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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중순, 대학생들의 한 학기가 끝나가고 있다. 이번 학기 내가 들었던 수업 중 가장 어려운 것은 바로 <성과 문화>라는 전공 과목이었다. '젠더'라는 고리타분하지만 질적 변화를 거듭해 온 오만가지 이론들을 배우느라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알아듣기 힘든 이론적인 얘기는 제쳐두고서라도, 우리 일상 생활 면면을 통해서도 젠더, 즉 여성과 남성에 관련된 이야기를 쉽게 만날 수 있다. 수업에서 주어진 과제 중 하나가 조별로 이 '젠더'와 연관된 이슈 중 하나를 선택해 사회적인 '액션'을 취해보는 것이었다. 우리조는 '크로스드레싱'을 통해 가장 미시적인 일상 생활인 '옷차림'과 여성성-남성성이 어떻게 얽히고 설켜있는지 알아보았다. 여기서 크로스드레싱이란 여성이 남성의 옷을 입거나 반대로 남성이 여성의 옷을 입는 것을 뜻한다.

남자는 왜 치마를 입으면 안 되는가?

이것이 처음 우리를 이끈 소박한 질문이었다. 다음은 이 질문에서 시작해 우리가 직접 '크로스드레싱'을 해보며 만든 '도전! 공익광고 모델' 프로젝트의 공익광고 이미지들이다. 편한 마음으로 감상해 보시길.

다음 중 잘못된 점을 지적한 것으로 옳은 답을 고르시오.
1) 남자는 미니스커트를 입으면 안 된다
2) 여자는 다리를 쩍 벌리고 앉으면 안 된다
3) 공공장소에서 다리를 벌리는 것은 민폐다
모델 신한슬, 유홍재. 촬영 김현민.
▲ ANY PROBLEM? 다음 중 잘못된 점을 지적한 것으로 옳은 답을 고르시오. 1) 남자는 미니스커트를 입으면 안 된다 2) 여자는 다리를 쩍 벌리고 앉으면 안 된다 3) 공공장소에서 다리를 벌리는 것은 민폐다 모델 신한슬, 유홍재. 촬영 김현민.
ⓒ 신한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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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신한슬, 유홍재. 촬영 김현민.
▲ ANY PROBLEM? 모델 신한슬, 유홍재. 촬영 김현민.
ⓒ 신한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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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델 신한슬, 유홍재. 촬영 김현민.
▲ ANY PROBLEM? 모델 신한슬, 유홍재. 촬영 김현민.
ⓒ 신한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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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은 하나의 이미지이고 코드이다. '보이 프렌드 핏' 청바지가 실제로 남자친구의 청바지는 아니고, '밀리터리 스타일'의 야상점퍼를 입는 것과 군용 잠바를 입는 것이 엄연히 다르듯이.

이것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크로스 섹슈얼' 의상 코드다. 크로스 섹슈얼은 여성들의 의상이나 머리 스타일, 액세서리 등을 하나의 '패션 코드'로 생각해 치장을 즐기는 남성을 뜻하는 말이다. 스키니 팬츠나 액세서리를 하는 등 여성의 화려함을 차용한다는 점에서 이들은  남성으로서 자신을 가꾸는 메트로 섹슈얼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정의된 바에 의하면, 이들은 패션 외의 행동, 말투 등은 남성다워서 '여자 같은 남자'와도 구별된다. 이들은 여성의 '화려함'을 입는 것이지 실제로 여성의 옷을 입는 것은 아니며, 여성스러움을 성격에 까지 가져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코드'이자 하나의 패션 '트렌드'인 수준에서 소화되고 있다. 그러다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어째서 사회의 인식이 코드가 소화되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일까? 여자가 매니쉬(mannish)한 옷은 입어도 남성복(male clothing)을 입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이고, 반대로 남자가 페미닌(Feminine)한 감성의 크로스 섹슈얼 스타일은 즐겨도, 여성복(female clothing)을 입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니, 굳이 여성복과 남성복을 나누어야 하는 이유는 대체 무엇 때문일까.

사회가 '용인하는' 패션 코드를 넘어서는 옷차림에 대해선 날선 비난이 쏟아지기 일쑤다. 내가 다니고 있는 대학 커뮤니티 익명게시판에 위의 사진들을 게재했을 때 "거세해야 한다"는 입에 담지 못할 비난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여자는 왜 수트를 입지 못하는가... 옷 차림에 제약된 나의 몸

더운 여름날 나는 핫팬츠를 입고 두 다리를 시원하게 드러낼 수 있다. 미니스커트건 롱스커트건 시원한 옷을 입고 불어오는 바람을 느낄 수 있다. 여름에 입기에 롱스커트만큼 완벽한 옷이 있을까. 시원하면서 편하고 치마가 팔랑팔랑 거리는 것이 재밌기까지 한데. 그런 내 옆에서 남자친구는 긴 바지를 입고 덥다고 난리다.

다만 바지를 입는 남자로서 남자친구가 누리는 것도 있다. 바로 행동의 제약에서 비교적 자유롭다는 점이다. '바지를 입는' 그는 다리를 벌리고 서거나 앉아도 된다. 치마를 입는 몸을 가진 나는 앉으나 서나 다리를 모으고 무릎을 붙이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내가 바지를 입고 다리 벌린 채 서거나 앉는 것은 남자친구가 그렇게 하는 것과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이런 상황에서 다리를 벌리는 것이 오히려 내겐 불편함을 줄 정도로 내 몸은 치마에 갇혀 있다.

치마와 바지, 여성복·남성복 등의 구분 속에 내 몸이 갇혀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옷을 장바구니에 담는 나의 '클릭질'에 과연 나의 의사가 얼마나 반영되어 있을까?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 '여성복'이라는 테두리 안의 옷밖에 선택하지 못하고 있다. '여성복'이란 옷과 함께 나의 행동 역시 테두리 안에 갇히고 만다. 나는 왜 수트를 입을 수 없는 것이고? 또 남자는 왜 스커트를 입을 수 없는 것일까?

'차이'는 '차별'과 다르다고 우리는 자주 말한다. 그런데 정말로 '타인의 취향'은 일상 생활 속에서 충분히 존중되고 있을까? 그렇다면 왜 '크로스드레서'들은 특별히 멋진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닌 '복장도착자'로 규정되고 있을까?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며 끝으로 자신들에게 불편하다는 이유로 타인을 비난하는 이들에게 한 마디 하고 싶다.

"취향입니다. 존중해주시죠."


태그:#크로스드레싱, #옷, #젠더, #양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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