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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효재 작품
▲ 한복, 스와로브스키를 만나다 디자이너 효재 작품
ⓒ 김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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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스와로브스키, 한복과 조우하다

11일 갤러리 아트링크에서 열린 <한복, 스와로브스키를 만나다>전(展)의 오프닝에 다녀왔습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의 사랑을 받아온 115년 전통의 스와로브스키 엘리먼츠가 한국의 톱 디자이너들과 함께한 콜라보레이션 작업입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일리스트 서영희 선생님께서 아트 디렉팅을 하셨습니다(저는 항상 이분을 국내 최고라고 부릅니다) 서 선생님은 기존의 패션 코디네이터의 개념을 넘어, 시대를 해석하는 스타일리스트의 철학과 본분을 묵묵하게 지켜내고 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뵙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예전부터 너무 뵙고 싶어서 기회를 노렸는데, 오늘이 바로 그날이 아니었나 싶네요.

한복에 홀릭하다

저는 한복을 좋아합니다. 서양패션의 역사를 연구하는 큐레이터지만 우리 내 전통의 한복의 선과 빛깔이 빚어내는 단아한 자태는 서구의 시선으로 규정된 미학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색다른 깊이가 있습니다.

옷을 인간의 몸에 맞도록 변화시키기 위해 인간은 두 개의 재단법을 개발해왔죠. 평면과 평면을 이어붙인 평면재단과 인체에 직접 옷감을 대면서 옷 본을 제작한 후 인체에서 떼어 재단하는 입체재단이 있습니다.

한국의상 백옥수의 하늘색 당의
▲ 한복,스와로브스키를 만나다 한국의상 백옥수의 하늘색 당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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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복식은 전자를, 서양의 복식은 후자를 발전시켜왔죠. 언뜻 듣기엔 삼차원인 인간의 몸을 의식해 제작하는 입체재단이 더욱 인간의 몸을 돋보이게 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한복은 전형적인 평면재단의 소산입니다. 착용자의 개성에 '따라 언제나 연출할 수 있도록 열린 구조인 셈이죠. 여기에 직선 재단이라 버려지는 천 자투리도 많지 않습니다. 게다가 옷을 뜯으면 여러 개의 크고 작은 조각으로 해체되기에 다른 옷을 만들 때 이용할 수도 있답니다. 인간에 대한 배려와 경제성이란 관점에서 한복은 결코 서구의 옷에 뒤지지 않는답니다.

지난 달 오스트리아 지역을 여행하면서 크리스털의 명품 스와로브스키의 본산지인 인스부르크를 방문했습니다. 유리세공업자의 아들이었던 다니엘 스와로브스키는 자신의 전자절삭기술을 특허로 내면서 바로 그곳에 오늘날의 스와로브스키의 전신인 K.S. & Co를 세웁니다.

스와로브스키의 크리스털 제품은 빛이 투과되면 무지개 빛깔의 스펙트럼을 만들도록 특수 화학도료를 각 제품에 입힙니다. 오로라처럼 보이는 현란한 빛의 흔적들이 보석 위에 착상되는 건 바로 그런 이유지요. 이 스와로브스키는 크리스털을 비롯한 보석, 홈 데코, 산업용 절삭기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윤의한복에서 내놓은 세련된 보랏빛 컬러의 파티복 한복
▲ 한복,스와로브스키를 만나다 윤의한복에서 내놓은 세련된 보랏빛 컬러의 파티복 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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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브랜드 이미지를 위해 세계의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크리스털 팔레트를 제공하고 이에 기반한 협업 또한 왕성하게 하고 있죠. 한복과 스와로브스키의 공식적인 첫 번째 콜래보레이션입니다.

스와로브스키는 복식사의 주요 아이콘이 된 의상에 스와로브스키를 결합시키는 작업을 진행해왔습니다. 작년 하반기에는 샤넬이 유행시킨 리틀블랙드레스를 크리스털을 이용해 변주한 22개의 작품을 선보였었죠. <블랙을 말하는 22가지 방식>이었죠. 검정은 지상의 모든 색을 흡수하는 강력한 힘을 가졌지만, 크리스털의 투명한 빛을 통해 블랙의 속살에 꼭꼭 숨겨둔 수만의 색을 토해놓게 된 겁니다. 이번 한복과 스와로브스키의 만남도 블랙드레스의 사례에 못지 않습니다.

한복 린에서 내놓은 베이지색 명주치마에 아이보리색 손누비 양단 당의를 매치한 작품
▲ 한복,스와로브스키를 만나다 한복 린에서 내놓은 베이지색 명주치마에 아이보리색 손누비 양단 당의를 매치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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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디자이너들이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털을 이용해 변주시킨 우리의 한복은 눈을 떼기 힘들 정도로 매력적입니다. 먹으로 그려진 꽃 위에 네 가지 종류의 크리스털로 수놓은 효재의 작품에는 수묵화의 고아한 세계가 숨쉽니다.

어디 이뿐인가요? 노방소재로 만든 숄과 한복 치마 위에 먹으로 차분하게 그려낸 연꽃과 연 잎은 핑크와 옅은 초록빛을 가미해 아스라한 봄의 기운을 표현했습니다. 이파리 위에 크리스털을 붙여 마치 연 잎 위에 송알송알 이슬이 맺힌 것처럼 보입니다. 한복의 무한변주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세련된 보랏빛 컬러의 파티복으로 변신한 한복 또한 눈길을 끕니다.

한국의상 백옥수의 작품
▲ 한복,스와로브스키를 만낟자 한국의상 백옥수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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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달빛 아래 속살이 비칠 듯한 은은한 느낌의 소재에 크리스털을 더함으로써 한복의 단아한 실루엣에 새로운 환영을 창조합니다. 치마 아랫단부터 물안개 피어 오르듯 만개하는 꽃 자수와 크리스털의 조화는 전통의 금박장식을 대체해도 될 만큼의 신선함을 자랑합니다.

디자이너 백옥수가 내놓은 하늘빛 당의는 또 어떤가요? 고결한 기품을 드러내는 첩지머리를 한 여인의 어깨선과 가슴을 덮은 당의는 원래 연두를 즐겨 썼다지요. 여기에 안감은 자줏빛을 결합시켜 음양의 정신을 보완했답니다. 옅은 남색 스란치마와 삼회장 저고리를 그 아래 입어 색과 기운의 조화를 도모하는 것. 이것이 우리 내 소례복인 당의의 정신이었습니다.

당의 위에 스와로브스키 제품을 이용해 섬세하게 영근 자수의 매력 앞에 한동안 서 있어야 했습니다. 특히 크리스털로 장식된 족두리는 조선시대 여성의 당의와 잘 어우러져 전통복식의 장식적인 미를 한층 살려주고 있습니다. 갤러리 차이를 운영하는 디자이너 김영진은 한산모시에 크리스털을 수놓아 꿈속에서 본 듯한 아련한 느낌을 표현했습니다. 그녀는 원래 루이비통의 바이어로 활동했던 이력을 갖고 있죠.

갤러리 차이 김영진의 한복작품
▲ 한복,스와로브스키를 만나다 갤러리 차이 김영진의 한복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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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복식에 대한 이해도 깊고요. 그래서인지 전통복식의 틀에 매이기보다는 믹스 앤 매치(섞어 입기)와 레이어드(겹쳐 입기) 등 다양한 방식을 흡수해 한복을 우리 시대의 오트쿠튀르로 변모시켰습니다. 이탈리아산 레이스와 프랑스풍의 망사, 실크 대신 면과 린넨을 써서 한복을 만들기도 했죠. 이번엔 최상급 상주 명주와 면 소재가 섞인 크림빛깔 저고리에 크리스털로 꽃 문양을 더하고 우윳빛 모보단 치마를 매치, 과거 개성지방 신부 차림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한 진주 댕기를 소품으로 활용한 차림을 선보였는데요. 크리스털의 빛은 마치 바다의 표면위로 햇살을 반사해내는 윤슬처럼 현란하게 우리의 눈을 어지럽힙니다

소통을 위한 옷의 변주-크리스털 위에 피어나는 한 스타일 

어느 시대나 문화적 흡수이국적 풍물은 새로운 트랜드와 유행을 창조해왔습니다. 르네상스 시절 아랍사람들의 패션이 유럽으로 흘러 형형색색의 천 조각으로 조립된 미파르티(Miparti)란 옷을 낳았듯, 우리의 한복도 마냥 독자적으로 진화된 산물은 아닙니다. 색과 실루엣에 있어 끊임없는 외부와의 소통과 대화를 통해 변모의 변모를 거듭했지요.

스와로브스키와 우리 한복의 만남은 단순히 옷의 재료를 가감하는 차원에서 해석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넉넉하게 생을 품는' 이 땅의 옷의 정신이 빛을 머금은 크리스털로 인해 더욱 우리 내 삶 속에 아름답게 포섭될 수 있음을 가능케 한 전시가 아닐까 싶네요. 올 겨울 한복 한 벌 지어 입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스와로브스키, #한복, #한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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