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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기는 2010년 4월14일~6월26일까지 중국 구이저우(貴州), 윈난(雲南), 스촨(四川: 동티벳), 북베트남, 북라오스를 배낭여행하며 연모하는 여인(女人)의 어머님에게 부친 편지에 기초합니다. 현대적인 건물이나 관광지가 아닌 소수 민족이 사는 동내와 깊은 산골 오지를 다니며, 일기를 대신하여 적은 편지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따스한 사람을 만나 행복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지난 편지를 차례로 연재 기록할 예정입니다. - 기자말

어머님,
아주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먀오주의 축제, 소녀들이 아주 곱디 고운 옷을 입고 나와 둥그렇게 모여 춤을 추면, 뒤에 서 있던 청년이 슬쩍 끼어들어 마음에 드는 아가씨를 안아간다는 그 축제, 구이저우에서 들려주는 축제를 찾아 저는 카이리로 내려왔더랬습니다. 다시 카이리에서 두어 시간, 강가에 위치한 스동이라는 동네는, 물이 흐르기에 많은 이들이 쉬이 모일 수가 있어, 구이저우에서도 큰 축제를 여는 마을입니다. 저는 그 축제를 보기 위해, 내 나라에서 마음을 품고 길을 나섰더랬습니다.

매 년 음력3월15일 전후 구이저우 스동에 축제가 열린다.
▲ 구이저우 먀오주(苗族) 매 년 음력3월15일 전후 구이저우 스동에 축제가 열린다.
ⓒ 손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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먀오주의 축제에 가면, 마을에 들어서기 앞서 그네들은 큰 술상을 차려놓고 손님에게 권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분명 축제가 없는 날입니다. 산 모퉁이를 돌아, 강 어귀에 자리한 스동에 다다르니, 마을은 무척이나 조용하고-우리나라의 면소재지 크기-머리에 빨간 테를 두르고 빗이나 꽃을 꼿은 여인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좌판에는 은장식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봉황의 비녀가 수없이 놓여져 있을 뿐입니다.

제 앞에는 축제보다 장날이 먼저 다가왔습니다. 전 축제를 잠시 잊어버리고 장날의 꼬맹이 마냥 분주히 강 어귀의 좌판을 헤집고 다닙니다. 조그마한 마을에 커다란 장이 섰으며, 강 둔치에는 천막을 친 채 동물시장-닭, 개, 돼지-에서 신발, 옷가지며 농기구 등이 즐비하게 놓여져 있습니다. 그리고 저 뒤편에는 '한데 이발관'이 들어서 어린아이에서부터 아저씨의 머리를 손질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소년이 불만이 있는지 크게 고함을 지르며 한 손을 머리에 얹은 채 방방 뛰고 있습니다.

골목 좌판에는 할머니께서 곱디고운 색실이 가지런히 내어놓기도 했으며, 봉황에서 꽃 문양이 그려진 그림을 그리고도 합니다. 젊은 아저씨는 장식품을 가져와 여인과 아주머니들의 마음을 한껏 부풀려 놓으며, 많은 옷가지며 잡화상이 좁은 골목을 따라 나란히 두 줄입니다.

오전 내내, 장날 속을 헤매다, 시장 할머니 곁에서 지루해하며 몸을 비비고 있는 소년처럼, 저 또한 오후 3시 즈음 버스에 올라 몸을 비비고 있습니다. 장날 풍경을 다 보았다는 마음과 오늘날 축제가 없으며, 버스가 언제 떠날지 모른다는 이야기 등이 따가운 햇살과 함께 내 옆에 자리잡았습니다. 이 버스는 제가 그곳에서 타고 온 버스이기도 합니다. 차장 아주머니는 앞쪽 미용실에 놀러 가서는 어린아이도 봐주며 즐거이 시간을 보내는데, 저는 버스 안에서 시계만 보고 있습니다.

뜨거운 햇살 아래 귀여운 세 꼬마
▲ 구이저우 먀오주(苗族) 뜨거운 햇살 아래 귀여운 세 꼬마
ⓒ 손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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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만드는 솜사탕, 솜사탕
▲ 구이저우 먀오주(苗族) 자전거를 만드는 솜사탕, 솜사탕
ⓒ 손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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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또 스동으로 길을 나서렵니다. 두번 째 길입니다. 어제 나선 길이 사전답사 겸 길 찾기 위한 여정이라면 오늘은 음력 3월 15일이기에 어떤 확신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버스에 올라서는 우선 손님들의 옷 차림새를 눈으로 힐끔 바라봅니다. 분명 그곳에 축제가 있다면, 분명 이 버스에 올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몇몇 손님들의 옷 차림새로 축제를 추론하려 하니 네 명의 손님이 배낭을 메고 있으며 사진기를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네들의 차림새도 축제에 나서는 표정입니다.

버스 안에서, 여행자는 여행자를 알아보는 듯, 네 분과 이야기가 이루어졌습니다. 두 명은 중국인 아가씨이며 그네들 역시 스동의 축제를 보러 간다고 했으며, 다른 두 분은 정년 퇴임을 한 아저씨와 한 평생을 같이 살아오신 아주머니였습니다. 두 부부는 윈난(雲南)과 구이저우(貴州)를 함께 배낭 메고 걷고 있으며, 역시나 영어와 중국어는 술술 나오지 않지만 길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중국인 아가씨의 영어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았으며, 아저씨의 말씀을 따르면, '페스티벌(축제)'이 있다는 이야기만 듣고 생각지도 않은 길을 나서고 있다고 했습니다. 두 부부는 어제, 랑더(朗得 –카이리에서 24km 떨어져 있으며, 마을 전체가 먀오주 전통문화박물관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외국인들이 많이 드나드는 먀오주苗族 마을입니다)에 놀러 갔다 두 아가씨를 만났으며, 그네들을 통해 스동의 먀오주 축제(施洞 苗族 姉妹節)를 알았다고 합니다.

길 위에서 길을 얻고 있으며 나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길을 나서기 앞서서 마음에 품어온 길입니다. 저는 아저씨에게 '확신에 찬 듯' 스동에 축제가 열린다고 들려주었지만 두 시간 뒤에 우리가 마주한 풍경은 너무나 조용한 시골 마을이었습니다. 어제 장날이 펼쳐졌기 때문인지, 오늘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마을 건물에 걸린 커다란 현수막에는 '내일부터 이틀간'이라 적혀있습니다. 오늘이 아닌 내일에 열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주머니께서는 '다시 올 것이냐' 물으셨습니다.

소녀의 아름다움.
▲ 구이저우 먀오주(苗族) 소녀의 아름다움.
ⓒ 손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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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 아가씨가 '라오툰', '에프트누운', '페스티벌'이라고 하였지만 도저히 의미를 추론할 수가 없어 우리는 스동에서 헤어졌습니다. 아저씨와 아주머니께서는 마을을 구경하겠다고 하셨고, 아가씨는 방을 구하러 가고, 저는 타이장(台江)으로 나와 카이리로 돌아오는 길을 택했습니다. 이 길이 조금 둘러가지만 버스편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사를 드리고 '타이장' 가는 버스를 타고서는, 버스 창문에 기댄 채 넋 놓고 가고 있으니 어느 마을에 많은 외국인이 모여있는 모습이 보여, 무작정 다시 내렸습니다. 외국인이 있다는 건 어떤 의미를 품고 있기에, 행여나 하며 그네들이 모인 학교 앞에 가니 이미 어떤 공연이 끝난 뒤였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안내장을 한 장 받아서는 천천히 읽어보며 알았습니다. 종이에는 '여기가 라오툰(老屯)이라는 마을이며, 오후 4시에 어떤 공연이 있다'고 적혀있었습니다. 문득 중국인 아가씨의 말이 정리 되어졌습니다. '라오툰'이라는 마을 이름이 너무 생소하여 그 의미를 유추하기 힘들었지만 이제 모든 게 분명해졌습니다. 다시 스동으로 돌아가, 두 부부와 중국인 아가씨와 함께 '라오툰'으로 나왔습니다.

소녀의 아름다움
▲ 구이저우 먀오주(苗族) 소녀의 아름다움
ⓒ 손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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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전, 연인이 아닌 사진 속 여인에서 느꼈습니다. 전 제 두 눈을 멀게 한 연인을 만나기 위해, 여행의 일정을 스동 지에메이지에(施洞 苗族 姉妹節)에 맞췄으며, 아주머니께서 다음날 또 올 것이냐는 물음에 당연한 듯 한 마을을 –두 시간이나 떨어져 있지만 '3번째' 들를 것이라 했습니다. 어쩜 여행하기 앞서 가졌던 그 설렘과 아주 작은 내 꿈이기 때문일는지 모릅니다.

음력 3월 15일 앞뒤로 타이장(台江), 라오툰(老屯), 스동(施洞)에서 이어지는 축제는 오랜 전통으로, 할머니가 묘령의 손녀를 아름답게 하여 그의 짝을 맺어주기 위한 놀이입니다. 먀오주의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면, 축제에서도 보여지지만 할머니의 손주 사랑의 다정다감함을 볼 수 있는데, 이는 기저귀 때부터 등에 업어 키웠기 때문일는지 모른다는 생각입니다. 아기는 어머니와 아버지보다 어쩜 할머니의 사랑을 더 받고 자라는지도 모릅니다.

그 업혀 자란 딸이 시집을 가기 위해 남자를 찾겠다며 예쁘게 나서는데 할머니의 손끝이 얼마나 정성스러우며, 눈이 얼마나 아름다우실까 잠시 생각을 가졌습니다. 먀오주 여인의 화려한 의상은 은을 섬세하게 조각한 것으로 보기에는 조금 더워 보이지만 바라보는 이를 황홀케 합니다. 또한 목에는 조금 무거워 보이는 목걸이가, 머리 위에는 공주로 거듭나게 하는 화려한 치장이 얹혀져 있습니다. 누군가 골목에서 걸어 나온다면 모두가 반하고 말 것입니다.

소녀의 아름다움.
▲ 구이저우 먀오주(苗族) 소녀의 아름다움.
ⓒ 손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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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툰에서, 오후 두 시가 지나자 한두 명의 여인이 골목에서 걸어 나오는데, 사춘기를 지났거나 그 즈음에 머물러 있는 듯 한 소녀입니다. 하지만 카메라는 소녀의 낯섦과 어색함을 뒤로하고 무조건 다가가는데…. 좀처럼 소녀의 표정이 풀리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먀오주 여인들이 공터에 모여 들기 시작하자, 북이 울려 펴지고 여인들은 둥근 원을 그린 채 돌아가며 춤을 춥니다.

어떠한 짜여진 행사가 아닌 자연스런 흐름입니다. 할머니의 손은 연신 손녀의 얼굴에 머물러 있습니다. 행여나 좀 더 예쁘게, 예쁘게 하기 위함이라 생각됩니다. 내가 보기에는 그냥 놓아두어도 아름답기만 한데, 할머니는 무엇이 부족하신지 손녀의 얼굴과 옷 매무새를 가다듬어주십니다. 그 옛날 할머니가 어렸을 때 할머니의 할머니께서 그리해 주셨듯이.

그 골목에는 아름다움이 숨쉰다.
▲ 구이저우 먀오주(苗族) 그 골목에는 아름다움이 숨쉰다.
ⓒ 손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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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 아름다움 앞에 오래도록 서성이다, 마지막 버스를 놓칠 번 했습니다. 어머님, 매년 음력 3월이 다가오면 저는 사막의 어린 여우처럼 구이저우의 그 동내를 무척이나 그리워할 듯 합니다.


태그:#중국, #구이저우, #스동, #묘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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