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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가 찾아왔다. TV 마니아로서, 그리고 예능프로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2010년 한해 동안 방송됐던 수많은 예능프로들을 되돌아보고 그 중 최고의 단 한 프로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올 한 해 나에게 최고의 예능은 무엇이었나?"라고 스스로에게 물어왔었다. 그리고 그 대답은 언제나 같았다. 나는 <무한도전>을 최고의 예능으로 꼽아왔었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내 마음 속에서 <무한도전>을 간발의 차이로 누르고 2010년 최고의 예능이 된 방송은, 바로 <해피선데이 - 1박2일>(이하 <1박2일>)이었다.

 

다사다난(多事多難). 올 한 해 <1박2일>을 압축하는 사자성어로 이보다 적합한 말이 또 있을까.

 

2010년을 돌아보면 <1박2일>은 위기의 연속이었다. 연초에는 오린 시간 공들여 기획했던 남극행 프로젝트가 칠레 대지진으로 무산됐다. 그리고 김C가 음악활동을 이유로 자진 하차했다. 병역의 의무를 마친 김종민이 복귀해 숫자상으로는 여전히 6인 체제가 유지됐지만 김종민은 주변의 기대와는 달리 제 역할을 해주지 못했다.

 

설상가상 MC몽이 병역기피의혹에 휩싸였다. 대한민국 연예계에서 마약, 도박, 폭력보다 더 무서운 병역기피의혹. 누리꾼들은 연일 MC몽을 강도 높게 비판했고, 결국 그는 <1박2일>에서 하차했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렀다.

 

김C 하차... <1박2일> 위기의 시작

 

대한민국 예능에는 수많은 캐릭터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김C는 특별했다. 그는 말수가 적고, 리액션이 크지 않다. 방송분량에 대한 욕심도 없다. 예능인으로서 치명적인 결함을 갖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그는 <1박2일>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외모와 내면에서 뿜어지는 그 자유분방함이, 무전여행이 딱 어울릴 것 같은 그의 캐릭터가 <1박2일>을 '리얼 야생 버라이어티'로 만드는 데 일조했기 때문이다.

 

리액션이 크지 않다는 점은 오히려 그의 진솔한 캐릭터를 부각시켰다. 억지로 과장되게 행동하고 말하지 않기에 시청자들은 반대로 그의 언행에 진심이 담겨있다고 믿게 됐다. 독하고 센 사람만이 살아남는 요즘의 예능계에선 실로 보기 어려운 캐릭터인 것이다. 그런 김C였기에 그의 하차는 조금 과장되게 말해 <1박2일>의 진정성을 손상시키는 결과를 낳게 됐다. 강호동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그 진정성 말이다.

 

시기적절하게 김종민이 투입됐지만 그는 주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2년의 공백이 준 타격은 생각보다 셌다. 김종민은 바뀐 상황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가 바지를 추켜 올리고 적당히 골반을 흔들어대면 모두가 자지러지던 2007년의 <1박2일>은 사라지고 없었다. 지상렬에게 구박받고 이승기에게 동정 받던 이수근은 최고의 입담꾼이 됐고, MC몽은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으며, 막내 이승기의 예능감도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상태였다.

 

그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김C가 빠졌지만 그의 영역은 김종민이 손댈 수 없는 부분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복불복 게임에 있어서도 그는 아무런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오히려 자신이 속한 팀에 피해만 끼쳤다. 그는 어느새 민폐형 캐릭터가 됐고, 보다 못한 시청자들은 자진 하차를 주문하기까지 했다.

 

대미의 장식은 MC몽의 몫이었다. "버라이어티 정신!"을 시도 때도 없이 외치며 <1박2일>을 야생으로 이끌었던 MC몽의 빈자리는 너무나 컸다. 까나리를 벌컥벌컥 들이켜고 맏형 강호동에게 겁 없이 덤벼들던 '야생 원숭이'는 그 특유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캐릭터로 <1박2일>에서 언제나 '의외의 재미'를 만들어내던 존재였다. 제작진의 예상 범주를 언제나 뛰어넘는 그의 돌발행동은 <1박2일>을 더욱 리얼하게 만들었다.

 

위기의 <1박2일>... 해법은 나영석 PD였다

 

방송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MC몽까지 하차한 이후 결국 <1박2일>은 4인 체제와 다름없는 5인 체제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김C와 MC몽의 영향력을 생각하지 않고 단순히 물리적인 계산만 해보더라도 70분 이상 방송되는 현행의 <1박2일>에서 5인 체제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답은 금방 도출된다.

 

입이 두 개가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남은 5명이 그 두 명분만큼 더 많이 입을 열어야 한다. 자신의 방송분량을 위해 입을 여는 상황이 아니라 70분 방송의 분량을 뽑아내기 위해 억지로라도 입을 열어야 되는 상황. 멤버들이 받는 심리적 압박감과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방송에서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 <1박2일>은 그동안 쌓아놨던 안정감을 잃는 동시에 반대로 시청자에게 부담을 주게 된다.

 

당장 새로운 피를 수혈해야 하지만 그 또한 여의치 않다. <1박2일>은 이미 3년 넘게 장수하고 있는 최고의 인기 예능프로. 새 멤버가 누가 될 것이냐에 대해 연일 언론에서 떠들고 누리꾼들은 갑론을박하며 귀추를 주목한다. 잘해야 본전이고 못하면 상상을 초월한 비난을 받아야 하는 상황. 쉽게 말해 죽을 자리인 것이다. 그런 곳에 선뜻 발을 내딛을 간 큰 연예인은 많지 않다. 섭외는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다.

 

위기라는 말조차 빤하게 들릴 정도로 프로그램이 휘청거리던 상황에서 <1박2일>을 지휘하는 나영석 PD가 내린 해법은 자신을 비롯한 모든 스태프와 주변 인물들을 카메라 안으로 밀어 넣는 것이었다. 나영석 PD를 비롯한 <1박2일> 스태프들은 이전에도 이따금 자연스레 방송에 등장해 웃음을 주고 방송의 리얼리티를 살렸었다. 그러나 5인 체제가 되고 난 뒤, 그들은 더욱 적극적으로 6번째 멤버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복불복 게임의 주재자였던 나영석 PD는 이제 더 이상 카메라 밖에서 "땡!"만을 외치지 않는다. 그는 과감히 카메라 안으로 들어와 멤버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기상 악화로 무산된 울릉도 편에서 그는 모든 스태프들의 아침식사 비용을 걸고 강호동, 강찬희 카메라 감독과 가위바위보 게임을 했다. 게임에서 진 그가 세상 가장 슬픈 표정으로 80여 명 스태프들의 밥값을 지불하는 장면에서 언제나 멤버들을 쥐락펴락하던 PD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고, 그것은 <1박2일>의 새로운 웃음소재가 됐다.

 

스태프 없이 멤버들끼리만 강원도 인제로 떠난 지난 여행에서 단연 화제는 이승기의 나영석 PD 성대모사였다. 이승기는 3년 넘게 복불복 게임으로 멤버들을 괴롭혔던 나영석 PD의 주옥같은 명대사들을 똑같이 따라했고, 그것은 멤버들이 그 이야기를 끊임없이 반복할 만큼 큰 재미를 줬다. "땡!" "안 됩니다!" "실패!"와 같이 부정적인 말에 '흥'을 담아 이야기하는 나영석 PD는 이제 한 발 더 나아가 PD로서는 드물게 캐릭터까지 구축하게 됐다.

 

위기 속에서 강호동의 섭외력은 빛을 발했다

 

나영석 PD만이 아니다. <1박2일>은 눈을 바깥으로 돌려 방송에 관여하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을 카메라 안으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였다. 전남 장흥 편에서는 멤버들이 복불복 게임을 위해 이동할 차량을 모두 스태프들의 것으로 대신했다. 이승기는 인연이 많은 밥차 내외와 함께 했고, 강호동은 조명감독과 이동했다.

 

6대 광역시 특집에서 이승기와 함께 움직였던 운전기사는 장흥에서 이승기를 제주도까지 태워줬던 사람이었고, 제작진은 친절하게 자막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부산에 간 이승기가 이대호를 만나게 된 것은 이대호의 팬이었던 운전기사의 제안 덕분이었다. 결국 그 운전기사가 없었더라면 이승기는 이대호를 만날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제는 차량 운전기사까지 <1박2일> 안으로 들어와 함께 한다.

 

이처럼 나영석 PD를 비롯한 스태프들이 합심하여 방송에 참여해 김C와 MC몽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을 때, 멤버들이라고 가만히 있지 않았다. 기상악화로 울릉도 여행이 취소됐을 때 강호동은 천하장사 이만기를 즉석에서 섭외했고, 그렇게 <1박2일>은 2009년 박찬호에 이어 두 번째 명사특집을 만들 수 있었다.

 

6대 광역시 특집에서도 강호동의 섭외력은 빛을 발했다. 대구에 도착한 그는 야구계의 전설인 양준혁을 섭외해 서울에 있던 그를 대구로 불러들였다. 방송분량을 조금이라도 더 뽑기 위해 양준혁의 집까지 찾아간 그는 내친 김에 양준혁을 <1박2일>에 완전히 동참시킨다. 그 결과 <1박2일> 멤버들은 오랜만에 잠자리 복불복 게임에서 3:3으로 팀 대결을 펼칠 수 있었고, 양준혁의 가세로 게임은 그 어느 때보다 흥미진진했다.

 

맏형 강호동의 노력은 눈물겨웠다. 그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방송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 싶으면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 장흥에서 천관산을 오를 때는 목적지까지 동승한 조명감독을 어르고 달래 같이 등반했다. 결국 조명감독은 그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도망쳤고, 그 짧은 순간에 조명감독에겐 작은 캐릭터가 생겼다. 이렇게 시청자의 눈에 익은 스태프는 모두 <1박2일>의 큰 자산이 됐다.

 

김종민의 변화는 <1박2일>을 위기에서 구해내는 데 일조했다

 

다른 멤버들이라고 손 놓고 있지 않았다. 은초딩 은지원은  천관산의 정상에서 자신의 깃발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이 차지해야 할 깃발까지 모두 들고 내려온다. 제작진이 짜놓은 시나리오에는 없는 일이었고, 이후 사건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 의외의 방송분량과 폭소를 만들어냈다. 부산에 간 이승기는 이대호와 일면식도 없었지만 직접 롯데 자이언츠 구단에 연락해 그를 만나는 데 성공한다.

 

무엇보다 김종민이 옛 모습을 찾기 시작했다.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던 그를 멤버들은 놀리며 웃음의 소재로 활용했고, 이런 굴욕스런 모습이 방송에 나갈수록 그의 '말 없는' 캐릭터는 자리를 잡아갔다. 과거 <무한도전>에서 정형돈이 웃기지 않는 것을 캐릭터로 잡아갔듯이 김종민 역시 단점을 캐릭터로 삼아 역으로 웃음을 만들어낸 것이다. 김종민의 발전은 구멍 난 5인 체제를 멋지게 보완했다.

 

물론 현재의 5인 체제가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다. 멤버들의 부담은 여전하고, 그것은 나영석 PD를 비롯한 스태프들이 총동원된다고 하더라도 완벽히 덜어낼 수 없는 짐이다. 여전히 <1박2일>에는 새로운 피의 수혈이 시급하다.

 

그러나 당장 새 멤버를 투입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 만큼 <1박2일>은 위태롭지 않다. 지난 9월 말 MC몽이 하차한 직후 위기론이 대두되면서 숱한 우려가 터져 나왔던 때와 비교하면 현재의 <1박2일>은 허겁지겁 새 멤버를 찾지 않아도 될 만큼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그리고 <1박2일>이 그렇게 된 데에는 스태프와 연기자를 비롯한 방송에 관여한 관계자 모두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크게 작용했다.

 

'리얼'을 담당하던 '엄마' 김C가 빠지고, '야생'을 담당하던 '야생 원숭이' MC몽이 빠진 위기 속에서도 <1박2일>은 '리얼 야생 버라이어티'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최고의 예능은 프로그램은 언제나 고민하는 PD와 작가, 스태프, 그리고 프로그램을 사랑하는 연기자들이 서로 만나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때 만들어진다. 그리고 <1박2일>은 5명의 연기자와 80명의 스태프가 똘똘 뭉쳐 훌륭하게 위기를 극복했다.

 

유재석과 김태호 PD에겐 살짝 미안하지만, 바로 이게 내가 <1박2일>을 2010년 최고의 예능으로 꼽길 주저하지 않은 이유다.


태그:#1박2일, #나영석, #강호동, #MC몽, #김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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