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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감독협회 이사장 선거에 출마했던 감독들의 주요 작품. 왼쪽부터 김호선 감독의 <애니깽>, 정진우 감독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이민용 감독의 <인샬라>
 한국영화감독협회 이사장 선거에 출마했던 감독들의 주요 작품. 왼쪽부터 김호선 감독의 <애니깽>, 정진우 감독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이민용 감독의 <인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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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감독협회(이하 감독협회)가 이사장 선거 문제로 논란을 빚고 있다.

감독협회(이사장 정인엽 감독)는 지난해 12월 17일 임원개선 총회를 열고 3년 임기의 신임 이사장으로 정진우 감독을 선출했다. 김호선, 정진우, 이민용 감독 등 3명이 출마한 경선에서 141명이 투표해 정진우 감독이 75표 , 김호선 감독이 62표, 이민용 감독이 1표를 득표해 과반수 득표자인 정진우 감독이 신임 이사장에 당선된 것이다.

하지만 젊은 감독들의 지지를 받고 있던 이민용 감독은 당일 총회에 불참하고, 총회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선거를 앞두고 감독협회 이사회가 정회원 자격을 정리하면서 젊은 층 감독 상당수를 투표권이 없는 특별회원으로 전환했다는 것. 특별회원으로 전환된 감독 중에는 이창동, 박찬욱, 봉준호, 허진호, 장진 감독 등 작품 활동이 활발한 감독들이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감독협회 측은 "최근 3년간 총회에 참석지 않은 감독들이 많아서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예산 결산안 등 주요 안건을 처리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감독들에게 몇 차례 공문을 발송해 연락이 안 되는 감독들을 특별회원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을 공지했고, 공문이 반송되거나 연락이 끊긴 회원들에 대해 회원 자격을 바꾼 것"이라고 밝혔다.

이창동, 박찬욱, 봉준호가 연락이 안 된다고?...무효 소송 낸 젊은 감독들

그러나 이민용 감독은 "장관까지 지낸 분도 있고, 작품 제작도 열심히 하는 감독들이 연락이 안 된다는 게 말이 되냐"며 "이사회의 결정과 그런 식으로 진행된 총회는 무효"라고 주장했다.

일부에서는 "유명 감독들이 평소 협회 일에 관심이 없다 보니 연락을 해도 잘 받지 않고 신경 쓰지 않으려 한 것에 원인이 있는 것 같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다른 편에서는 "은둔해 살고 있는 감독들도 아니고, 국회의원실에서도 연락되는 감독들에게 그런 식의 주장은 구차한 변명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이번에 특별회원으로 전환된 박찬욱 감독은 지난해 11월 국회에서 열린 영화 관련 현안 간담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이민용 감독은 "50여 명의 감독이 특별회원으로 바뀌었는데 대부분이 나를 지지하는 회원들이었다"면서 "협회 측에 이의 시정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법적인 판단을 구하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감독은 본안 소송인 총회 무효 소송과 함께 신임 이사장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을 정병각 감독 등 39명의 이름으로 서울중앙지법에 제기했고, 17일부터 심리가 진행될 예정이다.

신임 이사장 당선자 공탁금 압류돼 당선 무효

영화인복지재단 이사장으로 신임 감독협회 이사장 선거에서 당선된 정진우 감독
 영화인복지재단 이사장으로 신임 감독협회 이사장 선거에서 당선된 정진우 감독
ⓒ 성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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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감독협회 선거관리위원회(위원장 김영효 감독)가 지난 1월 11일 신임 정진우 이사장의 당선 무효를 결정하는 일이 벌어졌다.

감독협회 선관위에 따르면 이사장 선거에 출마한 정진우 감독의 공탁금이 국세청에 의해 압류돼 결과적으로 공탁금을 납부하지 않은 상태에서 당선된 것이므로 선거관리규정에 따라 선거 무효 및 당선 취소를 결정했다는 것. 정진우 감독은 30억 원이 넘는 세금을 체납해 국세청 고액 세금 체납자에 올라 있는데, 이번 선거에 출마하면서 낸 공탁금 500만 원이 숨긴 재산으로 규정돼 국세청에 압류 조치된 것이다.

이와 관련, 선거관리위원으로 참여한 한 감독은 "국세청에서는 12월 13일 자로 압류 조처를 하면서 정진우 감독에게 통보했으나, 당사자가 이를 선관위에 신고하지 않았다"며 "1월 초 국세청에게 뒤늦게 통지가 와서 후보등록을 무효로 하고 당선을 취소 시키는 조처를 내렸다"고 말했다.

감독협회 정인엽 이사장도 "선거가 원인무효가 된 것이고 2위 득표자인 김호선 감독이 과반수를 못 넘겼기에 재선거를 해야 할 문제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진우 감독 "선관위 결정 받아들이지 않을 것"

그러나 정진우 감독 측은 이미 끝난 결과를 놓고 상설기구도 아닌 선관위가 이를 뒤집으려 한다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다. 정진우 감독 측은 선거가 끝난 다음 날 감독협회의 컴퓨터 본체 등을 포함한 주요 서류와 통장 및 직인 등을 개인 사무실로 옮겨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 감독은 "공탁금을 압류 당했다고 하는데, 감독협회 통장에는 돈이 한 푼도 남아 있지 않더라"며 "서류를 살펴보니 1500만 원의 공탁금 중 1000만 원은 감독협회 사무실 임대료로 냈고 나머지는 선관위원들이 먹고 마시는 데 대부분의 돈을 지출했지 압류당한 돈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또한 이미 선거가 끝난 상태고 과반수의 득표를 얻어 감독들의 지지가 확인된 이상 선관위가 뒤늦게 내린 당선 취소 결정에 따를 의사가 전혀 없음을 밝히고, 국세청 공탁금 압류조처도 곧 해제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정인엽 이사장은 "거액의 국세를 체납하고 문예진흥기금 횡령으로 징역을 사는 등 범법자와도 같은 사람이 어떻게 사단법인의 수장이 될 수 있냐"면서 "정진우 감독이 억지 주장을 펴는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멋대로 감독협회 물품을 옮겨간 것에 대해 내용증명을 발송해 원상회복을 요청해 놓은 상태이며 정식으로 업무 인수인계도 안 된 상태에서 감독협회 물품을 가져간 것은 범죄 행위에 해당할 수 있는 사안이므로 이에 불응할 때 형사고발 등을 통해 대응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업무인수인계서에 사인을 해 주지 않은 상태에서 법적으로 감독협회 이사장은 정진우 감독이 아닌 자신이라고 강조했다. 

신구갈등은 개혁 문제, 보수원로들 다툼은 기득권 문제

지난해 춘사영화제 본선심사위원회에 참여한 원로영화인들. 아래 줄 왼쪽에서 네번째가 정진우 감독, 다섯번째가 정인엽 이사장
 지난해 춘사영화제 본선심사위원회에 참여한 원로영화인들. 아래 줄 왼쪽에서 네번째가 정진우 감독, 다섯번째가 정인엽 이사장
ⓒ 한국영화감독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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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협회 이사장 선거 문제를 고리로 전개되고 있는 영화감독들의 갈등은 배경에서 조금 다른 차이를 두고 있다. 신구 감독들의 갈등은 영화계 개혁 문제 등을 비롯한 주도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혁 갈등으로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반면 보수원로 감독들의 갈등은 영화인복지재단(이사장 정진우 감독)을 놓고 벌이는 다툼이다.

젊은 감독들은 뛰어난 작품을 제작해 해외 영화제 수상 등으로 한국 영화의 위상을 높이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으나, 감독협회 등 주요 기관은 모두 보수원로 영화인들이 차지하고 있다. 이번에 이민용 감독을 중심으로 이런 분위기를 바꿔보려고 했는데, 벽에 부딪힌 것이다.

이에 비해 보수원로 영화인들간의 다툼은 영화인복지재단(이하 복지재단)이 가장 핵심적인 문제다. 정진우 감독이 13년째 이사장을 맡아 재단을 사유화하고 있다는 비판이 원로 영화인들 사이에 일면서 양측의 갈등이 커지고 있다. 경제적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원로영화인들은 재단기금이 이사장 임의대로 지급되는 등 문제가 많다며 정진우 감독을 비난하고 있다.

이번 감독협회 이사장 선거의 공탁금 압류도 정진우 감독을 비판하고 있는 영화인 단체 관계자가 국세청에 제보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원로 영화계 인사들이 잇따른 문제 제기를 통해 압박하자 정진우 감독 측은 사실상 자신이 주도해 만들어 놓은 것을 뺏으려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그는 이번 감독협회 이사장 선거 출마도 이런 억지주장을 더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나서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정 감독 측은 "복지재단 문제를 거론하는 외부의 지적은 사실과 다르다"며 "기금을 맘껏 쓰고 싶어 하는 일부 원로영화인들의 가당치 않은 술책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양측의 대립은 정 감독이 이사장에 당선되면서 우위를 선점한 것으로 보였으나, 세금 체납 문제 탓에 당선무효결정이 내려지면서 복잡해지는 양상이다. 양쪽 모두 어느 쪽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복지재단 논란, 양쪽 다 구리기는 마찬가지"

2006년 발간된 '한국영화인복지재단' 연감. 영화인복지재단은 원로영화인들의 복지 증진과 후진 양성을 위해 1984년 설립됐다
 2006년 발간된 '한국영화인복지재단' 연감. 영화인복지재단은 원로영화인들의 복지 증진과 후진 양성을 위해 1984년 설립됐다
ⓒ 성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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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자적 관점에서 보수원로 영화인들의 대립을 바라보는 젊은 영화인들은 굳이 간섭하고 싶지 않다며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다만 공공적 성격의 재단이 한 사람에 의해 오래 장악되고 있는 것은 문제가 있지 않으냐는 의견이다. 그렇다고 어느 한 쪽의 주장에 힘을 주기 보다는 양비론적 시각에서 양측 모두에 거리를 두고 있다.

한 중견 영화계 관계자는 "영화인복지재단의 기금이 지금보다 훨씬 많아지고 수혜자가 늘어나도록 도울 수도 있으나 한 사람이 지나치게 오래 쥐고 있는 것은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도, "굳이 복지재단 논란에 관심을 두거나 개입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영화제작사 관계자는 "복지재단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양쪽 다 구리기는 마찬가지라며, 영화인들의 의견을 모아 제3의 대안을 고민해 봐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혔다. 영화 스태프들의 처우가 열악한 상태에서 복지재단이 원로영화인들의 쌈짓돈이 아닌 영화인 전체의 복지를 위해 쓰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태그:#한국영화감독협회, #영화인복지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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