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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리영희 선생 민주사회장이 8일 오전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고 리영희 선생 민주사회장이 8일 오전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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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리영희 선생 민주사회장이 8일 오전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된 가운데 고은 시인이 눈물을 닦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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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신 : 8일 낮 12시 1분]

하얀 국화로 뒤덮인 고 리영희 선생, 뜨거운 화로 속으로
장남 건일씨 분골함 들고 나오자, 부인 윤영자씨 오열

8일 오전 11시 30분경. 장남 건일씨가 고 리영희 선생의 분골함을 들고 나오자, 리 선생의 부인 윤영자씨는 흐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며 오열했다. '행동하는 지식인' 리 선생의 영현은 고인의 유지대로 광주 5.18 국립묘지를 향해 떠났다.

앞서 오전 10시경. 6~7평 남짓한 분향실에 있는 커튼이 쳐지자, 하얀 국화로 뒤덮여있던 고 리영희 선생의 관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곧, 분향실에 설치되어있는 작은 화면에 리 선생의 관이 화로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잠시 나타났다.

영결식 내내 담담한 모습을 보였던 장남 건일씨는 그 작은 화면을 올려다보며, 몇 번이고 안경을 벗어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어린 손자들 역시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며 검은 양복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잠시 후, 화면 위로 '고 이영희씨 화장 중'이라는 글자가 뜨자 부인 윤영자씨는 고개를 숙이며 남편의 영정사진을 말없이 쳐다봤다. 유족들과 취재진들로 가득한 분향소에는 훌쩍이는 소리와 카메라 셔터소리만이 들렸다.

이어 건일씨와 차남 건석씨가 아버지의 영정 앞에 분향을 하고 술을 올리자, 검은 상복은 입은 유가족 10여명이 다 함께 절을 했다. 분향실 밖에서는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서부터 함께 온 장례위원·시민 100여 명이 분향을 위해 줄을 섰다. 분향실이 좁은 탓에 이들이 모두 조문을 하는 데는 1시간 가까이 걸렸다.

[1신 : 8일 오전 8시 45분]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 사랑합니다. 이제야말로 온갖 시름과 애착을 다 여의시고 고이 잠드시옵소서."

떨리는 목소리로 조사를 읽어 내려가던 백낙청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끝내 눈물을 흘렸다. 고 리영희 선생의 민주사회장이 엄수된 8일 오전 7시.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 영결식장을 가득 채운 200여 조문객들의 눈시울도 함께 붉어졌다.           

"선생님, 안타깝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실제로 오늘의 현실은 선생님이 힘겹게 추구해 오신 길에서 너무나 엇나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삶의 헛되지 않으셨기에, 못난 후학들이지만 저희 또한 당신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우리 사회는 백여 년 전과는 다른 역량을 지녔고 파시즘을 그리워하는 무리가 적지 않아도 저들이 끝내 성공할 확률은 태무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어 고인에 대한 추도사가 이어졌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하늘이 내려앉고 땅이 꺼지는 슬픔을 온 국민이, 온 시대가 느끼고 있다"며 한 트위터리안의 댓글을 전했다.

"리영희 선생님 영전에 마음으로 흰 국화꽃 한 송이를 바칩니다. 이제 행동하는 지식인의 등대는 누가 밝히실 것인지요?"

수원 연화장에서 화장 후 광주 5·18 국립묘지에서 하관식 예정

고 리영희 선생 민주사회장이 8일 오전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고 리영희 선생 민주사회장이 8일 오전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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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리영희 선생 민주사회장이 8일 오전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고 리영희 선생 민주사회장이 8일 오전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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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상임이사는 "우리가 마냥 슬퍼만 할 수 없는 이유는 선생님이 평생 맞닥뜨렸던 그 야만, 그 허위, 그 불의의 벽이 아직도 완전히 허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선생님이 주신 바다와 같은 지혜, 용광로 같은 열정, 얼음칼 같은 냉철함으로 우리는 이 슬픔과 정말의 벽을 넘어 선생님이 한평생 온몸과 마음을 다하여 꿈꾸었던 그 세상을 기필코 열어나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유가족을 대표해 조문객들 앞에 선 장남 건일씨는 "저희 아버님은 한평생을 치열하게 사셨다, 심지어 편안하게 쉬어야 할 마지막 여생도 수년간 병과 싸우며 임종하셨다"면서 "이제는 정말로 쉴 수 있는 곳으로 가셔야 할 시간이 되었다"며 장례위원장과 집행위원장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헌화가 시작되자, 침통한 표정으로 영결식을 지켜보던 조문객들은 하나 둘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이어 영결식장을 빠져나가는 리영희 선생의 관을 바라보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사상의 은사' 고 리영희 선생의 시신은 그가 창간 고문으로 있었던 한겨레 신문사에 잠시 들른 뒤, 오전 10시경 수원 연화장으로 옮겨져 화장된다. 오후 4시에는 고인의 장지로 결정된 광주 5.18 국립묘지에서 하관식이 진행된다.

고 리영희 선생 민주사회장이 8일 오전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된 가운데 고인의 관이 영결식장으로 운구되고 있다.
 고 리영희 선생 민주사회장이 8일 오전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된 가운데 고인의 관이 영결식장으로 운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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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리영희 선생 민주사회장이 8일 오전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고 리영희 선생 민주사회장이 8일 오전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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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리영희 , #리영희 영결식, #리영희 장례식, #리영희 민주사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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