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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남쪽 약 24km쯤 떨어진 남한산성. 1년에 한 번 꼴로 들려던 남한산성을 지난 14일 직장 동료들과 다시 찾았다. 동료들과 맑은 공기를 마시면서 단합과 소통을 위한 신년회 자리였다.

 

평소에는 지하철 8호선 산성역에서 버스를 타고 남한산성(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안 버스 정류장에 내려 코스를 탐방했었다. 특히 남한산성을 자주 찾는 이유는 먹거리 닭백숙 맛이 일품이었기 때문이다. 남한산성의 탐방코스는 3시간 20분부터 1시간까지 다양하다. 약 5코스 정도가 된다.

 

자주 걸었던 코스는 남한산성 역사관->현절사->벌봉->장경사->망월사->지수당->남한산성역사관이었다. 이 코스는 약 2시간 정도 걸린다. 오전 10시 정도 걷기 시작하면 늦어도 낮 12시 20분 정도 도착한다. 도착 한 후 미리 예약한 식당에서 닭백숙을 안주 삼아 소주 한잔 걸치면 안성맞춤이었다.

 

지난 14일 오전 10시 서울지하철 8호선 남한산성입구 1번 출구에서 만나, 남한산성으로 산행을 하기로 했던 일부 동료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꽃샘추위로 날씨가 매서워 30분을 기다리다 결국 인근 다방으로 가 몸을 녹였다. 화가 난 한 동료가 늦게 도착한 동료들에게 벌금을 1만원에서 많게는 2만원까지 걷어, 찻값을 해결했다.

 

지하 다방은 70~80년대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쌍화차를 주문했을 때 계란 노른자를 동동 띄워주는 모습, 주방 가스렌지 위에 빙 둘러 커피 잔을 데우는 모습, 칸막이로 경계선을 그어 놓고 탁자와 의자를 배열한 모습, 모닝커피, 쌍화차, 대추차 등이 적힌 허름한 메뉴판, 종업원들이 빙 둘러 앉아 다방 탁자를 식탁 삼아 아점식사를 하는 풍경을 보니, 20대~30대에 주로 들렸던 시골 다방의 모습이 연상됐다. 단 아쉬운 것은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마담이 있지 않았다.

 

만나기로 했던 동료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모여 결국 10명이 다 도착했다. 곧바로 다방을 떠나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과거 오솔길 등산로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땅 바닥에 시멘트를 깔아 현대식 길로 잘 뚫려 있었다. 먼저 여래종 승려의 교육 수행처로 사용하고 있는 '약산사'가 나왔다. 한국불교여래종의 본산으로 큰스님 종정 석인왕 대종사가 상주하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약산사를 지나자 작은 돌을 쌓아 만든 돌탑들이 군데군데 군락을 형성해 있었다. 통일기원탑, 소원탑 등이 조성된 남한산성 탑공원이었다.

 

입춘이 지났는데도 산행길 옆 개울가는 얼음이 녹지 않았고, 쌓인 하얀 눈도 곳곳에서 보였다. 이곳 주변에는 여러 군데 사찰이 있었다. 안내판을 보니 약산사 외에도 백련사, 영도사, 백운사 등의 사찰 표시가 돼 있었다.

 

산행길에 목이 탈 때 마실 수 있는 음용시설인 약수터(고당 약수터 등)도 거리를 두고 잘 조성돼 있었다. 큰 물통을 가지고 와 물을 담아 지고 집을 향하는 등산객들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하지만 야생동물이나 조류 등 배설물로 분원성대장균이 검출돼 지방자치단체(성남시)에서 음용을 금지하는 경고문을 써놓은 약수터도 더러 있었다. 사찰 백련사를 지나자, 성남시 시계 등산로 안내판이 나오고, 조금 더 걷자 멀리 남한산성 남문 현판, 지화문(至和門)이라고 쓴 한자어가 가시권으로 들어왔다.

 

깊은 숨을 몰아쉬면서 동료 한 분과 함께 제일 먼저 남문에 들어섰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남문 앞 고목나무였다. 성남시에 의해 보호수로 지정된 고목은 느티나무였다. 지화문 앞 성벽의 지지대와 차폐 역할을 했던 4주의 느티나무는 약360여 년 된 수령이었다. 둘레가 0.9~1.37m이고 수고(높이)가 14~16m나 됐다. 남한산성 성곽이 인조 4년(1626년)에 준공된 것으로 비추어 보면, 당시 성곽 사면 토양유실 방지와 차폐의 목적으로 식재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 2006년 6월부터 성남시 보호수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었다.

 

10여명의 동료들이 모두 도착했다. 지화문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했다.

 

느티나무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남문 앞 역사터는 호국정신과 선비정신이 깃든 곳이었다. 역사터는 성남시와 문화재청의 합의로 지난 2007년 5월부터 11월까지(6개월간) 공사를 해 성문 앞 식재된 360여년 된 느티나무 원형을 그대로 보존했다. 그래서인지 남문은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역사공간으로 관람객들에게 각광을 받고 있었다. 남문은 남한산성유원지입구, 검단산 정상으로 가는 길, 이배재 고개로 가는 길, 백련사로 가는 길이 나눠진 곳이기 했다.

 

일행도 느티나무 남문 역사터를 살펴보고 곧바로 남한산성 내로 진입했다. 남문은 남한산성 동서남북(좌익문, 우익문, 지화문, 전승문) 등 4개 대문 중 가장 크고 웅장한 곳이다. 관광객들의 출입이 가장 많은 곳이기도 했다. 남문은 청태종이 침공한 병자호란 때 인조(14년)가 이 문을 통해 피신해 행궁을 근거지로 45일간 항전한 유서 깊은 곳이었다.

 

이쯤해서 남한산성에 대한 역사를 한번쯤 이해하고 가는 것이 나을 듯하다. 남한산성은 한성 백제시대의 성산이었다. 그래서인지 백제 시조 온조대왕의 사당 숭렬전이 있는 곳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주장성(일장산성)으로 불렀고, 고려시대에는 몽고의 침입을 물리친 국방의 요새였다. 조선 16대 임금인 인조 원년(1623년)에 축성을 시작해 1626년에 완공했다. 남한산성은 주봉인 청량산을 중심으로 4대문과 16암문, 5개 옹성 등이 자연경관과 함께 보존돼 있다.

 

성내에는 행궁을 비롯해 지휘와 관측을 위한 군사시설인 수어장대, 온조대왕 사당 숭렬전, 억울한 모함으로 교수형을 당했던 축성책임자 이회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세운 청량당, 무기제작소인 침괘정, 군사훈련을 맡았던 연무관, 승군의 숙식을 위한 사찰 장경사, 남한산성 내 10개 사찰 중 가장 오래된 망월사, 남한산성을 보수하고 지키기 위한 승려들의 본영사찰인 개원사 등 각종 문화유적이 남아 있다. 현재 경기도 도립 국가사적지로서 성남시, 하남시, 광주시, 송파구 등 4개 지방자치단체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남한산성도립공원의 면적은 36.4㎢이고 성의 면적은 598.195㎡이다.

 

특히 남문은 성의 서남쪽 곡저부의 해발 370m 지점에 위치하며, 정조 3년 성곽을 개보수할 때 개축하여 지화문으로 칭했다. 4대문 중 가장 크고 웅장하며 유일하게 현판이 남아 있는 곳이다. 성남으로 통하는 관문 역할을 했다. 경기도는 지난 2009년부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그 노력으로 2010년 1월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 신청이 됐다. 세계문화 유산 등재가 눈앞에 놓여 있는 상태다.

 

원래 일행들은 오전 10시에 도착해 남한산성 탐방로 한 곳을 선택해 산행을 할 생각이었지만 무산됐다. 일행이 늦게 도착한 데다가 남한산성입구역부터 산행을 한 남문까지 약 1시간 가량 산행을 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미리 점심 예약을 해놓은 식당과의 약속도 지켜야 했다. 그래서인지 일행은 남한산성 안에 미리 예약(닭백숙과 오리백숙) 해 놓은 식당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낮 12시 20분쯤이었고, 마침 점심시간이었다.

 

식당으로 가는 길에 만해기념관, 비석군, 자연보호헌장공원 등을 살펴봤다. 이중 옛 선현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남한산성 비석군'을 둘러봤다. 지난 18~20세기 무렵에 설치된 비석들이었다. 현 위치(광주시 중부면 신성리 114-1번지)에 그대로 있는 19기와 남한산성행궁 복원사업에 따라 옮긴 비석 11기를 포함한 총 30여기의 비가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역대 광주 유수, 수어사, 부윤, 군수 등을 기린 비로, 재직시 백성들을 정성스레 돌봐 치정을 잘했거나 선정을 베푼 분들에게 백성들이 그들을 추념하기 위해 세운 비였다. 광주유수와 영의정을 지낸 심상규의 비를 포함해 30기의 비석이 이곳에 있었다.

 

예약을 해 놓은 청와정이란 식당은 푸른 기와를 상징하는 청와대를 닮은꼴이었다. 내부도 세련되게 잘 꾸며져 있었다. 닭백숙과 오리백숙을 안주 삼아 각각의 취향에 맞는 소주와 막걸리를 마셨다. 모처럼 입맛이 당기는 요리에 술맛이 났다. 취기로 약간 기분이 좋아지자 한 동료가 '족구' 시합을 하자고 건의했다. 조금 쌀쌀했지만 맑은 햇살에 족구를 해도 무방한 듯했다. 모두 찬성을 하고 밖을 나와 족구장으로 향했다.

 

족구시합에 동료들의 기분이 더 업그레이드 된 듯했다. 땀 흘린 족구장에서 마신 맥주 한잔은 사막에서 발견한 오아시스와 같았다. 족구시합이 끝나자 대부분 동료들이 50대를 넘어선 나이여서 발을 비롯한 온몸이 뻐근하다고 아우성을 쳤다. 그래서인지 모두 버스를 타고, 저녁식사를 할 남한산성입구역 주변 식당으로 향했다.

 

하지만 나와 한 동료는 함께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 식당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 오랜 만에 남한산성에 온 만큼 확실히 운동을 하고 가자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남한산성 남문에서 버스가 다니는 터널을 지나자, 아스팔트 도로 오른 편에 등산로가 잘 조성돼 있었다. 그 길을 따라 산성역까지 구슬땀을 흘리며 발길을 재촉했다. 산성역 주변 한 가게에 이쁘게 진열해 놓은 초콜릿 상자가 눈에 띄었다. 초콜릿을 보고 오늘이 '발렌타인 데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남한산성 터널에서 산성역까지 3.2km였다. 이날 산성역에서 남한산성입구역으로 가야 했다. 하지만 길을 잘못 들어서인지 8호선 단대오거리역까지 가버린 것이었다. 정말 힘이 부쳤다. 동료와 단대오거리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한 코스인 남한산성입구역으로 향했다. 남한산성입구역에 내렸지만 또 다시 식당까지는 한참을 걸어야 했다. 첫 산행을 시작했던 길을 따라 을지대학교 앞 식당까지 10여 분을 걸었다.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 동료들이 반갑게 맞이했다. 약 2시간 가량을 걸은 셈이었다. 운동량이 많아서인지 저녁식사는 꿀맛 그 자체였다.


태그:#남한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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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미디어에 관심이 많다. 현재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상임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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