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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기행 첫날(10일)은 아침 7시에 일어났다. 전날 저녁에 시원한 대구탕을 먹어서인지 속이 편하고 기분도 상쾌했다. 세수를 하고 박영희 시인, 순천에서 온 박 선생과 함께 숙소 근처 식당에서 청국장찌개로 아침을 먹고 구포역으로 가서 대구에서 온 일행과 합류했다.

김해 공항에서 만난 ‘2011 겨울 만주기행’ 일행.
 김해 공항에서 만난 ‘2011 겨울 만주기행’ 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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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과 김해 비행장에 도착하니까 오전 9시 1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숫자를 확인해보니까 모두 19명(어른 12명 학생 7명)이었다. 학생 중에는 엄마와 함께 온 중학생 남매와 아빠와 함께 참석한 남학생, 용감하게 혼자 나선 여대생도 있었다.  

가이드와 인솔자 빼고 모두 초면이어서 부담이 갔다. 외톨이가 된 기분에 외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일행 중에 나이가 가장 많다는 게 마음을 짓눌렀다. 그러나 자기소개와 함께 인사하는 과정에서 벽이 허물어지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족처럼 따뜻하게 느껴졌다.

가이드를 맡은 박 시인은 김해 공항에서 중국 요녕성(랴오닝 성) 성도인 심양(선양)까지는 980km쯤 된다고 했다. 직선거리여서 그런지 생각보다 멀지 않았다. 경부선(부산-서울)과 경의선(서울-신의주)을 합하면 950km에 달하고, 신의주와 마주한 중국 단둥(丹東)에서 심양까지 버스로 3시간 30분 넘게 소요되어 1천km가 훨씬 넘을 것으로 알았기 때문이었다.

김해-심양 비행기에서

비행기는 오전 11시 30분에 출발하는 중국 남방항공(CZ 666)이었다. 아내와 처음 떠나던 작년 8월과 달리 차분하게 탑승 수속을 마쳤다. 혼자임에도 서두르거나 허둥대지 않았고, 조급함도 덜했다.

비행기에 탑승해서는 반가운 독자를 만났다. 나란히 앉은 일행이 부산 모 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는 40대 여교사(백 선생)였는데 작년 8월에 다녀온 만주기행 기사를 흥미 있게 읽었다고 했다. 특히 장거리 열차에서의 경험담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해서 더욱 고맙고 친근하게 느껴졌다.

기내식이 나왔는데 시금치 무침과 콩 버무림이 별미였다. 그래도 지난번처럼 하나 더 주문해서 먹지는 않았다. 두 번째 기행이어서 그런지 기분이 덤덤했다. 그래도 창을 통해 보는 파란하늘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만주의 겨울 산하.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만주의 겨울 산하.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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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가 갑자기 앞날개를 내리면서 급선회하더니 조금 있으니까 작은 섬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곧이어 중국의 단둥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남북관계가 대립과 긴장의 연속이어서인지 압록강 하류와 북한 땅이 희미하게 보일 때는 상념에 빠지기도 했다.

하얀 눈으로 뒤덮인 만주의 산줄기들이 6개월 만에 만나는 친구처럼 반갑게 느껴졌다. 곧 도착할 거라는 안내방송과 함께 저공비행을 하던 비행기는 김해공항을 이륙하여 1시간 50분 지난 오후 12시 20분(현지시각) 심양 공항 활주로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점심은 차이나 향이 그윽한 중국식으로

심양 공항에서 ‘2011 겨울 만주기행’ 일행을 맞이하는 조선족 3세 ‘이동일’ 가이드
 심양 공항에서 ‘2011 겨울 만주기행’ 일행을 맞이하는 조선족 3세 ‘이동일’ 가이드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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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 공항에 도착해서 입국 수속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까 단둥에 있는 여행사 사장과 가이드가 '만주기행'이라고 적힌 쪽지를 들고 우리를 맞이했다. 7박8일 동안 안전을 책임질 가이드는 스물다섯 살로 젊은 청년이었는데 무척 순진하고 착하게 보였다.

심양 공항은 눈이 쌓여 있었지만, 옷을 두툼하게 입어서인지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박영희 시인도 "이번까지 중국에 열다섯 번 왔고, 대부분 겨울에 왔는데, 오늘처럼 따뜻한 날은 처음입니다."라며 놀라워했다. 그러나 바람 끝이 칼처럼 날카로운 걸 보면 영하 10도는 넘을 것 같았다. 

마중 나온 가이드와 인사를 나누고 점심을 먹기 위해 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갔다. 식당까지 40분쯤 소요되었다. 길가 큰 건물 앞에는 어김없이 경비원(복무원)들이 서 있었는데 군복차림이어서 공안원처럼 딱딱하게 느껴졌다.

차이나 향이 그윽한 중국 음식점에서 나온 땅콩 볶음.
 차이나 향이 그윽한 중국 음식점에서 나온 땅콩 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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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 양배추, 당근, 죽순, 브로콜리 등이 들어간 야채 모둠 요리. 중국음식 특유의 향이 입맛을 돋우었습니다.
 버섯, 양배추, 당근, 죽순, 브로콜리 등이 들어간 야채 모둠 요리. 중국음식 특유의 향이 입맛을 돋우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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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은은한 차이나 향이 풍기는 중국식으로 먹었다. 해물 잡채와 탕수육, 오리고기, 각종 채소와 버섯볶음 등 이름도 알 수 없는 10여 종류의 요리가 뷔페식으로 푸짐하게 차려져 나왔다. 만두도 함께 나왔는데 일행은 하나같이 맛있다며 그릇을 모두 비웠다.

많은 종류의 요리 중에 땅콩볶음은 별미였고, 고구마튀김은 고향에서도 자주 먹던 음식이어서 정감이 갔다. 식당이 무척 크고 음식이 고급스러워 가격을 물었더니 4인 기준 2백 위안(3만 6천 원)이라고 했다. 만주에 도착해서 처음 하는 식사라서 신경을 쓴 모양이었다.

점심 먹고 만난 조선족 아저씨

가죽장화 굽을 수리하는 조선족 아저씨의 여유 넘치는 모습.
 가죽장화 굽을 수리하는 조선족 아저씨의 여유 넘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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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나오다가 조선족 아저씨를 만났는데 칼바람이 부는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남의 신발을 수선해주면서도 표정이 무척 밝았다. 활짝 웃는 얼굴로 카메라 렌즈를 향해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가죽 장화 굽을 갈아 끼우는 아저씨에게 "굽 하나 갈아 끼우는데 얼마씩 받습니까?" 하고 물으니까 "이고요, 5위안도 받고, 6위안도 받고 대중없시오"라고 하더니 "오데서들 왔시오?"라고 되묻기에 "한국에서 왔습니다"라고 하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잘들 놀다 가시라요"라며 손을 흔들었다.

옆집 아저씨처럼 푸근한 조선족 아저씨는 찬바람이 장난이 아닌 길에서 냄새나는 남의 구두를 수선하면서도, 불만도 불평도 없는 무척 행복한 사람처럼 보였다. 발길을 돌리는데 부자가 따로 없다는 생각과 함께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4700달러(2009년)인 히말라야 오지의 나라 '부탄'이 행복지수 1위였다는 뉴스가 떠올랐다.

발길을 돌려야 했던 '9·18기념관'

 9·18기념관 전경. 구멍 난 자리는 총탄 자국을 상징한다고.
 9·18기념관 전경. 구멍 난 자리는 총탄 자국을 상징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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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나와 곧바로 '9·18사건' 기념관을 방문했는데 매주 월요일(10일)은 쉬는 날이라고 해서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작년 8월에 다녀가서 덜 서운했지만, 일행들은 그냥 오기가 아쉬운지 하얀 눈이 덮인 건물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9·18 기념관'에는 일제가 만주를 어떻게 침략해서 만주국을 세웠는지 알 수 있는 자료들이 보관되어 있고, 일제와 중국 고위층들의 활동을 밀랍인형으로 만들어 진열해놓았는데, 아래는 1931년 9·18사건 당시 심양 분위기를 전한 신문 보도이다. 

"봉천(심양)은 9월19일에 돌발적 사건이 일어난 후 벌써 2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동란에 휩싸여서 하루에도 몇 번씩 주야로 불궇고(불꽃이 튀고) 총소리가 들리며 이곳저곳에 참호를 쌓아놓고 군대가 골목골목에 계엄을 하고 있으며,(중략) 일본 군대의 발자취가 모질고 긴장되어 무시무시한 전쟁상태였습니다."

80년 전 조선일보 특파원 신영우가 작성한 기사를 낭독한 박 시인. 그는 <만주를 가다>에서 조선에 치욕의 '을사늑약'이 있다면 중국에는 '만주 9·18'이 있다고 했다. 기념관 출입문 벽에 큼직하게 새겨진 '9·18 만주사변을 잊지 말자(勿忘 九一八)!'라는 표어가 잘 설명해주고 있다는 것.

박 시인은 "제 민족, 제 형제끼리 총부리를 겨눠놓고 무얼 잊지 말자는 것인지, '아, 잊지 말자 6·25!' 너무 부끄러운 구호 아닙니까?"라고 자문하며 "'잊지 말자 6·25'를 '잊지 말자 11·17 을사늑약'으로 바꿨으면 합니다"라며 소감을 밝히고 있다.

'인공기'와 '오성기'가 나란히 꽂힌 서점에서

심양 시내에 있는 ‘조선문 서점’(新筆書店). 북한, 중국 우호관계가 어느정도인지 서점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심양 시내에 있는 ‘조선문 서점’(新筆書店). 북한, 중국 우호관계가 어느정도인지 서점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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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8기념관에서 돌아오는 길에 서점에 들렀다. 서점에는 북한에서 출판된 서적과 만주 조선족 자치주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펴낸 책들이 함께 진열되어 있었다. 각종 요리책과 김일성, 김정일 부자가 그려진 만화도 보였다.

학생들은 신기한 듯 북한 인공기를 관심 있게 바라보았다. 김정일 장군 일화집을 사려다가, 부모 반대로 구입하지 못한 학생은 서점에 진열된 책을 왜 못 사느냐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부모보다는 국가보안법이 학생의 선택권을 막고 있다는 생각에 씁쓸함을 금할 수 없었다. 

서점을 쇼핑하다 22위안(4천 원)을 주고 '연변문화예술연구센터'가 기획한 책(김정훈 집필)을 한 권 구입했다. 우리의 민속놀이와 민속춤 설명과 민속무용의 발굴, 정리, 보급 등에 대한 필자의 견해가 담겨 있는데 "'강강수월래'는 조선족 백 년 이민사와 함께 심원한 의의를 지니며 조선족민속놀이 연구에서도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라는 대목이 눈에 띄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겨울 만주기행, #심양 9·18기념관, #조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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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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