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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동네>

(이와오카 히사에 글·그림, 장혜영 옮김, 대원씨아이 펴냄, 2010.7.15./4500원)

 

고양이를 다루는 만화가 갑작스레 부쩍 늘었습니다. 고양이를 이야기하는 글책이나 그림책 또한 차츰 늡니다. 예부터 고양이나 개 이야기를 다루는 책은 늘 있었습니다만, 오늘날처럼 이렇게 부쩍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집고양이 얘기이든 골목고양이 삶이든, 이렇게 이래저래 다루는 책은 그리 흔하지 않았습니다.

 

고양이 이야기를 펼치는 그림책이나 만화책을 들여다보면서 생각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그려낸 이들은 참으로 고양이를 사랑하며 그림이나 만화를 그리고 있는가. 그저 유행처럼 그리지는 않는가. 집에 고양이 한 마리쯤 으레 키우고 있으니 손쉽게 고양이 이야기를 그리지는 않을까.

 

나와 가까운 자리에 있기에 고양이 만화를 그린다면, 나와 '똑같이 가까운 자리에 있는' 다른 삶을 얼마나 잘 들여다보며 만화로 담아내는지 궁금합니다. 연필 한 자루 이야기이든, 걸상 하나 이야기이든, 책 한 권 이야기이든, 신 한 켤레 이야기이든, 우산 하나 이야기이든 얼마든지 그릴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이 가운데 어느 한 가지라도 제대로 살피며 그림이나 만화로 담는지 궁금합니다.

 

만화책 <고양이 동네>를 펼칩니다. 1994년부터 즐겨찾는 만화가게 한켠에 '고양이 이야기를 다룬 만화'가 잔뜩 쌓여 있는데, 이 가운데 이 녀석을 눈여겨보고 골랐습니다. 왜 이다지도 고양이 만화가 쏟아지는가 하고 고개를 갸웃갸웃하면서 썩 내키지 않습니다. 우리 집 식구들이 고양이를 좋아한달지라도 이렇게 지나치게 고양이 만화에만 쏠리는 모습은 하나도 안 반갑습니다.

 

- "와, 이 아이예요?" "네, 마지막 한 마리예요. 괜찮으세요?" "네. 열심히 키울게요." "열심히는 안 해도 되니까, 많이 귀여워 해 주세요." "네."  (165쪽)

- "있잖아, 아빠, 오늘 타이츠가 ……." "그랬어?" "그래서 있잖아. 엄마 잘못이니까. 새 옷 사 달라고 그랬어." "리쿠, 요즘 엄마가 새 옷 입은 거 본 적 있니?" "응?" "엄마는 늘 똑같은 옷만 입는 것 같지 않니?" "그런가?"  (123쪽)

 

고양이 만화이기에 으레 몇 권쯤 더 이어 그리지 않을까 싶은데, <고양이 동네>는 꼭 1권으로 끝납니다. 더도 덜도 아닌 낱권책 하나 부피입니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2권이 없으니 아쉽구나.' 하고 생각하지만, '2권이 없기에 오래도록 더 뭉클함이 남을 수 있구나.' 하고 함께 느낍니다. 애써 새 줄거리를 짜 넣어 2권까지 그리지 않더라도 1권 하나로 얼마든지 그린이가 하고픈 얘기를 찬찬히 들려줍니다. 새로운 줄거리야 얼마든지 짜 넣을 수 있을 테지만 자칫 늘어질 수 있어요.

 

- "리쿠는 잘 있니?" "아, 응. 이제 5학년이라 웬만한 건 혼자 알아서 해." "어머, 기특해라." "이대로 리쿠도 타이츠도 점점 어른이 되어 가겠지." "벌써부터 쓸쓸해 하지 마." "쓸쓸해 한 거 아니거든!" "그러셔?" "괜찮아. 둘 다 자립해도. 나도 어른인걸. 안 놀아 줘도 괜찮아. 가끔이라도 좋으니까 옆에 있어 주기만 하면." "쓸쓸해 하는 거 맞구먼."  (67쪽)

- "응? 타이츠? 밤에 보는 넌 아이돌만큼이나 귀엽구나. 혹시 엄마 기다린 거니?" (60쪽)

 

두 달쯤 앞서 <고양이 동네>를 읽었습니다. 다 읽은 다음 책상맡에 그대로 두었더니 엊그제 옆지기가 읽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기지개를 켜며 오늘은 또 어떤 하루를 보내려나 하고 생각하다가 문득 이 만화책이 보여 다시 꺼내어 주루룩 넘깁니다. 주루룩 넘기다가 내키는 자리에 멈추어 이 자리부터 천천히 새롭게 읽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읽어도 좋고, 뒤에서 앞으로 읽어도 좋습니다. 한 번 다 읽은 책은 두 번째 다시 읽을 때부터 마음껏 마음 가는 대로 읽을 수 있어 좋습니다.

 

- "네가 창가에서 자는 걸 보면 왠지 안심이 돼. 하지만 익숙해지면 또 그런 생각이 들겠지. 할 일도 많은데. 가끔 가슴에 구멍이 뻥 뚫려. '이대로 괜찮은 걸까' 하고 말야. 리쿠 아빠도, 리쿠도 많이 사랑해. 하지만 조금 지친 걸까. 응? 타이츠." (23쪽)

 

앞에서 차근차근 읽던 맨 처음에는 이 만화 <고양이 동네>가 그예 고양이 만화라고만 여겼습니다. 그런데 뒤부터 앞으로 되넘기며 읽다 보니, 책이름만 "고양이 동네"일 뿐, 어쩌면 그린이는 "고양이 동네"라기보다 "엄마 동네"를 그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고양이를 둘러싸고 여러 사람 삶과 모습과 말이 나오지만, 가장 자주 가장 속깊이 나오는 말은 바로 '고양이를 맡아 기르고 챙기며 보살피는 엄마'한테서 나옵니다.

 

<고양이 동네>에 나오는 고양이 '타이츠'는 '엄마 곁에 가장 오래 머물러' 있습니다. 누구보다 엄마 곁에 있을 때 고양이 타이츠는 가장 느긋하며 사랑스럽습니다. 엄마는 고양이 타이츠한테 늘 말을 겁니다. 고양이 타이츠는 사람 말을 할 수 없으니 가만히 듣는데, 못 알아들어 가만히 있는다 여길 수 있고, 엄마가 들려주는 말을 마음으로 새긴다 할 수 있습니다. 엄마 또한 '고양이가 내 푸념을 들어 준다'는 생각보다는 다른 집식구와 매한가지로 고양이 타이츠한테 말을 겁니다.

 

이렇게 고양이한테 말을 거는 엄마가 이 만화 <고양이 동네>를 이어가는 고갱이일 수 있구나 싶어 다시금 책을 펼칩니다. 그래, 이름은 "고양이 동네"이지만, 이 고양이 동네를 오롯이 그리자면 아침부터 저녁까지, 새벽부터 밤까지 동네 한삶을 고스란히 들여다보며 담아야 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또 새벽부터 밤까지 '동네에 머물며 동네를 지키는' 사람은 아빠도 아이도 아닙니다. 바로 엄마입니다. 남녀평등이니 무어니 떠들어도 이 나라뿐 아니라 이웃 일본 또한 남자들은 남자들끼리 바깥일을 합니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여자들은 집에 머물며 애를 돌보고 살림을 꾸립니다. 남녀가 함께 집일을 하며 함께 집에서 지내는 가운데 함께 동네를 들여다보거나 사랑하지 않습니다. 동네를 깨끔하게 가꾸거나 정갈하게 돌보는 몫은 온통 여자한테 주어집니다.

 

엄마는 아빠를 일터로 보내고 아이를 학교로 보냅니다. 혼자 집에 덩그러니 남습니다.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며 이불을 말린 다음 가게로 가서 저녁 먹을거리를 마련합니다. 마른 빨래를 걷어 옷장에 넣고 '어제와는 다른 저녁거리'를 생각하다 보면 금세 하루 해가 저뭅니다. 참말로 "이대로 괜찮은 걸까(23쪽)" 하는 생각이 절로 날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숨을 짓는 엄마 옆에 고양이 타이츠가 다가와 살며시 앉습니다. 고양이 타이츠가 엄마 곁에 앉아 동네를 함께 바라봅니다.

 

- "어머, 타이츠도 왔니? 응? 저리 가. 타이츠. ……. 엄마가 졌다." '숨쉬고 있구나. 그것만으로도 기뻐.'  (170∼171쪽)

 

고양이랑 함께 살아가며 고양이 이야기를 살가이 풀어내는 작품을 보면 늘 반갑습니다. 고양이 이야기를 풀어내었기에 반갑기도 하지만, '살가이 풀어내는 그린이 마음결'이 참으로 반갑습니다.

 

곁에서 노상 같이 살아가는 누군가를 살가이 보듬으며 이야기 하나 엮는 일은 아주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글을 쓰든 그림이나 만화를 그리든 사진을 찍든, 내 곁 살가운 벗이나 이웃이나 살붙이 삶을 고스란히 들여다보거나 껴안으며 알뜰살뜰 담는 사람은 무척 드뭅니다. 가까이 있으나 꽤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할는지, 가까이 있어 흔하고 쉬우니까 아예 젖혀 놓는지 모르겠어요. 언제나 받으니 사랑이라고 안 느끼는 어머니 사랑일 수 있겠지요. 한결같이 누리니까 믿음이라 깨닫지 못하는 어버이 믿음일 수 있을 테지요.

 

만화책 <고양이 동네>는 '숨쉬고 있으니 기쁘다'고 말하는 엄마 삶을 잘 담아 주어 좋습니다. '옆에 있으니 고맙다'고 말하는 엄마 목소리를 고이 실어 주어 좋습니다. '애쓰기보다 사랑해 주자'고 말하는 엄마 손길을 느끼도록 해 주어 좋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양철북,2010)
<골목빛, 골목동네에 피어난 꽃>(호미,2010)
<사진책과 함께 살기>(포토넷,2010)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9)>(그물코,2007∼2010)


고양이 동네

이와오카 히사에 지음, 대원씨아이(만화)(2010)


태그:#만화책, #만화읽기, #책읽기, #삶읽기,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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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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