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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사업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 자전거 도로 조성 사업이 시작되기 전과 (사진 위) 공사가 이뤄진 후 콘크리트로 뒤덮힌 섬진강변 둑길 모습(사진 아래)
 4대강 사업 일환으로 진행되고 있는 자전거 도로 조성 사업이 시작되기 전과 (사진 위) 공사가 이뤄진 후 콘크리트로 뒤덮힌 섬진강변 둑길 모습(사진 아래)
ⓒ 조성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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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새 마을길이 변했다. 아니 실질적으로는 몇 달 사이 눈 깜짝할 동안 벌어진 일이었다. 여름만 해도 푸릇푸릇한 잔디가 무성했던 정감 있던 섬진강변 강둑길이 지난 9월부터 흉측하고 삭막한 시멘트 길로 변한 것이다. 멀쩡하던 길에 고운 모래와 잔돌이 뿌려질 때만해도 그저 패인 강둑을 보수하는 줄만 알았었다. 그런데, 어느날 시멘트를 강둑에 붓는 것 같더니 흙길은 콘크리트 포장도로로 바뀌었다.

도대체 이 마을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전남 구례군 문척면 죽마리에 사는 김세리(35)씨는 갑자기 바뀐 길 때문에 요즘 틈만 나면 군청 앞으로 출근하고 있다. 1인 시위를 하기 위해서다. 마을 주민들 누구도 모르게 어느 날 갑자기 돌변한 마을길에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는데, 도무지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상수원보호구역'이라고 부근에서 누군가가 쓰레기만 태워도 관청에서 달려와 혼쭐을 내던 곳이었다. 그랬던 곳에서 상수원보호구역 표석은 한 구석에 팽개친 채 인체에 유해한 콘크리트를 아무렇지 않게 들이부어 흙길을 없애버린 것을 보고는 도무지 참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지난 20일 처음 피켓을 들고 군청 앞에 섰던 것이다. 

4대강 사업에 의해 콘크리트로 뒤덮이고 있는  구례 섬진강변 둑길은 상수원보호구역이다.
 4대강 사업에 의해 콘크리트로 뒤덮이고 있는 구례 섬진강변 둑길은 상수원보호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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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주민들 누구도 이 공사의 내막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장님도 모르고 있었고, 구례군도 내용을 정말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감추는 것인지 에둘러대는 분위기였다. 여기저기 수소문 한 끝에 국토해양부가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벌이는 공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국토해양부 익산국토관리청과 전라남도가 4대강 사업의 일환으로 만들고 있는, 자전거 도로란다. 다른 곳의 일처럼 여겨지던 4대강 사업이, 지리산 밑자락 섬진강변까지 깊숙이 들어온 것이었다.

공사의 공식 명칭은 '섬진강 살리기 생태하천조성사업'. 4대강 살리기 종합계획('09.5)'에 근거해 진행되는 사업이다. 국토해양부가 지난해 밝힌 자료에 따르면 전국 차원의 자전거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4대강 물길 따라 하천제방에 자전거길 1728㎞를 조성하는 공사다.

4대강 본류 구간은(1206km) 2011년까지 조성하고, 직접연계구간(522km)은 2012년까지 조성하는 계획으로 나와 있다. 한강 305㎞, 낙동강 743㎞, 금강 248㎞, 영산강 432㎞가 대상 구간인데, 4대강과는 관련이 없는 섬진강변은 직접연계구간으로 선정돼 유탄을 맞은 셈이다.

"주민 설명회 했다는데 들어본 사람이 없다"

구례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김세리씨. 섬진강 둑길 옆에 살고 있는 지역 주민이다
 구례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김세리씨. 섬진강 둑길 옆에 살고 있는 지역 주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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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지역 도의원의 주선으로 전라남도 담당자들이 와서 설명회를 열었는데, 참석한 50여 명의 주민들이 다들 분노가 치밀어 화를 냈어요. 관청에서는 환경영향평가와 주민설명회를 다 했다는데, 사업과 관련해 가까운 사람들 누구도 모르고 있는 내용이었고, 우리 마을에서는 공사에 대해 들어본 사람 한 명도 없어요. 한마디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겁니다."

1주일 가까이 구례군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김세리씨는 "주민 여론은 형식적으로 듣고 4대강 관련 공사를 강행한 것"이라며 분개했다.

그는 "관련 공무원들은 위에서 다 결정한 일이고 시공 변경도 국토해양부에 문의해야 하며, 자신들은 시행만 해 모른다는 변명만 하는 등 책임 떠넘기기만 하고 있다"며 "문제는 지금도 마을 주민들이 이 공사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을 주민들을 외면하는 일방적 행정이 밀어붙이기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구례군 관계자는 "군청에서 발주하는 사업이 아니고 국토해양부 익산국토관리청이 주관하고 4대강 사업과 관련된 사안이라 뭐라 말하기가 조심스럽다"면서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건의는 할 수 있지만 쉽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국가적인 사업이기에 지자체가 의견을 내도 위에서 들어줄지 장담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주민들이 제대로 모르는 공사가 어떻게 시행될 수 있냐는 질문에 "익산국토관리청에서 설명회를 다 했는데, 주민들이 자기 이익이 없으니 크게 신경을 안 쓴 것"이라며 "다른 지역에서는 공사와 관련해 의견을 제시한 사례가 있고, 공사에 반대하는 사람도 있지만 찬성하는 사람도 있다"고 밝혔다.

전라남도 영산강사업지원단 관계자도 "공사에 앞서 주민설명회나 환경영향평가 등 법적 절차를 안 지키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면서 "국토해양부 익산국토관리청과 공사에 대해 의논하면서 그 당시 구례군의 입장을 들었는데 반대 의견은 없었다"고 말했다. '섬진강이 왜 4대강 사업에 포함되고 있나'라는 질문에 이 관계자는 "홍수 때 침수가 되는 지역이고 제방 보강 등이 필요해 4대강 관련 생태하천조성사업으로 편성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김세리씨는 이 같은 주장에 대해 "25일 설명회 때 담당 공무원에게 어디다 공고를 냈는지 물었더니 지역 일간지 한 곳과 중앙 일간지 한 곳에 냈다고 하던데, 그 신문을 보는 사람들은 지역에 거의 없다"며 "신문에만 공고를 냈지 마을이나 군청에 공고를 붙이거나 한 일은 없었다"고 반박했다.

주민 반발 민원 잇따르자 공사 일시 중단

주민들의 민원과 반발이 잇따르면서 자전거 도로 공사가 일시 중단됐다. 포장이 중단된 섬진강 둑길
 주민들의 민원과 반발이 잇따르면서 자전거 도로 공사가 일시 중단됐다. 포장이 중단된 섬진강 둑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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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의 민원이 많아지면서 현재 자전거 도로 공사는 일시 보류된 상태다. 영산강 사업지원단의 실무 관계자는 "일단 전라남도에서 중단시켰다"면서 "구례군에서 종합적인 의견을 마련하면 국토해양부 등과 협의해 나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공사가 완전히 중단될 수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나타냈으나 4대강 사업을 통한 지역 환경 훼손이라는 여론에 대해서는 공무원들 역시 어느 정도 인정하는 눈치였다.

구례군 관계자는 "지역에 따라 콘크리트로 할 데가 있고 안 할 데가 있다"며 일방적인 포장에 대해 약간의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전라남도 관계자도 "사진으로 비교해 보니 차이는 있는 것 같다"면서 "도에서도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좋게 풀어갈 생각으로 하고있고 밀어붙이려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구례군의 의견만 나오면 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들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설계부터 시작해 모든 계획은 국토해양부에서 4대강 사업 일환으로 주관하고 있고, 자신들은 위에서 내려온 내용을 실행만 할 뿐이라는 것이었다. 의견을 제시하고 협의 할 수는 있지만 결정권한은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책임 문제는 상급기관에 문의해 보라는 식이었다.

이와 관련해 정정섭 전남도의원은 "공무원들도 자세히 모른다고 하는 부분을 지역주민들이 어떻게 제대로 알 수 있겠냐"며 "자손대대에 물려줘야 할 자연을 훼손시키는 것에 대해 찬반의견 운운하며 눈치나 보고 중립적 입장에만 서 있으려는 공무원들의 태도에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한편, 구례 지역 주민들과 시민환경단체들은 비상대책위를 구성해 이 문제에 대응하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윤주옥 사무처장은 "비대위를 통해 지역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적극 문제제기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구례 섬진강 자락 주민들은 시멘트길(사진 위)을 걷어내고 원래 자신들이 다니던 길(사진 아래)을 회복시켜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구례 섬진강 자락 주민들은 시멘트길(사진 위)을 걷어내고 원래 자신들이 다니던 길(사진 아래)을 회복시켜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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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4대강, #섬진강, #구례,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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