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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오 마이 캡틴."

 

무대에서 내려온 서른네 명이 한 마음으로 외쳤다. 이 외침은 두 달간 그들을 지도하며 가능성을 현실로 바꿔 준 리더에 대한 최고의 존경이자 찬사였다. 서로 부둥켜 않은 채 눈물을 흘리는 남자의 자격(이하 남격) 합창단의 모습. 주말 예능 프로그램 한 꼭지가 시청자들의 가슴을 뜨겁게 달궜다.

 

'박칼린 신드롬'이라고 할 만큼 그녀는 지금 주목 받고 있다. 국내 뮤지컬 음악감독 1호라는 호칭이 무색하지 않게 유수 작품들을 연출했으며, 이젠 오합지졸, 자격미달의 사람들을 그럴싸한 합창단원으로 만들어 놓았다. 음악인으로서 실력뿐 아니라 사람을 다루는 그녀의 리더십까지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녀는 작은 불꽃과도 같다. 그가 맡아서 지도했던 수많은 지망생들은 그 불꽃에 타오르기 적절한 질료를 가진 이들이었을 것이다. 비록 실력과 경력은 부족했으나 이번 남격 합창단원들 역시 음악에 대한 열정이 있었고 그것은 박칼린에 의해 충분히 불타 오를 만했던 재료였다. 발화점까지 도달하지 않았던 차디찬 그들의 마음은 프로그램 회차가 거듭될수록 서서히 달아올랐다. 그리고 마지막 방송 무렵엔 그들 스스로 하나의 불꽃이 되었음을 달라진 눈빛으로 나타내었다.

 

여기 또 다른 불꽃 경연장이 있다. 케이블 방송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는 <슈퍼스타k2>. 이 프로의 출연자들이 전자와 다른 부분이 있다면 음악에 있어서 뛰어난 실력과 재능이 있다는 점과 하모니를 이루는 것이 아닌 경쟁을 통해 자신의 우수성을 증명해야 한다는 점이다. 불타오르던 경쟁자들은 심사위원들의 평가에 의해 하나 둘 무대에서 사라진다. TOP1을 뽑기 위한 철저한 검증과정은 보는 이들에게 긴장감과 묘한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수많은 작은 불꽃들은 잠시나마 좌절과 절망이라는 불완전 연소를 경험한다.

 

 

바슐라르는 그의 저서 <촛불의 미학>에서 촛불이 불타고 있는 시간을 찬양한다. 촛불이 타고 있는 바로 그 순간이 삶과 꿈의 가치가 결합되고 있다고 말한다. 불이란 그 자체로 존재 의미가 있는 것이다. 가치의 경중을 따질 수 없다는 말이다. 불에 대한 기억은 촉각에 의해 강렬하게 각인된다. 뜨거움 혹은 따뜻함이라는 불에 대한 촉각적 감각이 원시인들의 공포와 경외감을 촉발했다. 불의 기억은 이처럼 역사의 기원부터 인류가 공유해왔던 무형자산과도 같다.

 

남격 합창단원들이 짧은 기간임에도 헤어짐에 목이 메고 아쉬워했던 것은 바로 그들이 공유한 그 따뜻함의 기억 때문이 아닐까. 모든 구성원들이 그 강렬한 따뜻함을 함께 체험했기에 대회 수상은 그들에겐 아무 것도 아니었다. <슈퍼스타k2>의 재미가 현대인들이 당연시하는 경쟁 시스템의 곤고함을 토대로 했다면 박칼린을 위시한 합창단은 그것마저 무의미하게 만들 수 있는 공동체의 위대함을 기반으로 감동을 선사했다.

 

작은 불꽃 하나가 그들 마음에 옮겨 붙어 큰 불을 내었다. 우리 사회가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은 경쟁이라는 무대 위에서 위태롭게 타오르는 불꽃인가 아니면 끊임없이 전이되고 공유되는 공존과 조화라는 불꽃인가.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에게 저마다 함께 타오르기 충분한 질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태그:#슈퍼스타K2, #남자의 자격, #박칼린, #허각, #존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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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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