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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간밤에 함박눈이 내렸습니다.

사람들이 오간 곳과 문명의 이기 자가용이 오간 곳들은 빙판길이 되어 너저분 하지만,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은 눈 온 뒤의 풍경이 멋드러지게 남아있습니다.

 

너저분한 세상일들 하얗게 덮어버리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하지만, 외면한다고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니 이런저런 내 목소리를 내게 됩니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상대방에 따라 내 마음도 요동을 칩니다. 그럴땐 내 마음에도 하얀 눈이 와서 소복하게 쌓였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어제(8일)는 국회에서 날치기로 새해 예산안이 통과되었습니다. 벌써 3년째 이 꼴을 보고 있으니 익숙해 질만도 한데, 볼 때마다 새록새록 분노가 치밀어옵니다. 그런 꼴을 보고도 대통령께서는 '통과되어서 다행이다' 한 마디를 남기고 해외출장을 떠났답니다.

 

나라꼴이 말이 아닙니다.

경색된 남북관계로 전쟁의 위협 속에서 살아가는 것도 모자라, 한미 FTA 협상으로 국가의 자존심은 무너지고, 4대강 사업이 강행되면서 이 강산이 신음하고 있고, 서민들의 생활은 점점 퍽퍽해집니다. 급식비 예산은 0원이라도, 4대강 사업 예산은 9조가 넘고, 이런 와중에 예산이 크게 증액된 지자체가 있다는데 대통령의 형이 속해있는 지역구도 들어있답니다.

 

맨 몸으로 추운 겨울을 나는 찔레를 보면서, 양심이 있다면 저러지는 않을 터인데 부질없는 생각을 합니다. 어차피, 이렇게 된거거 조금만 더 참자 하면서도 이러다가 쪽박을 차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그래도 참 신기한 것은 지난밤 그렇게 분노하다가도 새롭게 맞이한 아침을 또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침은 좋습니다. 아침에 떠오른 햇살, 그 어느 곳에선 붉은 노을이었겠지요.

 

아침 햇살이 아직은 비스듬하게 일어난 탓에 그림자가 깁니다.

허상과 실체의 경계가 무엇일까, 그림자를 만드는 여러가지 요인들이 있는데, 우리는 저 그림자에 덧칠을 해서 다른 모양으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햇살의 도움과 조금의 움직임만으로도 그림자 모양을 바꿀 수 있는데, 그건 방법이 아니고 그림자에 덧칠을 하는 것만이 그림자으 모양을 바꿀 수 있다고 우기는 세상인듯하여 마음이 아픕니다.

 

 

희망이라는 것은 좋은 말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좋은 말만이 아닐 때는 '희망'의 불빛이 다 꺼져버린 이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강요하는 것입니다. 마치, 이젠 뿌리까지 다 썩어서 새순을 낼 수 없는 나무밑둥에게 '새순을 내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살다 보면, 절망도 해야 합니다.

절망하는 이에게 희망을 노래하는 것이 강요라면 절망에 절망을 더해 주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뜰에 빈의자가 하나 있었습니다.

쉬었다가는 이 없어 아침햇살과 바람과 낙엽 같은 것들이 쉬어가던 곳이었습니다. 간 밤에 내린 함박눈이 쉬었다 가는 아침입니다. 누굴 기다리나 했더니만, 함박눈이었다 봅니다.

 

빈 틈없는 사람이 되라고 이야기하지만, 빈 틈이 있어야 사람입니다.

그 빈 틈을 메워주는 사람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고 살라고 신은 완벽한 인간 만들기를 거부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자기들을 닮은 형상으로 지었다고 했으니 신도 빈 틈이 있는 존재일 것입니다.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 내려면, 이렇게 틈과 채워진 공간이 필요한 것처럼 빈 틈은 필요합니다. 서로 보완하며 살아가는 것, 그것이 자연의 이치요, 세상의 이치인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권력을 가진 이들에게서는 틈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아니, 틈이 아니라 너무도 휑하니 뚫려서 막을 수가 없습니다. 여야가 서로 보완하면서 가야하는데, 그냥 커다란 구덩이에 몰아넣어버리고, 그들만으로는 그 구멍이 차지 않아 국민까지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형국입니다.

 

 

덩그러니 하나 남은 까치밥, 도시에도 까치가 사니 그들을 위한 배려도 필요했겠지요.

저것 하나로 다 채워질 수는 없겠지만, 없는 것 보다는 낫겠지요. 마지막 남은 까치밥, 저것이 떨어지고 나면 온전히 나목으로 겨울을 보내고 새 봄에 수액이 돌고 돌아 새순을 낼 것입니다.

 

놓은 것, 놓아 버림.

그래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진리를 배워야 합니다.

그저 자기들의 뜻만 옳다고 밀어부치면 언젠가는 사단이 나기 마련입니다. 그런 것을 예견하지 못하고 "다행이다!" 하는 무재몽매한 지도자들 때문에 국민의 몫으로 남겨져야 할 까치밥은 구경도 못하게 생겼습니다. 추운 겨울날, 함박눈이 쌓였는데도 더 추운 이유입니다.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까치밥까지 싹쓸이해서, 아이들에게 돌아가야할 급식비까지 싹쓸이해서 4대강 사업에 퍼부으니 배부르시냐고 말입니다.


태그:#함박눈, #겨울, #의자,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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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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