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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 경관과 잘 어울려요!
▲ 치산서원의 관설당! 주위 경관과 잘 어울려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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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정취가 물씬 풍기는 요즘,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것이 자연의 신비로움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가을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아름다운 계절이라고 말하고 싶은 까닭도 이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매주 화요일이 나에게는 유일한 휴일입니다. 아침마다 걸려오는 전화를 들으면 알 수 있습니다. 아, 오늘은 쉬는 날이지, 전화 한 통에 모든 게 정리가 되는 셈이지요. 어머니는 이제까지 늘 그래왔듯이 휴일이 토요일이든 화요일이든 잊지 않고 아침마다 전화를 해주시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치산서원에 들어서는 마음이 조심스러워요!
▲ 홍살문과 삼강문 치산서원에 들어서는 마음이 조심스러워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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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 휴일 아침도 가끔 거를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또 나름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모내기철과 가을추수 때입니다. 눈 뜨자마자 들녘으로 나가니 어디 다른 곳에다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입니다. 이번 주 화요일 아침에도 어머니는 저에게 전화 하는 걸 잊으셨는지 없었습니다.

늘 오던 전화가 안 오니 그것 역시 무슨 중독처럼 아니 습관처럼 뭔가 허전했습니다. 집, 휴대전화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나 혼자 가서 거들 일은 없습니다. 그냥 보면 아직 추수가 한창인 것도 아닌데 어머니는 늘 바쁘시니 가도 딱히 할 일은 없으니 이번 주엔 그냥 안 가기로 했습니다.

옛 기운이 느껴져요!
▲ 강학당인 관설당과 서재! 옛 기운이 느껴져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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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마음먹고 집에 있으려니 날씨는 화창하고 시원한 바람은 이마를 스치고, 마음도 자꾸만 밖으로 나가려 하는데 그냥 집에 있기가 뭐 해서 주섬주섬 챙겨 입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차를 타고 갈만한 곳을 생각해보니 늘 말로만 듣던 '박제상유적지'를 울산에 살면서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걸 알았습니다.

기념물 제1호인 '박제상유적지', 시내를 벗어나 고불고불 시골길을 달렸습니다. 들녘은 어느새 온통 노란빛으로 물들었습니다. 저것이 진정 자연의 색이구나 싶었습니다. 이맘 때 고향집에 가면 늘 보았던 풍경이지만 또 그것을 보고 자랐지만 나이가 들면서 느껴지는 것은 새삼 색다르게 보입니다.

충렬공의 정신이 담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 충렬공의 성인문! 충렬공의 정신이 담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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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느끼며 한 계절, 한 계절을 보내리라 생각이 됩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울산시 울주군 두동면 만화리에 위치한 '박제상유적지'였습니다.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평일이라 찾아온 사람들은 없었지만 휴일 날, 아이들과 함께 가족 나들이를 한다면 꽤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딸아이가 어릴 때, 이런 곳에 자주 찾아오지 못한 아쉬움과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그래도 한 번은 딸아이와 같이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이곳저곳을 구경했습니다.

아직도 충렬공 박제상의 혼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 충신 박제상 생가입니다. 아직도 충렬공 박제상의 혼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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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산서원, 이곳은 신라 충신 박제상과 그의 부인을 기리기 위해 세웠던 사당입니다. 박제상은 신라시조 박혁거세의 후예로 눌지왕이 임금이 된 후, 힘들고 어려움에 처해 있어도 끝까지 신라의 신하라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다 결국 일본에서 생애를 마치게 되고 그런 가운데에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은 신라의 유일한 충신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박제상의 부인은 딸들을 데리고 치술령에 올라가 일본 쪽을 바라보며 통곡하다 죽게 되었는데, 그 몸은 돌로 변하여 망부석(望夫石)이 되었고 그 영혼은 새가 되어 날아가 은을암(隱乙岩)에 숨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후, 사람들은 박제상의 부인을 치술신모라 하고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냈는데 조선시대에 이르러 이 사당 자리에 치산서원을 세웠다고 합니다.

치산서원 내에서는 충렬공 박제상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충렬묘와 국대부인, 치산신모로 추앙받는 박제상의 부인 금교 김씨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신모사, 박제상의 장녀 아기와 삼녀 아경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쌍정려가 있습니다.

치산서원 옆에 지어진 박제상기념관에서 충렬공 박제상의 정신을 느껴봅니다.
▲ 충렬공박제상기념관! 치산서원 옆에 지어진 박제상기념관에서 충렬공 박제상의 정신을 느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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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제상유적지를 둘러보다 보면 '삼모녀상'이라는 조각상이 눈에 띄는데, 박제상의 부인과 두 딸이 일본으로 떠난 박제상을 기다리다 순국소식을 듣고 망부석이 되었다는 설화를 바탕으로 삼모녀를 조각한 상이라고 했습니다. 그 모습이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그 무언가를 전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치산서원 옆으로 박제상 생가와 '충렬공박제상기념관'이 있습니다.

올해 처음, 충신 박제상(朴堤上 363∼419)을 기념하기 위한 첫 박제상 문화제가 열렸습니다. 직접 참여하지는 못 했지만 서서히 우리 지역에서 문화제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고 멀게만 느껴지는 역사에 대한 인식이 다소 가까워진 듯해 기분이 좋았습니다.

치산서원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망부석과 은을암이 마음을 이끌었습니다. 한번 꼭 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정표를 따라 은을암으로 올라가는데, 산 중턱으로 올라갈수록 길은 좁아 위험하기도 했습니다. 한참을 망설이다 발길을 돌렸습니다. 다음에 가벼운 차림으로 등산을 하기로 하고 되돌아 내려왔습니다. 조금 아쉬웠지만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박제상 부인과 두 딸의 혼을 달래기 위해 만들어진 모녀상입니다.
▲ 삼모녀상입니다! 박제상 부인과 두 딸의 혼을 달래기 위해 만들어진 모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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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가는 길,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래도 마음은 한결 가벼웠습니다. 노란빛의 벼들이 머리를 내리고 인사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곧 있으면 고향집 들녘에도 가을걷이로 바쁜 날들을 보낼 것 같고, 당분간은 저무는 가을 무렵, 잠깐의 여유는 없을 듯합니다.

마음 한 곳에 생각을 머물게 합니다. 내가 살고 있는 내 나라에 대한, 나와 함께 살아가는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잠시 생각나게 하는 그래서 새로운 다짐을 하게 합니다. 나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말입니다.


태그:#박제상, #유적지, #문화제, #생가,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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