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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원래대로라면 늦긴 했지만 설 연휴 박스오피스 결과를 분석하고 기사를 올려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9일) 아침 인터넷으로 접한 소식 하나가 제 머리를 쳤습니다. 전혀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었고 이름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가 뭘 한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그 사람이 차디찬 월세방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됐다고 합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메모는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드려 주세요"였다고 합니다. G20을 성공적으로 치른, 세계 일류 국가라고 매일 자랑하던 대한민국에서 한 사람이 밥도 먹지 못하고 굶어 죽었다니, 이런 비극이 또 있겠습니까?

생활비가 없어 추운 겨울 불도 때지 못하고 먹을 것도 없어 이웃에 도움을 청하던, 갑상선 질환과 췌장염을 앓으면서도 치료도 받지 못한 32세의 젊은 여인은 그렇게 한 많은 세상을 등졌습니다.

재능을 바친 결과 '5타수 무안타'

ⓒ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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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이름은 최고은이라고 했습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2006년 단편 <격정 소나타>로 그해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감독 겸 시나리오 작가라고 합니다. 헌데 그 이후 그의 작품은 메이저 영화사들의 외면을 받았고 영화화를 준비하던 작품들은 번번이 '엎어졌습니다'.

스스로 '5타수 무안타'라는 농담까지 할 정도로 그의 영화는 스크린을 통해 보여질 수 없었습니다. 수상의 기쁨도, 평단의 찬사도 그의 삶을 바꾸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죠.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쳐가며 재능을 쏟아부은 대가는 험난한 생활고, 그리고 비참한 죽음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순간 저는 '<조선명탐정>이 300만을 육박하고 한국영화가 설 극장가를 휩쓸었다…'는 기사를 쓰기가 꺼림칙해졌습니다. 한국영화가 아무리 300만, 500만을 돌파하고 점유율이 80%에 육박한다고 하지만 정작 그 영화들의 자양분을 제공한 사람들은 대가도 받지 못하고 험난한 길을 계속 가야 하는 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이들의 슬픔을 외면하고 '한국영화 잘 나간다'라는 기사를 쓴다는 것에 이상한 죄책감이 들기 시작하더군요. 한국 영화계의 뒷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한 단편영화 감독의 죽음. 이것을 이야기하는 게 더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내 단점을 당당하게 보여준 <격정 소나타>

때마침 그가 만든 <격정 소나타>가 인터넷을 통해 상영되고 있기에 영화를 봤습니다. 피아노 콩쿠르에 참가할 학생을 뽑는 시간, 발표를 앞둔 여고생들은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긴장합니다.

그런데 유독 여유를 보이는 학생이 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여선'입니다. 그는 지난 발표 때 실수를 저지르고 사라진 학생입니다. 그런 그가 다시 발표장에 온 겁니다.

최고은 감독의 <격정 소나타>
 최고은 감독의 <격정 소나타>
ⓒ 영화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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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로웠던 여선은 자신의 차례가 다가오자 갑자기 화장실로 달려갑니다. 화장실에서 그녀는 휴대용 기저귀를 꺼냅니다. 그때 밖에서 동급생들의 대화가 들립니다. 여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여선은 지난 발표에서 긴장한 나머지 오줌을 지렸습니다. 그게 바로 잠적의 이유였죠.

동급생들은 그런 여선을 몰래 놀리며 여선이 오줌을 싸는지 안 싸는지롤 놓고 내기를 하자고 합니다. "오줌 싸는데 만 원" 하면서요. 여선이 눈 앞에 나타나자 그때까지 여선을 놀리던 동급생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놀라기만 합니다. 그런 그들에게 여선은 만 원을 당당하게 내밉니다.

마침내 차례가 된 여선은 연습한 곡을 칩니다.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연습곡을 치는 여선. 그 순간 여선의 치마 밑으로 오줌이 나옵니다. 그래도 여선의 표정은 당당하기만 합니다. 그것을 12분이란 시간 안에 담아낸 것이 <격정 소나타>입니다.

이 영화의 연출 의도를 보니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누군가 그랬습니다. 공부가 안돼서 우울할 땐 공부를 하면 된다고.' 안 될 때는 과감하게 정면돌파를 하란 뜻일까요? 결정적인 순간에 오줌을 지리는 습관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면으로 맞서며 피아노를 치는 여선의 모습을 보면 이 영화의 연출 의도가 이해가 되는 듯도 합니다.

충무로는 '정면돌파'를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충무로는 최 감독의 '정면돌파'를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시나리오를 쓴다고 해서, 그리고 그 시나리오를 제작사가 채택한다고 해서 다 영화화가 되고 인정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제작사는 그 시나리오를 일단 채택하면 다른 제작사로 가는 것을 막고 영화화가 되지 않으면 그냥 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엎어진 영화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럼 그 시나리오를 쓴 작가는 어떻게 될까요?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시나리오와 함께 버려지는 신세가 되지요. 때로 그 시나리오는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고쳐져서 영화로 나오기도 합니다. 원작자의 이름은 사라집니다. 이름없는 작가는 그렇게 이용만 당합니다. 거기엔 다른 이름, 제작사와 뜻이 맞는 사람의 이름이 올라갑니다. 그리고 모든 공은 그들이 다 차지합니다.

몇 년 전 배우 황정민씨가 남우주연상을 받은 뒤 유명한 소감을 남겼습니다. 자신은 스탭들이 차려 준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다고, 할 수만 있다면 트로피에 있는 상징물의 발가락이라도 떼어 스탭들에게 나누어주고 싶다고. 하지만 그 스탭들은 지금도 박봉에 시달리면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황정민씨가 먹을 밥상을 맛있게 차리고 싶어도 차릴 수가 없는 게 이름없는 스탭들이고 이름없는 영화인들입니다.

정면돌파? 삶을 정면으로 돌파해야죠. 영화가 안 되면 영화를 하면 되겠죠. 하지만 영화를 직접 만든다고 해도 그 제작비는 무엇으로 마련할까요? 양익준 감독도 <똥파리>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집까지 내놓아야 했습니다. 영화를 만든다는 건 그야말로 목숨 외에는 다 내놓아야 하는 도박입니다. 과연 정면돌파가 가능할까요?

한국영화는 '부흥'을 말할 자격을 상실했다

최고은 감독의 죽음은 많은 영화팬들에게 충격을 줬습니다. 그 충격은 전도유망한 영화감독이 밥을 먹지 못하고 끝내 차가운 방에서 굶어 죽었다는 것이 먼저고,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그 정도로 가난하게 산다는 것이 두 번째였고, 충무로 메이저 영화사들, 문화관광체육부, 영화진흥위원회 등 소위 영화계의 '실세'들이 이 가난한 영화인들에게 아무것도 해 준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게 세 번째 충격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어떤 이에게는 생명과 동의어인 '영화'를 우리는 너무나 하찮게 생각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열정을 가지고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시나리오를 쓰고 돈에 쪼들리고 추위와 더위를 겪으면서 힘들게 찍은 영화들을 정작 우리는 단순히 8, 9천원을 내고 즐기면 되는 '소비재'로 여기고 있죠.

그리곤 그저 '재미있다', '재미없다' 이런 식으로 영화 이야기를 끝내고 그것으로 영화를 판단합니다. 수십, 수백 명의 노력을 단 네 글자로 표현합니다. 우리는 몰랐습니다. 그 영화들이 하나의 '생명'이었다는 것을요.

큰 영화사들은 지금도 이름 있는 감독, 이름 있는 배우들을 끌어모으며 영화를 만들고 대대적인 홍보를 하고 흥행 1위를 하고 300만, 500만 누적 관객수가 나오면 좋아라 하며 '한국영화의 부흥'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생활비가 없어 굶어 죽은 영화인이 나온 한국 영화계는 이제 '부흥'을 논할 자격을 상실했습니다.

독립영화전용관을 없애고 작은 영화의 제작을 점점 힘겹게 만드는, 그러면서 장래의 영화 작가들의 길을 차단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장밋빛 미래를 발견할 수 있을까요?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가 나오면 발전한다고 합니다. 국제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면 발전한다고 합니다. 세계 곳곳에서 한국영화가 상영하면 발전한다고 합니다. 그 꿈들, 다 이루어졌습니다. 무엇이 발전했나요? 아니, 도대체 한국 영화의 발전이 무엇인가요? 너무나 궁금합니다.

이름없는 영화인을 외면하는, 열정 하나만 믿고 도전하려는 영화인들의 꿈을 무참히 짓밟는 한국 영화계에서 '정면돌파'를 시도하려던 한 작가는 꿈을 이루지 못한 채 한 줌의 재가 됐습니다. 영화계뿐만 아니라 어느 분야에서든지 정말 열정을 갖고 일하는 사람이 세상의 희생물이 되는 일은 정말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에야 그의 이름을 알았고 그의 열정을 알았습니다. 최고은 감독님의 명복을 진심으로 빕니다. 아울러 하늘에서는 배고픔의 고통 없이 좋은 영화들 많이 만들어 주시길 바랍니다.

P.S 당분간 밥상을 보면 마음이 울컥할 것 같습니다. '남는 밥과 김치'를 간절히 원하던 모습이 눈에 선해서요. 상에 올려진 밥과 김치만 있었어도 죽지는 않았을 텐데… 살아서 봄볕이라도 쪼일 수 있었을 텐데… 다시 시나리오를 쓸 수도 있었을 텐데….


태그:#최고은, #격정소나타, #충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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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솜씨는 비록 없지만, 끈기있게 글을 쓰는 성격이 아니지만 하찮은 글을 통해서라도 모든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글쟁이 겸 수다쟁이로 아마 평생을 살아야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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