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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오름길에 있는 계단
▲ 등대로 오르는길, 하늘문 등대오름길에 있는 계단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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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1일, 강원도와 동해시가 진행하는 1박 2일 팸투어에 참가했다. 이번 여행은 추암 촛대바위와 무릉도원 명승지, 그리고 드라마 <찬란한 유산>에 나와 인기를 끌었던 묵호항 등대 등을 돌아보는 일정이었다.

묵호항에서 등대로 가는 길에는 예쁜 벽화가 그려져 있는 마을이 있다. 입구에서 공사가 한창이다. 함께한 일행 중 한 분이 "어? 다 없어져버렸네~"하며 아쉬워한다.

"뭐가요?"
"예전엔 여기가 벽화가 그려져 있었어요. 다 없어졌네요."

지나가는 주민분에게 여쭈니 길 확장을 위해 허물고 있다고 한다.

"가파른 언덕 위로
갯바람에 떠밀려 사람들이 길을 내었다.
발길이 머문 자리에서
바람이 멎으면 지붕을 이었고
별빛이 또렷한 날엔
한 평도 안되는 텃밭에 씨를 뿌렸다.
그 사이를 비집고 등대가 들어왔다.
사람들은 등대에 오르지만
묵호의 사람들만이 등대에 오르는 길을 알고 있다.
묵호의 사람들만이
등대로 향하는
길고 좁다란 고샅들의 사연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마을어귀에 적힌 시구가 눈에 들어온다. 가슴이 아련해지는 이유는 그들의 삶의 터전이 없어지고 있어서일까? 그 예쁜 길을 미처 보지 못한 것 때문일까?

 
▲ 등대오름길을 장식하고 있는 벽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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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오르다보니 아직도 군데군데 가뭄의 단비처럼 예쁜 벽화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열여섯에 시집온 아내의 꿈을 텃밭에 두고
바람 앞에 약속이란 걸 내어주고도
한 칸 살림에 작은 고깃배 한척으로도 고맙다.
만선의 기쁨도, 거센 파도의 공포도
딱, 소주 한 잔 만큼만 가지려 했던
어릴 적 바다를 향한 아버지의 그리움."

누군가가 적어놓은 '아버지의 뜰'이라는 시에서 어부의 생활이 엿보인다. 길에서 우연히 읽힌 한편의 짧은 시가 눈앞에 펼쳐진 바다처럼 잔잔한 여운을 안겨준다.

 
▲ 묵호등대해양문화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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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묵호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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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묵호항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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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대에서 내려오는 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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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찬란한 유산에서 이승기와 한효주가 사랑을 확인했던 출렁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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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묵호항마을에서는 많은 드라마와 영화가 촬영됐다. 전도연 주연의 영화 <인어공주>, 송혜교 주연의 영화 <파랑주의보>, 장동건·고소영 커플을 연결시켜 준 영화 <연풍연가>, 그리고 작년 엄청난 시청률을 올렸던 드라마 <찬란한 유산>까지.

<찬란한 유산>에서 선우환(이승기 분)과 고은성(한효주 분)이 사랑을 확인하는 장면을 보며 저기는 어딜까 생각했었다. 바로 앞 장면까지는 분명 망상오토캠핑장과 추암해수욕장 전망대였는데, 갑자기 출렁다리가 나오니 말이다.

"분명 내가 갔던 추암과 망상에는 저런 곳이 없었는데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라고 생각했었다. 한동안 그렇게 며칠을 궁금해하다가 잊고 있었다. 그리고 1년이 넘게 지나고 나서 우연히 이곳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것 또한 여행의 묘미리라. TV나 스크린에서 보았던 익숙한 장소가 나오면 왠지 내가 그 영상 속의 주인공이 된 것 처럼 설렌다. 아~ 나도 이곳에서 누군가와 사랑을 확인하며 달콤한 키스를 나누고 싶다. 상상만으로도 부끄러워진다.

 
▲ 묵호등대의 산책로에 핀 코스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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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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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엽 인품이 온화하고 덕망이 있으며 주민들로부터 존경받았던 호장(지역 유지)이 이곳에 살고 있었다. 어느날 앞바다에 2척의 배가 나타나 배에 타고 있던 자들이 마을을 급습하였고 호장은 이들과 맞서 용감히 싸웠으나 힘이 부족했다. 침입자들이 약탈한 재물과 호장을 배에 싣고 돌아가려 하자 주민들이 달려들어 호장을 구하려 하였지만 이 또한 역부족이었다.

호장은 노하여 침입자들을 크게 꾸짖자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천둥번개가 치며 광풍이 심하게 일어 호장이 탄 배가 뒤집혀 모두 죽고 말았다. 남은 한 척의 배가 달아나려 하자 갑자기 거대한 문어가 나타나 그 배를 뒤집어 침입자들을 모두 죽여버렸다. 그 때 나타난 큰 문어는 호장이 죽어 변신한 혼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는 마을에 평온이 찾아왔고 지금도 착한 행동을 한 사람이 이곳을 지나가면 복을 받게 되고 죄를 지은 사람이 지나가면 그 죄를 뉘우치게 해 준다고 전한다."

문어상 바로 앞에 놓인 표석에 적혀 있는 글귀다. 과연 나는 복을 받게 될까? 벌을 받게 될까?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까막바위에 대해서는 어디에도 설명이 없다. 그 근처에 앉아있는데 마침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온다.

"저 위에 등대 가봐라~ 좋다~"
"아~ 방금 다녀왔어요. 감사합니다."
"아. 갔다왔나? 그람 이 길 따라 쭉 가봐라~"
"네. 근데 이 까막바위는 왜 까막 바위예요?"
"옛날에 바위위에 까마귀가 시커멓게 앉아있었다해서 까막바위다. 바위 밑에는 큰 문어가 살았었고."

간단하다. 까마귀가 시커멓게 앉아서 까막바위다. 왠지 그럴 것 같았다. 오늘 까막바위에는 까마귀 대신 다른 새가 외로이 앉아있다. 저 먼곳을 바라보며...

 
▲ 까막바위와 그 위에 앉은 새한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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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부자횟집의 냄비물회가 끝내준다고 지인이 추천한다
▲ 묵호등대에서 산책로를 따라 내려오자마자 줄줄이 늘어선 식당가 오부자횟집의 냄비물회가 끝내준다고 지인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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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묵호등대, #묵호항, #등대오름길, #동해여행, #강원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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