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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랜 만에 나의 결혼 중매 할머니를 뵈러 갔다. 햇수로 2년여 만이었다. 할머니는 여전했다. 이런저런 얘기꽃을 피우다가 몇 년 전에 돌아가신 할머니의 남편인 할아버지의 일대기를 듣게 되었다.

할아버지가 키는 작았어도 인물은 훤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세상에 그 인물 그대로 묵히기 아까우셨는지 인물값을 상당히 많이 하였다고. 이제는 다 지나간 이야기이고 할아버지도 떠날 때는 신사답게 할머니 고생 안 시키고 떠났기에 미움도 원망도 없이 다만 웃으면서 할머니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세상에 바람도 바람도 어쩜 그리도 피우는지. 28, 30세 때 두 번, 그리고 마흔 넘어서 두어 번 그리고 중간 중간 잠깐씩 여자 없는 날이 없었지. 춤도 얼마나 잘 추는지 댄스 대회 나가서 맨날 상 타오고...."
"그 옛날에 춤을 잘 추셨다니 놀라운데요."

"나가기만 하면 여자들이 줄줄이 붙고 여자 데리고 와서 석 달, 넉 달씩 살게 되면 밥해 바치고 빨래해 바치고. 어느 때는 애 딸린 이혼녀가 애까지 데리고 와서 서너 달 묵었는데 그 애 옷까지 사주며 영감이랑 잘해보라고 떠받들어 주었지."
"왜요?"

"나는 영감 없이도 살 수 있었거든. 영감 없이 살고 싶기도 했고. 그렇게 여자를 데리고 오는데 살고 싶은 여자가 어디 있겠노. 애들 교육상도 안 좋고. 또, 애들 키우고 돈 벌고 등 일절 가정일은 내가 다했기에 영감이 필요 없기도 했고. 그래서 바람나 데려온 여자들이 부디 영감이랑 살아준다면 나는 애들 하고만 살 생각이었지. 그런데 여자들이 서너 달 살고 나면 모두들 인사하고 가버리는 거야."
"왜요?"

"형님이 너무 어질어서 도저히 더 있을 수가 없고, 또, 무엇보다 저는 형님처럼 00씨에게 잘 하지 못하겠기에  떠납니다. 그동안 면목 없고 고마웠습니다."

그렇게 떠나고 나면 할아버지는 또 새로운 여자를 데리고 오고, 할머니는 밥해주고, 또 떠나고 또 데리고 오고 그렇게 한평생을 살았다고. 그중 절정은 당시(1970년대?) 돈으로 꽤 큰 160만 원인가를 들고 나가 다 쓰고 할아버지는 거의 사망 직전의 몰골로 들어와 기절한 듯 도무지 기운을 차리지 못하였다고 한다.

할머니는 자그마하다. 그러나 통은 얼마나 크신지..^^스물부터 여든 넘은 지금까지 선남선녀 짝지어주고...화초는 또 얼마나 잘 키우시는지...^^
 할머니는 자그마하다. 그러나 통은 얼마나 크신지..^^스물부터 여든 넘은 지금까지 선남선녀 짝지어주고...화초는 또 얼마나 잘 키우시는지...^^
ⓒ 정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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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요?"
"보약 한재, 소다리 긴 것 하나, 뱀장어 세 마리를 고아먹이니 겨우 소생하더라."

"할아버지가 그 정도였으면 아드님도 한 가닥 할 만한데 할머니가 자식들에게 할아버지 험담을 하진 안으셨나 봐요?"

"머 할라고 그래. 안했지. 내가 이래 뵈도 머리는 있거든. 호호.  푸념해봐야 자식한테 좋을 것 하나 없어. 오히려 눈치 못 채게 감쌌지."

할머니의 현명한 처신 때문인지 할머니의 1남 3녀는 모두 부모로부터 좋은 것만 물려받았다. 할머니의 어진 성품과 생활력에다 할아버지의 '인물'을 닮아 다들 수려한 '외양과 내모'로 마음의 상처 없이 행복한 가정들을 꾸리며 잘살고 있다.


태그:#중매 할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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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이 순간 그 순간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순간들.... 문득 떠올릴 때마다 그리움이 묻어나는, 그런 순간을 살고 싶습니다. # 저서 <당신이라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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