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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30~31일 한국관광공사가 주최한 경주·안동체험행사를 떠났다. 이번 행사는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경주양동마을과 안동하회마을을 널리 알리기 위한 취지로, 우리나라의 여행 관련 직업군들과 왕성한 활동을 하고있는 블로거들을 비롯해서 한국뿐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1000여 명 정도의 인파가 몰린 대규모 행사다.

안동 하회마을은 한 번 방문한 적이 있어서 익히 알고 있었지만, 경주 양동마을은 최근에 기사 한두 번 본 것을 제외하고는 무척이나 생소한 곳이다. 학창 시절 아무것도 모르고 선생님만 따라다녔던 수학여행에서 보았던 경주의 모습과 머리가 크고 나서 매체를 통해 다시 접한 경주의 모습은 너무나도 달랐다. 

그곳은 언제부턴가 나에게 신비한 보물창고 같은 모습으로 다가왔고, 그곳에 대한 로망을 만들어냈다. 그래서인지 이번 경주 양동마을 방문은 나에게는 떠나기 전부터 설렘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독락당 입구
 독락당 입구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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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단을 태운 관광버스가 가장 먼저 멈춘 곳은 양동마을이 아닌 세심마을, 그곳에 위치한 회재 이언적 선생의 고택앞이다. 세심마을이라는 이름처럼 더러워진 마음을 깨끗이 씻고 여행을 시작해보기로 한다.

이언적 선생이 관직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3대에 걸쳐 지어낸 이 가옥은 안채, 사랑채, 행랑채, 정자인 계정과 사당, 어서각, 공수각으로 구성되어 있다. 독락당은 그 중 사랑채의 이름으로 현재 보물 413호로 지정된 곳이다.

독락당은 보수공사 중이라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그 아쉬움을 달래줄 만한 아름다운 풍경이 우리를 맞이한다. 평소에는 내부를 공개하지 않아 밖에서만 바라봐야 하지만 체험단을 위해 특별히 공개한 계정이 그것이다.

독락당 가옥안의 정자, 계정
 독락당 가옥안의 정자, 계정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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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 앞에 서서 바깥을 바라보니 한폭의 산수화 액자가 걸려있는 듯하다. 계정 마루에 올라서도 된다는 문화해설사의 한 마디에 신발 벗기가 귀찮아 잠시 망설여보지만, 일행들이 우르르 몰려가니 그 유혹을 뿌리칠 수가 없어진다. 정자 위에 올라서니 지상낙원이 따로 없다. 

아래쪽으로는 바닥이 훤히 드러날 정도로 맑은 물이 흐르고, 병풍처럼 둘러진 색색의 나무들이 날 에워싼다. 독락당이 세상과 인연을 끊고 책을 벗삼아 홀로 즐기겠다는 의미라고 하더니 그것이 괜한 말이 아니다. 욕심난다. 이곳이라면 세상과 등질만 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마루바닥에 누워 낮잠이라도 한숨 청하고 싶다는 생각도 잠시, 정해진 일정에 맞추기 위해 그곳을 나선다.

밖에서 바라본 계정
 밖에서 바라본 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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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가 계정을 바라본다. 그 풍경이 다시금 새롭다. 내가 그 시대 사람이라면 이곳에 서서 독락당의 주인을 시샘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혜사지 13층석탑
 정혜사지 13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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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락당 왼편 마을길을 따라 걷다보면 정혜사지 13층석탑을 볼 수 있다. 국보 제40호로 지정된 정혜사지 13층 석탑은 정혜사라는 절터에 세워져 있던 것으로 절은 사라지고 석탑만 덩그러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문화해설사는 이 탑의 모양을 보고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라고 말한다. 듣고보니 다른 곳에서 보았던 탑과는 다른 모습인 것도 같다. 보통의 탑들이 삼각형 모양으로 아래에서부터 위로 갈수록 차츰차츰 좁아지는 형태인 것에 반해, 이 탑은 아랫 부분이 넓직해서 조금 더 안정감이 있으며 보기 드물게 13층으로 이루어진 것도 특이하다.

외로움에 사무쳤을 탑을 홀로 두고 우리는 또 발걸음을 돌려 옥산서원으로 향한다. 왔던 길을 거슬러 독락당을 지나 길을 따라가면 옥산서원으로 이어진다.

옥산서원
 옥산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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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154호로 등록된 옥산서원은 경주의 부윤 이제민이 이언적 선생을 기리기 위해 안강고을 선비들과 함께 만든 서원으로 자연 속에 고이 간직된 서원 입구에는 주변으로 우람한 바위들이 자리잡고 있고 그 사이로 작은 폭포수가 흐른다.

옥산서원은 전국에서 보유하고 있는 문적 수가 가장 많은 서원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활자본 중 가장 오래된 책으로 보물 제 524호로 지정된 <정덕계유사마방목>이 가장 대표적이며 이 밖에도 <삼국사기>, <해동명적> 등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옥산서원의 단청과 와송
 옥산서원의 단청과 와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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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도 피해가 없이 오랫동안 보존되었다고 하니 세월이 흔적이 드러나는 단청이며 기와 위에서 생명을 싹틔운 와송까지도 그 가치가 돋보인다. 세심마을을 둘러보고 난 후, 버스에 몸을 싣고 양동마을로 향한다. 일행을 실은 버스가 양동마을에 멈추고 문화해설사를 만난 후 마을회관 왼쪽으로 난 숲길을 따라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언덕으로 오른다.

양동마을 전경
 양동마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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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에 오르니 양동마을이 한 눈에 쏙 들어온다. 양동마을은 처음 이곳에 기반을 마련한 월성 손씨와 손씨의 집안과 혼인을 하여 이곳에 발을 들이게 된 여강 이씨, 이 두 씨족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이 두 씨족은 서로간의 선의의 경쟁을 통해 많은 인재를 배출해내었으며 이들의 활약으로 양동마을은 영남 유림의 중심세력이 되었다.

양동마을은 고지대에는 양반가옥들이, 저지대에는 상민가옥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지위를 나타냄이기도 하지만, 비가 많이 오면 마을 앞쪽 안락천의 물이 넘쳐 저지대 가옥들이 물에 잠기고는 해서이기도 하다.

문화해설사는 양동마을이 주산인 설창산에서 산등성이가 뻗어내려 네 줄기로 갈라진 물(勿)자와 닮은 형태이며, 산짐승이 편안하게 누워있는 형태라고 설명한다. 언덕에 서서 그 형태를 그려보지만 사실 내 눈에는 그 형태가 잘 그려지지 않는다. 그저 은은하게 물들어 가는 가을빛에 쌓여있는 마을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아름답고, 마을 앞쪽으로 펼쳐진 황금빛 들판은 너무 오랫만에 보는 모습이라 더욱 반가울 뿐이다.

언덕에 올라 마을의 보물이나 중요 민속자료로 지정된 서백당, 수졸당, 관가정등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단체로 움직이는 일정에는 아무래도 많은 제약이 따른다. 이번 여행길 역시 마찬가지다. 양동마을을 굽이굽이 돌아보기에는 시간이 빠듯하여 일단 관가정만 돌아보기로 한다.

양동마을의 고목
 양동마을의 고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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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을 내려와 관가정으로 가는 길목에 큰 나무들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기나긴 세월 동안 양동마을과 함께한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바쁜 걸음 속에서도 시선이 머무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빠른 속도로 그들의 몸짓에 화답을 하고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관가정
 관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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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 제 422호로 지정된 관가정은 '곡식이 자라는 모습을 보듯이 자식들이 자라는 모습을 본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재 손중돈이 분가하여 살던 집으로 물봉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많은 의례를 치르는 종가집이라 사당을 갖추고 있으며 집 전체에서 마루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것이 특징이다.

세심마을의 독락당에서도 그랬지만 관가정에서도 나의 관심을 끈 것은 안에서 보이는 바깥 풍경이다. 독락당의 계정에서 바라본 자연의 풍광이 그림 같았듯이 관가정에서 역시 나무창을 열었을 때 보이는 풍경 또한 그림이다. 창문을 열면 시커먼 콘크리트 벽이 앞을 가로막는 답답한 도시와는 다른 모습이 숨을 탁 트이게 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주양동마을을 다 알기에는 너무나 빠듯한 시간이 안타깝다. 이렇게 수박겉핧기식의 일정이 끝나고 나면 항상 아쉬움이 남는다. 그것은 이곳에 대한 관심을 오늘로 끝내지 말아달라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언제나처럼 또 다시 찾아오리라 마음 먹게 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양동마을, #세심마을, #유네스코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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