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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겨울, 대학 합격 소식을 접한 내 입가에는 헤실헤실 웃음이 삐져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이내 머릿속에 한 가지 걱정이 꽉 차버렸기 때문이었다.

'집에서 꽤 먼 거리에 있는 학교에 어떻게 다니지?'

'여행' 같았던 논술고사일이 기억났다. 학교까지 가는데 한 시간 반, 또 집에 돌아오는 데 한 시간 반. 총 세 시간을 길에서 보낸 그날, 집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말 그대로 '뻗어버렸다'.

고민 끝에, 한 번도 집을 떠나 살아본 적이 없는 딸에 대한 걱정으로 통학을 권하시던 어머니를 졸라보기로 했다. 처음으로 생각했던 대안은 기숙사였다. '학교' 기숙사니 무엇보다 안전하고 믿음직스러울 것이란 계산이었다.

지난 2008년 완공된 서강대 민자 기숙사 곤자가 국제학사 전경.
 지난 2008년 완공된 서강대 민자 기숙사 곤자가 국제학사 전경.
ⓒ 송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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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바로 우리 집이 인천이라는 것이었다. 통학 시간이 2시간(편도 기준)이 넘지 않은 곳에 거주하는 신입생은 기숙사를 신청하지 못한다는 학교의 방침 때문에, 이 훌륭한 대안은 빛도 채 보지 못하고 사라지고 말았다.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자취였다. 하지만 결국 이마저 무산되고 말았으니, 바로 경제적 부담 때문이었다. 어머니와 며칠이고 발품을 팔아가며 방을 알아보았지만, 빠듯한 집안 살림에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30만 원으로 시작해 플러스 옵션만 존재하는 방값, 여기에 자취하는 동안 쓸 생활비는 그저 한숨만 나올 지경이었다.

결국, 그렇게 난 '통학생'이 되었다.

통학생이기에 억울한 몇 가지... 나도 술 마시고 싶다!

시간이 흘러 난 어느새 통학 5년 차가 되었다. 이젠 몸도 아침에 눈 떠 집을 나서면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매일같이 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역까지 30분, 2호선 환승역까지 20분, 그리고 다시 지하철로 15분을 달려서 학교에 간다. 환승에 걸리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지금도 하루 3시간을 길에서 보내는 셈이다.

또 교통비로만 한 달에 15만 원 남짓 든다. 그래도 자취보단 경제적이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아 보지만, 때때로 통학생이기 때문에 억울한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아침 수업이다. 매 학기 시간표를 짤 때마다 오전 9시에 시작하는 수업은 '오르지 못할 나무'라고 생각하고, 쳐다도 보지 않는다. '정말 듣고 싶다면 감수해야 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다. 맞다! 처음엔 나조차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한 학기동안 아침 수업을 듣는다는 것이 힘에 부친다는 걸 몸소 경험한 뒤로는 아무리 듣고 싶은 수업이어도 자동으로 포기하고 만다.

쓰러진 술병과 술잔.
 쓰러진 술병과 술잔.
ⓒ 조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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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억울했던 것 중 하나가 술자리였다. 대개 술자리가 오후 11시 이후를 정점으로 재밌어진다는 것을 감안하면, 친구들과 함께하는 술자리에서 한창 흥이 오를 때 '결연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야 한다는 것 또한 상당히 고역이다.

그건 바로 막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막차를 타기 위해 달리고 달렸다. 그러다가 과감히 몇 번 택시를 이용해 봤지만…, 난 한 달 뒤 구멍 난 지갑을 부여잡고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난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지난 1월 5일 오전 신도림역. 전날 서울, 경기지역에 폭설로 인해 많은 시민들이 지하철로 몰린 가운데 승하차 승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 서울, 출근 전쟁 중! 지난 1월 5일 오전 신도림역. 전날 서울, 경기지역에 폭설로 인해 많은 시민들이 지하철로 몰린 가운데 승하차 승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 윤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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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지하철과 관련된 불편함도 빼놓을 수 없다. 대표적인 것이 아침마다 환승역인 신도림역에서 열리는 '분노의 질주' 레이스. 구로역에서부터 사람들이 점점 출입문 쪽에 몰리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지하철이 신도림역에 도착하고, 문이 열리면 문자 그대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리고는 달린다. 멍하게 걷다가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기라도 한다면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을 정도로 위험하다.

통학하는 연차가 쌓여갈수록 유리한 장소를 선점한 후 무사히(?) 열차 안으로 몸을 날리는 자신을 보면서 내가 마치 그 유명한 미식축구선수인 '하인즈 워드'가 돼 가는 듯했다.

게다가 지하철이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묶여 버리기라도 하면 더더욱 난감해진다. 지난 2006년과 2009년, 두 번의 지하철 파업 때였다. 플랫폼에서 어떻게든 열차 안으로 밀고 들어오려는 사람들, 그리고 지하철 안에서 더 이상은 자리가 없다고 밀어내는 사람들의 실랑이는 마치 아비규환 '지옥을 보는 듯'했다. 그리고 올겨울 폭설을 겪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사정이 이러니, 지하철에서 여유롭게 책을 보거나 공부를 하면서 통학한다는 건 애당초 무리일 수밖에 없다. 애초 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다. 그래서 난 본능적으로 지옥철 안에서 서서 잠드는 기술을 진작에 깨우친다. 이런 자신에게 놀라울 뿐이다.

이렇게 한 주를 보내면, 주말에는 장시간의 통학으로 밀려온 피곤 때문에 꼼짝할 수 없을 정도다. 매일 여행하는 듯 학교와 집을 오가는 나를 위해 '여독'이라는 단어가 존재하는 것만 같다.

41년 만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린 지난 1월 4일 저녁 서울 1호선 지하철에서 한 시민이 퇴근하는 시민들로 가득찬 열차안에서 극심한 혼잡을 피해 힘들어하는 아이를 들어올리며 달래고 있다.
 41년 만에 기록적인 폭설이 내린 지난 1월 4일 저녁 서울 1호선 지하철에서 한 시민이 퇴근하는 시민들로 가득찬 열차안에서 극심한 혼잡을 피해 힘들어하는 아이를 들어올리며 달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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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속 '어디로든 문', 통학생끼리 '공구'라도 하고파~

이리 쿵 저리 쿵 온몸을 부딪혀 가며 지하철 신공을 쌓아가며 씩씩한(?) 통학생으로 열차 문을 넘나들면서 드는 생각은 5년 전 대학에 입학했을 때와 크게 달라지 않았다. '이렇게 학교에 어떻게 다니지?'

결국, 이 모든 건 학생들에게 적당한 가격에 들어갈 수 있는 기숙사나 자취방을 많이 마련해 안정된 주거환경을 제공할 수만 있다면 해결되지 않을까? 그랬다면 나도 미련 없이 자취나 기숙사행을 택했을 거다. 그래서 듣고 싶은 오전 9시 수업도 듣고, 친구들과 밤새 이야기도 나눠보고, 그렇게 나름대로 발랄(?)한 학창시절을 보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현실은 아직도 문제 해결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 것 같다. 아니, 더 심해졌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얼마 전 만난 친구는 학교 근처에는 자신이 감당할 만한 가격의 방이 없어서 지하철로 20분쯤 떨어진 곳으로 자취방을 옮겼다고, 덤덤히 말했다. 그 친구의 덤덤한 말투 뒤에,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을지 생각하니 더 속이 상했다. 나만 해도 학교 안의 새로 지은 기숙사 값이 웬만한 자취방 가격만큼 나간다는 걸 확인하고는, 졸업할 때까지 통학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겠다 체념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 친구는 농담 삼아 이렇게 말했다.

도라에몽 '어디로든 문'
 도라에몽 '어디로든 문'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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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도라에몽>에 나오는, '어디로든 문'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문을 열면 바로 학교고, 또 문을 열면 바로 집인 거야. 좋지 않냐?"

'어디로든 문'이라, 정말 세상에 존재하기만 하다면 내가 나서서 이 땅의 많은 통학생, 자취생들과 공동구매라도 할 거다. 하지만 실존하지 않는다는 것, 현대 과학으로도 만들 수 없다는 것, 우리 모두 잘 알지 않는가.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어디로든 문'이 필요하다는 허황된 바람 아닌 바람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학생들에게 안정된 주거를 허하는 것. 힘들다고? 지금은 곤란하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그러면 정말 '어디로든 문' 제작 프로젝트 TF라도 만들어 줬으면. 정말 요즘 말로, '순순히 학생들에게 안정된 주거를 제공한다면, 유혈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태그:#통학, #어디로든 문, #자취, #기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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