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전거 고속도로
볼일 때문에 서울에 가야 합니다. 시골버스 때에 맞추기 만만하지 않다고 느끼며 혼자 움직이는 만큼 자전거를 끌고 나갑니다. 시골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시외버스 타는 곳으로 가면 시골버스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시외버스 오가는 때에 한결 잘 맞출 수 있습니다. 자전거는 시외버스 짐칸에 실으면 돼요.
산기슭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논둑길을 달릴 때에는 사람을 아무도 못 만나지만, 마을을 벗어나 큰길로 나오면 띄엄띄엄 자가용이 보입니다. 읍내와 가까와지면 자동차가 제법 늘어납니다. 표를 끊고 자전거를 짐칸에 실은 다음 버스에 탑니다. 버스가 부릉부릉 움직여 고속도로로 접어들 무렵에는 자동차가 꽤 많습니다. 버스에 타고 있는데에도 공기가 차츰 나빠진다고 느낍니다. 서울하고 가까와질수록 속이 메스껍습니다. 드디어 서울에 닿아 버스에서 내립니다. 자전거를 꺼내고 둘레를 둘러봅니다. 온통 사람숲이고 자동차바다입니다.
자전거에 바퀴를 달고 달립니다. 찻길로 갈까 한강 자전거길로 달릴까 망설이다가, 뚝섬 즈음에서 자전거길로 접어들어 봅니다. 이곳부터 노량진까지 달리기로 합니다. 낮이지만 자전거길을 오가는 사람과 자전거는 제법 있습니다. 쉬고자 오가는 사람이 있을 테고, 일이 없어 다니는 사람이 있겠지요. 어쨌든 서울에는 무엇이든 다 많습니다.
자전거길을 달리는 동안 자전거는 멈추기 어렵습니다. 달리며 군데군데 쉼터에서 다리를 쉬어도 되는데, 한강길을 달리는 동안 딱히 '이곳에서 쉬고프다'는 느낌이 드는 쉼터는 만나지 못합니다. 그저 달리고 내처 달려야 합니다. 시골길을 달릴 때에는 왼쪽을 보건 오른쪽을 보건 산이요 논밭이요 나무요 하면서 느긋한데, 도시에서는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아파트이고 자동차밭입니다. 자동차 소리에서 홀가분하며 따사로운 햇살과 시원한 바람을 함께 느끼는 한편 그늘자리에서 두 다리 뻗을 만한 쉼터란 거의 없습니다. 거님길이 있어도 굳이 자전거길로 걷는 사람 때문에 앞을 잘 살펴야 합니다.
그리 넓지 않은, 아니 좁은 자전거길에서 앞 자전거를 앞지르는 이들이 많아, 마주 달리는 자전거 또한 제대로 보아야 합니다. 손과 얼굴과 발을 맑은 물로 씻을 수 있으면서 고픈 배를 채울 만한 먹을거리를 사먹을 수 있는 쉼터란 더더욱 없습니다. 어쩌면 이런 쉼터가 있다면 고속도로 쉼터하고 똑같다 할 만하겠지요. 아니, 이 모습만으로도 한강 자전거길이란 자전거한테는 고속도로하고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자전거를 못 멈추고 헉헉대며 달리면서 생각합니다. '한강 자전거길이란 이 나라 고속도로하고 똑같은 길이 아닐까? 한강 자전거길을 달리는 사람 마음에 느긋함이나 아름다움이나 평화로움이나 사랑스러움이 꽃필 수 있을까?' 즐거운 마실길이라거나 고마운 나들이길이 되도록 하자면 한강 자전거길은 크게 달라져야지 싶습니다. 죽죽 뻗은 길이 아닌 구불구불한 길이고, 훨씬 널찍한 길이며, 느긋하며 한갓지게 쉴 자리는 훨씬 많아야 합니다. 이대로는 아무래도 '더 빨리빨리 달려야 하는 길'이거나 '운동이 모자란 사람들이 운동을 하는 길'이 될 뿐, 자전거로 볼일을 보러 오가는 사람이 지나갈 만한 자리라든지, 자전거로 먼길을 달려온 사람이 느긋하게 지낼 만한 자리가 되기는 어렵다고 느낍니다. 여느 시골길이나 국도를 즐겨 달리는 저로서는 한강 자전거길은 도무지 못 달리겠다고 새삼 느낍니다. 서울 시내 같은 데에서는 차라리 자동차랑 나란히 달리는 길이 낫다고 느낍니다.
땀을 옴팡 쏟으며 바야흐로 노량진 다리께에서 빠져나옵니다. 찻길로 접어듭니다. 찻길에서는 시내버스하고 실랑이를 벌어지만, 시내버스는 언제나 자전거보다 뒤처집니다. 역마다 서서 사람들을 태우고 내려야 하니까요. 자전거를 들볶는 시내버스를 옆으로 스쳐 지나가면서 곱씹습니다. '이 버스기사 또한 날마다 따분하며 고단한 서울길을 수없이 오가야 하니, 마음이 이토록 메말라 버리고 마는구나.'
(2) 고마운 책나눔터
헌책방 앞에 닿습니다. 노량진 헌책방 <책방 진호>에 닿자면, 마지막에 건널목을 건너 거님길로 접어들어야 합니다. 이때에 학원에서 쏟아져 나오거나 학원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갑니다. 서울은 어디를 가나 사람으로 넘치는데, 노량진 또한 젊거나 어린 사람으로 바글바글합니다. 이들은 모두 '공부를 한다'고 생각할 텐데, 곰곰이 따진다면 공부가 아니라 '돈을 더 벌도록 돕는 자격증을 따는 시험문제 풀이'를 한다고 해야 옳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공부란 마음닦이요 몸닦이입니다. 참다이 배우며 가르치자면 머리에 지식을 쑤셔넣는 길이 아닌 슬기와 사랑과 믿음을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자격증을 늘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너른 사랑과 손길과 품으로 따사롭게 껴안거나 어루만질 수 있는 사람으로 이끄는 학원이 노량진에 한 군데라도 있을까 궁금합니다.
자전거를 묶고 책방으로 들어섭니다. "어, 오랜만이네." 인천에서 살면서 자주 못 찾기도 했으나, 시골에서 살아가며 더 못 찾으니 늘 오랜만에 찾아가는 헌책방이 됩니다.
"네, 참 오랜만에 왔습니다."
"어떻게, 요즘은 잘 지내시나?"
"늘 똑같아요. 이제는 시골로 살림집을 다 옮겨서 더 찾아오기 어렵습니다."
언제나처럼 인사를 나눈 다음 사진기를 꺼냅니다. 입으로는 인사를 나누면서 눈으로는 책꽂이를 살핍니다. 오늘은 <LOVE&FREE>(다카하시 아유무/차수연 옮김, 동아시아, 2002)라는 작은 책이 먼저 보입니다.
.. 사야카의 웃는 얼굴이 좋다. 무엇인가 끄적거리기 전에 우선 이 여자를 즐겁게 해야지 .. (27쪽)
꽤나 많이 팔리고 읽히며 얘기가 나온 책이라고 떠오릅니다. 그러나 저는 이와 비슷한 책은 썩 좋아하지 않습니다. 출판사한테는 팔기 좋은 책이라 할 만하고, 읽는이한테도 읽기 좋은 책이라 할는지 모르지만, 여행이든 사진이든 삶이든 사랑이든 차근차근 속살로 스며드는 이야기가 못 되기 일쑤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번 제대로 읽고 나서 얘기해야 하지 않나 싶어 집어듭니다. 글은 얼마 없이 사진으로 채워 놓는데 사진은 하나같이 스쳐 지나가는 자리에서 후다닥 찍었다고 느낍니다. 한 곳에서 오래오래 느긋하게 머물며 삶으로 녹여내어 얻는 사진이 아니라, 이곳저곳 빠르게 훑는 동안 '버스 차창에 스치는 모습'이라든지 '자동차 차창으로 지나가는 모습'과 같구나 싶습니다.
.. 인도에는 카메라를 들이대서는 안 되는 풍경, 차마 렌즈를 들이댈 수도 없는 장면이 정말 많다. 마음이 무겁다. 피사체가 무엇이든 혹은 누구이든 사진은 '찍는 것'이 아니라 '찍혀 주셔서 고마운' 것이 아닐까 .. (75쪽)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은 분이 사람들 삶으로 한결 스며들거나 당신 삶을 사람들한테 조금 더 나누었다면 "카메라를 들이대서는 안 되는" 삶자락이란 따로 없습니다. 사진으로 담아내지 못하는 모습이 있을 뿐입니다. 가난하거나 꾀죄죄해 보인다고 해서 사진으로 못 담을 까닭이 없는데, 가난하다 하여 꾀죄죄한 모습이지 않습니다. 가멸찬 살림이면서 꾀죄죄한 사람이 이 나라에 얼마나 많은가요. 떵떵거리는 권력자한테서 꾀죄죄하면서 볼썽사나운 모습을 얼마나 자주 보는가요.
다카하시 아유무 님은 그나마 '찍혀 주셔서 고마운' 사진은 느낍니다. 다만, '찍어 놓아서 고마운' 사진이랑 '함께 사진기와 어울리며 즐거운' 사진까지 나아가지 못합니다. 그래도 책 첫머리부터 "우선 이 여자(옆지기 사야카)를 즐겁게 해야지" 하고 깨달았기에, 썩 볼 만하다고는 느낍니다. 당신한테 사랑스러운 한 사람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으면 이대로도 넉넉합니다.
<交通公社のMOOK 一流シリズ (1) 日本の名旅館>(JTB,1981)이라는 자료책을 봅니다. 일본에서 손꼽히는 잠집 200군데를 다루는 사진책이랄지 길잡이책이랄지 할 만한데, 제법 사랑받는구나 싶습니다. 1981년에 1쇄인데 1984년에 10쇄입니다. 햇수로 치면 서른 해나 앞서 나온 책입니다만 사진결이나 엮음새로 보자면 한국에서 2010년에 나오는 여행책하고 댈 수조차 없이 정갈하며 빼어납니다. 일본책을 들여다보면 언제나 슬픕니다. 자꾸자꾸 어줍잖은 한국책이 떠오릅니다.
<Wyman Meinzer(사진),Henry Chappell(글)-Portrait of a Texas Ranch>(Texas Tech University Press,2004)라는 도톰한 사진책 하나 들여다봅니다. 헌책방이라는 곳은 저처럼 가난한 사진쟁이한테, 뭐랄까 가난하다는 말도 잘 어울린다 할 만한데, 쪼들리는 사진쟁이한테 고마운 책나눔터입니다. 저한테는 옆지기하고 딸아이하고 자전거가 있습니다. 달리 남다른 무엇이란 없습니다. 제 돈으로 장만하는 집이 없습니다. 고마운 이들이 내어주어 기쁘게 얻어 사는 집입니다. 딱히 벌이가 마땅하지 않으나 식구들 밥먹고 책 사들이는 데 빼고는 돈을 쓸 일이 없습니다. 더구나, 헌책방으로 마실을 나오면 이렇게 빛깔 고운 나라밖 사진책을 실컷 구경하고 싼값에 장만할 수 있어요. 이런 사진책을 미국이든 일본이든 영국이든 프랑스이든 …… 비행기 타고 나가서 장만한 다음 한국으로 돌아오자면 얼마나 많은 돈이 있어야 할까요. 나라밖 나들이는 가지도 못하는 주제에 참 고마운 나라밖 사진책을 쏠쏠하게 마주합니다.
<Nina Rao(글)-Himalayan Desert>(Roli Books,1999)라는 사진책을 집으면서도 새삼스레 고맙습니다. 이 사진책을 내놓은 나라에도 못 가는 내 주제이면서, 이 사진책에 그려진 히말라야라든지 네팔이라든지 티벳이라든지 …… 드나들 깜냥이 못 되는데에도 좋은 책 하나 만나며 마음으로 곱씹습니다. 책에 담긴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라다크 하늘은 얼마나 맑고, 라다크 겨레는 얼마나 수수한가를 헤아립니다.
<노무현-여보, 나 좀 도와줘>(새터,1994 첫/2005 16쇄)라는 책을 구경합니다. 2005년에 16쇄를 찍었다지만, 이무렵 뒤로 차츰 헌책방에 자주 나타나던 책이 되었고, 노무현 님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뒤로는 헌책방에서 거의 사라지는 책으로 바뀌었습니다. 사람은 없고 책이 있습니다. 사람은 가고 책은 남습니다. 1994년에 이 책을 내놓던 노무현 님과 대통령으로 지내던 2004년 노무현 님은, 또 숨을 거두기 앞서 2009년 노무현 님은 서로 얼마나 같고 서로 얼마나 달랐을까 궁금합니다.
.. 국무위원 여러분, 아직도 경제 발전을 위해서, 케이크의 크기를 더 크게 하기 위해서 노동자의 희생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런 발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겠습니다. 니네들 자식 데려다가 죽이란 말야! 춥고 배고프고 힘없는 노동자들 말고 바로 당신들 자식 데려다가 현장에서 죽이면서 이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키란 말이야! .. (16∼17쪽)
이런 대목 저런 대목을 읽으며 괜히 씁쓸합니다. 노무현 님이 대통령으로 있는 동안에도 노동자와 농사꾼은 한결같이 짓눌렸습니다. 누가 대통령으로 있든 노동자와 농사꾼을 짓누르는 숱한 공무원과 정치꾼은 당신들 자리를 튼튼하게 지키며 거들먹거립니다. 그런데 앞으로 쉰 해쯤 지나고 백 해쯤 지나고 나면, 이 책 <여보, 나 좀 도와줘>는 어떻게 읽히려나요. 이백 해쯤 지나고 오백 해쯤 지나고 나면, <월간조선> 같은 잡지는 어떻게 읽히려나요. 뒷날 사람들은 오늘날 사람들 이야기를 얼마나 옳고 바르며 알맞게 읽을 수 있으려나요.
<유미리/김유곤 옮김-남자>(문학사상사,2000)를 집습니다. <남자>는 일본말로 된 책을 먼저 장만했습니다. 번역이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모르는 채 일본책부터 덜컥 장만해 놓았는데, '아주 마땅하게 제가 잘 몰랐을 뿐'이지 2000년에 진작 번역이 나왔네요. 참으로 고맙게 읽을 번역책입니다.
(3) "미스터 최는 찍기만 하지, 본인 사진은 없지?"
느끼는 그대로 글을 쓰고, 생각하는 그대로 그림을 그리며, 보는 그대로 사진을 찍는 가운데, 살아가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아름다움을 찾는 길이 나쁘지는 않을 테지만, 나 스스로 아름다이 살아가며 웃고 울 수 있다면, 그러니까 처음부터 '아름다움만 찾는' 길이 아니라 나부터 아름다운 삶이 되도록 땀흘리는 나날이 즐거웁지 않느냐고 생각합니다.
책을 살피던 눈을 지긋이 감고 생각에 한동안 잠기다가 눈을 다시 뜹니다. 책은 조금만 더 보고 볼일 보러 가야지요. 볼일 보러 서울로 마실을 왔으면서 볼일에 앞서 헌책방부터 왔는데, 너무 오래 있다가는 때를 놓치겠습니다.
<보자기, 예술로 승화된 실용>(경운박물관,2007)이라는 자료책을 들여다봅니다. 보자기란 여느 살림살이입니다. 그야말로 수수한 살림살이입니다. 이제는 이 수수하면서 투박한 살림살이가 박물관에 고이 모셔지는 유물이 됩니다. 앞으로 쉰 해나 백 해쯤 뒤에는 2010년에 만든 '한과 싸던 보자기'라든지 '갈치 선물세트 싸던 보자기'도 박물관으로 들어가겠지요. 우리 집에는 '국회의원 남재희씨가 신동우 화백한테서 그림을 얻어 만들고 동네에 뿌린 보자기' 한 장이 있습니다. 이 보자기 또한 앞으로는 얼마든지 박물관에 깃들리라 생각합니다. 모두모두 살아 있는 역사이자 살아온 발자국입니다.
<진동선-쿠바에 가면 쿠바가 된다>(비온후,2009)는 2009년 1월 11일에 나왔습니다. 책 안쪽에는 1월 14일에 글쓴이가 누군가한테 적바림해 준 손글씨가 남아 있습니다. 선물을 한 책인지, 누군가 이 책을 사면서 글쓴이한테서 손글씨를 받았을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아무튼, 책 머리말에 "여행자들에게 쿠바는 열망만 키운 채 늘 공백으로 남은 오지 아닌 오지다. 그래서 가게 된다면 더 늦지 않은 것에 감사하고 끝까지 남아 준 것들에 감사한다. 낡은 시간 속에 사는 쿠바는 빛과 바람과 색과 영혼의 땅이다. 정열은 보너스다. 더 늦기 전에, 더 잃어버리기 전에 그곳에 갈 수 있다면 행운이고 축복이다." 하는 글월이 있습니다. 그래, 쿠바땅 쿠바사람은 '낡은 삶'이란 말이지요?
인천에서 살아가던 때 제가 살던 골목동네이든 이웃 골목동네이든 '출사' 나오는 사람이 참 많았습니다. 이들 출사쟁이란 여행쟁이하고 똑같습니다. 구경하는 사람이지 살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지나가는 사람이지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출사쟁이 사진이랑 여행쟁이 사진은 사뭇 닮습니다. 아니 똑같다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섞이지 않을 뿐더러 섞인다 싶더라도 자꾸 뭔가를 남기려 듭니다. 자꾸자꾸 뭔가를 얻으려 합니다. 그예 살아가면 될 뿐인데.
스침쟁이 사진이란 삶사진하고 같을 수 없으나, 비슷할 수조차 없고, 따를 수조차 없습니다. 이제 한국에서도 '쿠바 사진'이 하나둘 나오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쿠바사람 삶사진'이란 없고 '쿠바 관광사진'만 넘칩니다.
사람들은 관광을 가든 여행을 가든 한결 넉넉하며 한갓져야 하지 않겠느냐 생각합니다. 섣불리 사진만 더 많이 찍으려 들기 앞서, 조용히 즐기며 가슴으로 받아안아야지 싶습니다. 3박4일 나들이라면 2박 3일쯤 사진기는 가방에 쑤셔박으며 지낸 다음 마지막날에 비로소 사진기를 꺼내는 마음가짐일 때에 그럭저럭 한두 장 볼 만한 사진을 얻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쿠바에 간다고 쿠바가 될 수 없거든요. 서울사람이 인천에 온다고 인천이 되겠습니까. 서울사람이 부산에 간다고 부산이 되나요. 서울사람이 음성에 온다 한들, 진천에 온다 한들, 괴산에 온다 한들, 이들이 음성이나 진천이나 괴산이 되는 적은 도무지 있을 수 없습니다. 서울사람은 그저 서울입니다. 스스로 때를 벗겨도 힘들지만, 때를 벗긴다고 달라지지 않습니다. 누구한테나 뼈가 있고 살이 있으며 피가 흐르니까요. 한국사람이 쿠바에 간다면 '내가 쿠바로 바뀌는 사진'이 아니라 '한국사람이 본 쿠바 이웃 사진'으로 흐뭇해 할 줄 알면서 열 해 스무 해 서른 해 마흔 해를 삭여야 합니다. 이렇게 삭여도 쿠바로 무르익기는 힘들지만, 이렇게 차근차근 시나브로 무르익으려는 매무새여야 조금이나마 '사진이라 말할 만한 사진'이 나옵니다.
어느덧 책을 다 골랐습니다. 이제 책값을 셈하고 돌아갈 때입니다. 문득, <책방 진호> 사장님이 '찰칵!' 하고 사진을 찍습니다. 응? 뭘까? 사진을 찍고 나서 <책방 진호> 사장님이 빙긋 웃는 얼굴로 "미스터 최는 찍기만 하지, 본인 사진은 없지?" 하고 말문을 건넵니다. 요즈음 당신 책방 책손 사진을 더러 찍으신다며 제 사진도 한 장 찍어 주었습니다. 두 번째인가, 헌책방에서 사진 찍는 사람이 아닌 사진 찍힌 사람이 된 일은.
책값을 셈하면서, "책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못 봤지? 이 책이 표지만 떨어져서 (내가 손수) 새로 만들었어." 하는 말씀을 듣습니다. 사장님 책상에 올려진 두툼한 영어 책 하나를 들추어 봅니다. 이곳을 1994년부터 들락거리면서 노상 느끼는데, 예나 이제나 <책방 진호> 사장님이 '낡은' 책을 손질하여 '헌' 책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하는 손놀림과 매무새란 놀랍습니다. 헌책방 일꾼 손을 거친 낡은 책은 비로소 '헌책'이란 이름을 얻으며 헌책방 책시렁에 꽂힙니다. 새책방 일꾼은 새로 나오는 책을 골고루 내보이며 두고두고 사랑받도록 애쓴다면, 도서관 일꾼은 이런저런 숱한 책이 되도록 오래오래 이어가도록 알뜰히 건사하도록 힘쓰고, 헌책방 일꾼은 다시 태어나야 할 책을 꼼꼼히 살피어 되살리면서 제대로 읽히도록 마음쓰는구나 싶습니다.
오늘도 즐겁게 책마실을 합니다.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오는 동안 속이 메스꺼워 죽는 줄 알았고, 고속도로처럼 사람내음 없는 한강 자전거길을 타며 슬펐는데, 모든 앙금이 살며시 가라앉거나 풀립니다.
"오늘도 즐겁게 책 보다 가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응,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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