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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홍천 파란 기와집 장독대에는 마을에서 제일 큰 살구나무가 있었지요. 늦봄이면 살구나무 가녀린 가지가 바람에 낭창낭창 흔들려 하얀 꽃잎으로 아버지의 앉은뱅이 책상보마냥 장독대 밑 자갈밭을 덮어 놓고는 했답니다.


공깃돌 줍자는 어머니를 따라 장독대 밑에 얼굴을 맞대고 앉았으면 살구꽃의 다디단 향기가 어머니와 저를 꽁꽁 묶어 놓고는 했습니다. 어머니가 살구꽃 향기에 취해 저의 얼굴을 당신 가슴에 폭 파묻어 놓고는 살며시 눈을 감으십니다. 어머니의 가슴에 숨이 막혀 고개를 살며시 빼내어 올려다보면 그 모습은 꼭 하늘의 선녀 같았어요.


어머니는 하얀 살구꽃을 두 손에 받쳐 드시고는 저더러 아~ 하랍니다. 하마입보다 더 크게 아~ 하고 있으면 두 손에 받쳐 든 살구꽃을 호~하고 제 입 안으로 불어 넣어주시곤 하셨지요. 그게 그렇게 재미있었어요. 너무 재미있어서 까르륵하고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지요.


어머니 이번에는 살구나무 밑에 앉으라고 해요. 조그만 무릎을 감싸 안고 앉아서 실눈을 뜨고 어머니를 보고 있으면 살구나무 가지를 낭창낭창 흔드시는데 상상을 해 보세요. 제 머리 위로 하얀 살구꽃 비가 내리는 광경을요. 아버지 머리보다 조금 더 큰 제 몸은 그만 하얀 눈사람이 되었어요. 이렇게 어머니와 뒤꼍 장독대 살구나무 밑에서 놀고 있는데 갑자기 천둥치는 소리가 들리는 거여요.


"애미야! 저녁 안 짓고 어디서 뭐 하니?"


어머니가 화들짝 놀라 "예, 어머니" 하는 소리가 아직도 내 귓가에 있는데 어느새 안 보이셔요. 저는 그만 살구꽃 하얀 눈사람이 되어 어머니 돌아간 자리만 바라보다가 장독대 차돌멩이를 집어 들고 살구나무에게 심술을 부렸지요. 굴뚝에 저녁연기 날 때까지 그렇게요. 아마 할머니가 미웠던 적은 이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을 거예요.


엊그저께 고향을 다녀왔는데 글쎄 살구나무는 그 자리에 그대로지 뭐예요. 고우신 우리 어머니는 늙어서 허리도 제대로 못 펴고 다리도 저는데 말예요. 아이참! 속상해 죽겠어요. 꽃향기 다디단 살구나무는 그대로인데...


어머니, 제가 어머니를 참 많이 사랑해요. 참말이에요. 저는 어머니가 아주 오래오래 사셨으면 참 좋겠어요. 살구나무처럼 그렇게요. 올 봄에는 어머니하고 고향에 살구나무 꽃 피고 지면 살구 따먹으러 가요. 제가 어머니 모시고 갈게요. 예, 어머니!

 

덧붙이는 글 | 생전 안 늙으실 줄 알았던 어머니에게 쓴 편지입니다. 훌쩍!


태그:#어머니, #고향, #살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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