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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를 앞두고 요즘 해가 무척 짧다. 퇴근하여 바삐 차를 몰고 집에 도착하면 해는 벌써 서쪽하늘을 붉게 물들인다. 그러다 잠깐, 순식간에 사방이 어둑어둑해진다.

집안에 인기척이 있다. '이사람, 나보다 먼저 퇴근을 다했네!' 지역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책임을 맡아 일하고 있는 아내는 요 며칠 행사가 있다며 퇴근시간이 늦었다. 오늘은 웬일이지!

며칠 손이 안간 구석구석을 아내가 말끔히 치운 것 같다. 집안이 깨끗하니 기분이 좋다. 주방에선 구수한 냄새가 코를 진동한다. 김장하고 남은 배추 몇 포기를 신문지로 둘둘 말아 보관해두었는데, 한 포기를 꺼내 겉잎을 따서 시래기된장국을 끓인 모양이다. 노란 속잎은 쌈으로 내왔다. 그리고 생선도 구웠다.

소박한 밥상에 시장기가 돈다. 혼자 저녁을 때울 때와는 집안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모처럼만에 사람 사는 집 같다.

겨울에 먹어야 제 맛인 따끈한 모과차

한겨울에 먹어야 제맛인 모과차. 목감기에 좋다고 알려졌다.
 한겨울에 먹어야 제맛인 모과차. 목감기에 좋다고 알려졌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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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상을 물리고 아내가 분위기를 띄운다.

"여보, 우리 차 한 잔 할까요?"
"좋지! 무슨 차가 좋을까?"
"모처럼만에 뜨끈한 모과차 어때요?"
"모과차? 이사람, 모과청 담근 지 며칠 되었다고 모과차야!"
"작년에 담근 게 좀 남았잖아요."

그러고 보니 작년에 담가놓은 모과청이 아직 남은 모양이다. 야금야금 따라 먹고도 꽤 남았다. 찬바람이 부는 겨울, 몸이 으슬으슬할 때는 뜨끈한 모과차 한 잔은 피로를 풀어주기에 안성맞춤이다. 모과차는 겨울에 먹어야 제 맛이다.

환절기 때만 되면 아내는 감기를 달고 다닌다. 며칠 과로 때문에 감기기운이 있던 터라 든든한 저녁과 함께 뜨끈한 모과차 한 잔이 생각이 나 일찍 퇴근한 것 같다.

아내가 모과청을 꺼내왔다. 뚜껑을 열자 꿀처럼 진하게 우러나온 모과청에서 향긋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우리가 가꾼 모과나무에서 거둬 손수 담가놓은 것이라 소중하게 여겨진다.

아내가 팔팔 끓인 물에 모과청을 넣고 잣 몇 알을 띄우니 빛깔도 좋은 차가 완성된다. 모과 특유의 향과 함께 시고 떨떠름한 맛이 괜찮다. 따끈하게 목을 적시는 느낌이 참 좋다.

못생겨도 특유의 향과 효능은 으뜸인 모과

울퉁불퉁 못생긴 모과열매지만 향이 좋고, 모과청을 내어 차로 마시면 여러 가지 효능이 있다.
 울퉁불퉁 못생긴 모과열매지만 향이 좋고, 모과청을 내어 차로 마시면 여러 가지 효능이 있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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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못생긴 과일하면 흔히 모과를 떠올린다. 모과는 열매 속이 퍽퍽하여 사과의 부드러움이나 배의 시원함에 못 미친다. 그래 '과일전 망신은 모과가 시킨다'는 말이 있는가 싶다.

노랗게 잘 익은 모과는 아주 단단하다. 아무리 손아귀 힘이 센 사람일지라도 모과를 쪼개거나 한입에 베어 물 수가 없다. 이른바 단단함만 따진다면 다른 과일이 넘볼 수가 없다. 바로 그 단단하고 울퉁불퉁하게 생긴 것 때문에 못생겼다는 편견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하지만 모과는 맛이 시고 떫을수록 향기는 더욱 깊고 단단하다. 향기만 따진다면 못생겼다고 하는 것은 모함일 뿐이다. 모과는 향기로 말해야지 생긴 것으로 말하지 말라고 항변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니까 모과는 특유의 멋스러움은 없지만 독특한 향과 신비스런 효능으로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다.

모과는 방향제로 많이 사용한다. 집안 선반에 올려놓거나 차량 속에 놓으면 자연 특유의 향으로 분위기를 돋운다.

모과에는 사포닌, 사과산, 구연산, 비타민C 등이 들어 있어서 감기에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기관지가 안 좋은 사람에게 효과적이다. 공기가 건조하여 목이 아플 때나 기침가래에 차로 먹으면 좋다고 한다. 또한 피로회복이나 술 먹은 다음날 숙취해소에도 그만이라고 한다.

수확한 모과가 수월찮다. 모과는 모과청이나 모과주로 담가먹는다.
 수확한 모과가 수월찮다. 모과는 모과청이나 모과주로 담가먹는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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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의 신맛은 소화효소의 분비를 촉진한다. 속이 울렁거릴 때 모과차를 마시면 속이 편안해진다고 한다. 그래서 임산부가 입덧이 심할 때 모과차를 먹으면 효과가 있다.

생과로 먹는 일이 없는 모과는 주로 차를 만들어 먹거나 모과주를 담가먹는다.

우리 집 겨울철 꿀단지 모과청

뜨끈한 모과차 한 잔을 먹고 난 뒤, 아내가 며칠 전 모과청을 담근 옹기항아리를 들여다본다.

모과청 항아리 뚜껑을 열고서는 호들갑이다.

"여보, 설탕이 거의 녹아 푹 꺼졌어요! 냄새가 아주 좋아. 얼마 안 있어 맛난 모과청이 되겠죠."

나박나박 썬 모과 사이로 켜켜이 재워놓은 설탕이 스멀스멀 녹아 들어간 모양이다. 특유의 모과향이 살아있다.

우리 집 모과나무. 봄엔 붉은 꽃을 피우고, 가을엔 노란 열매를 선사한다.
 우리 집 모과나무. 봄엔 붉은 꽃을 피우고, 가을엔 노란 열매를 선사한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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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모과나무 네 그루가 있다. 묘목을 옮겨 심은 지 햇수로 다섯 해가 되었다. 작년에 처음 수확을 했는데, 네 그루 중 두 그루에서 여남은 개가 달렸다. 유실수를 심고서 첫 열매가 달린 것을 보면 기쁨이 크다. 한두 해 기다린 것도 아니고 몇 해를 기다려 얻은 수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즐겁다. 작년 우리는 처음 달린 열매를 따서 귀하게 여기고 모과청을 담가 차로 먹었다. 

올해는 네 나무 모두에서 서른 개 남짓 달렸다. 작년보다 훨씬 많이 달린 셈이다. 따 놓은 모과를 한 데 모아놓고 보니 양이 수월찮았다. 우리 가족이 모과청을 담가 먹기엔 양이 많았다.

"여보, 옆집아저씨께서 술 담그신다고 몇 개 달라고 그러던데…."
"그 양반 술 좋아하시니 넉넉히 드리세요."

옆집아저씨는 우리 집 모과를 탐냈다. 토실토실 잘 여물어 향긋한 모과주를 담그면 술맛이 아주 좋을거라며 우리가 모과 거둘 때를 기다리셨다.

잘 익은 모과를 만지면 표면이 촉촉하다. 그 촉촉함이 향으로 풍겨나지 않나 싶다. 모과는 물로 씻지 않고, 젖은 행주로 표면의 먼지를 닦아낸다.

모과는 나박나박 썰어 모과청을 만든다.
 모과는 나박나박 썰어 모과청을 만든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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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박나박 썬 모과를 설탕을 켜켜이 뿌려준다.
 나박나박 썬 모과를 설탕을 켜켜이 뿌려준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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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나중엔 모과가 잠기도록 설탕을 수북이 재워둔다.
 맨 나중엔 모과가 잠기도록 설탕을 수북이 재워둔다.
ⓒ 전갑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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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과청 담그는 일은 간단하다. 모과를 우선 네 쪽을 낸다. 단단하여 쪼갤 때 조심스럽게 칼질을 해야 한다. 쪽을 내고선 씨를 발라내 나박나박 썬다. 썰어낸 모과를 옹기항아리에 켜켜이 넣고 설탕을 뿌려준다. 맨 마지막은 모과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설탕을 충분히 쟁여두고 한 달 남짓 기다리면 된다.

아내가 향긋한 냄새를 다시 한번 맡아본다. 그리고 옹기항아리 표면을 깨끗이 닦고서 뚜껑을 닫는다. 며칠 지나 맛나게 마실 모과차를 생각하면서….


태그:#모과, #모과나무, #모과차, #모과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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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마니산 밑동네 작은 농부로 살고 있습니다. 소박한 우리네 삶의 이야기를 담아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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