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일요일 오전 11:00. 지친 몸을 자취방에 누이고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두 시간쯤 잤을까? 끈적끈적한 잠기운이 나를 짓눌렀지만, 지끈지끈 머리가 아파와 몸을 일으켰다. 머리가 아픈 데는 이유가 있다. 어제 쇠파이프에 맞은데다 노숙을 한 탓에 몸이 찌뿌둥했기 때문이다. 어제 일을 생각하니 머리 아픈 것이 가시고, 대신 분노스런 마음에 속이 쓰리다. 

3년 전 해고된 GM대우 비정규직 사내하청노동자 황호인, 이준삼씨는 지난 12월 1일 대우자동차 정문 아치에 올랐다. 이젠 노동자들이 올라갈 곳이 없어, 공장 정문까지 올라가는 걸 보니 세상의 벽이란 게 참으로 높은 것 같다. GM대우 노동자들은 울산의 투쟁을 전국적인 투쟁으로, 모든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만들기 위해 올랐다고 한다. 최근 울산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내하청비정규직노동자들의 파업은 어제 오늘의 문제도, 현대자동차만의 문제도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12월 4일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는 민중대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GM대우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같은 시각, 인천공장 앞에서 민중대회를 열었다. 울산에 못갈 바에야, 그리고 상대적으로 GM대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후배들과 함께 인천으로 향했다.

두 분의 노동자가 단식을 하고 있었다. 사다리가 달린 소방차가 현장에 출동해 용역과 함께 진압을 논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안전띠도 던져 버리셨다. 현장에 모인 사람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밥을 먹고 계속 싸우자는 마음을 전달했다. 더 이상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몸을 내던져야 하는 사태는 막고 싶었다. 우리들의 간절한 바람에 두 분도 식사를 하기로 했다. 정말 다행이다.

용역들이 낫으로 식사를 올리는 줄을 끊으려고 하고 있다.
▲ 낫으로 줄을 끊으려는 용역 용역들이 낫으로 식사를 올리는 줄을 끊으려고 하고 있다.
ⓒ GM대우 비정규직지회

관련사진보기


낫 쇠파이프가 분리됐다. 다행히 낫이 아니라 쇠파이프에 맞았다.
▲ 쇠파이프와 낫 낫 쇠파이프가 분리됐다. 다행히 낫이 아니라 쇠파이프에 맞았다.
ⓒ GM대우 비정규직회

관련사진보기


집회가 끝나고 추운 날씨에 건강이 걱정되어 목도리와 함께 식사를 옮기려고 했다. 그 순간이었다. 경찰들이 갑자기 들이닥쳤다. 목도리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실갱이를 하던 도중 우리의 머리 위로 낫이 등장했다. 복면과 하이바를 쓴 용역 깡패가 낫을 휘두르며 식사를 올릴 줄을 끊으려고 한 것이다. 흡사 공포영화의 한 장면이다. 이런데도 경찰은 묵묵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심지어 낫을 휘두르는 바로 밑 담장에 젊은 전경들이 겁에 질린 채 부동자세로 서있었다. 이럴 때마다 시민을 지키는 경찰의 공권력이 자본이 사들인 용병의 절박함보다 못하다는 것을 느낀다.

용역깡패와 경찰의 태도에 화가 난 두 노동자들은 항의 뜻으로 올라간 식사를 던져버렸다.
▲ 식사거부 용역깡패와 경찰의 태도에 화가 난 두 노동자들은 항의 뜻으로 올라간 식사를 던져버렸다.
ⓒ GM대우 비정규직지회

관련사진보기


낫으로 줄을 자르는 것을 막기 위해 사람들은 낫이 달린 파이프를 쳐내려고 했고, 용역들은 이에 맞서 낫이 달린 파이프를 휘둘렀다. 사람들의 머리 위로 낫이 좌우로 오고가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퍽'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중에 생각해 보면 별이 보인다는 말이 이런 말인 것 같다. 다행히 낫은 아니고 쇠파이프에 맞았다. 잠깐 아프다가 말아서 괜찮겠지 하고 서있는데, 한분이 유독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본다.

"파이프에 맞았어요? 피나는 것 같은데?"

순간, 심각한 생각보다는 아픈 걸 모르고 있다가 피가 흐르는 시트콤의 한 장면인 것 같아 웃음부터 났다. 마침 연고 비슷한 게 있어, 바르고 말았지만 밤이 되자 병원에 가라는 주변의 권유로 인근 병원을 찾았다. 병원문은 이미 닫혔고 응급실만 운영되는 상황이었다. 응급실에 들어갈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응급실 비용은 간단한 진찰만 해도 보통 10만 원이 넘어가기 때문이다. 등도 아파서 머리와 등의 엑스레이를 찍고 나와서 진찰을 받았다. 큰 문제는 없지만 약을 먹고 경과를 지켜보잔다. 그리고 주사를 한 대 맞으란다.

"주사요?"
"네."

나의 놀란 마음과 상관없는 의사의 침착한 반응에 엉덩이를 깔 수밖에 없었다. 주사는 아무리 맞아도 무섭다. 파이프에 맞는 것보다 주사바늘이 더 무서운 건 어쩔 수 없다. 아픈 엉덩이를 부여잡고 원무과로 갔는데, 의료보험이 안 된단다. 폭행이라서 보험적용이 안된다는 것.

"잠시만요. 10만 6000원 나왔습니다."
"10만 6000원요?"

10만6000원을 외치고 한동안 멍하니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 손에는 GM대우 비정규직지회 지회장님의 카드가 들려 있었다. 진찰받고 오라며 쿨 하게 카드를 내주신 것. 도움은 쥐뿔도 안 되면서 돈만 축내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투쟁기금이라도 모금해야 겠다.

병원을 나와 다시 농성장으로 향했다. 후배들과 함께 노숙을 하기로 한 날이기 때문이다. 근데 재밌는 걸 발견했다. 신현창 지회장이 가는 방향으로 담장 너머의 카메라가 따라서 움직인 것이다. 이리저리 옮겨가면서 실험을 해봤는데, 모든 실험은 성공했다. 카메라는 지회장을 따라다녔다.

사람들은 농성장 한쪽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도란도란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또 한쪽에서는 지루한 사람들을 위해 영화를 상영하고 있기도 했다. 안타까운 소식도 들려온다. 고공농성 중이신 분들이 감기몸살 기운이 있어 약을 급히 구해 올려 보내기도 했다. 사람 사는 곳이 다 똑같다. 아무리 투사라 해도 지루해 하고, 추위에 떨기도 하고 영화를 보기도 하며 아프기도 하다. 그런 생각이 드니깐 왠지 모르게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후배와 함께 컵라면을 깐다. 마침 다른 노동자 분께서 모닥불에 익힌 고구마도 내주신다. 후배 녀석은 한 정규직 조합원이 밤에 맛있는 거라도 사먹으라며 자신에게 건네준 1만 원을 꼬깃꼬깃 손에 쥐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녀석은 다른 사람을 통해 돌려드리려다 주변 어른들한테 괜히 핀잔만 들었다.

밤은 늦어 이제 차 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다. 침묵을 깨는 소리는 농성하시는 분들이 잠자는 사람들을 위해 천막천을 덮어주시느라 부시럭 거리는 소리다. 그렇게 농성장의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나도 침낭에 들어가 하늘 위로 고개를 들어 GM대우 정문을 바라본다. 저 위는 또 얼마나 추울까? 그렇게 심각한 생각에 젖어들려고 하는 순간 잠이 들어 버렸다. 주변 분들의 배려로 꽤나 따뜻하게 잘 수 있었다. 피곤했는지 한숨도 안 깨고 잘 자다가 아침6시쯤 추워서 깼다. 아침 7시 노동자들은 다시 피켓을 든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내 자식 크기 전에, 비정규직 철폐하자"

생각하면 그 분들이 이야기하는 자식들이 하룻밤 노숙을 하며 연대라는 것을 했다. 그런데 한 정규직 조합원이 '금속노조 조합원들일에 나서는데 왜 정규직연대라는 말을 쓰나'고 이야기하셨다.

그거 사실 학생들이 하고 싶은 말이다. 우리일이다.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늘리라고 이야기하는 것 대안이 아니다. 청년실업문제 해결하겠다는 말도 대안이 아니다. 우리들 일자리 늘려서 기존노동자들을 비정규직으로 전환하거나 임금이 삭감되는 건 말이 안 된다. 현실적으로도 어차피 우리가 취직해봤자, 우리들도 비정규직으로 전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정규직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노동자다. 우리는 모두 사장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사람이다. 그래서 우리는 모두 비정규직이다. 비정규직을 철폐하는 것은 사실 우리 모두가 사람답게 사는 것이다. 그 사실 알기 때문에 2010년의 학생들도 쇠파이프 막고, 추위에 떨며 길바닥에서 자는 것도 함께 할 수 있는 거다.

월요일에 또 인천으로 간다. 투쟁하려는 의지가 넘쳐서가 아니라 진단서 끊어야 해서 가야된다. 가는 김에 같이 6시 문화제 참석하면 그게 연대 아니겠는가. 혹시 인천갈 일 있는 20대나 시민들도 함께 가면 그게 참으로 좋은 일 하는 거다. 노숙하면서 기말고사 시험공부를 해도 좋을 것 같다.


태그:#GM대우, #비정규직, #사내하청, #인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