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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10일 오후 경기도 포천 영평 미8군 로드리게스 사격장에서 한미연합전시증원 연습인 '키 리졸브' 연습에 참가한 한-미 해병대가 시가전 훈련을 하고 있다.
 2009년 3월 10일 오후 경기도 포천 영평 미8군 로드리게스 사격장에서 한미연합전시증원 연습인 '키 리졸브' 연습에 참가한 한-미 해병대가 시가전 훈련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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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8∼9일에 열린 남북 군사실무회담이 결렬되면서 '3월 위기설'이 제기되고 있다. <중앙일보>가 11일 군 관계자를 인용해 "2월 말~3월초 한미 연합훈련인 키 리졸브(Key Resolve) 연습을 전후해 북한이 도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한 것을 계기로 여러 언론들은 경쟁적으로 '북한발 위기'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실제로 '북한발 위기'의 가능성은 존재한다. 북한이 올해 들어 전방위적으로 시도한 대화 분위기로의 전환이 이명박 정부의 강경 입장 고수로 수포로 돌아가고 있는 것은 또 다시 북한 내 강경론이 득세할 가능성을 예고해준다. 또한 미국이 튀니지와 이집트 등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민주화 열풍'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대북정책을 뒤로 밀어둔 것에 대응해 '벼랑끝 전술'을 선보이고자 하는 유혹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3월 위기설의 진원지는 북한에서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도발" 여부는 예측하기 힘든 영역에 있지만, 오히려 한미동맹의 위기 조성 행위는 이미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다. 바로 2월말∼3월초에 예정된 키 리졸브 훈련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 항공모함에 예비군까지 동원

15일자 <연합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이번 훈련은 사상 최대 규모가 될 가능성이 높다. 작년에 불참했던 미국 항공모함이 또 다시 투입되고 미국 메릴랜드주에 있는 제20지원사령부(20th Support Command) 요원들이 참가해 북한의 핵 및 대량살상무기(WMD) 제거 연습도 강화할 예정이다. 또한 북한급변사태 대비 훈련도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이는 이전까지 개념계획으로 있었던 5029(주한미군이 북한 정권의 붕괴 등 돌발사태에 대비해 세운 계획)가 사실상 작전계획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개념계획과 작전계획의 차이는 실행 여부가 아니라(미 국방부 관리에 따르면 두 가지 모두 실행계획이다) 훈련 및 부대 편성 등 구체성의 수준에 있는데, 작년부터 북한급변사태 대비 훈련 수위를 높이고 있고 관련 부대도 투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5029를 작전계획화하려는 핵심적인 동기는 북한 급변 사태 발생시 미군 특수부대를 투입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 등 WMD를 탈취·파괴·확보하려는 데에 있다. 노무현 정부는 이러한 계획이 주권 침해 및 한반도 전면전 발발 위험이 있다고 보고 이를 작전계획화하는데 반대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오히려 작전계획화에 적극적이다. 여기에는 북한급변사태를 흡수통일의 호기로 바라보는 관점이 깔려 있기도 하다.

문제는 이번 '키 리졸브' 훈련이 예년보다 더 북한과 중국을 자극해 한반도의 불확실성을 고조시킬 위험이 크다는 점에 있다. 우선 올해 키 리졸브에는 작년에 제외됐던 미국 항모가 또 다시 투입될 예정인데, 미 항모가 투입되는 군사훈련에 북한과 중국이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여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한 북한의 WMD 제거 등 급변사태 대비 훈련은 북한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해온 사안이라는 점에서 북한의 반발 수위를 예상하는 것도 더욱 힘들어진다.

무엇보다도 한층 강화된 키 리졸브 훈련은 북한과 중국으로 하여금 '한미 양국은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에는 관심 없고 군사적 봉쇄와 무력시위에만 몰두한다'는 인식을 심어줄 공산이 크다. 실제로 남북 군사실무회담이 결렬된 이후 북한은 또 다시 "역적패당"이라는 표현을 동원하면서 대남 비방전을 재개했고 그 수위는 '키 리졸브'를 전후해 더욱 높아질 것이 확실하다.

중국 역시 미국이 지난 미중정상회담에서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 노력하기로 해놓고, 6자회담 재개를 위한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으면서 또 다시 항모까지 투입하면서 군사훈련을 실시하려는 의도에 강한 경계심을 갖게 될 것이다. '키 리졸브'가 올해 들어 관계개선을 모색하던 남북관계와 미중관계에 악재가 될 우려가 크다는 점도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다. 

노태우-부시의 지혜에서 배워라

2009년 3월 10일 오후 경기도 포천 영평 미8군 로드리게스 사격장에서 한미연합전시증원 연습인 '키 리졸브' 연습에 참가한 한-미 해병대가 시가전 훈련을 하고 있다.
 2009년 3월 10일 오후 경기도 포천 영평 미8군 로드리게스 사격장에서 한미연합전시증원 연습인 '키 리졸브' 연습에 참가한 한-미 해병대가 시가전 훈련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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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군사훈련 강행이 대한민국의 안보를 튼튼히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위태롭게 할 수 있고, 거꾸로 군사훈련 중단이 안보를 튼튼히 하는 유력한 방법이 될 수도 있다. 1991년 노태우 정부와 아버지 부시 행정부의 결단이 좋은 사례다.

1989년부터 시작된 남북기본합의서 협상 당시 최대 쟁점은 '팀스피리트' 훈련 문제였다. 북한은 영구 중단이 어렵다면, 회담 활성화 차원에서 2∼3년간이라도 중단해 달라고 요구했다. 한미 양국은 고심 끝에 중단 방침을 정하고 이를 북한에 전달했고, 이는 91년 12월 기본합의서가 채택된 결정적 계기였다. 이듬해 1월 7일 노태우 정부는 팀스피리트 중지 방침을 공식 발표했고, 북한도 같은 날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가입해 핵사찰을 받겠다고 천명했다. 한미 양국이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이라는 선제적 조치를 통해 북한의 획기적인 호응을 이끌어낸 것이다.

그러나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으로 흥(興)한 남북기본합의서는 이 훈련의 재개로 망(亡)하고 말았다. 안기부의 대규모 간첩단 발표 이틀 후인 92년 10월 8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에서 한국측의 요청으로 팀스피리트 훈련 재개 방침을 발표한 것이다. 대선을 앞둔 '선거용'이라는 강한 의혹이 제기됐음은 물론이다. 북한은 간청에 가까운 호소를 했지만, 한미 양국은 이를 일축하고 훈련을 강행했다.

이에 분개한 북한은 1993년 3월 팀스피리트 훈련 재개 및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특별사찰 결의를 강력히 비난하면서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해버렸다. 한국전쟁 이후 최악의 전쟁위기였던 1993∼1994년 위기는 이렇듯 한미동맹과 북한 사이의 관계가 선순환에서 악순환으로 돌변하면서 발생한 것이고 그 중심에는 바로 '팀스피리트'가 있었다. 이를 두고 당시 주한 미국대사였던 도날드 그레그는 팀스피리트 재개가 한반도 정책의 "가장 큰 실수"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10년 전의 교훈을 오늘날 되새겨본다면, 오늘날 한미 양국 정부가 선택해야 할 '단호한 의지(key resolve)'는 군사훈련 강행이 아니라 중단으로 발휘되어야 한다. 군사훈련 중단 발표를 통해 북한에게도 "도발" 중단 약속, 핵과 미사일 실험 유예 선언 등 상응조치를 요구하고 이들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대화를 제의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한반도와 동북아의 불안을 줄이고 대한민국의 안보도 튼튼히 하는 방법이다. 강력한 군사태세와 한미동맹만으로 안보가 튼튼해질 수 없다는 것은 작년 한해의 경험을 통해 충분히 입증되었다. 사정이 이렇다면, 그리고 올해는 작년과는 다른 한해를 만들고자 한다면, '다른 수단에 의한 안보'를 추구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선제적으로 '키 리졸브' 중단을 선언하는 것은 이를 위한 크나큰 첫 걸음이다.


태그:#키 리졸브, #한미합동군사훈련, #한반도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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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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