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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배낭을 짊어지고 다니면서 로컬버스 타고 사람들이랑 섞여 다니다가, 한 번 편하게 여행해보겠다고 투어를 의뢰한 게 그렇게 잘못된 거야?"
"응. 하던 대로 해야 했는데 잔꾀 좀 부린다고 하늘에서 벌주는 거야. 아… 정말 이 투어, 쉽게 맘먹은 거 아닌데. 난 큰돈 투자한 건데…."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 아바바에 도착한 이후, 크리스틴과 나눈 대화였다.


속이 너무 쓰렸다. 저예산으로 여행하던 중이었고, 그 때문에 하루에 나눠서 내는 금액, 30달러 이상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운전기사가 우리를 아르바민치라는 곳에다 버리고 난 직후,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놀라워했고 동정했다. 심지어 현지 에티오피안 투어 가이드들까지도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놀라워했다. 해당 숙소에 묵고 있던 다른 여행자들, 그리고 에티오피안들은 우리에게 동정과 더불어 여러 가지 정보를 주고자 노력했다.

 

예를 들자면, 내일 아침 버스는 어디서 타야 하는지, 몇 시까지 가야 하는지, 그 새벽까지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이 힘드니 우리 차를 타고 가라는 등등.

 


나쁜 사람이 있으면 좋은 사람도 있는 게 세상사는 이치다. 하지만 이번엔 나쁜 사람에게 된통 당했다. 너무 호되게 시달려서 경찰에 신고하고 말고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함께한 이후부터 하루하루가 너무나 머리가 아팠기 때문에 경찰에 신고하고 잡기까지나, 잡고 나서도 원하는 대로 처벌이 안 되면 어쩌나, 골든에게 돈을 환불받지 못하면 어쩌나, 여기 경찰의 행정력을 어찌 믿나 등… 그 많은 것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노력하고 머리 아파지고 싶지가 않았다.


그때 우리는 너무 지쳐 있었다. 정말 머리끝까지 화나고, 억울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우리끼리 로컬버스를 타고 하루가 걸려서 도착한 아디스 아바바를 다시 본 감회는 남달랐다. 예전에 느낀 모던하지 못한 도시의 모습이 아닌, 언제든 안락하게 스며들 수 있는, 우릴 향해 두 팔 벌리고 있는 도시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에티오피아에는 라리벨라라는 예쁜 이름을 가진 동네가 있다. 에티오피아 정교회를 믿는 국민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 그 오랜 역사의 종교의 신실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곳 중 한 곳인데, 별다른 기대 없이 방문한 나에게는 꽤 인상적이었다. 물론 들어가는 입구에서조차 300비르(당시, 3만 원 가량)인 큰 금액 때문에 인상적이지 않을 수 없었지만.

 


에티오피아 물가를 감안하면 꽤 큰 금액인 300비르의 입장료를 지불하면, 11개의 교회를 방문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그렇게 별 기대 없이 들어간 그곳들은 꽤 깊은 인상을 남겼다.


건물 자체만으로도 암굴교회 같은 느낌으로, 바위를 깎아내려 만든, 얼추 보면 지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형태이다. 각 교회마다의 십자가가 다른 것이 인상적인데,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그런 십자가의 형태가 아닌 각 형태의 크로스를 간직하고 있다.

 

라리벨라 마을을 거닐다 정말 심각하게 고민하던 것이 하나 있다. TV에서 보던 아프리카 아이들의 이미지를 기억하는가…? 얼굴엔 파리가 덕지덕지 붙어, 초점 없는 눈빛으로 멍하니 있는 아이들… 나는 처음으로, 아이들이 애써 파리를 떼어내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우스꽝스러운 생각을 했다.

라리벨라에 도착했던 때는 당시, 2009년 10월 말에서 11월 초. 한창의 건기였다. 다른 지역에선 경험하지 못했던 파리떼들에 대한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는 그곳은, 하도 파리떼들이 달라붙어, 웬만한 성인군자가 아니고선 치밀어오는 짜증에 인내력을 시험해야 했다.

 

인사와 함께 나와 통성명을 한 동네아이들이 내미는, 나뭇잎들이 붙은 나뭇가지를 감사하게 받아 들고 파리채처럼 휘휘 몇 번 저어보지만 그때뿐이다. 단념을 모르고 덤벼대는 파리떼들에 난 처음으로, 항복하고 멍하니 나 자신을 진정시켜야 했다.

 

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지난 2009년 8월부터 2010년 1월까지 6개월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했습니다. - 외래어나 현지어의 경우, 소리나는 발음으로 기재하였습니다.


태그:#라리벨라, #에티오피아, #아프리카, #여행, #종단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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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를 담은 사진에세이 [same same but Different]의 저자 박설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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