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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충하초(충)와 오리(조)가 만나 빚어낸 보양식, 충조전압탕.
 동충하초(충)와 오리(조)가 만나 빚어낸 보양식, 충조전압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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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감이 특이하다. 다소 질기다 싶은 식물성 섬유질과 함께 쫀득쫀득한 동물성 섬유질이 동시에 씹힌다. 버섯의 깊고 진한 향기가 번데기의 쌉쌀한 맛을 감쌌다고나 할까. 좋은 것은 몸이 알아서 반응하는 법. 오묘한 식감을 느끼자마자 온몸에 짜르르 전율이 인다. 탕 속에 빠져 있느라 단물쓴물 다 빼았겼을 텐데, 목을 타고 넘어간 '동충하초'는 가슴 속에서 깊은 맛을 되새김질한다.

아직 본색을 거두지 않고 냉혈한 기세를 떨치고 있는 이 겨울, 허해진 몸을 달래기 위해 지인들과 함께 능이버섯요리전문점인 '능안골'을 찾았다. 이 곳은 '충조전압탕'과 '능이백숙'이 대표 요리지만 한꺼번에 두 가지를 먹을 수는 없는 터, 능이백숙은 다음을 기약하고 이름도 짜릿한 충조전압탕을 주문했다.

동충하초는 왜 하필 오리를 만났을까?

'동충하초'와 '오리'가 어울린 '충조전압탕'은 보는 것만으로도 오장육부가 튼튼해지는 느낌이다. 오리를 삶아낸 국물은 넓은 그릇 한가운데 떡~하니 자리를 잡은 '동충하초'의 진액과 각종 재료가 우러난 때문인지 단순히 '누렇다'고만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맛을 보지 않았는데도 깊고 진한 향기기 전해지는, 그렇게 깊은 누런 빛깔이다.

빛깔로 드러나는 충조전압탕은 차라리 거대한 용광로 같다. 몸의 기운을 북돋기 위해 잔잔하게 그러나 깊은 곳에서 뜨겁게 끓고 있는 거대한 용광로.

불로장생의 묘약이라 불리는 '동충하초'와 큼직한 오리다리가 먹음직스럽다.
 불로장생의 묘약이라 불리는 '동충하초'와 큼직한 오리다리가 먹음직스럽다.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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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을 한 숟갈 떠서 입안에 머금자 한치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대추와 밤 이외에 뭔지는 모르지만 몸에 좋은 한약재의 맛이 온몸으로 물씬 전해진다. 한입 베어문 오리고기는 또 어쩜 그리 부드러운지. 닭다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큼직한 오리다리는 야들야들한 것이 금세 입안에서 허물어진다.

오리고기에 한참 눈과 입을 빼앗겼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니 한쪽 벽면에 충조전압탕을 소개하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불로장생의 묘약 동충하초와 미모의 비결 오리고기."

불로장생과 미모라, 이쯤되면 결혼을 하지 못한 불혹의 총각에게는 찬사를 빗댄 경고일 듯 싶다. 어서 빨리 미모의 여인과 결혼해 불로장생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그닥 유별나지 않은 문구인데도 괜스레 신세가 처량해진다. 가뜩이나 옆구리가 시리디시린데. 주인장도 참….

"중국의 약선요리이며 궁중음식었던 충조전압탕은 오리에 동충하초와 10여 가지의 귀한 약재를 넣어서 만든 최고의 보양식이에요. 오리고기는 중국 최고의 미식가 서태후가 미용식으로 즐겨 먹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비만예방과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어요. 동충하초는 4천년 전부터 불로장생 황제의 묘약이라 하여 전통 중국요리에 사용했다고 해요. 중국 최고의 실력자 등소평이 평소 건강식으로 즐긴 게 충조전압탕이에요."

저녁시간이 조금 지난 무렵이라 일행과 넉넉하게 자리를 잡고 충조전압탕의 맛에 흠뻑 취하고 있자, 주인장이 자연스레 옆 자리를 차지하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충조전압탕에 대한 자랑을 늘어놓는다.

서태후의 미용식과 등소평의 건강식이었다는 '충조전압탕'

생긴 건 조금 흉칙해도 쌉싸름한 맛이 일품인 '동충하초'.
 생긴 건 조금 흉칙해도 쌉싸름한 맛이 일품인 '동충하초'.
ⓒ 최육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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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윤희욱 주인장의 자랑이 아니더라도, 동충하초와 오리가 만나 빚어낸 진한 국물과 부드러운 고기는 소주 잔을 거듭 들이키게 만든다. 술을 마시는 순간 해독이 되는 느낌만으로 왜 중국의 '서태후(西太后)'가 오리고기를 즐기며 미모를 가꿨고, 왜 '등소평(鄧小平)'이 충조전압탕을 애용하며 건강을 지켰는지 알 수 있다.

동충하초(冬蟲夏草)는 '겨울에는 곤충, 여름에는 버섯'이라는 묘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얼핏 커다란 버섯 다발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살피면 아래쪽으로 여기저기 번데기가 엉켜 있다. 번데기에 기생한 뒤 그 시체에서 버섯을 키워낸 동충하초는 처음엔 다소 흉칙스런 생김새 때문에 젓가락을 갖다대기가 잠시 머뭇거려진다.

그러나 "없어서 못 먹는다"는 주인장의 시식 시범에 용기를 내서 한 입 도전. 이게 도대체 무슨 맛이지. 식감은 또 왜 이래. 첫 맛은 향긋한 버섯이 먼저 치고 나온다. 그리고 입안 가득 버섯의 향긋함이 가시려는 순간, 번데기의 쌉쌀함에 이어 잘게 부서진 번데기 잔해들이 입안을 꺼끌거리게 한다. 달콤쌉싸름하다는 표현이 딱 맞을 듯 싶은 특이한 식감과 묘한 맛이다. 쾌 커 보이던 동충하초 다발이 이내 눈앞에서 사라진다. 하여간, 몸에 좋은 거라면….

주인장은 충조전압탕에 들어있는 동충하초는 탕 안의 오리고기와 각종 식재료를 거의 다 비울 때쯤 먹기 좋게 발라내야 한다고 귀띔한다. 충조전압탕의 대미는 동충하초가 장식하는 것인데, 이는 처음부터 동충하초를 흐트러뜨리면 쌉쌀한 맛이 국물에 퍼지기 때문이란다.

주요리 충조전압탕 외에도 안주인인 임영희씨가 내오는 밑반찬도 정갈하기는 여느 곳 못지 않다. 정성 가득한 동치미는 깊은 맛이 나고, 집에서 직접 담근 된장은 시골의 구수함을 전한다. 때묻지 않은 콩나물과 시금치 무침, 잘 익혀낸 깍두기는 고기를 먹느라 약간 텁텁해진 입안을 개운하게 만들어 준다.

정갈하니 내오는 밑반찬은 보기도 좋고 맛도 좋다.
 정갈하니 내오는 밑반찬은 보기도 좋고 맛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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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을 곁들여 가슴 깊은 곳 따뜻한 '맛집'으로 새기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기업 간부로 일했다는 윤희욱 주인장은 지난 여름 이곳에 터를 잡고 능안골을 연 뒤 삶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생전 설거지를 해 봤어야지요. 손 하나 까딱 안 했었는데…. 아내와 둘이서 음식점을 운영하려니까 청소에 설거지는 기본이더라고요. 이젠 자동이에요. 발에 뭐가 밟히면 그냥 손이 먼저 갑니다. 그동안은 노동의 즐거움을 몰랐던 거죠. 인생이 새로워진 느낌이에요."

임영희 안주인은 "좋은 재료를 선별해서 음식을 준비하느라 비용이 만만치 않지만, 식구들이 먹는 상에 수저 몇 벌 더 얹어 놓는다는 생각으로 일을 한다"며 남편의 말을 이렇게 받는다.

"예전 남편 별명이 '리모콘'이었어요. 퇴근해서 집에 오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리모콘을 찾았거든요. 그런데 지금 청소와 설거지를 하는 걸 보면 아주 딴 사람이 됐어요. 일하는 게 힘들어 예전처럼 영화도 보고 하면서 여가생활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게 아쉽지만, 좋은 곳에 터를 잡은 만큼 열심히 일해야지요."

대기업 간부로 일할 땐, 중국 등에서 근무하며 산해진미 맛 좋은 것 정말 많이 먹었다는주인 내외는 진심으로 지금의 삶에 감사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은 거꾸로 여러 손님들 입맛에 맞는 좋은 음식을 만드느라 하루하루 눈코 뜰 새 없지만.

이곳 요리집 이름인 '능안골'은 경기도 파주시의 지역명이기도 한다. 파주삼릉(조선왕릉인 공릉ㆍ순릉ㆍ영릉을 한데 이르는 말)의 '능 안쪽 골'을 가리킨다. 그래서 능안골에서 바라보는 주변의 풍경은 먹는 재미에 색다른 즐거움을 더해준다. 곧게 뻗은 '자유로'의 시원함과 함께 널다랗게 펼쳐진 논은 겨울이라 조금 삭막할 뿐, 생명이 움트는 봄이나 수풀이 우거지는 여름, 황금빛으로 물드는 가을날에 오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말로만 들어오던 충조전압탕을 직접 맛 봤다. 진한 국물에 눈이 먼저 홀렸고, 다음으로 쌉싸름한 맛에 혀가 행복했다. 그러나, 주인 내외의 정성을 곁들이자 충조전압탕의 맛은 아무래도 머릿속 짜릿함이 아닌 가슴 깊은 곳 따뜻함으로 새겨질 것만 같다. 비록 오래 살아온 세월은 아니지만 내 가슴 속에 '맛집' 하나를 추가한다.

덧붙임 : 4명 정도가 풍족하게 먹을 수 있는 충조전압탕은 한 그릇에 55,000원이다. 딸려 나오는 갖가지 밑반찬은 무한 제공이고 밥이 없어 조금 허전하다 싶으면 맛깔나게 끓여낸 죽이 덤으로 나온다.

갖가지 한약재와 동충하초, 오리고기로 우려낸 충조전압탕의 국물은 깊고 진한 맛이다. 보양식으로 그만이다.
 갖가지 한약재와 동충하초, 오리고기로 우려낸 충조전압탕의 국물은 깊고 진한 맛이다. 보양식으로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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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충조전압탕, #동충하초, #오리, #능안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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