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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몸보다 마음을 위로받은 시간이었다
 병실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몸보다 마음을 위로받은 시간이었다
ⓒ 유신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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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입원을 했다. 조그만 병원인데 노인 분들이 많다.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교통사고 환자다. 지난시절 전쟁으로 숨지거나 부상당하는 숫자보다 요즘 교통사고를 당한 숫자가 더 많다더니 사실이다. 병원에 와서 실감한다.

한 병실에 대개 열 명 남짓이다. 입원한지 얼마되지 않은 사람도 있고 퇴원을 앞두고 마무리 가료중인 사람도 있다. 생긴 모습만큼이나 다양한 사연을 안고 누워있는 사람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하나같이 인간극장 감이다.

건너편 병상의 열세 살 병국이. 교통사고 환자다. 왼쪽다리를 기브스하고 목발을 짚고 있는 아이. 불편한 몸인데도 성격이 밝고 붙임성 있다. 전화기에서 먼 자리인데도 병실 전화는 도맡아 받는 부지런함. 병실 귀염둥이다. 장날은 물리치료실에 일찍 안가면 오래 기다려야 한다는 둥 알짜 정보도 알려주고 살갑다. 요즘 아이들 제멋대로 인줄 알았더니 의외다.

얘기를 나누다 보니 사연이 깊다. 입원한지 10주째. 7월 말에 하교 길에 사고가 났단다. 다음 날 사물놀이 전국대회 페스티벌이 있어서 학교에서 마지막 리허설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길을 건너다 미처 보지 못하고 추월하는 차량에 사고를 당했다. 사고 후 바로 대학병원으로 옮겼지만 일주일 동안이나 깨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대학병원에서 겨우 깨어나 3주간 치료받고 다시 큰 병원으로 옮겨 3주를 보낸 후 이곳까지 왔단다. 사고 후 정신을 잃어 당시 상황을 잘 기억하지 못한다. 사고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니 앞으로는 더 조심하고 살아야겠단다. 엄청난 사고 얘기를 하면서도 뭐가 좋은지 싱글벙글이다. 천성이 밝다.

부지런하고 씩씩한 열세살 병국이. 바르게 잘자라 큰 꿈을 이루거라.
 부지런하고 씩씩한 열세살 병국이. 바르게 잘자라 큰 꿈을 이루거라.
ⓒ 유신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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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때문에 참가를 못하게 된 사물놀이는 배운지 올해로 4년째란다. 사물 중에도 북과 장고가 특기인데 그 중에 북을 더 좋아 한다. 학교에서 특별활동으로 가르치는 국악은 뭐든지 좋아해서 단소도 열심히 배우고 있다는 자랑. 올해는 단소 페스티벌도 열심히 준비했는데 사고가 나버렸다 한다. 

병국이는 성격이 활달해서 틈 만나면 목발을 짚고 병상을 건너온다. 궁금한 세상일이 많으니 조잘조잘 얘기하고 싶은 것들도 많다. 존경하는 위인을 물으니 뜻밖에도 노무현 대통령이 나온다. 그래서 장래희망도 대통령이다.

장래희망은 아무렇게나 정한 게 아니다. 미래 대통령이 되기 위해 이미 구체적인 세부계획까지 세워 놓았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경찰대학에 입학한 다음 대통령 출마할 수 있는 나이까지는 경찰 공무원으로 근무할 거란다. 대통령은 골치 아픈 거라고 뭐 하러 대통령하려느냐고 물었다. 나라를 발전시키고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온 국민들을 잘 살게 할 거란다. 가난한 사람 없게 할 거란다. 물어 본 어른보다 낫다.

노무현 대통령말고 존경하는 사람이 또 있느냐고 물으니 서슴없이 부모님이란다. 부모님 존경하는거 쉽지 않은 일인데. 아버지는 농사를 지으시고 어머니는 중학교 선생님이다. 아들보러 아침마다 병실을 찾는데 조용하고 예의바른 분들. 아들에게 존경받는 부모님이니 너 같은 아이 키워냈겠지.

핸드폰 벨이 자주 울린다. 아버지 전화다. "왜요, 아부지" 옆에서 들으니 밥은 먹었느냐는 둥 아픈 곳은 없냐는 둥 소소한 일상 얘기. 아하, 저런 아이 키우는 일 거저 되는 게 아니구나. 끊임없는 관심의 소산이로구나. 시월 햇볕에 알밤 여물듯 부단한 관심 속에서 비로소 아이가 제대로 자라는 거다. 

잘사는 동네 사교육비가 다른 동네 한 가구 생계비를 훌쩍 뛰어 넘는 나라. 1등 이외는 전부 낙오자를 만들어 버리는 황량한 교육풍토. 망국적인 일등 지상주의 그늘, 전교생 69명의 시골초등학교에서 병국이같은 아이들이 자라고 있었다.

사람들이 다음 세대의 불안한 미래를 얘기할 때마다 나는 병국이를 떠올릴 것이다. 서울만 사람 사는데 아니다. 망국적인 교육풍토도 그리 절망할 일 아니다. 세상은 변한다. 어디서든 병국이같은 희망의 꽃송이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을 테니까. 신은 한쪽 문을 닫을 때 반드시 다른 한쪽 문을 열어 놓는다지 않은가.

막내아이가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아이들과 얘기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 병원에서 뜻밖에 인연을 만나 좋은 말벗이 되었다. 부지런하고 씩씩한 열세 살 병국이. 바르게 잘 자라 반드시 큰 꿈을 이루거라. 가난한 사람 없이 골고루 잘사는 좋은 세상 만들거라.


태그:#입원, #병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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