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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정말 토할 정도로 뛰었다. 48리터짜리 배낭과 옆으로는 봇짐을 하나 매고 또 X자로 카메라 가방을 하나 메고는 트럭에서 내리자마자 맹렬하게 에티오피아 보더(국경)로 들어가서 노란색 이미그레이션 오피스 문을 두들겼다. 이럴 순 없었다.


하루 반 정도가 걸리는 거리인 케냐 나이로비를 떠나 모얄레에 삼 일 만에 도착했다. 주야장천 비가 와대서, 트럭 바퀴가 빠지는 통에 함께 오던 트럭들도 모두 함께 늦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사람 사는 인정은 남아 있는 곳이라 모두 다 함께 내려서 길을 만들고, 바퀴를 빼는 노동을 함께 했다.


사실 '뒷트럭이 빠졌는데 돕는다고 한 나절 이상이나 지체될 게 뭐람?'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을 잠깐 한 것도 사실이었다. 난 아직 그만한 사람밖에는 못되었지만, 이내 반성했다. 그 트럭이었기 때문에 빠진 것이 아니었다. 우기의 그 길은 그 어떤 차라도 비 때문에 지체될 수 있는 그런 길이었다.

 

한 시간만 가면 모얄레라는 트럭기사의 말에 시종일관 노심초사했다. 오늘 에티오피아를 꼭 들어가야 했다. 금요일인 오늘 못 들어가면 케냐 모얄레에서 꼼짝없이 월요일 아침까지는 발이 묶여야 했고, 더구나 난 돈이 하나도 없었다! 달러만 조금 있는 상황이어서 버스비마저 그 달러로 내면 밥 사먹을 에티오피아 돈도 없는 실정이었다. 꼭 오늘 들어가야 했다.

"아저씨 문 좀 열어주세요. 끝난 거예요?"
"응. 이미 업무 끝났어. 월요일날 와."

예전에도 본 적 있는 머리 하얀 수위 아저씨가 대답했다.

"안 되는데. 저 오늘 에티오피아 들어가야 되거든요?"
"허허~ 그럼 일찍 왔어야지. 월요일날 8시 반에 와."
"아저씨, 안돼요. 저 오늘 들어가야 돼요. 나이로비에서 트럭 타고 왔는데 3일 내내 걸려서 왔어요. 차 도착하자마자 진짜 힘들게 뛰어왔어요. 저기... 아저씨 그럼 그 사람 좀 불러주세요. 그 이름은 기억 안 나는데, 키 좀 작고 도장 찍어주던 사람 있잖아요? 그 사람 좀 불러주세요."
"허 참, 아니 왜 오늘 꼭 들어가야 된다는 건데? 그럴 거면 끝나기 전에 왔어야지, 이 아가씨야~"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느낀 건지, 아저씨는 끝까지 물러서지 않는 나를 어이없다는 듯이 바라보며 물었다.

"오늘 들어가서 내일 아침 새벽5시 아디스로 가는 버스 타야 돼요."

사실이었다. 나는 케냐 보더에서 머물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케냐 보더는 에티오피아 보더보다는 더 비쌌다. 자꾸만 귀찮게 하는 내가 어이없는지 아니면 진짜 딱했는지 모르겠다. 아저씨는 내가 말한 그 사람에게 정말 연락을 해주었다. 그 사람이 누구냐고? 그냥 그는 내가 나올 때 출국 도장을 찍어주던 사람이었다. 케냐로 향하는 출국도장을 찍어주며 나에게 농담을 건넸던 사람이었다.

"니가 다시 에티오피아를 오게 되면 그 땐, 우리 친구하자."
"안 될 거 없지. 오케이."
"그냥 친구 말고, 남자친구."
"어쩌지. 그냥 친구는 몰라도 난 남자친구가 너무 많아서 더 이상은 필요 없는데. 그럼 안녕~"
 

웃음으로 마무리한, 시덥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은 나를 기억이나 할는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예상보다 일찍 나타나서, 그것도 친구로서 도움 좀 달라고 할지는 더더욱 몰랐겠지. 나에 대해 자세하게 얘기했는지 아저씨는 짧지 않은 통화를 끝낸 후, 나에게 얘기했다.

"너 행운아야. 일단 저녁 먹은 후에 한 일곱시 정도에 온다고 하니까 기다려봐."

밤새도록 기다릴 수 있었다. 뭐 8시 반까지 오지 않으니 조금 샐쭉해지긴 했지만. 몇 시간 동안 나비만한 나방을 벗삼아 무료함을 달래며 기다렸고 8시 반이 조금 지난 후, 내가 이름을 기억 못하는 그는 도착했다.

 

"너로구나! 근데 무슨 일이야 이 밤에! 듣자하니, 오늘 꼭 들어가야 하는 이유가 뭔데?"
"솔직히 말해서 돈이 없어. 그래서 케냐에서 월요일까지 머물 수 없고, 내일 아디스로 가는 버스비도 가지고 있는 몇 푼 안 되는 달러로 내야 하거든. 그리고 친구가 아파. 그래서 빨리 가봐야 돼."

마지막 친구가 아프단 핑계는 안 댈 걸 그랬나? 너무 엉성한 듯하지만, 어쨌거나 그는 별 말 없이 내 얘길 들어주었다.

"흠…"

그리고 밤 9시가 되기 전, 내 여권에 에티오피아 입국도장이 찍혔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이번만이야. 알았지? 다음 번엔 안 돼."

상식적이지 않아서 화가 날 때도 있는 아프리카지만, 상식적이지 않아서 행복하기도 한 아프리카다.

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지난 2009년 8월부터 2010년 1월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 외래어의 경우, 소리나는 대로 발음 표기하였습니다.


태그:#케냐, #에티오피아, #국경, #아프리카 여행, #아프리카 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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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담은 사진에세이 [same same but Different]의 저자 박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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