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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이마치도리(堺町通り)는 일본 홋카이도(北海道) 오타루(小樽)에서 중심을 이루는 거리이다. 이 거리는 메르헨 교차로(メルヘン交差点)에서부터 오타루 운하까지 약 1km에 이를 정도로 아주 긴 거리이다. 이 거리에는 홋카이도에서 가장 맛있기로 소문난 먹을거리 가게들과 유리공예 가게, 목공예 가게, 인형가게, 해산물 가게들이 몰려 있다. 당연히 이 거리는 오타루에 오는 여행자들에게 최고로 인기가 높은 곳이 되었다.

메르헨 교차로. 일본영화와 우리나라 뮤직 비디오에서 많이 보아서인지 눈에 아주 익은 곳처럼 보인다. 이름은 교차로이지만 차들의 왕래가 많은 대로가 아니라 작고 운치 있는 교차로이다. 이곳에는 유독 많은 관광객들이 왕래하면서 주변 가게들을 구경하고 있다. 온갖 예쁜 가게들이 이 교차로 주변에서 여행자들의 눈을 즐겁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타루가 홋카이도의 상업도시로 번성했던 과거의 전통이 그대로 전해지는 가게들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다. 나는 과거의 전통을 현재에까지 자랑스럽게 이어받고 그 전통을 지키며 그 자리를 지키는 가게들이 좋다. 한 자리에 자리를 잡고서 켜켜이 쌓이고 쌓인 가게의 역사가 거리 곳곳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달콤한 케이크로 가장 유명한 과자점이다.
▲ 르타오 본점. 달콤한 케이크로 가장 유명한 과자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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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곳은 메르헨 교차로 바로 남단에 자리한 르타오(Le TAO). 오타루에서 달콤한 케이크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과자점이다. 건물 전체를 둘러싼 회색빛 석재와는 달리 초록색으로 밝게 빛나는 입구를 통해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초코케이크, 과일 롤 케이크와 함께 복숭아 맛 치즈케이크 등 입맛 당기는 케이크와 푸딩, 타르트들이 진열장의 고급스러운 케이스 안에 가득히 진열 중이다.

다양한 크기로 포장된 선물용 과자도 눈길을 잡아당긴다. 쇼트 케이크 조각을 간단히 시식할 수 있어서 맛만 봤는데 입 안에서 살살 녹아 없어졌다. 치즈의 맛이 달지 않으면서 아주 진하다. 아!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맛이다. 내가 좋아하는 치즈가 케이크를 만나서 환상적인 맛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치즈와 케이크의 2가지 맛이 입 안에서 촉촉하게 섞이고 있었다. 이 맛은 진한 치즈와 크림으로 2단을 만든 더블 프로마쥬(Double Fromage)에서 맛의 정점을 만들고 있었다.

가게에는 유난히도 여름 한정, 본점 한정, 수량 한정으로 파는 케이크들이 많다. 지금 안 먹어보면 맛볼 수 없으니 지금 먹고 후회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나는 이 과자들을 더 먹고 싶은 본능적인 욕구를 누르고 다음 가게로 이동하기로 했다. 가게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식 외관이 주변의 전통가게들과 잘 어울린다.
▲ 르타오 르초콜릿 가게. 현대식 외관이 주변의 전통가게들과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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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타오 가게는 오타루에서 가장 큰 유명세를 즐기고 있었다. 사카이마치도리를 걷다 보니 본점 외에도 치즈케이크 분점과 르 초콜릿(le chocolat)이라는 르타오 초콜릿 가게가 보일 정도이다. 초현대식 외관으로 들어선 르 초콜릿은 바로 옆의 전통가게들과도 잘 어울리고 있었다. 이 가게는 초콜릿으로 유명한 오타루에서도 명성을 자랑하는 가게이다. 개항 당시에 서양에서 들어온 초콜릿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서 오타루의 역사로 만들어버린 저력이 느껴지는 가게다.

르초콜릿 가게의 여종업원이 계단 위에서 접시를 들고 있었고, 그 접시 위에는 시식용 초콜릿이 가득 담겨 있었다. 르타오의 유명한 상술인 시식을 나는 마음껏 즐겼다. 나는 그들의 의도대로 초콜릿 가게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가게 안에는 먹음직스러운 초콜릿들이 앙증맞게 포장되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아주 맛있어 보이지만 크기에 비해 가격이 너무 비싸다.
▲ 르초콜릿의 초콜릿. 아주 맛있어 보이지만 크기에 비해 가격이 너무 비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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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온갖 색상과 기교로 멋을 낸 일본의 스시가 연상될 정도로 화려한 초콜릿이었다. 초콜릿들은 다양한 외양에 정성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러나 작은 초콜릿 3개 포장에 우리 돈 만원을 넘어서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스토리텔링만을 즐기고 그 초콜릿은 시식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천상의 맛을 자랑한다는 과자가게는 이 거리에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과거의 창고를 개조한 고풍스러운 외관이 인상적인 가게가 눈앞에 나타났다. 과거의 창고 외관을 유지하면서 가게 내부를 리모델링하는 것은 오타루의 특징 중의 하나다. 이 가게의 이름은 키타카로(北菓樓). 그 유명한 '바움쿠헨(Baumkuchen)'과 홋카이도 최고의 슈크림을 먹을 수 있는 유명 과자점이다.

과거의 창고를 개조한 과자점의 외관이 인상적이다.
▲ 키타카로 과자점 과거의 창고를 개조한 과자점의 외관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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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에 시작된 가게이나 그 명성은 벌써 르타오를 따라잡고 있다. 입구에서부터 바움쿠헨이 먹음직스럽게 인쇄된 배너가 시선을 유혹하고 있다. 키타카로 가게 옆의 야외 벤치에는 한가롭게 햇살을 즐기며 유명 과자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내가 마치 유럽 중세도시의 한 거리에 와 있는 듯한 착각 속에 빠져들었다.

나무를 잘라놓은 목재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 키타카로의 바움쿠헨 나무를 잘라놓은 목재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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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안은 공전의 히트를 친 빵들을 사려는 사람들로 복작복작하다. 실내에 진열된 바움쿠헨의 종류만 해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바움쿠헨은 나무를 잘라놓은 목재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키 큰 케이크이다. 바움쿠헨에는 마치 잘린 나무의 나무테 같은 결이 살아 있었다. 바움쿠헨이 워낙 큰 케이크이기 때문에 시식용 빵도 큰 편이다. 나는 만족스럽게 바움쿠헨을 먹었다. 맛은 군더더기 없이 깨끗하고 겉으로는 보이지 않는 생크림의 맛이 강하게 났다.

키타카로에는 베이커리도 많고 슈크림 빵도 많다. 슈크림 빵은 크로와상 슈크림 등 여러 세트가 있고 세트마다 슈의 맛이 다 다르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카이타쿠 오카키(開拓おかき)'는 쌀로 만든 센베과자이다. 다시마 맛이 나는 센베, 새우맛이 나는 센베가 있다.

가게 입구에서부터 이 쌀과자들을 대표 상품으로 홍보하고 있다. 극진한 정성으로 만든 과자 이름 위에는 홋카이도 개척시대에 만들어졌다는 스토리가 입혀져 있었다. 과자 이름 하나하나에 역사를 입히는 모습이 참으로 일본답다는 생각이 든다.

주황색의 맛깔스런 메론이 입에서 살살 녹는다.
▲ 유바리메론 젤리. 주황색의 맛깔스런 메론이 입에서 살살 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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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것은 유바리메론(夕張メロン) 젤리다. 유바리메론은 홋카이도에서 먹는 메론인데 속이 주황색이다. 아주 특이하다. 주황색의 맛깔스런 메론이 젤리로 만들어져 너무나 맛이 궁금한 외양을 만들어내고 있었고 나는 지갑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 메론의 맛은 상큼하게 입안에서 부서졌다. 겉모습같이 젤리가 아주 달지는 않고 맛이 혀 안에서 감기고 있었다. 황금빛 메론의 풍미는 온 몸으로 그대로 전해졌다. 천상의 맛은 이런 맛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내가 세상에서 모르는 맛은 너무나 많이 있었고 내가 먹어야 할 맛이 너무나 많았다.

유명 과자점은 끝이 없다. 키타카로 바로 옆에는 또 다른 유명 과자점인 롯카테(六花亭)가 나란히 붙어있다. 이 가게는 유럽에서 나는 실하고 굵은 밤인 마론(marron) 위에 초코를 얹은 초코마론이 절찬리에 판매 중이다. 그러나 이 모든 탐스러운 과자들을 즐겼다가는 이 과자들이 모두 내 몸무게로 옮겨질 것 같다.

나는 이 개항의 도시에 왜 유독 과자점이 많은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과자들은 일본 각 지역의 특산물을 뜻하는 오미야게(おみやげ)였다. 일본사람들은 보통 외지로 여행을 하게 되면 꼭 현지의 오미야게를 사서 친지들에게 선물하는 문화가 있다. 포장이 잘 된 예쁜 과자세트가 잘 팔리는 이유는 이 과자들이 바로 친지들에게 내 여행의 즐거움을 나눠 줄 오미야게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오타루 운하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햇살이 포근한 거리 곳곳에는 잘 정돈된 여러 공방이 눈길을 끌고 있었다. 목공예 제품 만들기를 직접 실습하고 체험할 수 있는 목공예 공방이다. 공방 안에는 간단한 듯 보이면서도 자세히 보면 굉장히 섬세한 일본 목공예품들이 있었다.

일본의 전통 목각인형은 15세기부터 만들어진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일본의 목각인형에는 은근하고 귀여운 매력이 있다. 아주 섬세한 일본인들의 성격만큼 아주 세밀하게 조각되어 있으면서도 일본 만화영화의 주인공을 닮은 듯한 심플함이 있다. 중국의 극사실주의적인 목공예 조각과는 달리 사치스럽지 않고 소박하며 앙증맞을 정도로 귀엽게 생겼다. 작은 목공예품이지만 집에 두고 두고 보아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수공예로 만든 예쁜 목각 인형을 파는 목공예 가게이다.
▲ 파인크래프트. 수공예로 만든 예쁜 목각 인형을 파는 목공예 가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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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속의 오타루 거리를 계속 걷고 있으니 목공예 가게들도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다. 마음이 포근해지는 조각품들에 아내의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파인 크래프트(Fine Craft)라는 목공예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가게의 입구에 손님들을 현혹하는 나무 눈사람이 귀엽게 서 있었다.

나무로 깍은 인형들이 포근하고 귀엽다.
▲ 오타루의 목공예. 나무로 깍은 인형들이 포근하고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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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안의 목공예 제품들에서는 사람이 손으로 정성들여 만든 흔적들이 담겨 있었다. 자동화된 기계로 찍어내지 않고 사람이 공구로 직접 작업한 흔적이 남은 인형들은 왠지 모를 따뜻함이 느껴졌다. 오타루의 여러 가게에 큰 관심을 나타내지 않던 아내는 이 가게의 목각인형들이 무척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아내는 공 모양과 직사각형 모양이 어우러진 사람 형상의 목각인형 여러 개를 집어 들었다. 아내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조카의 선물을 머리 속에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목각인형의 산뜻한 디자인에 끌려 목각인형 여러 개 사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우리가 고른 인형을 계산하려는데 가게의 아가씨가 나에게 말을 건다. 이 젊은 아가씨는 한국에 대해서 아주 강한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가 한국에서 온 것을 알고는 대뜸 막걸리 이야기부터 꺼낸다.

"한국에서 오셨어요? 아! 막걸리! 저 막걸리 좋아해요"
"아, 막걸리를 좋아하세요, 정말? 막걸리를 어디서 마셨어요?"
"며칠 전에 삿포로에서 막걸리를 마셨어요. 친구들과 어울려서 함께 마셨는데 너무 맛있었어요."
"막걸리, 맛있지요."

외국의 젊은 아가씨가 막걸리를 좋아한다는 말에 나는 웃음이 나왔다. 젊은 아가씨의 발랄한 막걸리 예찬론을 듣고 있던 중년의 가게 점원 아주머니도 한참을 웃었다.

"오타루에서 하루 자고 가나요? 아니면 삿포로로 돌아가시나요?"

이 친절한 아가씨는 자기 가게의 목각제품을 파는 것을 넘어서 외국 여행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했다. 그는 오래된 친구마냥 나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나는 일본어가 막히자 영어를 섞어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개 일본 사람들은 잘 모르는 사람과 대화에 조심스러운 편인데, 이 아가씨는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격세지감을 느꼈다. 내가 처음 일본을 여행했던 1990년, 그 때 일본의 경제력과 문화는 한국에게 있어서 동경의 대상이었고, 한국의 문화는 일본 사람들에게 관심 밖이었다. 그 당시에 나는 양국간 경제력의 차이를 보며 여행 내내 괜히 위축되기도 했고 예상과는 다른 일본 문화의 저력을 보면서 놀라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20년이 지나면서 세상은 변해버렸다. 현재 일본의 많은 젊은이들은 한국에 친근감을 가지고 한국의 다양한 문화를 경험해 보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러한 한류의 영향은 일본여행을 하면 할수록 더욱 강하게 느껴진다.

간단한 듯 하면서도 정성이 담긴 작품이다.
▲ 오타루의 목공예 제품. 간단한 듯 하면서도 정성이 담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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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많은 블로그와 여행책자에서 오타루에 관한 여행정보를 보며 사카이마치도리의 과자와 빵, 초콜릿, 젤리, 케이크의 달콤함에 빠져 있었다. 오타루에는 역사를 지키며 최고의 맛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런 장인들의 가게가 너무나 얄미울 정도로 잘 형성되어 있었다. 나는 한 일본 아가씨를 보면서 서울에도 전통 막걸리의 거리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다양한 맛과 색상을 자랑하는 전통 막걸리 가게 수십 곳이 자리한 거리는 외국 관광객들을 강렬하게 현혹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손에 목각인형을 들고 가게를 나섰다. 오타루의 거리에는 조금씩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었다. 이 거리는 운하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과거로부터의 역사를 간직한 가게들이 끝없이 아름답게 이어지고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 이 가게들을 그래도 한 번씩은 둘러보고 삿포로로 가는 기차를 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나는 괜히 발걸음을 서둘렀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260편이 있습니다.



태그:#오타루, #사카이마치도리, #르타오, #키타카로, #일본 목공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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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와 외국을 여행하면서 생기는 한 지역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하는 지식을 공유하고자 하며, 한 지역에 나타난 사회/문화 현상의 이면을 파헤쳐보고자 기자회원으로 가입합니다. 저는 세계 50개국의 문화유산을 답사하였고, '우리는 지금 베트남/캄보디아/라오스로 간다(민서출판사)'를 출간하였으며, 근무 중인 회사의 사보에 10년 동안 세계기행을 연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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