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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16일, 금년 들어 가장 추운 날씨다. 아침 최저가 영하18도라고 한다. 매스컴에서는 한강이 얼고, 전력수요가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보도했다. 겨울 추위, 한두 번은 꼭 겪는 일인데, 올해는 다른 해보다 추위가 유별난 것 같다. 일주일 전쯤 문화유산 답사전문 카페에 화성답사 공지가 있었지만, 나는 사흘 전에야 신청할 수 있었다. 16일 하기로 한 다른 답사가 구제역으로 취소되었기 때문이다.

 

요즘 관공서에게 구제역이 발생한 지역으로 여행을 자제해 달라는 공문이 많은 오는 편이다. 특히 경북지역에서 구제역이 처음 발생되어서인지 그쪽으로의 여행은 더욱 꺼리는 경향이 있다. 일부지역에서는 도로가 폐쇄되기도 한다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또 구제역에 감염된 지역 사람들은 외출도 통제를 받는다고 한다. 구제역과 한파 때문에 금년 겨울은 편안하게 지내기 어려울 것 같다.

 

이번 답사 대상은 경기도 수원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화성이다. 전에도 한두 번 화성을 답사하기는 했지만 그때는 일부 구간만 돌았다. 또 문화유산 답사였기 때문에 해설사를 따라다니며 설명을 들었다. 그 때문에 소위 화성을 한 바퀴 도는 종주를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 '수원 화성돌기'는 말 그대로 화성을 한 바퀴 종주하는 것이다. 그것도 안으로 한 바퀴를 돌고, 다시 밖으로 또 한 바퀴를 돌 계획이다.

 

화성은 성의 둘레가 4744m이고 성의 면적은 130ha이다. 화성은 남문인 팔달문에서 북문인 장안문까지 대로가 나 있고, 그 오른쪽으로 수원천이 남북으로 흐르고 있다. 수원천 남쪽으로는 수구문이 있었으나 현재는 없어졌고, 북쪽의 수문인 화홍문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으로 이어지는 성곽 지역이 화성에서는 가장 아름답다. 그리고 서쪽의 팔달산을 제외하고는 모두 평지로 이루어져 있어 성곽종주도 수월한 편이다. 성을 한 바퀴 도는데 두어 시간이면 충분하다.

 

팔달문은 공사중

 

우리는 아침 11시에 화성의 남문인 팔달문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다. 나는 10시40분쯤 현장에 도착 일행을 기다리면서 팔달문을 살펴본다. 팔달문은 수원 시내에 있는 팔달산에서 이름을 따왔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2층 건물로 우진각 지붕을 하고 있다. 문 바깥으로 반원형의 옹성(甕城)을 쌓아 적으로부터 문을 보호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에 보수를 하는 바람에 원형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또 성문을 뺑 둘러 도로가 나 있기 때문에 성문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화성의 네 개 성문 중 팔달문만 유일하게 성곽으로 연결되지를 않는다. 팔달문에서 동남각루까지 구간의 성곽은 도심이 형성되고 도로가 생기면서 훼손되었다. 중간에 있는 지동(池洞)시장 입구에 성곽 모습을 약간 복원해 놓아 이곳으로 성곽이 지나갔음을 알리고 있다.

 

팔달문은 1964년 보물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다가, 1975년에 <화성성역의궤>를 토대로 옛 모습에 좀 더 가깝게 복원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문제점이 발견되어 다시 보수공사를 하고 있다. 보통 성곽에서는 남문이 중심이고 가장 크다. 그러므로 남문인 팔달문이 가장 크고 화려하다. 그렇지만 옛날 사람들의 통행은 북문인 장안문이 더 많았다고 한다. 그것은 장안문이 서울 방향으로 나 있기 때문이다.

 

팔달문에서 만난 우리 일행은 먼저 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서장대 방향으로 오른다.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처음에는 비교적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얼마 전 눈이 와 성벽 안쪽으로는 눈이 쌓여있지만, 길 쪽으로는 깨끗이 치워졌다. 성벽 안길을 오르다 처음 만나는 방어진지가 남치(南雉)다. 여기서 치란 성곽에 연결 밖으로 돌출시킨 방어용 성벽이다.

 

치에서 다시 조금 더 올라가면 남포루가 나오고, 이곳에서 다시 언덕배기까지 올라가면 서남암문이 나온다. 서남암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면 서남각루인 화양루가 나온다. 서남각루는 화성 성곽 밖으로 가장 돌출되어 있다. 화양루라면 가장 양지바른 누각이라는 뜻이다. 또 누각이라면 일반적으로 2층으로 된 건물인데, 성안에서 보면 단층 건물이다. 성밖에서 보면 성곽이 1층이 되고, 그 위에 건물이 있으니 2층의 모습이 된다.

 

이곳 서남각루에서 서장대까지는 평탄한 길이다. 이 구간에는 서포루와 효원의 종이 있다. 서포루(西鋪樓)는 서암문을 지키는 일종의 초소로, 지금으로 말하면 경비병들의 주둔지다. 서포루 앞에는 최근에 만든 효원(孝園)의 종이 있다. 효원의 종에는 화성의 주요문화재들이 새겨져 있다. 또 시 상징물인 은행나무, 철쭉, 비둘기도 조각되어 있다. 

 

화성장대의 원 이름은 서장대다

 

이들을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화성장대에 이르게 된다. 화성에는 동장대와 서장대 두 개의 장대가 있다. 그런데 이곳 화성장대(華城將臺)는 성의 서쪽에 있기 때문에 원래 이름은 서장대다. 서쪽에 있는 장대라는 뜻이다. 장대란 장수(將帥)들의 지휘소를 말한다. 서장대는 화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화성을 지키는 군인들의 최고 지휘소 구실을 했다. 남한산성에 있는 수어장대(守禦將臺)와 비교할 수 있다.

 

정조임금은 1794/95년 화성의 장대에 올라 성안의 군사를 사열하고 훈련하면서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고 한다. 이 시에서 대풍가는 한 고조인 유방이 고향인 패현에 들러 부른 노래를 말하고, 인포는 자신이 입은 비단 도포를 말한다.

 

나라를 지켜 보호함이 중한 것이라(拱護斯爲重)

경영엔 노력을 허비하지 않는다오.(經營不費勞)

성은 평지로부터 아득히 멀고(城從平地迥)

대는 먼 하늘 의지해 높기도 하여라.(臺倚遠天高)

오만 방패들은 규모가 장대하고(萬垛䂓模壯)

삼군은 의기가 대단히 호쾌하도다.(三軍意氣豪)

대풍가 한 곡조를 연주하고 나니(大風歌一奏)

붉은 아침 햇살이 인포에 비치는구나.(紅日在鱗袍)

 

수원에는 높은 산이 없어 이곳 서장대에서 보면 사방을 완벽하게 조망할 수 있다. 북쪽으로 관악산과 수리산이 비교적 우뚝하게 보일뿐, 동서남쪽으로는 눈에 띄는 산이 없다. 이곳에서는 또한 수원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수원 시내를 내려다보면 아파트군이 도시를 둘러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수원에 공장이 많이 들어서면서 이들 주민을 수용하기 위해 지어졌다. 수원은 현재 팔달구, 장안구, 권선구, 영통구로 이루어져 있다.

 

장대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은 화성행궁이다. 행궁은 팔달산을 진산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동향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정문인 신풍루(新豐樓) 역시 동쪽을 향하고 있다. 화성장대에서 보면 행궁의 당우들이 사각형의 틀 안에 비교적 조밀하게 배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화성은 1794년(정조 18년) 2월 성역이 시작되었으며 1796년 10월에 완성되었다. 그러나 현재 보이는 화성행궁은 화성성역 200주년이 되는 1996년 7월19일 복원을 시작, 1997년 9월12일 완성된 20세기의 작품이다.

 

서장대에서 성벽 쪽으로는 서노대(西弩臺)가 있다. 노대란 큰 화살을 쏘기 위해 높고 평평하게 만든 대를 말한다. 그런데 서노대는 지휘부인 서장대 앞에 있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깃발을 흔들어 성곽 전체 장수들에게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서노대는 서쪽에서 팔달산을 올라오는 적들을 맞아 싸운 대표적인 방어진지다.

 

화서문은 말 그대로 화성의 서문이다

 

화성장대로부터 화서문으로 이어지는 길은 팔달산 능선을 따라 나 있다. 그러므로 방어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가장 안전하고 편한 곳이다. 이 구간에서 만나는 방어진지로는 서포루와 서북각루가 있다. 서포루(西砲樓)는 서장대와 서북각루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포루는 적이 성벽에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 화포를 쏠 수 있도록 만든 시설물이다. 화성에는 5개의 포루(砲樓)가 있다.

 

서포루에서 화서문 쪽으로 더 내려가면 1.5층 형태로 만들어진 누각이 보인다. 이것이 서북각루다. 서북각루는 화서문 서남쪽 146보쯤 되는 산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각루란 성벽이 굽어지는 곳에 지은 누각으로, 성을 지키는 보초병이 망을 보는 곳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경계초소인 GP에 해당한다. 포루와는 달리 누각 사방이 트여있어 조망하기에는 좋지만 적의 공격에 취약한 단점이 있다.

 

서북각루는 정면 2칸 측면 2칸이지만, 내부를 특이하게 구성해 놓았다. 입구쪽 한 칸에는 층계를 설치 위로 올라갈 수 있게 만들었고, 그 위에는 마루를 깔았다. 그러므로 보초병들은 이 마루에 올라 적의 동태를 살폈을 것이다. 화성에는 모두 4개의 각루가 있다. 이들 각루 중에는 방화수류정이라 불리는 동북각루가 가장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서북각루를 내려오면서 보면 화서문이 한 눈에 들어온다. 화성의 4대문 중 위로부터 조망할 수 있는 곳은 화서문이 유일하다. 그것은 팔달산이 평지와 만나는 지점에 화서문이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보면 성벽이 안으로 약간 들어간 곳에 화서문이 있고, 그 밖으로 성을 방어하기 위한 옹성을 쌓았다.

 

화서문은 반듯하게 다듬은 돌로 높게 축대를 쌓으면서 가운데 출입구인 홍예문을 냈다. 그리고 축대 위에 단층의 누각을 세웠다. 누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화서문은 2층 누각으로 되어있는 팔달문과는 달리 단층 누각으로 되어 있어 소박하면서도 안정감이 있다. 석축 좌우로는 층계가 있어 위의 누각으로 편안하게 오를 수 있다.

 

그런데 층계를 꺾어지게 만들어 문을 지키는 수장과 수졸들이 올라가기 쉽게 만들었다. <화성성역의궤>에 보면 '좌우 돌계단을 꺾어서 설치(左右石梯轉曲)'했다는 문구가 보인다. 누각 밖으로는 여담(女墻)이 쳐져 있고, 협문을 통해 누각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되어있다. 화서문은 4대문 중 접근성도 가장 좋고 주변 경관과 잘 어울려 많은 사람들이 그림 또는 사진의 대상으로 삼는다.


태그:#수원 화성, #팔달문, #화서문, #화성장대, #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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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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