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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남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카다피는 군 전체가 돌아서기 전에는 끝까지 저항할 것"이라며 "오랜 기간 리비아를 고립시켜온 국제사회가 이번 사태에 쓸 수 있는 지렛대가 거의 없다"며 아쉬워했다.
 홍순남 한국외대 명예교수는 "카다피는 군 전체가 돌아서기 전에는 끝까지 저항할 것"이라며 "오랜 기간 리비아를 고립시켜온 국제사회가 이번 사태에 쓸 수 있는 지렛대가 거의 없다"며 아쉬워했다.
ⓒ 김경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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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하지는 않지만 석유가 나서 그런대로 먹고 살 만한 나라, 27세 대위가 무혈 쿠데타를 일으켜 무려 42년간을 철권통치 해온 나라,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에 대해 박격포, 전투기까지 동원해 무참히 공격하는 나라….

새해 벽두 튀니지에서 촉발된 중동의 민주화 시위 불똥이 이집트를 찍고 두 나라의 가운데에 위치한 리비아에 떨어졌다. 아니 활활 타오르고 있다.

리비아의 시민들은 튀니지와 이집트 시민들처럼 장기집권해온 독재자를 권좌에서 내쫓고 새롭고 자유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인가.

중동전문가인 홍순남 한국외대 아랍어과 명예교수에게 리비아는 어떤 나라인지, 무엇이 문제인지, 카다피의 결국 퇴진할 것인지 등 궁금한 것을 물어봤다.

홍 교수는 "카다피는 집권 중 이미 수십 번의 반란을 진압한 경험이 있으며 96년 교도소 폭동 때는 1200명을 학살한 적이 있다"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군대 전체가 돌아서지 않는 이상 끝까지 피를 보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카다피가 쉽게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란 말이다.

홍 교수는 "당초 시위는 민주화를 요구하며 시작됐으나, 각 부족들이 사막의 석유 송유관과 관련된 이권에 눈뜨게 되며 부족간 갈등으로 비화되고 있다"며 과거 유고슬라비아 해체 이후와 같은 내전 상황으로의 확산을 우려했다.

홍 교수는 이어 "리비아는 국제사회로부터 너무 오랜 기간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번 사태 해결에 국제사회가 쓸 수 있는 지렛대가 거의 없다"며 아쉬워했다.

다음은 홍순남 교수와의 일문일답.

"군대가 돌아서지 않는 이상 카다피는 끝까지 갈 것"

리비아 반정부 시위.
 리비아 반정부 시위.
ⓒ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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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선 리비아는 어떤 나라인지 설명해달라.

"리비아는 북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들과 달리 영국이나 프랑스가 아닌 이탈리아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그래서 프랑스가 지배했던 마그레브 지역(모로코, 튀니지, 알제리)에도 끼지 못하고 이집트 등 영국이 지배했던 지역에도 못 끼어서 정체성이 애매한 측면이 있다. 특별한 '식민지 소속감'이 없다는 것이다. 인구는 670만으로 적지만 석유가 많이 나기 때문에 주변국에 비해 경제가 상대적으로 나쁘지는 않다고 본다. 그래서 리비아까지 재스민 혁명이 파급될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실업과 빈부격차는 심하다.

42년 전 오랫동안 지배해오던 이드리스 왕이 신병치료차 터키에 가 있는 사이에 카다피가 무혈쿠데타를 일으켜 집권한 이후 리비아에는 왕의 고향인 벵가지 지역에 형성된 왕 추종 세력과 카다피 중심의 트리폴리 등 두 세력이 있어왔다. 벵가지 지역은 왕의 성향에 따라 친미, 친유럽 성향이 강하고 트리폴리 지역은 미국으로부터 폭격을 받아 100명 이상이 죽는 등의 사건 이후 카다피를 따라 반미사상이 강하다. 이번 시위가 벵가지 지역에서 시작된 것은 그런 배경이 있는 것이다."

- 튀니지나 이집트 시위는 집권자의 장기집권도 문제였지만 실업과 빈부차 등 경제적인 원인도 컸다. 리비아는 비록 카다피가 장기집권을 했다지만 경제적으로 살 만한 나라인 것 같은데 이같이 격정적인 민주화 시위가 벌어지는 것은 이유는 무엇인가.
"카다피 국가원수는 42년 전 무혈쿠데타로 집권한 이후 완전한 1인 독재를 행해왔다. 군은 철저히 사병화됐고 국가는 개인기업과 같은 모습으로 운영됐다. 장기간 너무 통제돼왔다. 과거 왕이 통치할 때 리비아는 공창이 있었을 정도로 개방적인 나라였다.

게다가 팬암기 폭파사건 이후 테러 국가로 낙인찍혀 오랜 기간 국제사회로부터 제재받고 고립돼왔다. 그 때문에 문제가 있어도 국제사회가 제재할 힘(지렛대)을 잃어버렸다. 만일 국제사회와 계속 연계되어 있었으면 세계질서 틀 속에 있었을 텐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미국이나 유엔 등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것이다. 밖에서 인권이니 뭐니 해도 아무 신경을 쓰지 않는다."

- 지금 궁지에 몰려 있는 카다피는 어떤 사람인가.
"60년 전 중동의 아랍민족주의를 주창한 이집트 낫세르 혁명에 고무된 젊은이 중 한 명이었다. 가난한 지역 출신으로 당시로선 신분상승의 유일한 방법이던 군 장교가 됐다. 이후 겨우 27세의 나이로 정권을 잡은 뒤엔, 이집트와 합친 통일아랍공화국을 만들어 지역강대국의 대통령을 해보려고 했다. 천막생활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며, 부의 축재를 하지 않고, 대수로공사를 비롯해 국가건설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른 중동국가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호화궁전도 없다. 무바라크와는 달리 부자세습 움직임도 없었다."

- 민주화요구 시위로 시작됐던 사태가 이후 크고 작은 부족간의 다툼으로 번지고 있다. 이의 배경은?
"지금 리비아에는 작게는 140개, 크게는 30개의 부족이 있다고 한다. 처음부터 부족간의 갈등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여태까지 부족들은 자신의 이권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민주화시위 와중에 사막에 석유 송유관을 관리하는 데서 이권이 발생하는 것을 알았다. 부족들이 원유공급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새로운 이권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지금 부족들이 일어난 것은 이 때문이다. 예전에 유고에서 티토가 살아있을 때 잠자고 있던 나라들이 티토가 죽은 뒤 이권을 찾다가 발칸반도가 뒤집어진 것과 같다. 민주화 요구 시위였던 사태가 부족간 다툼으로 번지고 내전으로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 카다피가 아무리 '사생결단'을 부르짖으며 결사항전을 외치고 있지만, 외신에는 벵가지를 중심으로 한 국토의 동부지역은 이미 카다피의 통제를 벗어났다는 보도가 나온다. 카다피는 권좌를 지킬 수 있을까?
"금요예배가 있는 25일이 가장 중요한 날이 될 가능성이 많다. 전 국민이 예배를 보고서 반정부설교를 듣고 흥분된 사람들이 밖으로 튀어나올 수 있다. 이집트도 그랬다. 이날 새로운 시위형태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카다피는 집권 기간 수십 번의 반란을 잔인하게 진압한 경험이 있는데다, 96년 교도소 폭동 때는 1200명의 수감자들을 학살한 적 있어 몇천 명을 학살하고도 정권을 유지할 가능성 있다. 서구 언론에서 내무, 법무장관이 사임하고 시위대 쪽으로 합류했다고 전하며 고무된 듯하지만, 적극 참여가 아니라 새로운 정권이 나올 가능성을 보고 살짝 몸만 빠져나오는 것일 뿐이다.

수십 년간 리비아를 고립시켜온 국제사회는 카다피에 대해 적용할 지렛대가 전혀 없다. 손 쓸 방법이 없다. 리비아의 도시들은 서로간 거리가 멀리 떨어진 독립된 도시들이다. 만약 카다피가 사막의 작은 도시에 들어가서 저항한다면 끝까지 간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군대 전체가 정면으로 돌아서지 않는 이상 끝까지 피를 봐야 할 것이다."

"리비아 사태, 우리 기업에겐 호기로 작용할 수도"

튀니지와 이집트 시민혁명 이후 바레인, 리비아, 예멘 등 10개 아랍독재국가에서 민주화 시위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21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 인근에서 '대학생 나눔문화' 소속 회원들이 아랍권 민주화를 지지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이날 참가자들은 "아랍 민중에게 자유를, 싸우라 아랍, 독재자 물러나라" 등을 요구하며 한국어와 아랍어, 영어 3개국어로 구호를 외쳤다.
▲ 대학생 나눔문화, 아랍 민주화 지지 시위 튀니지와 이집트 시민혁명 이후 바레인, 리비아, 예멘 등 10개 아랍독재국가에서 민주화 시위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21일 오전 서울 광화문 광장 인근에서 '대학생 나눔문화' 소속 회원들이 아랍권 민주화를 지지하는 집회를 벌이고 있다. 이날 참가자들은 "아랍 민중에게 자유를, 싸우라 아랍, 독재자 물러나라" 등을 요구하며 한국어와 아랍어, 영어 3개국어로 구호를 외쳤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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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위가 격화되면서 시위대도 아니고 주민들이 우리나라 등 외국인 근로자들의 건설현장을 점거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왜 그러나.

"카다피의 '직접민주주의' 정책의 영향이다. 1980년도 카다피가 자기 세력을 강화하기 위해 청년들에게 '모든 국가시설을 점거하라'고 지시한 적이 있다. 유학생들은 대사관을, 학생들은 대학을 점거했다. 어느 곳을 점거하면 그 계통에서 계속 일하게 하고 나중에 재교육 후 카다피의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을 선별해서 다시 내려보냈다. 이런 방식으로 당시 기존 대학교수들을 다 내쫓고 세대교체를 확실히 이뤘다. 카다피가 혁명을 일으키고 나서도 옛날 세력을 제거할 수 없었는데 이런 식으로 교체하고 주요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다. 지금 우리 건설현장을 점거하는 사람들 과거처럼 그냥 점거하면 되는 줄 알고 그러는 것이다. 특히 집이 없는 빈민들이 다 짓지 않은 주택현장을 덮친 것이다."

- 중동지역에서 실업이나 빈부차 등 경제문제는 언제나 있었는데, 유일하게 다른 것은 SNS밖에 없다는 일부 분석이 있다. 이번 중동민주화시위에 SNS가 사태에 큰 역할을 줬다고 생각하나.
"5년 전에 매우 후진국인 예멘을 갔는데, 젊은이들이 나보다 더 좋은 휴대폰을 가지고 유럽의 반라 여성이 나오는 영상을 보더라. SNS는 신문 등 다른 언론에선 얻을 수 없는 정보를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고 정부통제 없이 사발통문 같은 것을 돌려 집결할 수 있는 성격을 갖고 있다. 울분이 불만으로 터졌을 때 소식을 전달할 수 있는 매체가 SNS다. 우리나라에서 빚을 내서 자동차를 사는 것처럼, 중동에서는 SNS를 이용하기 위해서라도 휴대폰을 구입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 SNS가 대단하다고 하지만 이란도 2년 전에는 트위터 등 SNS를 매개로 격렬한 시위를 벌였으나 실패하지 않았나.
"이란은 좀 다르다. 79년 호메이니 혁명 이후 완벽한 신정체제가 구축돼 젊은이들이 활발하게 움직일 수 없는 체제이다. 그럴 수 없는 체제에서 당시 그 정도 했다는 게 대단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란은 폐쇄된 사회라지만 어떤 특정인 독재하거나 부정축재 한 경우가 없어서 국민의 불만을 살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튀니지나 이집트와 다른 점이다.

서구 시각에선 여성을 차별하는 등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듯 보이겠지만, 이란 사람들에게는 그게 생활이고 종교이다. 부자들한텐 불편해도 일반인들에게는 불편할 게 없다. 팔레비 때는 도시의 팔레비 측근들은 잘살았지만, 전 국민은 더 힘들었다. 지금은 오히려 소외계층 대다수가 이슬람 체제하에서 과거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걸로 분석한다."

- 중동 민주화 시위의 의미를 어떻게 봐야 하나.
"지금 현재 아랍 공화국들은 52년 낫세르 혁명에 감화받은 군 엘리트들이 혁명을 일으킨 지역이다. 오스만 터키에서 해방된 아랍 지역들이 막연히 22개 중동국가로 형성돼 지내오다가 60년 흐른 지금 중동지역 민주화운동은 이제 막 국민 의식이 형성되는 과정이다. 그동안은 '이슬람 믿는 사람은 모두 형제이고 하나다'라고 생각해서 국가 의식이 없었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보다는 역사와 이슬람에 충성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민주화 시위는 국가 모습을 갖춰가는 과정에서 겪는 하나의 열병이라고 볼 수 있다."

- 리비아 시위가 격화됨에 따라 우리나라 교민이나 기업의 철수 움직임이 있다. 당장 정부는 오늘 트리폴리로 전세기를 보낸다고 하는데, 리비아 사태가 우리 기업이나 경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까.
"당분간은 유가가 폭등하는 등 영향이 클 것이다. 기업도 철수해야 하는 등 피해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한테는 또 다른 호기가 될 수 있다. 다른 나라 기업들은 위기가 발생했을 때 현장을 팽개치고 가지만 우린 끝까지 지켜오는 전통이 있다. 레바논 전쟁이나 이란-이라크전쟁에도 마지막까지 현장을 지키고 보호해줘서 호기를 맞은 경험이 있다. 리비아 원유가 세계 원유 수급에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또 리비아는 항상 불안한 나라이므로 원유 수입국들은 이미 대책을 세우고 있었다. 당장은 영향이 있겠지만 장기적으론 큰 문제가 없을 것이다."


태그:#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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