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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들어 날씨가 갑자기 추워지고 있다. 바람까지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의 날씨다. 갑작스런 추위에 놀랐는지 베란다 화분에는 난데없이 동백꽃 한 송이가 고개를 쑥 내밀고 있다. 겨울이 온 줄 알고 지레 겁을 먹은 모양이다. 시도 때도 없이 변화하는 기후는 생태계에 적지 않은 변화를 주고 있다. 필시 저 동백은 겨울이 다 지나가는 줄 알고 본능적으로 꽃을 피워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다.

갑작스런 추위에 겁을 먹고 지례 피어난 동백
 갑작스런 추위에 겁을 먹고 지례 피어난 동백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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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동네의 겨울은 빨리 다가 온다. 북쪽으로는 지리산, 동쪽에는 백운산이, 그리고 서남쪽으로는 계족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섬진강변 수평리는 해가 짧다. 동쪽의 백운산에 가려 아침 해가 늦게 뜨고, 계족산이 바로 지척에 성처럼 우뚝 서 있어 오후 3시만 되면 해가 산 정상에 걸려 넘어가고 만다. 남향받이 집이긴 하지만 햇빛이 드는 시간이 짧다. 집 앞과 옆에 계곡 물이 흐르고, 섬진강이 가까워서인지 기온은 더 차갑다. 추수가 끝난 들판에는 바람이 윙윙 불어와 더욱 춥게 느껴진다.

추수가 끝난 지리산 수평리 구례벌판
 추수가 끝난 지리산 수평리 구례벌판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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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조립식으로 건축된 얇은 벽과 천장은 보온이 잘되지 않는다. 거기에다가 문틀이 잘 맞지 않아 바람이 송송송 들어온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집 주인이 조립식으로 지을 때 거실 유리창을 엄청 크게 하여 시야는 탁 트이나, 이중창이 아니어서 밖의 찬 기온이 금방 전해온다. 날림으로 지어 놓은 조립식 주택은 겨울에는 춥다. 방음도 잘 되지 않는다. 하지만 공기 하나는 전후좌우 상하로 슝슝 잘 통한다. 

산동네는 겨울나기가 어렵다. 어떻게 하면 겨울을 지혜롭게 날 것인가? 물론 집에는 기름보일러가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기름보일러를 무턱대고 계속 지필 때에는 기름 값이 장난이 아니어서 지출이 너무 크다. 전에 살던 정 군이 겨울에 추워서 보일러를 생각없이 가동했더니 기름 값이 금방 30~40만원이 나오더라고 했다. 기름 값에 생활비의 전부를 쏟아부을 수는 없는 일.

그래서 기름보일러를 심야전기 보일러로 바꾸는 방법, 가스보일러로 바꾸는 방법, 그리고 거실에 스토브를 놓는 방법 등 여러 가지를 검토해 보았지만 썩 마음에 드는 정답이 없다. 심야전기나, 가스보일러도 설치비와 가동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웃 수평상회에 물어 보았더니 그 집도 결국 기름보일러를 쓴다고 했다.

그러다면 마을 사람들은 어떻게 이 추운 겨울을 나고 있을까? 노인들이 대부분인데 궁금하다. 이웃집 어르신에게 물었더니 마을 사람들은 낮에는 노인당에 와서 내내 놀다가 저녁에 집으로 간다고 한다. 그리고 옷을 두껍게 입고 전기장판 하나에 옹기종기 모여서 잠을 잔다고 한다. 겨울을 적은 돈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나름대로 터득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지혜다.

방한테프로 문틈새를 막다
 방한테프로 문틈새를 막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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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엔 엄청 추워요. 아마 겨울 나시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도시 사람들은 지리산이 좋다고 이사를 오지만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도시로 가는 경우가 많아요. 언니도 추워서 다시 서울로 가시지나 않을지 걱정이네요."
"그런 걱정일랑 하지 말아요. 우린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거니까."

이웃집 혜경이 엄마는 우리와 모처럼 정이 들었는데 추워서 가버리면 어쩌나 하면서 겨울 추위를 걱정했다. 아내는 큰소리를 치긴 했지만 겨울을 나 봐야 알일. 하여간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랬다.

나는 일단 방한 테프를 사와서 문틀의 틈새를 모두 막았다. 바람이 훨씬 덜 들어오는 것 같다. 그리고 거실 바닥에는 오랫동안 쓰지 않았던 카펫을 깔았다. 친구들이 쓰지 않는 카펫도 수소문을 하여 가져와 세탁을 하여 방과 거실, 부엌 바닥에 깔아놓았다. 온돌바닥보다는 먼지가 좀 더 일겠지만 발바닥이 훨씬 덜 차갑다. 대신 청소기를 자주 돌려야 할 것 같다.

몇 십년 동안 쓰지 않아 먼지가 낀 금강경 병풍을 털어서 안방에 둘러쳤다. 병풍을 둘러놓으니 바람도 훨씬 덜 들어오고 방 분위기도 좋다. 동창회에서 사은품 추첨으로 받았던 전기난로와 배낭여행용으로 썼던 작은 전기담요도 창고에서 꺼냈다. 그리고 아침과 저녁, 밤에만 전기담요와 전기난로를 조금씩 가동시켰다. 보일러는 아주 추운 영하의 날씨에만 가동을 하기로 했다.

병풍을 쳐서 바람을 막다
 병풍을 쳐서 바람을 막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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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옷을 여러 겹으로 두껍게 입고 발이 시리면 양말을 신고 잠을 잤다. 처음에는 좀 갑갑하더니 습관이 되니 괜찮아졌다. 실내화를 신으니 훨씬 보온이 잘 되는 것 같다. 인간의 신체는 발과 목이 따뜻하면 다른 곳은 저절로 따뜻해진다.

실내자전거 타기로 발열을 한다
 실내자전거 타기로 발열을 한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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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거실에서 수시로 실내 자전거를 탔다. 몸에서 스스로 발열을 하여 몸을 데우는 것이다. 아내는 TV연속극을 볼 때도 자전거를 탔다. 운동도 되고 보온 효과도 되고. 실내용 자전거는 겨울 스포츠에 만점이다. 또 한 가지는 뜨거운 차를 자꾸 마시는 것이다.

지리산 녹차와 보이차를 마시다 보면 속이 훈훈해지고 감기도 들지 않는 효과도 있다. 헐렁한 옷차림으로 살아갔던 서울 아파트 생활과는 영 딴판의 겨울나기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동물이다. 수평리 마을 사람들은 모두가 이렇게 살아간다.

월동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와 마당 한편 텃밭에 싱싱하게 자라나고 있는 배추와 무를 보니 마음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추운 날씨에도 용감하게 자라고 있는 그들은 우리들의 월동준비를 지원하는 응원군이다. 배추와 무는 바람이 부나 비가 오나, 날씨가 추워도 이렇게 온 몸으로 버티며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배추와 무에 비하면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가?

배추포기를 묶다
 배추포기를 묶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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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싱하게 자란 무
 싱싱하게 자란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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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나는 벌어진 배추 포기를 끈으로 묶었다. 배추 몸통이 제법 통통하고 단단하다. 배추 몸통을 묶어 보온을 해주니 마음이 한결 훈훈해진다. 채김치를 담근다고 아내는 무를 일부 뽑아냈다. 아기 다리처럼 통통해진 무가 자랑스럽다. 이제 배추와 무도 겨울이면 우리들이 먹을 김치로 변해 월동준비를 도와 줄 것이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너무 힘든 작업이었지만 마당에 텃밭을 만든 것은 아주 잘 한 일인 것 같다.

베란다에 놓아둔 화분도 추위에 약한 것은 모두 거실로 옮겨 놓았다. 지난 번 잠시 집을 비운 사이에 된서리를 맞아 이미 물옥잠화와 수련 등 추위에 약한 화초들은 잎이 오그라들고 시들어 버렸다. 벤자민, 양채송화, 관음죽, 야래향 등 추위에 약한 녀석들을 모두 거실로 옮겨 놓으니 식구가 엄청 늘어난 것 같다.

녀석들도 말은 하지 못하지만 엄청 추웠을 것이다. 모든 생명이 있는 것은 표현이 다를 뿐이지 기후에 적응하기는 다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어쨌든 우리는 녀석들과 함께 겨울을 나며 생존해야 한다. 거실에 식구가 늘어나니 이 또한 마음이 따뜻해 옴을 느낀다.

추위에 약한 화초도 거실로 옮기고
 추위에 약한 화초도 거실로 옮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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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는 날씨가 너무 추워 안방의 전기담요를 켰다. 이 전기담요는 언제 샀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아주 오래 된 100볼트 전용이다. 마침 트랜스가 있어 전기코드를 트랜스에 끼고 밤에만 조금씩 틀었는데 오래된 트랜스에서 골골거리는 소리가 나 신경이 쓰인다. 아내가 잠을 청하다가 트랜스의 골골거리는 소리에 잠을 못 이루더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려 속삭인다.

우래된 100볼트  전기장판을 트랜스로 가동
 우래된 100볼트 전기장판을 트랜스로 가동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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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텔레비전을 보니 XXX히노끼전기매트가 좋다고 하는데 그거 하나 살까요?"
"얼만데?'
"14만8000원이래요."
"흠, 꽤 비산데. 좋아요. 삽시다."

마침 <오마이뉴스> 원고료를 보니 14만 원 정도가 쌓여 있다. 아마 1년 동안 부지런히 쓴 원고료일 게다. 나는 <오마이뉴스> 원고료를 털어서 XXX히노끼전기매트를 주문했다. 처음으로 해보는 홈쇼핑이다. 전기매트를 주문하고 나니 마음까지 훈훈해진다. 이 정도면 동장군을 맞이할 중무장을 한 셈이 아닐까? 마음으로 단단히 무장을 하고 월동준비를 하고나니 겨울이 무섭지 않다.

지금 내가 사는 집은 매천 황현선생의 구안실에 비하면 궁궐이 아니겠는가? '구안실(苟安室-누추하지만 그런대로 편안하게 지낼만하다는 뜻)'이란 초막을 지어 놓고 16년동이나 만수마을에 거처를 하며 학문을 닦고 저작활동을 하며 후학들을 가르쳤던 조선말기 대학자 매천 황현 선생. 그의 집은 우리집보다 더 높은 산동네에 위치에 있어 나보다 훨씬 춥게 지냈을 것이다.(2010.11.3 지리산 섬진강에서 찰라)


태그:#지리산 동네의 월동준비, #섬진강, #구례, #수평리, #계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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