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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충남도의회에서 '참여와 소통위원회' 조례의 부결을 놓고 논란이 뜨겁다. 민주당 소속 도의원들은 선진당 의원들이 정략적으로 안희정 충남지사의 핵심공약과 도정운영 방향에 이유 없이 찬물을 끼얹었다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번 도민정상회의에 이어 안 지사의 직접민주주의 확대를 위한 노력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충남 최초로 주민발의 조례를 청구한 단체의 성원으로서 이번 논쟁을 보는 마음은 씁쓸하다. 양측 모두 직접민주주의 실현은 안중에도 없는 듯 보이며, 이를 핑계로 한 정략적 싸움만이 존재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충남 최초의 주민발의 조례안 제정... 하지만

 

소개하자면 지난 10월 충남도의회 역사상 처음으로 주민들이 발의한 조례안이 제정됐다. '충청남도 벼 재배농가 경영안정 직불금 지원 조례안(이하 쌀직불금조례)'이 그것이다. 쌀직불금조례는 벼 재배농가의 생산비 보전을 위해 지난 6월 전국농민회 충남도연맹이 충남도민들의 주민발의 제정을 위한 청구인 서명을 받아 발의한 조례안이다. 당시 충남도연맹은 주민발의 조례제정 청구 가능 인원인 1만5610명(19세 이상 주민의 1/100)의 두 배가 넘는 3만 2773명의 서명을 받았다.

 

법과 조례에 의해 주민참여형 직접민주주의는 세 가지 형태로 보장하고 있다. 주민투표, 주민소환, 주민조례청구가 그것이다. 주민투표와 주민소환이 일상적으로 이뤄지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중 주민조례청구가 가장 대표적인 주민참여 방법으로 꼽히고 있다.

 

주민조례청구는 이미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는 만큼, 주민들의 필요에 의해 청구되고 만들어진다. 그런 점에서 지방정부의 주도하에 이뤄지는 소통과 참여의 공간보다 더 적극적인 주민참여의 형태다. 아무리 주민참여를 위한 위원회가 만들어지더라도 지방정부의 주도 하에 이뤄지는 것이기에 온전히 주민들의 뜻이 반영되기에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도민정상회의가 참석한 인사들이 토론을 통해 제시된 100대 과제 중 우선순위를 정하는 수준이었다면 주민조례청구는 내용 자체가 주민에 의해 만들고 청구인 명부를 통해 도민들의 보다 적극적인 지지와 공감대 형성 과정을 거치게 된다.

 

충남도의회 사상 첫 주민발의로 제정된 쌀직불금 조례 또한 이같은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이 조례는 경영의 어려움에 처해 있는 벼 재배농가들을 위해 지자체가 가능한 예산범위 안에서 일정 정도 쌀값을 보존해주는 것을 핵심내용으로 하고 있다. 때 맞추어 30년 만의 최대 흉년, 20년 전 쌀값으로 고통에 처한 농민들이 조례에 근거해 쌀값보전을 요청했지만 충남도는 이를 외면하고 있다. 때문에 충남농민들이 경영안정 직불금을 시행해줄 것을 요구하며 충남도청 앞에 나락을 적재하고 석 달째 100번 절하는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다.

 

안희정 지사는 도의회가 '참여와 소통조례' 부결을 탓하기에 앞서 선거기간 스스로 약속했던 벼 재배농가 경영안정 직불금 제도를 시행해야 한다. 그러할 때만이 주민들이 안 지사의 참여와 소통을 중시하는 도정방향의 진정성을 믿고 직접민주주의를 확장을 위해 나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주민발의 조례에 의해 마련된 쌀 직불금마저 시행의지를 보이지 않으면서 추진하는 모든 참여와 소통은 주민을 들러리 세우기 위한 것이라는 의심을 갖게 하기 충분하다.

 

도민을 대상화한 충남도의 '농수산정책협의회'

 

이같은 우려는 지난 13일 충남도에서 열렸던 '농수산정책협의회'에서 드러났다. 이 협의회는 안 지사가 참여와 소통위원회를 만들면서 기존에 있던 각종 농수산관련 위원회를 실질적으로 운영하겠다는 뜻에서 소집됐다.

 

하지만 내용과 방식을 보면 여전히 일방적이다. 농수산정책협의회 참여위원을 충남도가 일방적으로 선임해 통보했다. 회의안건과 발제도 충남도가 협의 없이 준비했다. 게다가 회의자료에는 농민단체가 도청 앞에 적재한 '나락 회수'와 '100배 행사 중단'까지 요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뿐만 아니다. 농수산정책협의회 개최를 알려온 때는 지난 2일이다. 그것도 전농충남도연맹이 쌀직불금제도의 '즉각 시행'을 요구하며 벌인 충남도청 앞 나락 적재에 대한 충남도 농림수산국장의 비난 기자회견장에서다. 농민단체가 대화에 나서지 않고 항의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농수산정책협의회를 통해 논의하겠으니 그 자리에서 얘기하자는 것이다.

 

안 지사 또한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주민발의 조례의 내용을 '평가절하'하였고, 주민발의 조례의 취지를 도정에 반영해 줄 것을 요구하는 농민단체의 활동을 농림수산국장을 앞세워 맹렬히 비난했다. 와중에 박진도 충남발전연구원장은 안 지사가 주민발의조례에 대해 거부권까지 행사하려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협의회는 농민들의 생존의 울부짖음을 몰지각한 것으로 폄훼하고 농민들의 투쟁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내세운 것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다.

 

문제의 핵심이 직접민주주의 실현이라면, 도민들이 이를 위해 무엇을 바라는지를 명확히 바라봐야 한다. 이명박 정부도 항상 '대화'를 강조하지만 결국에는 '자기식 대화' 방식으로 국민들을 대상화했고 결국 '민주주의 후퇴'라는 처절한 현실을 목도하고 있다.

 

왜 안희정 지사는 주민발의 조례를 평가절하하나

 

충남도는 아직까지 쌀직불금제도의 시행을 위한 시행규칙조차 마련하고 있고 있다. 또 조례가 담고 있는 '벼 재배농가의 소득안정을 위한 직접지불금 형태의 지원'이 아닌 다른 간접적인 방식으로 축소해 추진하려고 있다. 게다가 이를 언론을 통해 공공연히 밝히는 방식으로 관철시키려고 하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농민들의 심경은 당연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일부 충남도의원들의 '도민정상회의'와 '참여와 소통위원회' 조례를 "의회의 기능과 권위를 무시한 처사"이자 "의회의 권한에 대한 도전"이라는 논리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다.

 

'도민 정상회의'를 제도화하고 '참여와 소통위원회'를 통해 도민들과 진정으로 소통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2만여 명의 서명을 받아 만들어진 쌀직불금 조례의 시행을 위해 먼저 나서 달라는 얘기다.

 

주민발의에 의해 만들어진 조례에 대한 시행의지마저 보이지 않는다면 이후 안 지사가 추진하려는 모든 참여와 소통은 도민을 대상화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자 한다.


태그:#농민, #쌀직불금, #안희정, #전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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