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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29일 오전 10시께 거제시 일운면사무소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60년 세월을 간직한 아름다운 선물' 타올을 지난 7월에 보내 주었던 김병관(74)씨가 "오늘 중으로 달력이 택배로 배달 될 예정이니 유용하게 잘 사용해 달라"는 얘기를 시작으로 그 동안의 안부를 물었다.

김씨는 "평소 잘 알던 인쇄소에서 달력을 제작했는데, 달력이 완성됐다는 전화를 받고 대금을 지불하러 갔더니, 인쇄소 사장님이 그동안의 사연을 듣고는 달력 대금을 극구 사양해서 얼마나 고맙고 감사한지 몸둘 바를 몰랐다"면서 "택배비까지도 받지 않았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전화를 끊은지 1시간 뒤 묵직한 박스 하나가 최명호 일운면장 앞으로 배달됐다. 다름 아닌 조금 전에 전화를 했던 김병관씨와 인쇄소 사장의 합작품인 또 다른 귀한 선물인 탁상용 달력 50부가 들어 있었다.

 60년전 피난시절 거제 일운면사무소 공무원에게 죽 값으로 받은 500환의 고마움을 보답하기위해 전달된 달력.
▲ 60년 세월 감사의 달력 60년전 피난시절 거제 일운면사무소 공무원에게 죽 값으로 받은 500환의 고마움을 보답하기위해 전달된 달력.
ⓒ 거제시 일운면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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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가 일운면사무소에 매년 달력을 보내는 이유는 이렇다.

김씨는 60년 전 1950년 12월 24일 흥남부두에서 1주일 뒤 어머니와 다시 만나기로 하고 어린 동생과 함께 홀로 피난길에 올라 장승포 항구에 도착, 일운면 망치에서 고달픈 생활을 시작했다. 김씨는 굶주림에 칭얼대는 동생을 데리고 어머니를 찾아 헤매던 중 해질 무렵 허기가 져 일운면사무소 앞에 주저앉고 말았다.

이들 어린 형제의 모습을 지켜보던 일운면에 근무하던 한 공무원이 어머니의 피난 여부 확인과 함께 "동생에게 죽 이라도 사 먹이라"며 당시 돈 500환을 건넸다. 모두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일운면 공무원이 건네 준 500환은 이 김씨 형제가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한 힘과 용기의 원천이 되었고, 그 고마움을 김씨는 뼈속에 묻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의 고마움을 60년 동안 간직했던 김병관, 김병언 형제는 지난 7월 자신들이 이름을 새긴 타올 30매를 면사무소에 보냈다. 이번에는 탁상용 달력 50부를 다시 일운면사무소에 보냈다.

60년 전 허기를 채우라며 건네준 면사무소 공무원의 500환이 인연이 되어, 이날 세월을 의미하는 달력이 되어 선물로 되돌려진 것이다.

이번 탁상용 달력은 김씨의 사연을 전해들은 인쇄소 사장의 또 다른 사랑으로 불어났다.

60년전 피난시절 거제 일운면사무소 공무원에게 죽 값으로 받은 500환의 고마움을 보답하기위해 전달된 달력을 면사무소 직원이 책상위에 놓고 바라보고 있다.
▲ 60년 세월 감사의 달력 60년전 피난시절 거제 일운면사무소 공무원에게 죽 값으로 받은 500환의 고마움을 보답하기위해 전달된 달력을 면사무소 직원이 책상위에 놓고 바라보고 있다.
ⓒ 거제시 일운면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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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호 일운면장은 전화를 통해 "이 달력은 우리 일운면 직원들이 항상 보면서 한 공무원의 봉사가 어느 사람에게는 삶의 용기가 되고, 선행은 또 다른 선행을 낳게 돼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매일 깨달을 수 있도록 하겠다"며 김씨와 인쇄소 사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한편 무료로 달력을 제작해 준 인쇄소 사장은 "내가 감사의 인사를 받는 것은 오히려 부끄럽다. 오랫동안 지켜봐 온 김병관 어르신은 본인도 넉넉한 형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어렵게 살아오셔서 그런지 항상 고아원이나 어려운 이웃에게 베풀려고 하시는 분이다"면서 "그래서 나도 그분의 뜻을 받들어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려고 한 것뿐이다"며 감사의 인사에 화답했다.

수은주가 계속 떨어지는 계절, 따뜻한 사연과 또 다른 귀한 선물을 받게 된 일운면사무소 직원들은 "책상 위의 귀한 달력 보며, 하루하루 새로운 다짐을 하고 있다"면서 "이 달력은 시민들에게 말로만의 봉사가 아니라, 몸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봉사를 해야 한다는 지침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태그:#일운면사무소, #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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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지 경남매일 편집국에서 정치.사회.경제부 기자를 두루 거치고 부국장 시절 서울에서 국회를 출입했습니다. 이후 2013년부터 2017년 8월6일까지 창원일보 편집국장을 맡았습니다. 지방 일간지에 몸담고 있지만 항상 오마이뉴스를 좋아하기 때문에, 전국적으로 공유하고 싶은 뉴스에 대해 계속 글을 올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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