양미연양, 강양희양, 이승훈군으로 이루어진 사물놀이팀이 오프닝 공연으로 열린 흥겨운 사물놀이를 마치자 관중석에서 열광적인 박수가 터져나왔다.

체육대회때 진행된 꼬리잡기.
 체육대회때 진행된 꼬리잡기.
ⓒ 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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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대회 진행자를 맡은 이지형군이 확성기에 대고 "이따 쁘론뚜오나~!"하고 외치자 포로스 학교 전교생이 "쁘론뚜오~!(준비됐어요)" 하고 일제히 대답한다. 체육대회 종목은 볼링과 꼬리잡기. 포로스 초등학교 현지 선생님들도 체육대회에 참여하셨는데 아이들만큼이나 즐거워하신다.

특히 꼬리잡기 게임을 할 때는 선생님들 모두 무서울 정도로 눈빛이 진지해지셔서 상대팀을 맡은 봉사단이 지레 겁을 먹기도 했다. 봉사단은 청팀과 백팀의 응원을 이끌어 내면서 아이들이 대열을 이탈하진 않을까, 다치진 않을까 살피느라 정신이 없었다. 다행히 우리가 준비해 간 체육대회는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다.

우리가 떠난 지금도' 이따쁘론뚜오나'가 포로스 초등학교에 울려 퍼지고 있을까? 포로스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이따쁘론뚜오나를 유용하게 사용하고 계시진 않을까? 우리가 포로스에 남겨놓은 유행어인 "이따쁘론뚜오나~" 역시 포로스 사람들에게 기분 좋은 추억거리로 남았으면 좋겠다.

청팀과 백팀 모두 각 팀을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청팀과 백팀 모두 각 팀을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 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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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교육을 맡았던 포로스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 자마펠, 노엘, 루카스, 로말도, 닐바, 모니카, 에피안, 줄리아나, 루벤, 에스테파니아 등등...다들 하나같이 너무나 예쁜 아이들이다.
 필자가 교육을 맡았던 포로스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 자마펠, 노엘, 루카스, 로말도, 닐바, 모니카, 에피안, 줄리아나, 루벤, 에스테파니아 등등...다들 하나같이 너무나 예쁜 아이들이다.
ⓒ 경원대학교 아름샘 봉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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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경원대학교는 2010년에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업무협조약정(MOU)을 체결하여 학생들에게 국제개발협력사업과 개발도상국의 현실을 소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글로벌 개발협력의 이해'라는 교양과목을 개설하였다. 그리고 이 과목을 수강한 학생들 중 지원자를 선별하여 다양한 전공을 가진 17명의 학생들로 해외봉사단을 구성했다.



태그:#아름샘, #동 티모르, #해외봉사, #경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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