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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노스다코타 평원의 시골에 교환학생으로 가 있는 고등학교 2학년의 아들이 보내온 메일을 읽으면서 저는 새롭게 '화목'과 '사랑'에 대해 인식하게 됩니다.

영대는 문화충격은 없다고 얘기합니다. 그들이 말없이 실천하는 사랑과 화목이 우리와 다를 바가 없는데 어찌 그것이 문화충격일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콘서트에 참가하는 영대의 무대복을 구하기 위해 읍내를 뒤지고, 마침내 이웃집에서 빌려   온 긴 바지의 단을 감아올려 바느질해주는 호스트아빠. 그리고 아무 말 없던 온 가족이 그 콘서트현장의 객석에 깜짝 등장해서 영대의 연주를 지켜보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영대가 말하는 핵심에 대해 동의하게 됩니다.

영대가 이 행복에 대해 목청을 높이는 편지를 통해 세계의 헤게모니 쟁탈전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패권국으로서의 미국이 아니라 화목과 사랑만이 모두인 미국 중북부 시골 서민의 모습을 새롭게 보게 됩니다.

아버지 알렌(Arlen)과 어머니 쉐릴(Sheryl) 그리고 커티(Kurtti) 가족의 형제들은 제게도 '사랑은 아낌없이 퍼주는 것'임을 알게 합니다. _ 이안수 註

아들의 메일
From: "이영대"
To: "이안수"
Sent: 10-11-07(일) 13:59:50
Subject: 쁄라고등학교에서의 콘서트에 참여했어요

엄마, 아빠! 오늘 시간이 허락되어 메일 드립니다.

이틀 전 목요일에는 헤이즌의 밴드부가 쁄라고등학교에 가서 하는 공연이 있었습니다. 매년 한 번씩 하는 쁄라와 헤이즌의 합동콘서트Annual Beulah-Hazen Joint Concert였습니다. 검정 바지에 하얀 셔츠, 넥타이와 검정구두가 필요했는데 한마디로 연주용 무대복이죠. 시내를 다 뒤져도 제사이즈나 그런 연주복을 찾을 수가 없어서 결국 이웃 에릭에게 빌렸습니다.

이웃형인 에릭에게 빌려 알렌 아빠가 바지단을 올려준 연주회복
 이웃형인 에릭에게 빌려 알렌 아빠가 바지단을 올려준 연주회복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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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의 덩치가 하도커서 바지가 한 뼘이 더 길었습니다. 겨우겨우 아빠가 서툰 바느질솜씨로 바짓단을 올려 꿰맨 다음 갔습니다. 공식적인 자리고 연주까지 하는 터라 카메라를 가져가고 싶었지만 우리가족이 안 오는 줄 알고 악기만 가지고 갔습니다.

연주를 하기위해 무대에 올라가서 보니 우리 가족 4명이 모두다 왔더라고요. 아무말씀이 없어서 못 오실 줄 알았는데 가족 모두가 객석의 중앙에 앉아 저를 지켜보고 웃어주는 걸 보았을 때 저는 정말 벅찬 감동을 주체하기 어려웠어요.

교환학생인 저에게 정말 아들같이 대해주시며 섬세하게 하나하나 모든 걸 챙겨주시는걸 보면 정말 감사하다는 말로서는 표현이 불가능한 감격을 매일같이 느끼고 있습니다.

영대가 연주자로 참가한 '뿔라-헤이즌 합동 콘서트'가 보도된 지역신문
 영대가 연주자로 참가한 '뿔라-헤이즌 합동 콘서트'가 보도된 지역신문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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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좀 알겠습니다. 미국에서의 문화충격이라는 건 단지 과장된 표현 같습니다. 하나하나 체험하고 배워가며 알고 보니 미국의 문화라는 것이 그리고 그들의 생각이라는 것이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들과 전혀 다른 것이 없어요. 가족 간에는 화목을 가장 큰 가치로 여기고, 남을 사랑하고 배려하는 것을 가장 아름다운 덕목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에요. 우리와 다른 것은 단지 젓가락대신 포크를 쓰는 것 같은 사소한 것들입니다. 화목하고 사랑하는 것이 컬쳐쇼크(Culture Shock)일 수는 없잖아요.

오늘 보내드리는 사진은 사냥한 사슴을 손질하는 아빠를 도와드리기 위해 호스트패밀리의 오래된 집에 잠시 들어갔을 때 찍은 사진이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새집을 짓기 전에 살았던 집입니다. 지금은 그저 창고로 사용할 뿐인 그 집안에 옛날 추억이 하나하나 묻어나는 물건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아들의 흔들목마을 직접 만든 알렌Arlen
아빠
 아들의 흔들목마을 직접 만든 알렌Arlen 아빠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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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삼형제가 아기때 타던 흔들 목마(rocking horse)같은 것도 그대로 있습니다. 그것은  아빠가 손수 만드시고 할아버지께서 칠을 하셨다고 해요. 아빠가 제게 그 말씀을 하시면서 정말 돌배기 제이슨을 위해 그 목마를 만드시던 때로 돌아가 옛 생각을 행복하게 회고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창고로 사용 중인 커티가족의 옛집에 보관중인 19년 된 흔들목마. 가족의 화목을 조용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창고로 사용 중인 커티가족의 옛집에 보관중인 19년 된 흔들목마. 가족의 화목을 조용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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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곳에서 찍어 보낸 디지털 사진들을 아빠가 한국에서 뽑아 앨범과 함께 보내준 그 사진들을 온 가족이 모여 정리했습니다. 그리고 그 앨범을 이곳 호스트엄마는 항상 가지고 다니면서 이웃사람들에게 자랑을 하곤 하십니다. 진정 행복이 무엇인지 그리고 사랑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를 이곳에서 많이 배우고 느끼고 있습니다.

가족들 모두가 저를 응원 온 장면을 사진에 담지 못해 굉장히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크리스마스이전에 헤이즌고등학교에서 하는 콘서트가 또 있어서 그때는 꼭 찍으려고 합니다. 아참 그리고 다른 연주회나 파티 때 필요해서 나중에 비스마르크나 Thanksgiving Day 때 한 번 더 시카고 근처의 할머니 댁에 가는데 그때 연주복을 하나 사기로 했습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누나들, 사부님, 사모님 등 모두에게 안부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곧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서울로 올라오실 때가 됐네요. 올라오시면 스카이프로 한번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해모도 잘 보살펴주세요!

이곳에 온 지 3달째가 다되어가네요.

다시 메일 드릴게요.

헤이즌에서 영대올림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미국교환학생, #화목, #행복, #문화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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