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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서리가 내리면, 언제 가야할까 망설이던 들풀들도 부지런히 발길을 재촉합니다. 하루 아니면 이틀만 더 있고 싶어하다가도 서리가 내리면 차마 피우지 못한 꽃이 있어도 그냥 떠나갑니다. 하루 이틀, 그것이 뭐라고 더 살고 싶어 안달하기도 하고 하루 이틀만 지나가주지 뭐 그리 급하다고 서둘러가기도 합니다.

 

산책길에 만난 원추리의 말라버린 씨방은 얄밉도록 당당하데요. 자기가 할 일을 다했다고 자랑하려는 듯, 이젠 꺾여 흙으로 돌아가도 아무런 후회가 없다는 듯이 가을 햇살을 가득담고 있습니다.

 

"비우고 나니, 채워지는 비밀을 알려주려는 것인가요?"

"아니요, 그냥... 이렇게 굳어버렸어요. 봄이 오기 전에 내 모습은 사라지겠죠."

 

 

태어날 때는 정갈한 백발, 가는 길에는 퍼머를 한냥 잔뜩 부풀어 올라 자신을 여행지로 보내줄 바람이 불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간다는 것이 두렵지도 않은지, 그냥 가을 햇살에 까르르 웃습니다.

 

가는 길에도 활짝 웃을 수 있는 것인데, 우리네 사람들은 그러하질 못합니다.

 

열매가 익으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아무리 고개를 쳐들려고 해도 쳐들 수 없지요. 간혹, 태생이 고개를 숙이지 못하는 존재라 그냥 뻣뻣한 것들도 있긴합니다. 위에서 만났던 원추리 같이 말입니다.

 

익은 사람은 고개를 숙이고, 설익은 사람은 고개를 뻣뻣이 들고 다닙니다. 그리고 덜익은 사람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는 제대로 익은 사람들은 그 속내를 드러내지 않습니다.

 

 

강아지풀의 꺾인 줄기, 비로소 땅을 봅니다. 하늘만 바라보다 혹은 먼산만 바라보다가 씨앗이 떨어진 땅을 보는 강아지풀, 줄기가 꺾어지니 보이지 않던 세상이 보이는 것이지요.

 

자존심이라고 해야할까요? 여지없이 꺾이고나면 또 다른 세상이 보이지요. 그리고, 그만큼 단단해 지기도 하고 혹은 그냥 그 충격으로 깊은 상심에 빠지기도 하지요. 그래도 희망이라는 것은 그것이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몇 개의 꽃을 피웠던 것일까요? 꽃 피웠던 자리마다 층층 꽃씨를 만들어놓고도 모자라 늦가을에 꽃을 피웠는데, 그만 서리를 맞아 말라버렸습니다. 노란빛 조차도 사라져 하얗게 비썩 말라버린 달맞이꽃, 장엄하다고 해야할지 슬프다고 해야할지...

 

아무튼, 우리네 인생사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꽃을 피웠으면 열매를 맺어야만 하는 것은 아닐 터인데도, 늘 성취 혹은 결과에 치중하는 삶을 살다보니 꽃이 꽃으로만 보이질 않습니다. 열매 맺지 못한 꽃도 의미가 있는 것인데, 세속에 찌든 눈에 그것이 잘 보이질 않네요.

 

 

토끼풀, 세잎크로버. 늦어도 아주 늦게 싹을 틔웠나봅니다. 그리고 적당히 따스했겠지요. 이제 서리가 내리는데, 무서리가 내리면 저도 버틸 수는 없을 터인데... 서리가 내리며 경고를 했건만 무서리가 내리기까지는 저렇게 버티고 있을 터이고, 서로를 의지해서 한 겨울에도 몇몇 무리는 봄이나 여름이나 가을보다는 작은 이파리로 온 몸을 웅크리고라도 양지를 찾아 기어이 살아있을 것입니다.

 

제 철에 피어나는 것만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간혹, 철모르고 피어나는 것들이 있어 재미가 있습니다. 자연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간혹 철모르는 사람이 있어 사람사는 세상입니다.


태그:#가을, #낙엽, #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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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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