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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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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부터 단순 촌로까지 한국에서 6·25전쟁의 피해자가 아닌 사람이 없다. 그런 판에 연평도 포격사건을 전쟁의 교훈으로 삼기는커녕 왜 항공기로 폭격하지 않느냐고 따지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전쟁을 못해 안달이 난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대통령 자신도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자인데, 마치 한풀이하듯 그렇게 할 일이 아니다."

안병욱(62) 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위원장(가톨릭대 교수)은 분명하고도 단호하게 전쟁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과거사를 조사하고 진실규명을 하는 것은 잘못된 과거사를 현대에 반복하지 말자는 취지에서 하는 활동인데 또다시 유사한 전쟁이 반복되도록 할 수 없는 일 아니냐는 성토도 이어졌다.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찻집에서 만난 안 전 위원장은 민주정부 10년간 이어진 과거사 청산활동에 대한 성과와 한계를 전했다. 무엇보다 그는 민주정부 10년간 일정한 성과를 냈던 과거청산 활동이 이명박 정부 임기와 겹치면서 제대로 마무리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막판까지 진정인 요구 외면하는 이영조 위원장

위원회 임기가 종료되는 올 연말, 막판까지 진정인들의 요구를 외면하는 이영조 위원장 체제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한국전쟁 당시 발생한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들 가운데 미군이 저지른 민간인 학살 관련 사건들이 대부분 진실규명 불가 판정을 받는 것은 참으로 우려스러운 일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수많은 피난민들이 무차별적인 미군의 공중포격으로 사살됐다"며 "이런 전투상황보고들이 미국 기록에 다 나오는데도 현 위원장(이영조) 체제에서는 이 문제를 진실규명 불능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한국전쟁 때 미국인이 참전해서 이뤄진 전투들, 주로 낙동강 전선에서 이뤄진 함포사격 기총소사 네이팜탄 투하 등에 대해 양민학살을 자행했던 미군에 대해 아무 소리도 못 하는 게 과연 주권국가로서 자기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개탄했다.

그는 "20세기에 벌어진 잘못된 역사의 앙금이나 잔재를 정리하면 21세기엔 우리 사회가 좀 더 밝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며 "가해자들도 조금이나마 양심적 성찰을 해야 하는데 과거에 획득한 기득권이 손상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라고 씁쓸하게 웃었다.

다음은 안병욱 전 위원장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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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말 진실화해위원회가 문을 닫게 된다. DJ 정부 시절 의문사 진상규명부터 참여정부 진실화해위에 이르기까지 민주정부 10년간 과거사 청산에 주력해왔는데 심경이 어떤가. "2000년부터 10년간 과거사 청산작업을 해왔다. 20세기에 벌어진 잘못된 역사의 앙금이나 잔재를 정리하면 21세기엔 우리 사회가 좀 더 밝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가해자들도 조금이나마 양심적 성찰을 해야 하는데 성찰은커녕 과거에 획득한 기득권이 손상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분위기였다. 유족들도 상처가 치유됐다기보다는 상처 위에 상처를 덧내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 10년간의 과거청산 활동을 통해 얻은 성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지난 세기 한국 사회에서 벌어졌던 사건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는 게 가장 큰 성과였다. 구체적 사실을 확인하니 훨씬 더 참혹하고 참담했다. 막연히 민간인이 희생됐다고 생각했던 6·25전쟁도 숨겨져 있던 구체적 실상이 드러나니 더 끔찍했다. 지금까지 조사한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지만. 진실화해위원회에서 조사한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은 8000건 수준이다. 100만 희생자의 일부에 해당한다. 1/20 수준이다. 아직도 절대다수는 6·25전쟁 당시 발생했던 억울한 희생을 공개적으로 얘기 못하는 억압이나 공포가 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 한국사전 공 학자로서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 조사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
"대체 전쟁은 무엇인가? 왜 몇십만 명의 민간인이 아무런 자기 책임도 없는 상태에서 하루아침에 학살돼야 했나. 당시 상황에 대한 인류 문명적 접근이 필요했는데, 진실화해위원회가 그 역할을 거의 하지 못했다는 점이 매우 아쉽다."

- 한국전쟁 당시 발생한 민간인집단희생 중 미군폭격에 의한 것이 많다는 얘기가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무차별적인 미군의 공중포격으로 사살됐다. 미군 조종사 얼굴이 보이는 높이에서 비행기가 뜨니까 피난민들은 손을 흔들었다. 그런 피난민들을 향해 미군은 집단학살을 자행했다. 매우 끔찍하고 처참한 일이다. 이런 전투상황보고들이 미국 기록에 다 나온다. 그런데도 현 위원장(이영조) 체제에서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매우 보수적으로 임하고 있다. 미군의 포격사건들에 대해 진실규명 불능 결정을 내리고 있다.

한국전쟁 때 미국인이 참전해서 이뤄진 전투들, 주로 낙동강 전선에서 이뤄진 함포사격 기총소사 네이팜탄 투하 등에 대해 양민학살을 자행했던 미군에 대해 아무 소리도 못하고 있다. 과연 주권국가로서 자기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 남동생과 누이도 미군 기총소사로 숨졌다"

- 이명박 대통령 자서전을 보면 남동생과 누이도 미군 폭격으로 사망했다는 내용이 있다.
"한국전쟁 당시 이 대통령 가족도 포항 시내를 벗어나 흥해 덕실리로 피난을 갔는데 그때 막내 남동생과 손위 누이가 미군이 쏜 포 사격으로 사살됐다. 누이가 막내 남동생을 업고 마당에 서 있었는데 미군 기총소사로 죽었다. 동생은 현장에서 즉사했고 누나는 며칠 있다 사망했다.

대통령부터 단순 촌로까지 한국에서 6·25전쟁의 피해자가 아닌 사람이 없다. 그런 판에 연평도 포격사건을 전쟁의 교훈으로 삼기는커녕 '왜 항공기로 폭격하지 않느냐, 대북 응징하겠다, 확전 지시를 하지 않았던 게 문제다' 이런 식으로 마치 전쟁을 못해 안달이 난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대통령 자신도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자인데, 연평도 피해에 대해 보복하라, 응징하라, 마치 한풀이하듯 그렇게 할 일이 아니다."

- 노무현 정부 당시에는 국정원과 경찰청, 국방부 같은 권력기관들이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털어놓는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가동됐다. 어떤 성과와 한계가 있었다고 평가하나.
"인권침해에 책임 있는 국정원, 경찰청, 국방부가 자체적으로 과거에 자신들이 잘못한 일과 의혹에 대해 스스로 조사하고 그 진상을 밝혔다는 점은 세계적으로 유일한 일이다. 다시는 이와 유사한 일로 권력의 앞잡이가 되지 않겠다는, 국민의 인권을 침탈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반성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평가한다.

물론 세 권력기관에서 저질렀던 잘못을 100% 다 밝혀내진 못했지만 과거 잘못됐던 사건들에 대해 알려진 것 이상으로 내부 기록이나 관련 증언자들의 증언을 통해 조사한 것은 앞으로도 쉽게 일어나기 힘든 일이다."

-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처음 시작한 일이 과거사 청산작업 정리다.
"맞다. 2008년 인수위의 첫 번째 작업이 과거사위원회 통폐합이었다. 여러 위원회를 통합해서 인력을 축소하고 경비를 줄이겠다는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과거사위원회를 완전히 무력화시켰다. 실제 친일진상규명위, 한국전쟁민간인학살피해, 공안기관의 인권침해, 특수임무자 북파공작원, 제주 4.3, 광주 5.18 등 모든 위원회를 한 곳에 집어넣는다는 것은 한 가지도 제대로 일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과 같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그 어떤 종류의 과거사 정리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오히려 지난 정부를 비판하고 매도하는데 과거사위원회를 왜곡시켜 활용한 측면이 있다."

- 과거사 청산활동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어떤 것인가.
"일제로부터 해방되고 5년 있다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이 전쟁 때문에, 시골 구석구석에서 평생토록 농사만 짓던 순박한 사람들도 참화에 휩쓸려 몰살당했다. 전국 산천 그 어디도 예외 없이 다 일어났다.

1950년~1952년 사이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통에 친인척끼리 죽이고 죽었다. 마을 사람들끼리 죽이고 죽었다. 왜 그랬어야 했는지조차 모른 채 이유 없이 죽고 죽였다. 중세 페스트 때문에 온 마을이 초토화됐던 것처럼 전쟁의 참화는 인간의 이성을 통제하지 못했다.

70~80년대는 군사독재정권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거의 주기적으로 대규모 간첩단 사건을 조작해 발표했다. 오늘날 조사해보니 군사정권은 순진하기 짝이 없는 어부 같은 사람들에게 공안의 덫에 씌워 간첩 혐의로 무기징역 10년 이상씩 살게 했다. 반공체제 확립을 위해 일반인이 희생됐다는 점에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위원장으로서 평정심을 가져야 하는데도 이런 보고서를 읽을 때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누를 수 없었다."

청산되지 못한 과거사 가운데 가장 큰 미스터리는?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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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현대사 사건들 가운데 가장 미스터리라고 생각하는 사건이 있다면. "장준하 선생 사건과 84년 허원근 일병 사건이다. 장준하 선생 약사봉 추락사건은 75년 8월에 발생했는데 지금도 현장의 목격자가 살아 있다. 김용환씨는 장준하 선생이 바위에서 추락해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대로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은 살해됐다고 주장한다. 유일한 목격자 김용환씨의 말을 믿게 되면 실족에 의한 추락이고, 그 사람의 주장이 거짓말이라면 당시 권력이 개입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아무래 조사를 해도 사실 확인이 안 된다. 의문이 풀리지 않기 때문에 영원히 미궁에 빠질 사건이 아닌가 싶다.

허원근 일병 사건은 한국사회의 내면적 비극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생각한다. 허원근 사건 당시 현장 목격자는 10여 명 정도 된다. 현장 목격자 10명을 조사해도 이 사건에 대한 명확한 결론이 안 났다. 군대라는 폐쇄된 조직에서는 명령 하나로 사건을 완전히 조작해낼 수 있다. 또 한 번 거짓말을 시작하면 앞뒤가 맞지 않더라도 끝까지 자기 거짓증언을 반복하고 또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러는 사이에도 누군가 진실을 털어놓으면 지금까지의 거짓말이 와르르 무너지게 되는 데, 이 사건은 그렇지 못했다. 이유는 <조선일보> 때문이다. 몇 차례 조사 끝에 목격자 한 명이 진실을 털어놓았지만, <조선일보>는 그를 의문사위원회가 돈으로 매수해 허위진술을 받아냈다고 왜곡보도 했다. 결국 사건을 원점으로 돌려놓았다.

가장 가슴 아픈 일은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 복무 했던 사람들이 참혹한 현실을 겪고, 제대 후에도 거짓증언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벌써 26년간 가슴 속에 그것을 담고 사니 얼마나 괴롭겠나. 그들조차 거짓이 판치는 우리 사회의 희생자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 민주정부 10년간 과거사 청산에 힘썼지만 결과적으로는 진실화해위원회가 중간에 문을 닫는 격이 됐다.
"수술하려고 환부를 열었는데 상처치료를 하다가 도로 그 상처를 헤집고 마는 꼴이 됐다. 희생자 입장에서는 상처만 들쑤셔버린 셈이 됐다. 심지어 (이영조) 현 진실화해위원장은 제주 4.3은 공산당의 폭동이라고 했고, 5.18은 반란이라고 발표집에서 밝혔다. 과거 희생자들의 분노를 또다시 촉발시키는 게 아니고 무엇인가."

- 새로운 방법의 과거사 청산이 필요할 것 같다.
"독일은 과거사 청산을 하다 끝내 해결 안 된 몫은 '기억·책임·미래재단'을 설립해 해결했다. 우리도 피해자들의 희생에 대해 좀 더 조사할 일들이 남아 있는데 이런 것들을 과거사 재단을 통해 해낼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민주정부 시절처럼 기구별 위원회를 또 만들 필요는 없을 것 같다."

- 과거청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고백과 용서, 화해라고들 한다. 진실고백까지는 어떻게든 끌어낸다고 해도 용서와 화해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과거청산의 궁극은 화해로 나가는 것이다. 화해를 하려면 잘못을 저지른 가해자 측에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야 한다. 그래야 용서도 이뤄지고 화해도 된다. 가해자가 먼저 반성을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는 거꾸로 피해자들은 용서해줄 자세를 갖고 있지만 가해자들은 끝내 잘못을 반성하지도 않고 여전히 피해자들을 색깔론으로 공격한다.

이렇게 되면, 국가라도 나서서 잘못돼 있는 우리 사회 갈등구조를 정리해야 바른 정치가 된다. 그런데 우리 정치인들은 사회적으로 갈등구조를 꾸준히 만든다. 그래야 집권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하던 과정을 생각해보자. 천안함, 연평도를 생각해보자. 모두 대결과 갈등, 적개심이 기반이다. 이것들을 충분히 활용해야 지지기반이 결집한다고 믿는다. 이것은 결국 망국으로 가는 정치다."

MB정권 뒷날 꼭 밝혀져야 할 과거사들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
 '진실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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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의 필요에 의해 MB정권 시절 벌어졌던 사건들에 대한 과거사 정리를 하게 된다면 어떤 사건들이 진실규명 대상이 될 것이라고 보나.
"자기 과거 재산과 관련 MB는 역대 어느 대통령들 보다 큰 의혹을 받았다. 이 사안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지도자 윤리 측면에서도 반드시 정리해야 할 과거사다. BBK 의혹은 검찰이나 사법부가 권력의 들러리를 섰다는 측면에서도 뒷날 꼭 진실규명 돼야 할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정부의 대응과 발표는 국민적 의혹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또한 총리실이나 청와대와 관련 민간인 불법 사찰,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에 대한 뒷조사, 최열 환경재단 대표의 공금유용 재판사건, 박원순 변호사를 국정원이 소송한 사건과 전방위적이고 치밀하게 촛불세력을 탄압해온 점들이 정리돼야 할 과거사로 기록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과거 권위주의 독재정권이 사라지는 과정 속에서 잠시 등장하는 '재판 권위주의 정권'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아예 없었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결코 길 수 없는, 길지 않은 퇴행적 시기로 기록될 것이다. 현 정권과 한나라당이 기를 쓰더라도 결코 이같은 통치행태로는 자신들의 지지기반을 튼튼하게 구축해가기는 어렵다. 아무리 추워도 봄날이 꼭 오는 것처럼 변화의 시기는 올 것이다. 시민사회나 진보진영은 이를 대비하면 된다."


태그:#안병욱, #진실화해위원회, #이명박, #한국전쟁, #미군 포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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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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