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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현의 작품 'ROAD2010-2'
 류재현의 작품 'ROAD2010-2'
ⓒ 류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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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가득 숲이 등장하는 그의 그림은 지극히 서양적이다. 치밀한 묘사력과 정확한 눈으로 사물을 응시하며 나무와 풀로 이뤄진 숲을 그려나간다. 부드러운 작은 붓에 유화물감을 묻혀 하나씩 공들여 그린다. 고도의 수공을 요하는 작업이다. 그로인해 사진을 보는 듯 극사실적 작품이 탄생한다.

류재현의 작품 'ROAD2010-3'
 류재현의 작품 'ROAD2010-3'
ⓒ 류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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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다시 보니 그게 아니다. 그의 그림은 어느 순간 동양적이란 느낌을 주기 시작한다. 서양의 리얼리즘은 드러난 것들의 덩어리를 표현한 것인데, 이건 뭔가 다르다. 그림에는 수없이 많은 선(線)이 숨어있다. 화면을 채우는 건 형태가 아닌 선이다. 그는 선을 그린다. 얼핏 보면 숲이라는 구조적 형태가 보이지만, 그 너머에는 선들의 조합이 있다. 선은 곧 길(路)이다. 그의 일관된 모티브는 길이다. 길을 찾는 구도자의 마음이 선을 통해 작품 안에 투영되고 있다.

"제 작업은 특정한 자연을 재현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에서 그 구조를 빌려올 뿐 그림 속에 표현된 풀과 숲은 그저 붓질일 뿐이지요. 저는 길을 그리는 사람입니다."

전주 서신갤러리에서 서양화가 류재현(46)이 두 번째 개인전을 열고 있다. 느지막이 물오른 작가가 자신의 열정을 가득 담았다. 최근 몇 년 사이 작업량이 엄청 늘었다고 한다. 지난 9월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10 한국국제아트페어'에서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는 등 좋은 결과물들도 하나 둘 쌓이고 있다. 때문에 이번 전시는 그런 작가의 향후 행보를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리가 되고 있다.

류재현의 작품 'ROAD2010-13'
 류재현의 작품 'ROAD2010-13'
ⓒ 김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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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방식을 보자. 먼저 캔버스의 밑바탕을 아주 진한 녹색으로 깐다. 가장 깊은 숲속 어딘가를 표현한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 그 위에 겹겹이 작은 붓질이 올라간다. 붓질이 더해질수록 공간이 겹쳐지며 숲이 형성되고 길이 드러난다. 그 무수한 터치의 반복과 겹치고 중첩되는 과정 속에도 미세한 틈으로 검은색의 여백이 보인다. 그 여백이 깊이를 담보한다. 미동도 없는 적막한 사유의 세계, 고요하고 명상적인 분위기를 짙게 드리운다. 그의 작품이 선사하는 편안함은 아마도 여기에 기인한 듯싶다.

이번 전시는 역량 있는 작가 지원을 위해 서신갤러리가 장소를 무료로 대관해주는 공간지원사업의 일환이다. 9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태그:#류재현, #서신갤러리, #길,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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