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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의 유명한 서탑(西塔). 이국적인 탑과 경사가 심한 기와지붕이 외국에 와 있음을 실감나게 했습니다.
 심양의 유명한 서탑(西塔). 이국적인 탑과 경사가 심한 기와지붕이 외국에 와 있음을 실감나게 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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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양이 아름답다는 뜻을 지닌 중국 '심양(沈陽)'은 고구려를 건국한 주몽이 '부여'에서 쫓겨나 '졸본'으로 피신하면서 심양을 거쳐 '요하'로 흐르는 '혼강'(혼탁한 강이라는 뜻)을 만났을 때 자라와 물고기들이 다리를 놓아주어 몸을 피할 수 있었다는 전설이 내려온단다. 

병자호란(1636년) 때는 10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쳐들어온 청태종에게 인조(1623-1649)가 삼전도에서 치욕적인 항복을 하고 소현세자가 인질로 끌려가 8년 가까이 유배생활을 했던 도시여서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또한 간도에서 단둥을 거쳐 신의주로 들어가는 요충지여서 대한제국 말에는 의병들이 이주해서 활동했고, 봉천(奉天)으로 불렸던 일제강점기에는 독립군 아내들이 '서탑(西塔)거리'에 국밥집을 개업해서 수익금을 독립군 자금으로 보내주었던 도시여서 우리와는 다양한 인연을 맺고 있는 도시이다.  

가이드를 맡은 박영희 시인은 만주에서 7박 8일 동안 버스와 기차를 이용해서 이동할 거리는 2500km 정도이고, 김해-심양 비행기 노선까지 합하면 4000km가 넘는 장거리 여정이라며 버스와 기차를 타는 시간만도 이틀(40시간) 가까이 된다고 말했다. 

심양은 '비빔밥 도시'

한국, 북한, 중국에서 출판된 서적들이 함께 진열된 '조선문 서점'(新筆書店)을 둘러보고 나온 우리는 남편을 잃은 8명의 독립군 아내들이 국밥집을 차리면서 상권이 조성되기 시작했다는 '서탑거리'로 발길을 돌렸다.

평양관 간판. 북한이 운영하는 식당이라고 하는데요. 1인 식대가 3만 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평양관 간판. 북한이 운영하는 식당이라고 하는데요. 1인 식대가 3만 원이 넘는다고 합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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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가 그려진 한복집 간판, 4괘(건·곤·감·리)가 자리를 잘못잡고 있었지만, 무척 친근하게 다가왔습니다.
 태극기가 그려진 한복집 간판, 4괘(건·곤·감·리)가 자리를 잘못잡고 있었지만, 무척 친근하게 다가왔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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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익은 아파트와 옛 건물이 자주 보이는 것으로 보아 서탑거리 근처임을 알 수 있었는데 '평양관'이라고 쓴 간판이 시선을 끌었다. 식당 같아서 저녁은 그곳에서 먹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물어봤더니 식대가 무척 비싸다고 해서 더는 묻지 못했다. 

버스가 서탑거리에 도착해서 조금 걸어가니까 조금 전과는 대조적인 간판이 눈에 띄었다. '우리 한복집'이라는 한복 가게였는데 앞에 대한민국 태극기를 새겨놓고 있었다. 건물은 허술하지만, 주인이 고국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모양이었다. 

심양에서는 서점뿐 아니라 거리의 간판이나 상점의 물건에서도 남과 북, 그리고 중국의 문화가 뒤섞여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단둥(丹東)이 '짬뽕 도시'라면, '평양관'에서 중국 음식을 먹으며 한국 노래를 감상할 수 있는 심양은 '비빔밥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8월 처음 왔을 때는 오후 6시 20분 연길(옌지)행 기차 시간에 맞추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그러나 이번 기행은 심양 북역에서 오후 10시 26분에 출발하는 하얼빈행 기차여서 그동안 궁금하게 생각했던 장소들을 시간에 쫓기지 않고 둘러볼 수 있었다.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서탑거리'

'서탑거리' 시장에는 김치, 도라지, 고사리 등 각종 나물과 반찬거리, 약초 등을 팔고 있어서 한국의 재래시장 분위기를 풍겼다. 상자에 시커먼 과일이 담겨 있기에 물었더니 '언 배'라고 했다. 배를 얼려서 판다고 해서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담배 가게 주인?, 차림새와 얼굴 윤곽이 조선족 같았습니다.
 담배 가게 주인?, 차림새와 얼굴 윤곽이 조선족 같았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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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상인들 연령대도 옷차림만큼이나 다양했는데, 고향의 도깨비시장에서 보던 70대 할머니들은 보기가 어려웠다. 담배 가게에 앉아 있는 30대 여성이 눈길을 끌었다. 한국 같았으면 할아버지나 할머니가 지키고 있을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시장에서도 조선족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들이 노점을 벌여놓고 있었다. 그들은 추위에 떨면서도 묻는 말에 또박또박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직업에 대한 피해의식일까? 앞치마를 두르고 정육을 취급하는 여성들은 카메라를 싫어해서 접근을 조심했다.

손가락을 쫙 펴 보이는 군고구마 장수 아주머니.
 손가락을 쫙 펴 보이는 군고구마 장수 아주머니.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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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에게는 군고구마를 파는 아주머니가 인기가 좋았다. 저울로 달아서 팔기에 얼마냐고 물으니까 "마싯어!"라며 손가락 다섯 개를 활짝 펴보였다. 5위안어치라는 표시였다. 한 근에 4위안(700원)인데 혼자 먹기에는 충분하단다.

시장이나 거리에서 개수나 무더기로 파는 우리와 달리 중국은 모든 상거래를 저울을 이용한다고 했다. 군고구마 한 근을 달면 2~3개씩 올라간다는데, 단위가 600g인지 400g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한국에서 8년 정도 일했다는 중국인 아저씨. 한국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한국에서 8년 정도 일했다는 중국인 아저씨. 한국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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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의 시장에서 꽁꽁 얼어붙은 명태와 고등어를 보니까 반가웠다. 해서 하나씩 이름을 호명했더니 아주머니도 서툰 한국어로 따라서 했다. 옆에서 구경하던 과일장수 아저씨가 끼어들기에 잘 됐구나 싶어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서탑거리에는 한국어를 하는 조선족 상인이 많은 모양입니다."
"아닙니다. 다 중국 사람들이에요. 장사해 먹으려니까 조선말을 배웠죠. 조선족 후예도 다소 사는데 지금은 많이 즐었시요."

"그럼 아저씨도 조선족 아니세요?"
"예, 조선족 아니고 중국 사람이에요. 92년도에 한국에 나가서 한 8년 동안 일해고 왔드랬시요. 한국이 참 살기 좋죠."  

"한국이 살기 좋은데 왜 들어오셨어요?"
"살기는 좋은데, 돈이 있어야지 없으니까···. 돈만 많이 있으면 여기(중국)도 살기 좋은데요. 뭘!"

올해 52세라는 아저씨는 한국 표준어를 구사했는데 장사는 잘되느냐고 물으니까 "괜찮아요!"라며 잘 다녀가시라는 인사를 빼놓지 않았다. 발길을 돌리려는데 한쪽에서 쑥덕이던 아주머니들 가운데 한 분이 유창한 한국어로 말을 걸어왔다.

"으디 조선에서 오셨시요?"
"남조선, 남한에서 왔습니다."

"아 그래요. 으째 저 깃발은 무슨 일이래요." 
"우리 단체를 상징하는 거예요, 뒤따라오는 사람들이 잃어버리지 않도록 앞서 가는 사람이 들고 다니는 겁니다."

아주머니는 "아하 그럼 됐시요!"라며 동료 상인들과 환하게 웃었다. 그들은 <평화통일대구시민연대>라고 적힌 깃발이 무척 생소하고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여러 사람이 깃발을 앞세우고 뭉쳐 다녔으니 시위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주의 국가에서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서탑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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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종안
시장은 작고 중국인들이 많았지만, 우리의 옛 정취가 물씬 풍겼다. 시장에서 나와 서탑이 세워져 있는 거리로 이동했다. 길가에는 롯데리아 간판도 보였는데, 박 시인은 햄버거 가격이 10위안에서 13위안으로 올랐다며 웃었다.
시대극 세트장을 떠오르게 하는 골목

서탑 근처 골목에 들어서 있는 건축물들은 조형이 특이했다. 기와를 얹은 지붕은 중국영화에서 보던 고궁처럼 경사가 매우 급했고, 용마루가 이색적이었다. 하얀색으로 된 불탑은 라마교의 영향을 받은 듯 첨탑 모양이 둥글었다.

시대극 세트장을 떠오르게 했던 서탑 거리 골목 상가.
 시대극 세트장을 떠오르게 했던 서탑 거리 골목 상가.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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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 간판과 건물들은 시대극에 등장하는 배경처럼 고전적이면서도 화려했다. 특히 '천사 폐션', '장씨 마트', '순자 상사', '경흥 상사', '춘일 가게', '원앙 가게', '해란 한복집' 등은 상호와 글자체가 시대극 세트장에 와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서울에 동서남북 대문이 있는 것처럼 심양에도 네 개의 탑이 있는데 서쪽에 있는 서탑 근처에 조선족이 가장 많이 모여 산단다. 한국기업이 입주하면서 중국 정부와 한족이 들어오지 못하게 협약을 맺었다는 '소가툰(수지아툰)' 지역은 조선족이 집단촌을 이루고 있다고.

서탑거리를 둘러본 우리는 일제강점기에 악명 높았던 봉천경찰서와 모택동 동상이 중국의 수도 베이징을 방향을 바라보고 서 있다는 '중산광장'을 잠시 둘러보고 저녁을 먹기 위해 '서울 솥뚜껑' 감자탕 집으로 향했다. 식당에 도착하니까 오후 5시 20분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심양, #서탑거리, #비빔밥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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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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