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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장기요양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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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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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님이 오시는구나. 김장은 했냐? "

깊은 잠에 빠지신 듯 보이던 어머니가 언제 눈을 뜨셨는지 창밖에 내리는 눈을 보고 계십니다. 어머니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7월 초 고관절 골절을 당하시고 벌써 다섯 달째 병석에 누워 계십니다.

다치기 전에도 연로하신 탓에 거동이 수월하진 않으셨던 어머니. 자식들은 혹시나 낙상사고를 당하지 않을까 싶어 집 안에만 계시라고 잔소리를 했지만 어머니는 아랑곳 않으시고 화창한 날이면 살그머니 문을 열고 집 나서기를 좋아 하셨습니다.

사실 자식들의 걱정에도 바깥 바람을 쐬러 나가시는 어머니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노인이라지만 다리를 전혀 쓰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혹시나 당하게 될 사고가 무서워서 실내에서만 지낸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실 테니 말입니다.

"너무 걱정마라. 살살 다니면 된다. 에리베타 타고 내려가서 집 앞 놀이터에 잠깐 앉았다 오는 건데 넘어질 일이 뭐가 있냐. 집안에만 있으니까 답답해서 그래."

하지만 노인들의 사고는 늘 예고 없이 찾아오는 법. 조심하고 또 조심하신다던 어머니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쓰러지셨습니다. 아마도 수시로 찾아오는 저혈당 증세가 나타났는지 쇼크로 혼절을 하면서 엉덩방아를 찧으신 것입니다.

연로하신 어머니의 고관절 골절...5개월째 병석에

몇 초간의 아득함이 사라지고 정신이 돌아왔을 때 이미 어머니는 다리를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합니다. 황급히 119를 불러 타고 병원으로 달려갔지만 고령에다 극심한 골다공증까지 가지고 계신 어머니의 뼈는 복구가 어려울 만큼 부서져 버렸습니다.

수술조차 받기 힘든 몸 상태였던 어머니는 그날부터 누워서 대소변을 받아 내야하는 중환자가 되셨습니다. 그렇게 병원 침대에 누워 지내시기를 5개월. 통증은 사라지고, 침상에 앉아서 스스로 식사도 하실 수 있을 만큼 좋아지셨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다리를 쓰지 못하시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용변은 물론 목욕과 이동도 불가능하신 상태입니다.

사고 후 한 달 동안 정형외과에 입원해 있으시던 어머니를 요양병원으로 옮긴 것은 간병 때문이었습니다. 따로 간병인을 두지 않고 형님과 둘이 이틀씩 돌아가며 어머니 곁에서 밤을 새우다보니 두 가정 모두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정형외과 퇴원 후 집에서도 얼마간 모셔 보았지만 대소변을 받아내고 목욕을 시켜드리는 것도 큰 일이지만, 수시로 찾아오는 저혈당 쇼크 때문에 119를 불러 타고 병원으로 달려 가야하는 것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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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130만원에서 150만원의 큰 비용을 부담하면서까지 어머니를 집이 아닌 요양병원에 모실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요양병원은 의사가 상주하고 있으므로 저혈당이나 노인들에게 찾아올 수 있는 또 다른 위급한 증세에도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 어머니와 같이 다리를 쓰지 못하는 노인들을 위해 욕창 방지가 가능한 이동식 침대와 이동식 변기, 침대로 이동해서 목욕을 할 수 있는 환자용 욕실 등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간병인이 상주하고 있어 가족이 곁을 지키기 않아도 된다는 것이 보호자로서는 여간 안심이 되는 일이 아닙니다. 어머니가 입원한 요양병원에서는 보통 간병인 한 명이 한 병실을 맡아 혼자서 대여섯 분의 환자를 공동 간병합니다. 하루 종일 환자의 식사, 간식, 목욕, 투약, 대소변 관리를 하는 간병인들은 환자 보호자에게 참 고마운 존재입니다.

저희 가족이 매달 지불해야 하는 병원 입원비 130~150만원 중 60~70만원 정도는 간병비로 책정되어 있는데, 그 분들의 수고에 비하면 그리 큰 비용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병실 공동이 아닌 개인 간병을 받으려면 약 140만원 정도를 부담해야 하니까요.

병원 생활을 하다보면 환자 보호자들은 노인장기요양보험에 관한 이런 저런 정보를 나누게 됩니다. 특히 어머니가 입원하신 병원은 노인요양병원이다 보니, 대부분의 환자들이 노인장기요양보험 대상자였습니다.

2008년 7월부터 시행된 노인장기요양보험은 고령이나 치매 등 노인성질병(치매, 뇌혈관 질환, 파킨슨 병 등)으로 인해 6개월 이상 혼자 일상 생활을 하기 어려운 노인들에게 신체활동이나 가사 지원을 제공하는 사회보험 제도입니다. 물론 노인성질환을 앓고 있는 모든 분을 지원하는 건 아닙니다. 조사원들의 방문 조사 등을 거친 뒤 1~3등급으로 나눠 차등 지원합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병원에서 환자 가족들이 모이면 어떻게 하면 노인장기요양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갑론을박 하는 장면들을 자주 만날 수 있습니다.

용변도 자유롭게 못 보는데...

"들어보니 요양보험에서 가능하면 등급을 안 주려고 한대요. 웬만큼 중환자가 아니면 받을 수 없다더라구요."

"아니 작년에 우리 옆집 할머니는 똑똑하고 말씀도 잘 하시는데도 휠체어 타신다고 2급받았던데요. 그 할머니 지금 요양원에 계세요. 요즘엔 요양원 시설이 좋아서 집에 있을 때보다 살도 찌고 좋아지셨다던데···."

"우리 노인네도 요양원으로 옮겨드리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1급이나 2급을 받을 수 있는거래요? 그게 의사 진단서가지고도 안 된다면서요?"

"의사보다 심사하러 나온 아가씨가 잘 써줘야 한답니다. 그 아가씨가 노인 분들 만나보고 뭐 써내는 게 있는데 그걸 잘 받아야한대요."

갑론을박하던 다른 보호자들과 함께 우리도 어머니의 노인장기요양보험 신청을 해보았습니다. 이야기했듯이, 어머니는 다리를 사용하지 못 하시기 때문에 보호자나 간병인의 도움 없이는 식사를 할 수 없고, 용변도 자유롭게 볼 수 없습니다. 이렇게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이라 우리 가족들은 어머니에게 요양원 시설 입소가 가능한 1급이나 2급 정도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신청 후 며칠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입원하신 병원으로 의료보험공단 여직원이 심사하러 나왔습니다. 여직원은 침대에 눕거나 앉는 것만 가능한 어머니의 운동능력과 여러 가지 질문을 통해 지적 능력 등의 상태를 체크해 갔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등급이 나왔다는 형님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재가 3급'이라는데 이게 뭐야? 3급이면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모실 수 있는 거야? 어디 공기도 좋고 시설도 좋은 요양원을 알아봐야지. 병원비 반값이면 좋은 요양원에 모실 수 있다고 들었는데, 맞지?"

실망스럽겠지만 형님은 잘 못 알고 계셨던 겁니다. '재가 3등급'의 경우 병원에 입원해 있는 노인들에게는 전혀 혜택이 없습니다. 퇴원해서 집으로 와 계셔야만 하루 4시간 요양복지사의 방문요양을 받는 것이 혜택의 전부입니다. 노인장기요양보험은 환자가 일반 병원이 아닌 요양원이나 집에 있을 때 신체활동이나 가사를 지원하는 제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형님은 크게 실망하셨습니다.

"뭐? 저렇게 병원에 계신 분을 집으로 모셔 와야 혜택을 준다는 거야? 그것도 하루 4시간? 4시간 가지고 뭐해? 대소변 기저귀 갈아드리고 식사랑 간식, 인슐린 주사에 약 드리고 목욕도 시켜드리고···. 하루 4시간 가지고 어림도 없지. 그럼 나머지 시간엔 누가 어머니를 돌봐드려? 내가 일도 그만두고 집에 들어와 있어야 한다는 거야? 24시간 중 4시간 도와주는게 어디 도와주는 거야? 내가 정말 화가 나서···."
노인장기요양등급인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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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급을 인정하지 못하겠다고 분통을 터뜨리던 형님은 마침내 해당 보험공단 사무실을 찾았고 거기서 등급변경요청 사유서라는 것을 받아오셨습니다.

"사유서를 써 오래. 사유서가 합당하면 3급이라도 '시설입소 3급'으로 변경 할 수 있다네. 사유서에 가족이 아닌 사람의 동의도 받아 오란다. 우린 의사선생님한테 동의를 받으면 될 것 같아."

부랴부랴 사유서를 작성해 다시 접수를 시킨 형님. 며칠 뒤 또 분통을 터뜨리며 전화를 하셨습니다.

"사유서가 그게 아니래. 그건 치매가 있는 노인만 받을 수 있는 거라네. 그럼 왜 그날 그렇다고 말해주지 않았던 거야. 이것들이 등급 안 주려고 골탕을 먹이는 것 같아. 이렇게 사람을 힘들게 하니? 이번엔 재심사 신청서를 보내란다. 뭐 인터넷에서 다운받아서 팩스로 보내라는데 왜 이렇게 사람을 힘들게 하니?"

혜택 받으려면 퇴원하라고? 등급이 뭔지, 구차하다

형님 말대로 인터넷에서 파일을 다운받아 재심사 요청 서류를 팩스로 접수시켰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신청자의 신분증을 복사해서 함께 송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다시 전화가 왔답니다. 첫 번째 접수 시 동일인의 신분증 복사본을 첨부했는데 재심사 요청에 중복해서 신분증을 요구하는 것은 무슨 이유인지 답답했습니다.

그마나도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도록 알려주지도 않고 신청서를 보낸 뒤 다시 신분증을 보내라니. 아무리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신청 하는 보호자의 입장이 궁색하다지만 매끄럽지 못한 일처리에 화가 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도 혹시 노인장기요양보험심사에 나쁜 영향을 줄까 싶어 아무 말 못하고 하라는 대로 수차례 접수서류를 들고 왔다 갔다를 반복했습니다. 등급이 뭔지 그걸 받기 위해 애면글면 매달리는 우리의 처지가 초라하고 구차하기 짝이 없습니다.

요양원에 입소하는 노인들과 마찬가지로 병원에 계신 노인들도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데, 왜 병원에 계신 분들은 노인장기요양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을까요? 거동을 할 수 없는 노부모가 오랜 기간 병원 생활을 하고 있다면, 그 가족들은 대개 이와 비슷한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병원 입원의 경우 이미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에 2중 혜택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를 압니다. 하지만 이는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 등의 사유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생활하기 어려운 노인들에게 신체활동 또는 가사지원 등의 장기요양급여를 사회적 연대원리에 의해 제공"한다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근본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여겨집니다.

병원에 계신 환자 역시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생활 할 수 없기에 병원 신세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아직은 어머니의 재심사가 나오지 않은 상황이라 결과 또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지만 병원에서 만난 다른 보호자들과 동일하게 느끼는 것은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문턱이 너무 높고, 등급의 이유를 납득할 수 없는 경우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야심차게 시작하고 대 국민 홍보전도 많이 했던 노인장기요양보험.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요? 실망을 감출 수 없습니다.


태그:#노인장기요양보험, #요양병원, #요양원, #고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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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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