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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이 노래가 되고, 노래가 일상이 되기까지

 

성미산을 지키기 위한 마을 주민들의 노력은 이제 일상이 되어 가고 있다. 지난 5개월 간 산중턱에 천막을 치고 산을 지키던 농성이 최근엔 산 아래 공사장 입구에서의 피켓시위로 이어지고 있다.
 
얼마 전 마포구청에서 도로점용허가가 떨어진 후 본격화 되고 있는 공사장을 지켜보며 아이들의 안전한 등하교를 지키는 일로 전환된 것이다. 높다랗게 둘러쳐진 펜스 안에서 산은 하루가 다르게 깎여 나가고,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아이들의 안전권은 나날이 위협받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사람들은 말한다, 이쯤 되면 끝난 게임 아니냐고. 하지만 마포구 유일의 자연숲으로서의 성미산의 생태적 가치는 여전하며, 아이들이 안전하고 평화롭게 교육받을 권리를 이대로 포기할 수도 없는 일이다. 포클레인에 맞선 몸싸움을 넘어 사람들은 노래와 춤과 시와 그림으로 성미산을 지키기 위한 문화적 열정을 멈추지 않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성미산 마을 사람들의 산 지키기 싸움은 일상 속으로 더욱 깊이 파고들어가는 것이다.

 

지난 5월 이래 어둑해진 오후 8시면 어김없이 열리는 성미산 문화제에서는 마을주민들과 성미산 지키기에 동의하는 타 지역 문화패들의 공연이 열리고 있으며, 12월 공연을 앞둔 마을합창단의 노래 소리도 점차 크게 울려 퍼지고 있다. 이들에게 '산 지키기'는 이제 마을살이의 자연스런 풍경이 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성미산 마을은 지금 합창 연습 중

 

'두 달 작전, 성미산마을 지키기 프로젝트 마을합창단'을 시작하지도 어느새 한 달이 훌쩍 넘어갔다. 단원과 스태프들을 모집하고 오디션을 통해 성부를 나누고, 무대에 올릴 곡을 선정하는 등 숨 가쁜 일정이 지나가는 동안 사람들은 매주 한 차례씩 모여 한바탕 축제와도 같은 연습을 이어 나간다. 이제 마을에서는 '합창단'의 소문이 퍼지며 공연에 대한 기대로 술렁이고 있다.

 

마을 사람들로 구성된 합창단을, 그것도 고작 두 달 동안의 연습으로 무대에 올린다는 게 말처럼 그리 쉬운 과정은 아니다. 100여 명이나 되는 합창단이 한 자리에 모여 연습을 한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닌 것이다. 바쁜 시간을 쪼개 연습에 참여하는 것도 그렇고, 우선은 연습장소를 물색하는 일부터가 난관이다.

 

넓은 홀이 있어야 하고 피아노도 필요하다. 학교나 기관마다 이미 행사 일정들이 차 있어 고정된 하나의 장소를 찾기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한 번은 마을극장에서, 다음은 성미산학교, 다음은 동교초등학교 소강당으로, 매번 바뀌는 장소를 일일이 섭외하고 공지하느라 스태프들은 진이 다 빠지지만, 정해진 시간이면 하나둘 자리를 빼곡히 채우며 들어서는 사람들의 행렬은 언제나 그 자체로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하곤 한다.

 

물론 100% 출석도 애초부터 가능하지 않다. 다들 생활인으로서의 자기 일정들이 분주하다. 김장을 담느라, 어르신의 병환을 돌보느라, 자녀의 학업과 그밖에 중요한 다른 일정을 챙기느라 더러 빠지는 단원도 생기기 마련이지만, 사람들은 그리 걱정하지 않는다. 다음 연습에는 누구보다 먼저 달려와 지난 시간의 진도를 따라가느라 열심인 모습을 수도 없이 목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살면서 이런 소리를 낼 수 있을 줄이야!

 

"연습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는데, 어떻게 된 게 이 시간이 가장 치열한 연습시간이 되더라구요. 피아노 주변으로 우루루 몰려가 자기가 잘 안 되는 부분을 한번 쳐 달라며 불러보기도 하고, 어떤 분은 실력이 좀 나아 보이는 옆 자리 동료에게 핸드폰을 들이대고 녹음을 하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해요. 각자 돌아가서 연습할 때 참고하려는 거죠."

 

스태프로 활동하고 있는 유리씨는 단원들이 보여주는 이런 열의만으로 이미 100인 합창단 프로젝트는 성공적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공연날짜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오니, 사람들의 표정에 조금씩 초조감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정말 노래를 잘해서 시작한 것도 아니고, 난생 처음 무대라는 곳에 오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보니 막상 겁이 덜컥 나는 것이다. 이제 3주 정도밖에 안 남은 시간 동안 최대한 곡을 외우고, 소리를 다듬어야 한다.

 

"저는 소프라노 파트인데, 살면서 내가 이런 소리를 내볼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글쎄 한 옥타브 높은 '솔'까지 올라가더라구요. 아직 자신은 없지만, 열심히 해 봐야죠."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마을 주민 '첫눈'의 말이다. 실상 이들은 매주 함께 모이는 연습 외에 살아가는 '틈새시간'을 활용해 맹연습을 하고 있다. 출퇴근하는 차 안과 저녁 식탁을 차리는 주방과 가족들이 함께 모이는 집안 거실이 모두 이들의 연습실이다. 단원들은 이런 생활 속의 연습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카페에 올림으로써 서로를 독려하고 즐거운 웃음을 함께 나누며 부족한 부분을 채워 가고 있었다. 이 또한 한 가지 뜻을 향해 노래하고 웃으며 한 목소리를 내 보는 경험의 즐겁고 유쾌한 기록으로 남겨질 것이다.

 

진보 교육감에게 보낸 첫 번째 합창, '우리는 당신의 약속을 기억한다!'

 

본격화된 성미산 공사를 바라보며 사람들의 시선이 모아진 곳은 서울시교육청이었다. 진보 교육감이라는 서울시 교육감마저 시종 '달리 할 것이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민들은 특히 분통이 터진 것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곽노현 교육감 후보는 망원우체국 사거리에서 "아이들의 학습권, 건강권, 안전권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아이들의 인권입니다. 어떤 행정조치라도 만약에 아이들의 인권, 안전권, 건강권, 학습권을 해친다면 그것이 확정되기 전에는 언제든지 재검토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약속한 바 있다. 지난 16일 오전 10시 30분, 교육청 앞에서 진행된 주민들의 집회는 진보교육감에게 보내는 최초의 정식 항의이자 최후통첩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한편 이 자리는 마을 합창단의 '첫 무대'(?)이기도 했다. 애초에 성미산 살리기의 일환으로 시작된 합창단이었으니 성미산을 지키는 일에 한 목소리를 내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며 자발적인 참가를 결정한 것이다. 게시판에서 의견을 모으고, 무슨 노래를 어떻게 부를 것인가를 의논했다.

 

그러나 의욕에 비해 한계가 너무 뚜렷했다. 부족한 연습 상태와 평일 오전 시간이라 직장 다니는 단원들이 모일 수 없다는 점에서 '합창단'의 이름을 걸고 나서기는 아무래도 무리가 따랐다. 그렇다고 현재의 성미산 지키기에서 매우 중요한 고비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교육청 앞 집회를 그냥 두고 가기도 어렵고. 결국 절충된 안은 일부 합창단원이 포진한 가운데 집회 내용에 참가자 전원이 부르는 '합창'을 주요 프로그램으로 넣는 것이다. 곡목은 일반 주민들과 함께 불러야 하니 누구나 부를 수 있는 '아침이슬'과 '뭉게구름'으로 정했다.

 

기온이 뚝 떨어진 겨울 아침, 교육청 앞 비좁은 경사로에 펼침막을 들고 선 주민들은 서울시 교육감에게 보내는 공개서한을 낭독한 후 함께 노래를 불렀다. 공연이라기엔 뭣하지만, 그래도 화음이 들어간 노래소리가 제법 들을 만했다. 팔 내두르는 격렬함 대신 마을 사람들의 목소리로 전달하는 간절함이 느껴지는 하모니는 적지 않은 울림을 간직하고 있었다.

 

즐거운 인터뷰 놀이, '아름다운 만남'

 

마을 합창단 내에서는 요즘 눈에 띄는 또 하나의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아름다운 만남'이라 일컬어지는 일종의 인터뷰 놀이다. 단원으로 참가하는 마을 청년 '산솔'과 '부자소리'가 함께 작당한 야심찬 기획으로 단원들끼리 '서로 알고 지내자'는 목적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합창단 연습이 있는 날 쉬는 시간을 이용해 단원들에게 기습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함께 노래하는 동료로서의 친밀감과 서로 몰랐던 면모들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고 있다고 한다. 인터뷰 결과는 합창단 카페 게시판에 기사로 정리되어 모든 회원들에게 공개된다. 어떻게 해서 합창단에 참가하게 되었는지, 노래를 하면서 달라진 점은 무엇인지 등을 진솔하게 나누면서 사람들은 다시 한 번 마을합창단원으로 함께하는 의미와 즐거움을 되새기게 되는 것이다.

 

사람들의 유쾌하고 상큼한 사연들에 점점 단원들의 반응도 뜨거워지고 있다. 남은 연습 기간 동안 몇 명의 이야기가 더 담길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성미산 지키기를 통한 사람 만나기'라는 점에서 합창단이 주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마을 사람들에게 있어 산을 지킨다는 것은 결국 삶을 지키는 것. 이런 마음과 정서가 공통적으로 확산되고 있었기에 '마을합창단'이라는 시도가 가능했었다. 서로의 삶을 함께 느끼고 바라본다는 것과 함께 살아가기의 의미가 '합창'이라는 형식과 의미와 맞물려 있는 것이다.

 

바쁜 시간을 쪼개 연습 일정을 맞추고, 안 올라가는 목소리를 다듬어 가며 서로를 느끼는 동안 사람들은 어쩌면 아주 길어질지도 모르는 '성미산 지키기', '성미산과 함께 살아가기'의 꿈을 확신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산이 있어 노래를 하고, 노래를 하며 힘을 얻는 행복한 에너지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12월 15일, 마을의 소리를 만나는 날

 

처음 계획은 거리에서의 게릴라 콘서트에 촛점이 맞춰졌으나, 추운 겨울이라는 점에서 공연의 중심이 실내 공연으로 변경됐다. 실내 공연 날짜는 12월 15일(수) 오후 8시, 조계사 옆에 있는 불교역사문화기념관이다. 100명이 함께 무대에 오르는 역사적인 마을 합창단의 공연이 바로 이곳에서 펼쳐진다.

 

최대 300여 명이 들어가는 객석은 모두 유료 관객으로 채워질 계획인데, 공연 수익은 당연히 성미산을 지키는 모든 활동에 쓰여지게 된다. 직장에 다니는 단원들은 이날 하루를 월차로 비워놓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리허설과 공연을 위해 사실상 하루 전체의 시간이 투여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유료공연이라는 부담이 생각보다 만만치가 않다. 아무리 아마추어 마을합창단이라지만, 관객들이 함께 공감하고 즐기기에 손색없을 정도의 수준 있는 공연으로 보답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연습하고 또 연습하는 것 말고 달리 답이 없다며 부지런히 연습장으로 향하는 사람들 모습 속에 묵직한 책임감이 느껴진다.

 

실내 공연 이후에는 원래 목적했던 야외공연도 열린다. 12월 18일(토) 오전 11시, 성미산 공사현장 앞에서 전체 단원이 참석하는 공연을 펼칠 계획이다. 성미산 때문에 시작한 합창단의 소리를 파헤쳐지는 성미산 현장에서 울려보자는 의미다. 같은 날 오후에는 홍익대학교 정문 앞에서 또 한 차례의 공연을 함으로써 산을 지키고 산과 마을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고자 하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게 될 것이다.


태그:#성미산마을, #마을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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