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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숙 지도위원이 35m 크레인 위에 있다.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살리겠다며 영도조선소 85호 지브크레인에 오른 지 18일 현재 13일차가 됐다. 그는 크레인에 오르며 남긴 편지에서 "전 한진 조합원들이 없으면 살 이유가 없는 사람"이라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있는 걸 다해서 한진 조합원들을 지키겠다"고 밝혔다.

 

<노동과세계>가 고공농성 12일째인 17일 오후 김진숙 지도위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랫동안 사용해 온 전화기가 농성 중 고장이 나서 그는 새 번호, 새 전화단말기로 전화를 받았다.

 

먼저 건강을 걱정하자 김진숙 지도위원은 "GM대우 비정규직 동지들은 나보다 더 불편하고 힘든 곳에 있지 않은가? 거기에 비하면 여기는 기온도 높고 괜찮다"면서 "잘 때 양말을 두 개 신고, 장갑도 끼고, 모자를 얼굴에 덮고 자면 그래도 견딜 만한데, 저 아래서 불침번 서는 사수대 동지들이 더 고생"이라며 되레 조합원들을 걱정한다.

 

오전 7시에서 7시30분 경 일어나 전날 올려준 따뜻한 물을 보온병에 넣어뒀다가 과일과 함께 아침을 먹는다. 요 이틀(15~16일)은 굉장히 추워서 사과가 꽁꽁 얼어 사과탄이 되고, 고구마는 짱돌처럼 얼어 아예 먹지 못했다.

 

"나흘 전부터는 트윗을 하고 있다. 부산에 96년 만에 굉장한 추위가 닥쳤다고 하더라. 어제 영하 12.8도라던데 바람까지 많이 불어서 크레인이 흔들릴 정도였다. 아마도 체감온도는 영하 20도 정도였을 게다. 오늘은 영하 10도라는데 한결 따뜻하다. 나가서 청소도 하고, 머리도 감았다. 저는 추운 지방에서 태어나 일도 많이 했고 징역 살 때 생각하면 괜찮다. 조선소에서 일도 했는데 이 정도는 괜찮다."

 

낮에 나가서 반드시 1시간씩 운동을 하고 씻기도 한다. 애초 처음 올라가서는 홀수날에 양치질을 하기로 규칙을 정했는데 아래에서 매일 하라고 잔소리해서 요즘은 매일 한다.

 

김 지도위원은 노조가 구조조정에 대해 긴장감을 잃은 것에 대해 큰 경각심을 표명했다. "10년 전만 해도 어디서 구조조정을 한다고 하면 큰일나는 줄 알고 총파업을 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어디서 구조조정을 한다고 해도 그저 예사롭게 아는 것 같다. 심지어 명예퇴직에 합의하면 선방한 것처럼 호도하기까지 한다."

 

노동조합이 그동안 너무 많이 빼앗겼고, 너무 많이 잃었다는 것이 김진숙 지도위원의 혹독한 비판이다.

 

"이런 식으로 개념 자체를 왜곡해 버리면 사측이 계속 우리를 기만할 수 있는 빌미와 소지가 된다. 더 이상 양보하거나 타협해선 안 된다. 그에 쐐기를 박고 사측의 도발을 막기 위해 크레인에 올랐다."

 

그는 "한중에 남은 1000여 명 조합원이 최대한의 방어벽"이라면서 "제 크레인 농성은 사측에 대한 강력한 경고이자, 저를 비롯해 우리 내부에서부터 긴장하자는 의미"라고 말했다.

 

김진숙 지도위원의 노동자들을 향한 질타는 계속 이어졌다.

 

"이명박 정권의 타임오프와 공기업 선진화방안 등으로 인해 단협이 해지되고, 노조가 해산한 곳도 있고, 조직을 변경한 곳도 있다. 그것이 우리 스스로의 일상이 돼 버렸다. 두드려 맞다보니 맷집이 생겨서 맞아도 아픈 줄 모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우리 운동이 전체 전선을 치고 단결하고 싸워야 할 기회를 많이 잃었다.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 정규직도 한진중공업처럼 일순간 하청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되돌아보고 깨뜨려야 한다."

 

지도위원은 그 모든 어려움을 어떻게 해서든 반전시키고 싶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하다 크레인 농성을 결심했다. "저는 한진중공업 조합원이고, 해고자 신분으로서 한중 정리해고를 막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 최선의 방법이 바로 크레인 농성이었다."

 

조합원들을 지키겠다고 결심하고 크레인에 오른 김 지도위원은 한진중공업 사측을 향해 매서운 경고를 날렸다. "2003년 상황으로 되돌아가고 싶으면 마음대로 하라, 당신들도 2003년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 만큼은 안 된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구조조정에 맞서 싸우는 한진 조합원들을 향해 따뜻한 목소리로, 단결투쟁을 독려하는 결연한 메시지를 전했다.

 

"정리해고는 개인 문제가 아닌 구조의 문제다. 처음에는 분기탱천해서 싸우다가 정리해고 명단에 드는 순간 위축돼 '내가 못나서, 내가 무능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는 것 아닌가' 하고 자책감을 갖기도 한다. 제발 그러지 말라.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살아남은 이들에게도 조만간 닥칠 문제다. 우리가 잘못한 문제가 아니다."

 

김 지도위원은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싸움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다. 그는 "정리해고 사업장들을 수백 군데여도 내 문제로 닥치기 전까지는 모른다"면서 "한진중공업 조합원들도 이번에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며, 이번 싸움이 승리로 마무리되면 연대도 열심히 하고, 노동조합 조직력이나 조합원들 의식도 몰라보게 발전할 것"이라고 전했다.

 

35m 크레인 위의 김진숙 지도위원이, 한중 조합원들의 '진숙이누나'가 호소한다, 절규한다. 정리해고는 우리 잘못 때문이 아니라고, 이 구조를 우리가 깨자고, 흩어지지 말고 싸워야 한다고. "아프지 마시고, 술 많이 먹지 마시고, 밥 잘 먹고, 잘 버텨서 이 투쟁 기필코 승리하자"고.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민주노총 종이신문 <노동과세계>에도 게재됐습니다. 


#민주노총#한진중공업#김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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