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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 후회와 눈물에 젖은 어린 엄마와 입양이 떠오르시나요? 그러나 여기,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아이를 키우는 양육 미혼모들이 있습니다. 저출산이라는 시기적 이슈 때문에 국회나 포럼 등에서 편견의 장막에 가려 투명인간 취급받던 이들을 부르기도 하지만, 현실적인 지원책은 아직 미약하기만 합니다. 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들을 만나 그동안 가슴에 담아뒀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기자주

한 미혼모가 아이를 안고 있다
 한 미혼모가 아이를 안고 있다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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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서울 광화문 인근에 위치한 한국미혼모가족협회 사무실을 찾았다. 19층 사무실 창 밖으로 북악산과 인왕산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사무실에 들어서자 목경화 대표가 부드럽게 말을 건네왔다.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참고1)와 같이 사무실을 쓰고 있어요. 저희가 얹혀 지내는 거죠."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 차분하고 나직한 말소리. 참으로 온화한 인상이었다.

- 반갑습니다 대표님. 어떻게 협회를 만들게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2005년에 미혼모가 되었어요. 그런데 막상 아이를 낳고 나니 정부의 지원정책에 대해서 미혼모의 입장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단체가 없더군요. 시설을 통하든, 사회복지사를 통하든 꼭 누군가를 통해야 했어요. 우리도 우리 목소리를 내고, 연대하기 위해 당사자 조직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했어요."

목 대표는 아이를 낳겠다고 결심한 뒤, 정부의 여러 정책을 검토해 보았다고 했다. 양육비 지원, 보육료 무료에 한부모 가정을 위한 임대주택 입주도 가능하다고 판단(참고2)하고 아이 하나 정도는 키울 수 있으려니 했단다. 그러나 아이를 낳은 후, 정작 서비스를 직접 신청해야 할 입장이 되어 대면한 현실은 달랐다고 했다.

"2005년 당시 기준으로 그런 서비스 신청 자격 요건이 월 급여 80만 원 이하였어요(2010년 현재기준은 110만 원). 그때 제 급여액이 100만 원 남짓, 세금 제하면 90만 원이 조금 넘는데 신청 기준 금액이 초과되어서 그 모든 지원혜택을 신청할 수 없었어요. 한 달에 80만 원 이상은 웬만하면 받거든요. 한마디로 현실성이 없었죠."

엄마 혼자 키우면 5만원, 입양가정에는 10만원 지원

그래도 목 대표는 자신은 소득이라도 있으니 일할 수 없는 엄마들이 받으면 되겠지라며 스스로를 위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2009년 복지예산을 검토하는 과정에서였다.

"원래 NGO 활동을 하며 각종 정책 비교를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 2009년 보건복지부의 입양 예산과 미혼모 예산을 비교하고는 너무 놀랐어요. 미혼모가 속하는 한부모 가정에는 양육비가 월 5만 원인데, 입양 가정에는 월 10만 원이었어요. 지원기간에도 차이가 났어요. 한부모 가정은 아동이 만 8세가 될 때까지 지원해 주는 반면, 입양 가정은 만 12세 미만까지였죠."

2010년이 되면서 한부모 가정 자녀도 만 12세 미만 까지로 연령은 동일하게 확대되었지만, 양육비의 차이는 여전하다. 엄마가 직접 키우면 저소득 가정에 한해 5만 원 양육수당을 받지만, 엄마와 헤어져 다른 가정에 입양돼면 소득 수준에 상관없이 10만 원을 받는다는 것은 아동 복지에 대한 국제규범(참고3) 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목 대표는 '미혼모는 아이를 키울 수 없다'고 여기는 전반적인 사회 인식이 정부의 정책을 양육보다는 입양 지원을 우선시하게 만들었다고 봤다. 이 모든 것이 당사자의 목소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게 목 대표의 생각이다.

- 그럼 언제부터 결성되어 활동을 시작하셨나요?
"2008년에 시작해서 조금씩 진행해 오다 2010년도에 본격적으로 사무실에서 활동을 하기 시작했어요. 협회라는 이름을 걸고 활동한 것은 2010년부터라고 할 수 있지요."

- 본격적인 활동은 2010년, 올해부터였는데 공무원 교육도 하고, 언론 인터뷰도 많이 하고, 영화도 찍으시는 등 활동이 많으신 것 같아요.
"신생조직인데도 불구하고 '저출산'이라는 시기적 이슈로 인해 많은 언론에서 미혼모에 관심을 가져주셨어요. 또 정부나 학회 쪽도 마찬가지고요. "

- 지금 협회 활동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일단 협회를 정식단체로 등록하는 것이죠. 후원회원이 100명 이상 되어야 하는데, 현재는 임의단체로 활동 중이에요. 정부로부터 인증 받은 단체가 아니라고 해서 신빙성, 투명성 같은 부분들을 미심쩍어 하기도 해요. 사업계획서 등을 제출할 때 선정되는 기준에 영향이 있기도 하고, 활동 범위에 제약도 받아요. 통장도 협회 이름으로 만들 수 없어서, 회원 개인의 실명을 이용한 통장을 활용하고 있답니다."

"학교 그만두고, 직장서 잘리고... 미혼모가 전염병 환자인가요?"

현재 대한민국 '한부모 가정'은 약 10%에 이른다. 그러나 그에 대한 지원은 미미하다. 사진은 미혼모를 소재로 한 영화 <과속스캔들>
 현재 대한민국 '한부모 가정'은 약 10%에 이른다. 그러나 그에 대한 지원은 미미하다. 사진은 미혼모를 소재로 한 영화 <과속스캔들>
ⓒ 과속스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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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으로 추진하실 사업 계획으로 어떤 게 있나요?
"이번에 16개 시·도의 미혼모 담당 공무원 교육을 통해 교육의 효과와 중요성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래서 내년엔 복지사 대상으로 교육을 해보고 싶고, 욕심을 내 본다면 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한 교육도 해보고 싶어요. 왜냐하면 미혼모에 대한 제일 심한 편견, 배척을 가진 곳이 바로 '학교'거든요.

- 선생님들 말씀인가요?
"그렇죠. 임신한 학생이 학교에 다닐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자퇴 아니면 퇴학이거든요. 학생이 학업을 원하는 경우에도 일방적으로 학교를 그만두는 방향으로 유도하는데, 미혼모가 무슨 전염병 환자인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학생은 학교를 그만둬야 하고, 직장인들은 회사를 그만두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죠."

목 대표는 미국이나 호주 등지에서는 미혼모 학생들이 학교를 다니는 것을 보며 오히려 미혼모 학생의 비율이 줄었다는 보고가 있다고 주장했다. 무조건 배척하고 숨길 것이 아니라, 공개해서 학생 신분에 아이를 가진 상태로 학업과 병행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학생들이 직접 보게 되면, 힘들다는 인식과 조심해야겠다는 의식을 불러일으키게 돼 발생 비율을 더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무조건 나쁜 거다라는 생각… 물론 그렇다고 어린 나에에 임신한 것이 좋은 건 아니죠. 하지만 아이의 존엄성을 묵살해 버리는 제도와 학교의 인식은 좀 없어져야 하지 않겠나 하는 뜻으로 청소년 대상 교육을 계획하고 있어요."

"G20 개최국이고 경제대국인데 아직도 아이 수출해야 하나요?"

지난 2009년 6월 9일 오후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아이낳기 좋은세상 운동본부' 출범식에서 이명박 대통령 부부가 다문화 가정, 다자녀 가정, 입양 가정, 맞벌이 부부 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지난 2009년 6월 9일 오후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아이낳기 좋은세상 운동본부' 출범식에서 이명박 대통령 부부가 다문화 가정, 다자녀 가정, 입양 가정, 맞벌이 부부 등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사진제공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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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대표는 장애인을 위한 NGO에서 일하던 중, 사내 커플로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일반 회사보다는 편견이 덜하다 했지만 역시 그곳에서도 둘 다 계속 근무하기는 곤란하니 어느 한쪽이 그만두기를 종용했다. 다른 책임은 지지 않았지만 남자 친구가 먼저 사표를 써준 것 하나는 고맙다고 했다. 그 덕분에 그녀는 아이를 낳고도 계속 직장을 다닐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회사의 여직원들과
관계 기관 사람들로부터 무수한 낙태와 입양 권유를 받는 등 차별적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사회의 많은 이들은 미혼모들이 아이를 키우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해요. 미혼모는 아이를 낙태해야 하고, 만약 낙태할 수 있는 시기가 지났다면, 아이는 낳아서 입양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돌이켜보면 입양의 역사는 한국전쟁 이후 가난한 형편에 아이 하나 건사할 여력도 없던 그 시절, 아이를 위해서는 능력 있는 양부모가 키워주는 것이 더 좋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지면서 시작됐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1980~90년대를 전후할 즈음엔 어마어마한 규모의 입양산업으로까지 확대됐다.

"예전에야 그렇다고 쳐요. 그런데 이제는 OECD 12위 경제대국이고 G20 회의도 개최하는 나라잖아요. 그런 나라가 아동수출국으로 1~3위를 왔다 갔다 해야 하나요? 아직까지도 우리나라가 내 아이 하나 키울 수 없는 그런 곳인가요?"

'생모증후군'이라고 아시나요? EBS 지식채널에 <어떤 외출>이라는 영상이 있는데, 입양 보낸 엄마의 우울증 이야기예요. 아이의 생일날, 길가다 듣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엄마가 미쳐 버린대요.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그 심정을 알까요? "

어느새 목 대표의 목소리가 떨리고 눈가가 촉촉해졌다.

"해외 입양아들을 여럿 만나 봤지만 모두들 가슴에 구멍이 하나씩 뻥 뚫려 있었고요. 입양기관에 보냈다고 해서 100% 입양되는 것도 아니에요. 입양 갔다가도 적응기간인 6개월 전에 입양부모가 달리 결정하면 다시 기관으로 돌아오게 돼요. 그건 파양도 아니에요. 아이가 장난감도 아니고….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입양되지 않은 아이들은 보호시설, 즉 고아원으로 가게 되는 거죠."

입양에 관련된 그 모든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려준 상태에서 미혼모에게 결정을 하도록 해야지, 지금처럼 입양이 최선인 것처럼 독려하는 사회 분위기는 입양기관과 입양부모, 책임지지 않는 미혼부에게만 도움이 될 뿐 생모와 아이에게는 결코 최선이 아니라고 목 대표는 힘주어 말했다.

"사회 편견 속에서 아이 지키며 키우는데 국가에서 상을 줘야죠"

취재를 시작하기 전까지 나 역시 이 땅의 미혼모에게는 입양이 최선이라 여겼다. 텔레비전으로 어쩌다 보게 되는 양육 미혼모의 사연은 하나 같이 가슴을 시리게 하는 얘기뿐이었다. 일하느라 아이는 종일 어린이집에 맡기고 주말에만 잠시 데리고 있으면서도 보일러를 틀지 못해 한겨울에 옷을 있는 대로 껴입고 부둥켜 안고 자고, 라면에 달걀 하나 넣어 끓여 먹이는 것도 부담스러워하는 젊은 엄마 이야기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던가.

그러나 이제 미혼모의 발생 양태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결혼연령이 높아지고 여성의 사회활동이 일반화되면서 자신의 일을 가진 미혼 여성들이 아이를 가지게 되었을 때 양육을 선택하는 비율이 늘어나는 추세다. 그들이 단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가졌다고 해서 그녀를 직장에서 내치거나 혼자 아이를 기른다고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은 20~30년 전 상황에서 비롯된 시각일 뿐인 것이다.

"누구든지 미혼모가 될 가능성이 있어요. 합법적으로 혼인하지 않고 아이를 키우는 사람은 누구나 미혼모죠. 우리들은 그저 아이를 키우는 여성가장일 뿐이에요. 이 사회적 편견 속에서 자기 아이를 스스로 지키면서 키우는데 국가에서 상을 줘야죠.

올해 초 유러피언드림 프랑스 취재에서 만났던 당당한 미혼모 니꼴이 떠오른다. 시청 공무원으로 아이가 생긴 후 직장 동료의 배려와 국가 보조금으로 혼자 살 때보다 더 살 만하다며 빙그레 웃던 그녀. 목 대표와 협회회원들은 그 기사를 보며 "프랑스로 이민 가고 싶다"고 서로 얘기했다 한다.

당장 그렇게 변할 수는 없더라도 조금이라도 상황이 달라질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나는 기사를 쓰고, 독자는 이 글을 읽으며 미혼모의 상황을 인식하고 생각을 달리하게 된다면 일단 작은 성공의 시작이다. 나와 당신의 자그마한 관심,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원동력이기에….

[참고1]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는 한국의 미혼모들의 현실을 알게 된 미국인 '리차드보아스' 박사가 설립했다. 전직 안과의사로 한국인 여자아이를 입양해 키워오면서 한국을 방문한 보아스씨는 한 미혼모 시설에서 그곳의 미혼모들이 모두 아이를 포기한 것을 목격했다. 더구나 하나같이 스스로 원해서 아이를 포기하고 입양을 결정한 것이 아니란 것을 알고 큰 충격에 빠졌다. 미혼모들은 수치심과 경제적 사회적 압박감 속에서 아이를 포기하고 있었고, 딸의 생모 역시 이 여성 중 하나였겠구나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후 입양이 아닌 아이를 출산한 엄마가 제 아이를 직접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깨닫고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를 설립하였다.

한국미혼모가족협회 카페: http://cafe.naver.com/missmammamia.cafe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홈페이지 : http://www.kumsn.org


[참고2] 한부모가족 대상 정부 서비스
양육비 지원 : 지원대상자로 결정된 저소득 한부모가족의 만 12세 미만 아동에 대해 1인당 월 5만원 지원.
보육료 지원 : 미혼모자공동생활가정(중간의 집)에 한하여 만 4세 이하 자녀에 대하여 보육료 100% 지원. 시설소속이 아닌 경우 소득수준별 차등지원 보육료 또는 한부모 가족 자녀 보육료 중 선택 지원하며 100% 지원은 되지 않음.
영구임대주택 입주 지원 : 무주택 저소득 한부모 가족 대상으로 동일 순위내 경쟁시 자활사업 참여기간, 당해 지역 연속거주기간, 부양 가족수, 청약저축납입횟수, 최저주거기준 미달 등을 합산하여 점수 기준으로 우선 공급 지원함.

보건복지가족부 <2010 한부모가족 지원사업안내> 자료 참조. (기사내용 중 언급된 서비스로 한함)


[참고3] 1993년 헤이그 국제입양협약
1993년 헤이그(Hague Conference·HCCH)에서 채택한 아동간 국제입양관련 협약.
HCCH는 국제결혼, 입양, 이주 등이 늘어나면서 나라별로 다른 가족·아동 보호 관련 법률을 조화,통일하는 역할을 100년 이상 맡고 있는 국제법률기구이다. 우리나라는 17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협약에 가입하지 않고 있으며, 주 내용은 입양에 앞서서 친부모가 아동을 키우도록 정부가 최선을 다하기를 권고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한국미혼모가족협회의 현재 회원수는 88명, 후원회원수는 약 50여 명입니다. 정식 단체로 등록하기 위해서는 100명의 정기후원회원을 확보해야 합니다. 한 달 회비는 5000원, 연회비 6만 원. 두 달에 한 번씩 아나바다 행사를 하며 읽지 않는 동화책, 장난감 등의 기부도 기쁘게 받는다고 합니다. 뜻이 있는 분들의 많은 동참 부탁 드립니다. 연락처 : 02-734-5007



태그:#미혼모, #한국미혼모가족협회,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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