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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미튀밥에 조청을 버무려 한과도 만들고, 지에밥에 누룩을 버무려 술도 빚는다. 맷돌에 콩을 갈아 끓여 큰 부대자루에 넣고 짜기를 반복, 두부를 만드는 일은 할아버지들 몫이다. 만두소 용도로 쓰일 재료이다. 설 명절이 닷새 남짓 남은 경기도 화천군 상서면 부촌리 마을 풍경. 유독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어디 멀리서 귀하신 손님이라도 오시는 가 봐요?" 

"물김치도 오늘쯤 미리 묻어 놓아야 맹일에 익지 않을까?"

 

기자의 질문에 엉뚱한 말을 한 박연희 할머니는 잠시 후 미안했던지, 상황을 설명해 준다.

 

"매년 설날이면 군인애기들이 우리 노인네들에게 세배를 오는데, 이번에는 연대장님이 바뀌셔서 환영식 겸 음식을 준비하기 때문이네."

 

"지난 1월20일 군부대 인사발령에 의해 김혁수 전3연대장이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다고 인사를 왔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마치 먼 길을 떠나는 친아들을 보내는 마음으로 서로 눈물을 흘렸다우."

 

"가서 다음날 전화가 왔어요 '어르신들 덕분에 좋은 자리에 앉게 되었다'고..."

 

새로 부임해 온 3연대장은 장용 대령. 그는 부대 내에서 모든 신고를 마치고 부촌리 마을 어르신들을 찾아 인사를 올렸다.

 

부촌리 노인회는 5년 전인 2006년도 인근 제7보병사단 3연대와 인연을 맺었다. 동기는 처음 군부대 장병들이 이 마을에 일손돕기를 하면서부터였다. 이를 계기로, 마을 노인회에서는 노인농장에서 재배한 쌀과 콩으로 떡을 만들어 연말에 장병들 위문품으로 전달했다. 이에 부대에서는 이듬해 어버이날 노인들을 초청해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면서 군부대와 마을이 서로 돕는 새로운 문화가 생겨났다.

 

2년 전 늦은 설날아침 느닷없이 연대장이 사병들과 장교 30여 명을 데리고 이 마을 노인회관을 찾았다.

 

"세배 드리러 왔습니다."

 

마을에서는 방송을 통해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노인정에 오시게 한 후 연대장과 부대원들의 세배를 받았다. 마을 어르신들로서는 인사만 받고 그냥 보내줄 수는 없는 일. "신세질려고 온 게 아니다, 그냥 가야 된다"는 군인과 "안 된다, 그냥 보낼 수 없다"는 주민의 한동안의 실랑이 끝에 간단히 다과를 대접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사병들이 명절이 되면 부모 생각도 날 것 같고, 또 혼자 사시는 어르신도 계신 것 같아서 예고도 없이 방문한 것이 마을 주민들에게 부담을 안긴 꼴이 됐다"는 연대장의 말에 이병화 노인회장(71세)은 "그러지 말고 내년부터 설 명절에 사병들을 보내게나"라고 하면서부터 군장병의 설명절 세배문화가 생겨난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이 우리 고유의 명절 문화에 대해 잘 모르고, 어르신들의 공경에 대한 생각이 약하지는 것 같다"며 "따라서 경로효친 사상과 미풍양속의 의미를 장병들에게 일깨워 주고 싶었다"는 것이 당시 김혁수 연대장의 속내였던 것이다.

 

"이번 설에는 이놈들을(장병들을 귀엽게 이르는 말) 잘 먹여 보낼 참이여! 구제역 방역초소에 매일 투입되고, 또 올해 좀 추웠어! 이 추위에 혹한기 훈련한다고 일주일간 산속에서 밤새 훈련 하는 것 보고 좀체로 잠을 이룰 수 없었네."

 

이런 군부대와 마을 어르신들의 상부상조 때문이었을까. 51명(할아버지 23명, 할머니 28명)으로 구성된 부촌리 노인회(회장 이병화 할아버지, 부회장 박연희 할머니)는 화천군에서 2010년도 최우수 노인회로 선정됐다. 이 마을 노인들의 목표는 '노인들이 앞장서 이끌어가는 지역사회 만들기'이다. 노인들 스스로 솔선수범을 통해 젊은이들이 따라 오도록 하자는 것이다.

 

지난 한 해 동안 나대지를 이용해 무우와 들깨를 심어 지주에게 임대료를 지급하고도 570여만 원의 순수익을 올리고, 장기적 수익 창출을 위해 가시오갈피와 산약초를 인근 야산에 심었다. 또 깨끗한 지역 조성을 위해 봄철 농경지 폐비닐 수거 작업에 나서자 군 장병들도 합세해 160여만 원의 수익을 창출했다.

 

이렇게 마을 노인기금을 정립돼 회원(노인)들 사망 시 비석을 세워주고 가난한 회원들에게는 상여대금으로도 지급해 회원들 상호간 단합을 도모하는 역할을 한다. 또 유족들의 부담을 크게 덜어준다.

 

이렇게 마을 노인들이 마을일을 앞장서 추진하고 나서자, 40~50대의 청년(?)들이 마을의 대소사가 있을 때 마다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정중하게 상담을 하는 문화. 화천군 상서면 부촌리 마을이야기이다.


#화천군#상서면#부촌리#3연대#부촌리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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