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축구연맹 각국 클럽의 실력을 겨루는 챔피언스리그 8강 토너먼트에 K-리그 클럽 네 팀이 모두 진출했을 때, 우리 팬들의 자긍심은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했다. 다음 달 13일 도쿄에서 벌어지는 결승전 진출팀을 결정하는 준결승 일정에는 비록 한 팀 밖에 올라오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래서 더욱 성남 선수들의 어깨는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신태용 감독이 이끌고 있는 성남 천마 FC(한국)는 우리 시각으로 6일 이른 새벽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 있는 킹 파드 국립경기장에서 벌어진 2010 AFC(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1차전 알 샤밥과의 방문 경기에서 3-4로 아쉽게 역전패했다. 하지만 성남은 방문 경기에서 세 골이나 터뜨린 덕분에 오는 20일 저녁 안방(탄천)에서 벌어지는 2차전에서 큰 점수 차로 이겨야 하는 부담을 덜고 돌아오게 되었다.

빛 바랜 몰리나의 특급 왼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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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돈치치, 몰리나, 조동건 등 최고의 공격진으로 방문 경기 선수 명단을 꾸린 성남 천마는 출발이 좋았다. 경기 시작 4분 만에 라돈치치가 왼쪽에서 올린 띄워주기를 상대 수비수가 걷어내자 몰리나가 달려들며 왼발 중거리슛으로 선취골을 터뜨린 것. 그의 발등에 제대로 걸려 휘어날아간 공은 문지기 왈리드 압둘라가 지키고 있는 알 샤밥 골문 왼쪽 기둥을 때리며 그물을 흔들었다.

그로부터 11분 뒤 수비수 조병국이 상대 골잡이 올리베라를 놓치는 바람에 승부를 다시 원점으로 돌린 성남은 26분에 미드필더 조재철이 다시 달아나는 추가골을 터뜨렸다. 상대 수비수의 오프사이드 함정을 무너뜨리는 조동건의 재치있는 찔러주기가 빛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2-1로 전반전을 끝낸 성남 선수들은 조급해진 안방 선수들을 상대로 한결 여유있게 경기를 진행시킬 수 있었지만 수비 집중력에서 문제를 드러내며 역전패의 아쉬움을 남겼다. 그나마 몰리나의 특급 왼발이 한 번 더 빛난 덕분에 가쁜 한숨을 몰아쉴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콜롬비아 출신의 왼발 특급 몰리나는 점수판 2-2 상황에서 조동건이 이마로 떨어뜨린 공을 달려들며 강력한 왼발 슛으로 또 한 번 균형을 깨뜨렸다. 결과론이지만 조동건의 수준 높은 찔러주기 두 개와 몰리나의 빛나는 왼발이 아니었다면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결과를 받아들고 귀국할 뻔했다.

성남은 까다로운 서아시아 방문 일정에서 이처럼 귀중한 세 골을 터뜨리고도 그보다 한 골을 더 내주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패했다. 문제는 수비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순간이 여러 차례 연출된다는 점이었다.

특히, 후반전에 내준 세 골은 '성남 1-0 알 샤밥 → 1-1 → 2-1 → 2-2 → 3-2 → 3-3 → 3-4'로 이어진 역전패의 과정을 상징하듯 너무나 허무했다. 56분에 나시르 알 샴라니에게 내준 골은 그의 드리블과 왼발 기술에 성남 수비수들이 속아넘어간 탓이라 해도 80분이 넘어가면서 내리 내준 두 골 상황은 좀처럼 고개를 들 수 있는 장면이 못 되었다.

83분, 성남의 왼쪽이 또 한 번 뚫렸다. 이러한 현상은 전반전부터 계속 만들어진 것이어서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지만 큰 경기 경험이 많지 않은 홍철에게는 너무도 가혹한 셈이었다. 알 샤밥의 핵심 미드필더 압도 아우텝이 올려준 공이 골문 바로 앞에 기다리고 있던 골잡이 올리베라에게 떨어지기까지 아무도 달라붙지 못한 것이 화근이었다.

수원 블루윙즈에서 잠시 뛰기도 했던 올리베라는 전북과의 8강 토너먼트에서 귀중한 전주성 방문 경기 골을 터뜨릴 정도로 요주의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조병국-사사가 그를 따라붙지 못했고, 도움주기의 주인공 압도 아우텝 또한 사우디 아라비아 국가대표로 이름을 널리 알린 바 있는 위험 인물이었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것이다.

이를 증명이나 하듯 압도 아우텝은 89분에 교체 선수 파이잘의 역전 결승골까지 도왔다. 성남 미드필더와 수비수들이 모두 그의 드리블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빠져들어오는 파이잘을 놓친 것이다.

2004년의 악몽을 씻어버릴 기회다!

8강 토너먼트에서 K-리그 챔피언 전북을 물리치고 올라온 알 샤밥의 기세는 한 마디로 놀랍다. 아무리 안방 팬들의 일방적인 응원을 등에 업고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고 하지만 83분에 만들어낸 동점골과 89분에 나온 극적인 역전 결승골은 전율을 느끼게 할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이렇게 잠시 고개를 숙인 성남으로서는 그나마 한 골 차로 패했기 때문에 안방에서 열리는 두 번째 경기에 대한 긍정적인 전망을 밝힐 수 있게 되었다. 세 골 이상을 내주지 않는 범위에서 한 골 차 이상의 승리를 거두면 되기 때문이다. 몰리나, 조동건, 라돈치치가 보여주고 있는 최근의 골 감각을 고려한다면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닌 듯하다.

어쩌면 이 아쉬운 결과가 20일에 펼쳐지는 안방 경기에서 더 쓸모있는 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비겨도 되는 경기와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는 그 준비하는 마음 자세부터가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2004년에 열린 이 대회 결승 2차전에서 당한 수모를 생각하면 그 악몽을 보기 좋게 씻어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당시에 성남은 알 이티하드(사우디 아라비아)와 만난 2004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1차전 방문 경기에서 3-1의 기분 좋은 승리 기록을 얻고 안방에서 축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2차전 안방 경기에서 0-5 패배의 충격을 입은 것.

분명히 팀은 다르지만 사우디 아라비아의 유명 클럽을 상대로 두 번이나 당할 수 없다는 각오가 20일에 벌어질 준결승 2차전에 그 조직력으로 승화되기를 바란다. 2009년 포항 스틸러스가 바로 그 클럽 알 이티하드를 2-1로 물리치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감격의 현장(도쿄 국립경기장)에서 성남 선수들이 다시 한 번 활짝 웃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2010 AFC 챔피언스리그 준결승 1차전 결과, 6일 새벽 2시 리야드

★ 알 샤밥(사우디) 4-3 성남 천마 FC [득점 : 올리베라(15분), 나시르(56분), 올리베라(83분), 파이잘(89분) / 몰리나(4분), 조재철(26분,도움-조동건), 몰리나(68분,도움-조동건)]
몰리나 조동건 축구 성남 천마 FC 챔피언스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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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대인고등학교에서 교사로 일합니다. 축구 이야기, 교육 현장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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