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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가수 양희은씨가 부른 '한계령'이란 노랫말이다. 조용하고 차분하게 들려오는 양희은씨의 노래와 노랫말을 곱씹으면 왠지 가슴속에 묻어놨던 까닭모를 설움이 밀려온다. 노랫말을 쓴 이는 정덕수씨. 그는 오색약수터 인근에 산다. 삶의 길에서 그를 만났다.

 

100인 닷컴의 20명이 모여 상주투어에 나섰다. 상주곶감명가와 도림사를 구경한 일행은 승곡 녹색농촌체험마을로 이동했다. 마을에서 직접 만든 손두부와 돼지고기는 막걸리 안주로는 안성마춤이다.

 

저녁을 먹은 일행은 밤 9시쯤에야 캠프파이어를 시작했다. 블로거들의 캠프파이어란 노래를 부르고 장기 자랑하는 친목도모가 아니라 살아온 이야기며 글 쓰는 이유를 소개하고 공감하는 자리다. 

 

잠바와 두툼한 외투를 걸쳤지만 11월 말의 가을밤은 옷깃을 여미게 한다. 지름 5m의 중간에는 장작더미가 불타고. 매캐한 연기와 타닥타닥하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불씨가 얘기를 삼키고, 불이 꺼질만하면 장작과 몽둥이가 통째로 불속에 던져진다.

 

불당번은 한계령의 작사자 정덕수씨. 나무와 항상 가까이하는 강원도 산골에 살아서일까. 꺼질만하면 나무더미에서 통나무를 가져다 놓고 불이 잘 타도록 뒤적거린다.

 

전국에서 모인 이들. 이야기가 끝이 없다. 사는 이야기며 글쓰기를 시작한 동기며, 가슴 아팠던 얘기에 공감하느라 밤 12시가 다 됐다. 얘기에 참여하려던 동네 주민은 추운 밤인데 이렇게까지 오래 얘기할 줄은 몰랐단다. 만나고 싶었던 세 명의 블로거들과 대화를 나눴다.

 

정덕수 - 까닭모를 서글픔이 한계령이란 시를 낳아

 

- 한계령이란 시를 쓰게 된 동기는?

"한계령에서를 쓴 동기는 특별한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제 희망이었습니다. 당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가난한 가정 형편으로 상급학교를 가지 못하고 객지로 나갔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제 삶에 대한 까닭모를 서글픔에 늘 아파야 했습니다.  

 

 

1981년 10월 3일 대청봉에서 한계령 코스로 하산하던 중 길을 헤매다 늦게야 지금의 한계령휴게소 앞에 도착했습니다. 지척엔 제 고향인 오색이 있었지만 잠시 그 자리에 머물렀다 떠나야 했습니다. 그런 여러 생각들이 한계령에서를 쓰게 된 것입니다."

 

- 오색약수터에서 사신다고 들었는데 생계수단은?

"남들과 같이 세끼 밥 먹고 삽니다. 조금 다른 거라면 자연식 위주로 산나물이나 달래와 냉이 같은 걸 즐겨 먹습니다. 산나물은 봄철이면 제겐 큰 수입원이 되고요. 그게 생계수단이랄 수 있습니다. 1년의 절반은 블로그를 관리하지 못하는데 그 기간은 가족들을 위해 뭔가 돈벌이 하는 기간입니다. 글만 써서 밥을 먹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어려운 일이라 노력만 할 뿐입니다."

 

- 인생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아직은 인생을  정의할 정도의 수준은 못 된다 생각합니다. 다만 가장 낮은 자세로 상대를 공경하면 그게 도리어 어느 순간 저에 대해 이롭게 작용한다는 것 정도는 터득했습니다."

 

- 사회에 하고 싶은 얘기는?

"함께 아파할 줄 아는 사람이 더 많은 세상이 되면 덜 아픈 사회가 될 것입니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타인을 상처주고 짓밟아서라도 잘살고 싶어 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현상이 빚어지는 거라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를 보며 참으로 많이 분노를 느낍니다."

 

정씨는 블로거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우리 블로거들이 하는 말 한 마디가 아무리 보잘 것 없을지라도 분명히 그걸 바탕으로 세상은 변하게 마련입니다. 문화는 세상과 소통하는 창(窓)입니다".

 

즉, "블로그는 세상과 소통하는 창이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아래에 실린 정씨의 시가 블로거들에  대한 정의를 함축하고 있다.

 

눈송이 같은 한 마디

 

솔가지 위

나풀거리던 눈송이

가지를 부러뜨리네.

 

내가 던지는 한 마디가

솔잎에 내려앉는

눈송이 인 줄 아네.

 

김용택 - 학생 8명에 교사 10명인 '별+초학교' 운영 중

 

"내가 뭘 잘한 게 있다고 훈장을 받노? 훈장은 잘한 사람이나 공적이 있는 사람에게 주어야지 정년하면 너도나도 다 주는데…. 내가 특별히 잘한 게 없어 거절했어요"  

 

몇 년 전 정년퇴임할 때 주는 훈장을 거부한 교사가 있다고 해서 화제에 오른 김용택씨가 훈장받기를 거부한 이유를 물었을 때 답변한 말이다. 초대 전교조 마산지회장과 경남지부장, 전국전교조위원장을 대행했던 김용택씨는 올해 67세다.

 

그는 현재 마산 부림시장에서 어시장으로 내려가는 길 옆에 '별+초학교'라는 학교를 운영 중이다. 이유는 공립대안 학교인 태봉고등학교에서도 한 학생이 퇴학당하는 걸 보고 저 학생이 갈 곳이 어디인가? 고민하다 학교 이탈자 문제를 생각하게 됐다. 그가 조사한 바로는 지난해 전국에서 7만여 명의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고 있다는 것이다.

 

"방황하는 학생들을 위해 힘이 되어보자"며 태봉고에 근무하는 김상열 선생님과 합의하여 야학을 시작했다. 학교 이탈학생이나 새터민 그리고 다문화가정 중 희망하는 학생들을 모아 고입 혹은 대입검정 고시반을 만들자고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

 

"내가 좋은 선생님이 되는 것, 인간적으로 그들을 대해 주는 것. 그들 편에 서는 것 정도가 내가 기껏 교직생활에서 신념으로 살아왔다는 것 말고는 다른 점이라고는 없었던 같아요. 또 내가 어려운 시절을 살아오지 않았다면 이런 일을 시작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검정고시반을 모집하려 했지만 지원생이 거의 없어 방과후학교 형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 전교조 교사들이지만 토요일을 제외한 매일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완전무상으로 가르치고 있다.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상담교사 등 교사 10명에 학생은 8명이다. 예약한 학생까지 10명의 식구가 '별+초학교'의 전교생이다.

 

김태윤 -3년 동안 250편의 글을 쓴 중딩 블로거 '태윤이의 놀이터'

 

김태윤 학생은 현재 중3이다. 중1때부터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한 블로그가 250편이 넘는다. 주제라야 학교생활, 책, 영화와 주변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것들이다. 블로그를 하면서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는 게 좋다는 김군에게 블로그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물었다.

 

"사람들은 블로그를 하면 공부에 지장이 있지 않느냐고 물어요. 하지만 블로그는 30분 정도만 하고 공부하니까 공부와 블로그는 별개입니다. 이제 글을 잘 쓰게 되었고 책을 많이 보면서 세상사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단점으로는 저는 진정성을 가지고 글을 썼는데 악플이 들어올 때입니다. 악플을 보고 실망했고 세상에 대해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처음은 맞대응했지만 요즘은 악플이 들어와도 대응하지 않고 삭제합니다"

 

장래 공립대안학교인 태봉고에 진학해 음악, 농사, 춤 등의 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훌륭한 PD가 되고 싶다는 태윤이. 중학생의 소리를 전하는 그의 작은 외침은 또 하나의 작은 눈송이다.

 

블로거들의 작은 외침이 모여 눈뭉치가 되고 눈은 거대한 눈사태를 이뤄 세상을 바꾼다.

덧붙이는 글 | '희망제작소'와 '네통'에도 송고합니다


태그:#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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