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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영삼아, 형님 말 잘 듣거라.  형 말만 잘 들으면 만사형통이다. 형이 니 색시감도 구해 놓고 니가 살 집도 마련해 놓고 니를 기다리고 있단다. 부디 형 말, 잘 들으려무나."

내가 1993년 11월, 때이른 삭풍이 몰아 치던 정든 조국 땅을 뒤로 하고 형님이 터를 잡고 있는 땅 끝 동네 아르헨티나로 국제나그네로서의 긴 여정의 첫 발을 디딜 때 어머니께서 신신당부하신 말이다.

"영삼아, 형 말만 잘 들으면 만사형통이다"

젊은 시절의 엄니와 아부지
 젊은 시절의 엄니와 아부지
ⓒ 조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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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큰 형은 아르헨티나에서 스페인에 본사를 둔 선박회사의 남미지사장 일을 그만두고 독자적인 선박사업을 구상하고 있었다. 내가 감옥에서 나오기 만을 기다리고 있던 형은 내가 만기 출소하자마자 초청장을 보내 왔고 나는 형님의 사업을 도우러 훗날을 기약하며 땅 끝 동네로 떠났던 것이다.

'내나라 내땅'을 떠나올 때 어머니의 간곡하신 당부 말씀대로 형님과 오손도손 살고 싶었지만, 나라는 인간은 평범하게 살 운명은 아니었나 보다. 이인모 선생의 초청, 그리고 허가 받지 않은 여행.

그 후 17년. 어머니의 가슴에 대못을 쾅쾅 박은 불효 막심한 이 국제나그네는 단 한 번도 절절히 그리운 어머니를 뵙지 못했다. 가래로 막고 호미로 막아 보지만 샛 길로 치고 나오는 허망하게 흘러버린 세월과 함께 청춘은 가고, 아버지는 구순을 바라보시고 어머니도 5년 터울로 그 뒤를 따르고 계신다.

집 나간 자식 애타게 그리며, 끼니 때마다 떠난 자식 몫의 따스한 밥 한 공기를 따로 담아, 식을새라 아랫목 이불속에 넣어두고, 동구밖에 나가 행여 자식이 돌아올까  땅거미가 질 때가지 온종일 기다리시는 우리의 전형적인 어머니들.

먼 길 떠난 불효자식은 어버이의 생신을 기억 못해도 자식의 생일 때마다 꼬박꼬박 미역국과 흰쌀밥을 차려 놓으시는 어머니, 우리 어머니도 동구 밖에서 하염없이 집 떠난 자식을 기다리는 전형적인 어머니들 중 한 분이다.

이 국제나그네가 망명을 전후해서 길신 들린 넋을 좆아 갈 곳 잃고 정처 없이 이역 땅을 방랑할 때 끼니를 거르며 아낀 돈으로 그리운 어머니께 국제전화를 할 때면  아들이 당분간(?) 당신께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귀동냥으로 나마 들었는지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셨다.

"내 아들아, 영삼아. 제발 끼니 걸르지 말고 꼬박꼬박 챙겨 묵어야 한다. 아무도 없는 객지에서 혼자 몸으로 어찌 할꼬. 아이구우, 내 아들아. 부디 건강해서 좋은 세상 오거들랑 만나자꾸나. 아들아, 영삼아, 내 아들아!"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국제나그네, 지금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려 차마 더는 이야기를 진행할 수가 없다. 바깥 바람을 조금 쐬고 와서 다시 독자 여러분을 만나야겠다.  독자 여러분, 넒은 양해 바랍니다.

(한 참 후) 자, 이젠 차분한 마음으로 다음 글을 이어가 보자.

주말이면 내가 어김없이, 빠뜨리지 않고 챙기는 일이 있다. 사랑하는 그리운 어머니께 전화 드리는 일이다. 물론 엄지엄마와 똥가리에게도 전화를 하지만 간혹 빼 먹을 때도 있다. 그러나 어머니께 전화로 안부인사 여쭙는 것 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챙긴다. 당연히 인터넷 전화는 아니다.

국제전화라 조금 부담이 되기는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효 막심한 국제나그네가 연로하신 '아부지와 엄니'에게 할 수 있는 최상의 효도는 그것밖에 없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17년 동안 뵙지 못한 두 분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일주일에 전화 한 번 거는 일 뿐이라니, '아부지, 어무니, 이 불효자를 용서하지 마소서.'

일요일이나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되풀이되는 국제나그네와 어머니의 한결같은 대화가 이어진다.

"어머니, 접니다. 독일입니다."
"오냐, 내 아들아. 잘 있었냐."
"예, 어머니, 아버지는요."
"응, 지금 누워 계신단다."
"어머니도 그렇지만 아버지 연세가 많으셔서 참, 걱정입니다. 그래도 날씨 좋으면 두 분, 집 주변 산책이라도 꾸준히 하세요. 제발 부탁이니 두 분 오래오래 사셔야 합니다. 제발요."
"오냐, 내 아들아. 니를  보기 위해서라도 오래 살아야지야. 근데 아들아. 언제 돌아 오느냐. 제발 돌아 오니라. 늙은 에미의 마지막 소원은 죽기 전에 느그 세 가족이 이곳에서 오손도손 사는 걸 보고 잡다. 니 아부지도 그게 마지막 소원이란다."
"어머니, 저도 지금 한 걸음에 달려가고 싶습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저는 돌아갈 것입니다. 반드시, 어머니. 부디 건강하세요."

중절모 신사의 회한은 나의 미래?

약 십년 전 두 분이 70대였을 때 찍은 젊은 날(?)의 초상이다. 오래오래 사십시오.
▲ 불효자는 웁니다 약 십년 전 두 분이 70대였을 때 찍은 젊은 날(?)의 초상이다. 오래오래 사십시오.
ⓒ 조영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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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느 책에선가 읽은 기억이 난다. 아마 중학교 때 배운 국정교과서였을 것이다.

만주 벌판 혹한의 겨울 광풍처럼 새찬 눈보라가 몰아치는 어느 겨울 날이 되면 어김없이 사거리 한복판에 서서 겨울 광풍, 눈보라를 온 몸으로 받아 안으며 꼼짝 않고 땅거미가 질 때까지 쓰고 있던 중절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신사가 있었다.

그 신사를 관찰하는 관찰자는 사거리 한 귀퉁이에서 자그마한 구멍가게를 하는 구멍가게 주인이었다.

그 신사는 해마다 혹심한 추위가 닥쳐오면 그 사거리에 나타나 하루 종일 서 있다 처연하게 돌아가는 것이었다.

몇 해가 지난 어느 추운 겨울 날, 구멍가게 주인은 겨울이 오면 빠짐없이 되풀이 되는 중절모 신사의 기이한(?) 행태의 사연이 궁금해서 신사에게 다가가 물었다.

"여보시우, 신사 양반. 왜 그렇게 매년 극심한 겨울 한 복판에 이곳 사거리에 찾아와서 모자 벗고 하루 종일 서 있다가 가는 사연이 무엇이우. 그 동안 무지 궁금했지만 신사의 모습이 너무 처연하고 엄숙해서 감히 물어볼 엄두를 못 내었다오. 오늘은 용기를 내어 물어본다우."

중절모 신사는 '후' 하고 땅이 꺼질 듯한 한 숨을 쉬더니 담배 한 대를 피워 물고 얼음처럼 차가운 겨울하늘을 쳐다보며 간신히 말을 이었다.

"제가 오랜 방랑에서 돌아와 보니 어머니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안 계시더군요. 우리 어머니는 날마다 이 사거리에 나와 제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어느 추운 겨울 날 이곳에서 쓰러지셨고, 그 후유증으로 돌아가셨답니다. 저를 애타게 찾으시다가.

그래서 그 불효를 씻을 길이 없어 해마다 이렇게 혹한의 시기가 오면 이 세상에 없는 어머니를 그리워 하면서 이곳에 서서 속죄를 한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하루 종일 눈보라 추위와 맞닥뜨리고 있어도 어머니 없는 공허함을 다스릴 길이 없답니다."

나, 국제방랑자, 신사는 아니지만 중절모자를 즐겨 쓴다. 지천명을 훌쩍 넘어버린 지금, 머릿 수가 거의 없는지라 방어하기 위한 방편에서다. 요즘 나는 중절모 신사의 이야기가 미래의 어느 날, 나의 자화상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어찌할 것인가. 어찌 해야 하는가. 무엇을 추구하고자, 무엇 때문에 이역의 땅에서 아직도 방랑을 하고 있는가. 줄기는 무엇이고 곁가지는 또 무어란 말인가. 혼란스럽다. 무지 혼란스럽다.

남들은 애타게 기다리시는 어머니 곁으로 가고 싶으면 독일국적을 취득하라 하지만, 나는 꿈에도 다른 나라 국적을 취해 보겠다는 생각을 가져 본 적이 없다. 무슨무슨 거창한 민족이니 뭐니를 떠나 그냥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이다. 다른 것은 없다. 그냥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

물론 나는 망명 이후 직업을 계속 가지고 있었고 국적취득 요건인 8년의 기간을 훨 웃돌아 이곳 독일에서 생활하고 있다. 따라서 독일국적을 취할 수 있는 충분조건은 갖춘 셈이다. 필요조건은 내가 거부하고 있지만 말이다. 독일국적을 취하면 당연히 여러모로 생활하는데 편리한 점도 부수적으로 따라온다.

분명한 것은 걸리적 거리는 곁가지를 과감히 쳐 버리고 언젠가 나는 돌아갈 것이다. 어머니가 애타게 기다리시는 '내나라내땅'으로,  중절모 신사의 고통스런 전철을 밟고 싶지 않은 이기심이 요즘 온통 국제나그네의 뇌리를 점령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전에 끝난 주말극 동이에 나오는 코믹스런 하급장교의 콧노래를 나는 매일, 수 없이 흥얼거린다.

"갈까 부다. 가알까 부우다. 그리운 엄니가 계신 내 나라 내~ 따앙  으로..."


태그:#불효자는 웁니다, #엄니아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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