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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평 남짓한 공간에서 두 사람이 휴식을 취한다.
▲ 동덕여대 청소노동자 휴게실 2평 남짓한 공간에서 두 사람이 휴식을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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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실에서 잠깐 쉬다가도 직원들이 오면 깜짝 놀라서 금방 도망가요."

동덕여대 어느 청소노동자의 말이다. 담당 건물에 휴게실이 없어서 잠깐 회의실에 앉아있다 보면 종종 민망한 상황이 연출된다는 것이다. 이 학교에는 총 43명의 청소노동자가 있지만 휴게실은 단 3개다. 10명이 훌쩍 넘는 사람들이 휴게 공간 하나를 나눠 쓴다.

하지만 그나마 여유로운 방학 때를 제외하고는 휴게실에 자주 올 수가 없다. 각자 청소를 담당하고 있는 건물이 휴게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지난 24일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난 한 청소노동자는 "평상시에는 왔다갔다 하기가 불편해서 거의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경대, 대학 전체에 휴게실 2개... 동덕여대는 3개 

작은 용역실이 만들어지기 전 두 사람은 청소도구함을 휴게실로 삼았다.
▲ 동덕여대 청소도구함 작은 용역실이 만들어지기 전 두 사람은 청소도구함을 휴게실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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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렇다 보니 청소노동자들은 건물마다 휴게실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학교 측은 이런 요구를 반영해 지난해 12월 한 단과대 건물에 휴게공간을 마련해 줬다. 청소도구함으로 쓰이던 곳을 휴게실로 만든 것이다. 이 휴게실을 사용하는 청소노동자는 "원래 창고에서 휴식을 취하곤 했는데 창문이 없다 보니 머리가 너무 아프고 답답해서 바꿔 달라고 요구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자가 직접 들어가 본 2평 남짓한 휴게실에서는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비닐을 깔아둔 바닥에서는 냉기가 올라왔고, 창문에서는 외풍이 들어왔다. 청소노동자는 "벽에 등만 대도 시리지만 답답한 지하보다 훨씬 낫다"며 웃음을 보였다.

이 학교에는 청소노동자가 스스로 만든 '간이 휴게실'도 있다. 계단 밑에 비닐을 쳐놓고, 남는 의자와 테이블을 가져다 만든 공간이었다. 얼핏 봐서는 도저히 휴게실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곳이었다.

이러한 상황과 관련, 동덕여대 관계자는 18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은 알고 있지만 공간이 부족하다"며 "공간을 추가로 확보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어느 청소노동자가 직접 만들었다.
▲ 간이휴게실 어느 청소노동자가 직접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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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대도 청소노동자 휴게실을 추가로 마련하는 일이 시급하다. 학교 전체에 각각 남성용 1개, 여성용 1개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학교의 남성, 여성 노동자는 각각 15명, 35명이다. 이들 역시 휴게실과 담당 건물이 멀리 떨어져 있어 휴게실을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

지난 20일 학생휴게실에서 만난 한 노동자는 화장실에서 쓰는 바가지에 뜨거운 물을 담아 200ml 우유팩을 데우고 있었다. 잠시라도 추위를 녹이고, 허기를 달래기 위한 방법이었다. 화장실 핸드드라이어용 전기콘센트에 전기포트를 꽂아 물을 끓여 마시는 노동자도 있었다.

이와 관련, 류남미 공공노조 미조직 비정규국장은 "산업안전보건법 시행세칙을 보면 청소노동자들을 위한 휴게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분명히 명시돼 있다"며 "비정규직, 여성, 고령을 다 떠나서 법이 지켜지지 않는 것은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하·계단 밑 휴게실, 비 오면 물새고, 곰팡이 피고

창문이 없는 지하 휴게실에 환풍기가 설치 돼 있다.
▲ 환풍기 창문이 없는 지하 휴게실에 환풍기가 설치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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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건물마다 휴게실이 있다고 해서 사정이 나은 것은 아니었다. 비좁은 것은 물론 남녀 휴게실이 분리돼 있지 않은 곳도 있었다. 기자가 20일 방문했던 상명대 청소노동자 휴게실은 두 사람이 누우니 꽉 차 보일 정도였다. 이곳에는 총 4명의 노동자가 있었는데, 세 명의 남성 노동자와 한 명의 여성 노동자가 같은 공간에서 쉬고 있었다.

특히 한 여자대학 청소노동자 휴게실은 지하 계단 밑에 마련돼 있었다. 24일 기자가 휴게실을 방문했을 때 청소노동자들은 회사에서 마련해 준 전기장판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다. 난방 시설은 돼 있지 않았다. 지하인데도 외풍이 심했다. 환풍기 사이로 바람이 들어왔다. 창문이 없는 방에서 환풍기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탓이었다.

이곳 청소노동자는 "지하라서 여름철에는 습기가 찬다"며 "특히 장마철에는 걸어놓은 옷까지 젖어 축축해진다"고 토로했다.

20일 찾아간 국민대 청소노동자 휴게실은 지하는 아니었지만, 비가 오면 물이 샌다고 했다. 천장과 벽에는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이곳 청소노동자는 "학교에 바꿔 달라고 요구해봤지만 전혀 반응이 없다"고 말했다.

서강대, 학생들이 청소노동자 처우개선 위해 '연대' 

에어컨, 난방 시설, 취사시설, 싱크대가 마련돼 있다.
▲ 서강대 휴게실 에어컨, 난방 시설, 취사시설, 싱크대가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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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차원에서 청소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대학도 있었다. 서강대의 경우 최근에 건물을 증축하면서 청소노동자 휴게실도 새롭게 마련했다. 24일 기자가 방문한 서강대 학생회관에 마련된 휴게실은 다른 동아리방과 다를 바가 없었다. 박갑순 전국여성노조 서강대 분회장은 "학교에서 동아리 방 하나를 내줬다"며 "학교에서 애를 많이 쓴다"고 말했다.

퇴근 뒤 영어수업을 듣고 있는 청소노동자
 퇴근 뒤 영어수업을 듣고 있는 청소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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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에 있는 청소노동자는 모두 80명. 휴게실은 건물당 1개꼴로 20곳 정도가 있다. 대부분 휴게실에는 냉난방 시설이 잘 갖춰져 있었다. 아직 전기장판을 사용하는 곳도 있지만, 점차 전기 판넬로 교체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최근에 지은 중앙도서관 등 4군데 휴게실에는 에어컨도 갖춰져 있었다. 

이렇게 청소노동자의 처우가 개선되는 데는 학생들의 힘이 컸다. 서강대 청소노동자들은 2004년에 노조를 결성한 뒤 학생들과 꾸준히 연대활동을 해오고 있다. 2005년부터는 학생들에게 풍물을 배우기 시작했다. 작년 5월 축제 때는 학생들과 함께 공연도 했다.

올 1월부터는 영어를 배우고 있다. 월요일과 수요일 일을 마치고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다. 사회과학대 학생회가 주최하고 있으며, 학생들이 직접 강사로 나선다. 영어 수업에 참여한 한 노동자는 "학생들도 자기 시간을 내서 봉사해주는 것인데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며 "영어를 배울 수 있어서 아주 좋다"고 말했다.

"건물 짓는 단계부터 휴게공간을 마련해야"

물론 개선해야 할 점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서강대 휴게실 가운데는 취사가 가능하지만 아직 싱크대가 없는 곳이 많다. 싱크대가 없으면 밥그릇과 수저를 화장실 세면대에 가져가서 씻어야 한다.

현재 대부분의 대학 청소노동자 휴게실은 취사지원은커녕 난방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상당수의 대학이 지난해 10월 부산 해운대구 주상복합건물 화재 이후 취사 및 전열 기구 사용을 더욱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화재는 불법적으로 조성된 청소노동자 휴게실에서 발생했으며 전기콘센트에서 발생한 전기스파크가 원인이었다.

이와 관련, 류남미 국장은 "청소노동자들의 휴게실이 피트층(건물의 유지관리를 위한 층), 계단 밑, 지하 등과 같은 곳을 벗어나려면 건물을 지을 때부터 휴게공간을 고려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며 "전열기구 사용을 금지하거나 단속만으로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SKY대학' 청소노동자의 처우는?
최근 홍익대 사건을 계기로 인터넷을 달구고 있는 사진 한 장이 있다. 한 일간지의 보도에 따르면, 이 사진은 하버드 대학의 학생들이 지난 2007년 경비노동자들을 위해 9일간 단식한 뒤, 스프를 먹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누리꾼들은 이 한 장의 사진을 보고 역시 '행동하는 지성'은 다르다며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 사회에서 소위 명문이라 불리는 대학 내 청소노동자들의 현황은 어떨까. <오마이뉴스>는 최근 1주일간 진행한 서울시내 28개 대학 청소노동자의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서울대, 고려대(서울), 연세대(서울) 청소노동자의 처우를 비교해 보았다.

우선 세 개 대학의 청소노동자 수는 비슷했다. 각각 서울대 245명(남 93명, 여 152명), 고려대 244명(남 40명, 여 204명), 연세대 약 230명(학교 측의 비협조로 정확한 인원 파악이 불가능했다)에 이른다. 하지만 이들이 받는 처우는 각각 달랐다.

임금은 서울대가 가장 나은 편이었다. 서울대 청소노동자들의 월 급여는 평균적으로 최저임금을 약간 상회하는 107만 원가량(2011년)이다. 고려대와 연세대는 모두 최저임금을 받는데, 식대와 수당에 따라 평균적인 급여에서 차이가 났다. 2010년을 기준으로 고려대 청소노동자들이 약 100만 원, 연세대 노동자들이 약 91만 원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식대지원의 경우 서울대는 지원내역이 없다. 고려대와 연세대는 식대명목으로 각각 6만 원, 5만 원이 나간다. 고려대 식대에는 폐지판매비용 2만5000원이 포함돼 있다. 2009년 당시 용역업체가 폐지판매 비용을 회수하겠다고 했으나,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거세게 반발해 회수 방침은 철회됐다.

고용형태는 세 곳 모두 용역으로, 복수의 업체와 계약을 맺고 있다. 고려대는 인문계 캠퍼스, 자연계 캠퍼스 각각 한 개씩 총 2개의 업체와 거래하고 있다. 연세대는 총 4개 업체와 거래중이다. 서울대는 모두 22개 업체와 계약한다.

서울대 관계자에 따르면 원래 본부에서 전체적으로 계약을 했으나 5~6년 전부터 단과대별로 분리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유는 캠퍼스 규모가 너무 커서 본부에서 관리가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 학교에는 모두 노동조합이 결성돼 있다. 서울대에는 시설관리노조가 있고, 고려대, 연세대에는 공공노조가 있다. 고려대 공공노조는 2004년 용역재계약시 정년단축으로 집단해고가 예상되어 설립되었다. 연세대 공공노조 역시 같은 이유로 2008년 설립되었다.

덧붙이는 글 | 김수진 기자는 오마이뉴스 13기 인턴입니다.



태그:#청소노동자, #휴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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