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 스틸컷

▲ 대지진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대지진> 포스터를 보면 재난 블록버스터처럼 생각된다. 하지만 이 작품은 결코 재난 블록버스터가 아니다. <집결호>를 연출한 펑 샤오강 감독은 <대지진>을 아예 대놓고 신파영화로 만들었다. 특히 중요한 것은 관객들이 생각하는 수준보다 훨씬 못한 특수효과다.

<해운대>에 나온 특수효과도 약간의 불만족스러움이 있었지만 <대지진>과 비교하면 오히려 양호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따라서 제목에 있는 '대지진'처럼 스펙터클한 장면들을 기대한 관객들이라면 일찌감치 그런 기대를 접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지진 장면도 생각만큼 길지 않고 엄청난 임팩트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지진> 포스터나 홍보문구 및 예고편을 보면 이 영화를 재난 블록버스터처럼 느낄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중국인들의 감성을 뒤흔든 신파영화라고 홍보했다면 비판적인 시선을 충분히 거둘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홍보문구 어디에서도 신파영화란 느낌을 쉽게 받을 수 없게 해 놓았다. 당연히 이 영화 포스터 혹은 홍보문구나 예고편을 보고 선택한 관객들이라면 이 작품에 대한 기대치가 어디에 있을지 대부분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그런 기대치에 접근하지 못한다면 좋은 평가를 내리기 힘들 것이다.

<대지진>은 27만의 목숨을 앗아간 1976년의 지진에서 시작된다. 리웨엔니(쉬판)는 이 지진으로 자신의 남편을 잃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녀의 자녀 팡떵(장징추)과 팡다(리천) 역시 무너진 건물 더미에 깔려 있다. 두 자녀 모두 살아 있지만 함께 구조하기엔 문제가 있다. 무너진 건물의 잔해인 콘크리트를 들어 올리다 잘못하면 한 아이가 깔릴 수도 있다는 것. 두 명 모두 구하려다 한 명도 구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 이제 리웨엔니는 두 자녀의 목숨 중 한 명의 목숨을 선택해야 한다. 자녀를 가진 부모로서 너무나 잔인한 일이다.

리웨엔니는 결국 딸 대신 아들 팡다를 구한다. 하지만 아들을 구하고 난 후 딸을 구하지 못한 리웨엔니는 평생 그것을 상처로 앉고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이 무슨 얄궂은 운명일까? 죽은 줄 알았던 팡떵이 살아남은 것이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그녀의 기억 속에 맺힌 한마디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자신 대신 팡다를 선택한 어머니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신을 입양해준 양부모가 잘 산다고 해도, 비록 그녀에게 큰 애정을 준다고 해도, 낳아준 어머니가 자신에게 준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여기에다 팡떵 역시 성인이 된 후 스스로 자신의 삶을 힘들게 만든다. 그녀가 선택하고 행했던 행동들이 결국 그녀의 삶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바꾸는 것이다. 성인이 된 후 힘겹게 살아가는 팡떵이지만 어머니를 용서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신파에 만족 못하는 관객들이라면 실망뿐

대지진 스틸컷

▲ 대지진 스틸컷 ⓒ CJ엔터테인먼트


<대지진>은 넓게 보면 한 가족의 이야기다. 그것도 비극적인 지진에서 살아남은 가족들이 각자의 상처를 앉고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정말 '대지진'이란 명칭은 상징적인 의미 외에 아무것도 없다.

한 가족이 마음에 상처를 가지게 되는 사건이자 모든 것의 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작품이 워낙 초기 홍보가 재난 블록버스터처럼 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다. 한 가족의 눈물 짜내는 신파영화란 것을 모르고 찾아간 관객들에게 <대지진>이란 영화가 남겨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실망뿐일 것이다.

물론 신파영화를 좋아하는 관객들이라면 <대지진>은 만족할 구석이 있다. 딸을 버렸다고 자책하는 어머니 리웨엔니와 살아남은 딸 팡떵과 아들 팡다의 이야기가 관객들 마음을 울릴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쉬판의 연기는 영화의 많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할 정도로 뛰어나다. 그녀가 보여준 연기가 없었다면 <대지진>은 더 가혹한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대지진>은 지겹지 않을 정도의 드라마 구조와 쥐어 짜내는 듯한 신파영화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리웨엔니와 팡떵의 인생을 보면서 여자 관객들이라면 더 큰 감정적 호응을 보일 가능성이 분명 있다. 팡떵을 버렸다는 죄책감에 힘들어 하는 리웨엔니, 자신 스스로 삶을 힘겹게 만들고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팡떵. 두 모녀의 이야기가 여성 관객들에게 더 큰 흡인력을 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특징 때문에 분명 특정관객들에게 통하는 영화가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하지만 신파영화의 특성상 아무리 눈물샘을 자극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특히 억지로 눈물을 짜내기 위해서 가장 실수하게 되는 것은 우연성의 남발이다. 이야기가 뭔가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않는 것. 여기에다 살아남은 남매와 어머니의 삶을 비교해서 보여주는 영화 중반부가 상당한 지루함을 가져다줄 여지 역시 있다. 신파 영화에 만족하지 못하는 관객들이라면 상당히 약점 많은 영화가 될 수 있단 것이다.

여기에다 첫째도 둘째도 이 영화가 재난 블록버스터란 생각을 가지고 관람한 관객들이라면, 영화 초반에 보여준 어설픈 특수효과와 기대에 못 미치는 지진 장면 때문에, 이후 진행되는 이야기에 상당한 지루함을 느낄 가능성이 높다. 초반부 반짝 지나가는 장면을 제외하면 재난 블록버스터 같은 장면은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에 더 그렇다. 특히 신파영화에 대해서 거부감이 큰 관객들이라면 더 큰 쓴 웃음이 나올지도 모른다.

결론 짓자면 <대지진>은 그냥 보통 수준의 드라마 구조와 쥐어 짜내듯이 눈물을 뽑아내는 신파에 만족하는 관객들이라면 분명 좋은 평가를 내리면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 외에 다른 방향으로 만족을 얻고자 하는 관객들이라면 영화 상영시간 동안 보여주는 드라마 구조가 상당히 아쉽게 느껴질 것 같다. 초반 재난 블록버스터가 아님을 눈치 채고 다른 부분에서 만족감을 얻고자 한다면 신파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이 작품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국내개봉 2010년 11월4일. 이기사는 영화리뷰전문사이트 무비조이(http://www.moviejo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대지진 무비조이 MOVIE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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